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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는 빌런-234화 (234/324)

234화

‘네가 믿고 있는 그 주인이란 작자는 널 버리고 지금쯤은 두 다리 뻗고 쿨쿨 자고 있을 거다!’

재언은 독구를 향해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러 참아 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강아지가 진실을 잘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믿는다 해도 삶의 의지를 잃고 우울증에 빠질까 봐 걱정스러웠다.

인간이었을 때보다 감각이나 성격이 더 예민하게 변하는지 평소의 유하고 느긋한 재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저 이 상황이 굉장히 불만스러워서 꼬리로 바닥을 힘 있게 탁탁 내리쳤다.

그냥 같이 놀자는 식으로 독구를 속인 뒤 포획 틀에 유인해 버릴까.

잠시 못된 마음을 먹긴 했지만, 그러다 인간 불신, 아니 고양이 불신에 빠질까 봐 머뭇거려졌다.

아마도 안유진이 독구에게 강경책을 쓰지 못했던 이유도 인간에게 버림받은 독구를 강제로 잡아가 불신을 심어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맛있다! 배불러~ 이제 배불러~!”

걱정하는 인간들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독구는 그저 해맑게 사료를 해치운 뒤 신재언의 볼을 혀로 핥으며 작별 인사를 전했다.

“그럼 안녕! 나중에 또 놀자!”

“애옭…….”

강아지의 침으로 엉망이 된 털에 찝찝함을 느낀 재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성에 찰 때까지 앞발로 얼굴을 문질렀다.

겨우 얼굴을 다 정리하고 자리를 뜨려는 찰나, 골목길에서 뛰어나오던 어린 초등학생 세 명이 재언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와! 고양이다!”

“크다! 귀여워.”

“만지면 안 돼. 싫어하잖아.”

신재언을 둘러싸고 구경하다가 손을 뻗으려는 남자아이 두 명을 여자아이가 제법 야무진 말투로 제지했다.

그 말대로 재언은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 초등학생들에 깜짝 놀란 상태였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지금은 자신보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인간들에게 둘러싸인 셈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착한 것 같았다.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의 제지에 손을 뻗는 걸 거두고 멀뚱히 구경만 하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진짜 크다.”

“귀여워. 집에 데려가고 싶어.”

신재언이 초등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털을 잔뜩 부풀리는 모습에 차 안에 있던 차민재가 밖으로 나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인기척에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허리를 숙여 깜짝 놀란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이거는 형 거라서 멋대로 가져가면 안 돼.”

“야옹…….”

제멋대로 소유를 주장하는 민재에게 재언이 항의하듯 작게 울었지만, 차민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아쉬운 표정을 한 초등학생들을 뒤로하고 차로 돌아오니 안유진이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안 되겠어요. 독구가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상태가 이전보다 더 심각해졌어요. 사람을 미워하게 되더라도 억지로 데려와서 치료해야겠어요.”

그녀는 사료를 먹던 독구의 상태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는데 오늘따라 더욱 나빠 보였다며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이대로 있다가 정말 잘못돼서 죽는 것보단 뭐라도 해서 살리는 게 우선순위일 것 같아요.”

확실히 재언이 가까이서 봤을 때도 독구의 상태는 참혹했다. 목을 옥죄이는 목줄이 살을 파고들다 못해 진물이 나오고 있었다. 독구도 상당히 아픈지 조금만 움직여도 깨갱거리며 꼬리를 말고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프다 칭얼거리지 않고 오히려 재언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 게 정말로 바보 같은 강아지였다.

그리고 재언이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절뚝이던 뒷다리였다. 안유진이 분명히 처음 발견 당시에는 사지가 멀쩡했다고 말했었다.

“독구여?”

“응. 이만한 흰색 개……. 지금은 때가 잔뜩 타서 회색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모가 데려갈까 생각 중이거든.”

안유진은 아직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초등학생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에 재언도 덩달아 차에서 내린 차민재를 따라갔다.

“아, 혹시 해피 말하는 거에여?”

떠돌이 개의 이름을 아이들이 제대로 기억할 리 없고, 아마도 자기들 멋대로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지은 듯했다.

“그 개, 저쪽에 사는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뭐라고 했지, 아무튼 잡아다가 어떤 아저씨한테 판다고 했어요. 좋은데 데려다주는 거니까 저희보고 잡아 오면 쭈쭈바도 사 준다고 했는데.”

남자아이 중 한 명이 콧물을 훌쩍이면서 신재언의 꼬리를 만지작거렸다. 재언은 그 손길이 불편해 꼬리를 이리저리 휙휙 돌렸는데, 오히려 아이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꺄르륵 웃었다.

“그래도 저희는 저번에 할머니가 해피한테 몽둥이를 들었던 걸 본 적이 있어서 믿지 않아요.”

재언은 독구를 보고 있자면 안타깝게 죽은 고양이, 나비가 떠올라 기분이 우울해졌다. 그 검은 고양이도 정착할 곳 없이 제대로 된 이름도 받지 못하고 떠났는데, 독구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독구가 뒷다리를 저는 게 어쩌면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학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며 의심하던 안유진이 파르르 떨었다.

“그 사람들이에요! 제가 독구한테 밥을 줄 때마다 뒤에서 못마땅하게 욕하던 노부부! 안 되겠어요. 한시라도 빨리 독구를 데려와야겠어요.”

“야옹-”

재언이 공감한다는 듯 차민재의 품에서 앞발을 휘적이며 미약하게 울었다.

안유진은 곧장 고급 사료와 캔, 그리고 강아지들이라면 환장할 만큼 좋아하는 간식까지 준비해 두고 독구를 포획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미 한차례 밥을 먹고 배가 부른 독구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차민재는 차 안에 앉아 어디서 구해왔는지 부드러운 빗으로 재언의 털을 빗기고 있었다.

“재언 씨는 결이 좋아서 윤기가 흐르네요. 부드럽고 따뜻해서 기분 좋습니다.”

차민재가 재언 고양이의 정수리와 등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며 황홀하다는 듯 속삭였다. 눈동자 안 가득 사랑이 뿜어져 나온 걸 보니 자기 허벅지에 앉아 노곤하게 고롱거리는 신재언이 매우 마음에 든 모양이다.

재언은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어차피 표정을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뻔뻔해지자고 마음먹고 눈을 지그시 감아 기꺼이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차민재 씨가 고양이를 좋아했나요?”

안유진이 그런 차민재를 돌아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입사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청 흐뭇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네요.”

“흠흠.”

재언이 결국 고롱거리는 소리를 멈추고 헛기침을 내뱉으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가 괜스레 딴청을 피우기 위해 고개를 돌린 창문 밖으로 드디어 독구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게 보였다.

재언은 부끄러워하는 고양이의 정수리에 키스 세례를 퍼붓는 차민재의 입술을 앞발로 막으며 그의 고개를 돌아가게 했다.

창밖에서 다가오는 독구를 발견한 안유진이 긴장한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재언은 앞발로 창문을 열고 그 틈으로 뛰어내렸다.

“재언 씨!”

차민재가 깜짝 놀라 소리치자 재언은 도도하게 꼬리를 바짝 치켜세우고 뒤를 힐끔 쳐다보며 야옹, 하고 울었다. 따라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건 용케도 알아들었는지 차민재가 아쉬운 눈을 하면서도 따라 내리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재언이 독구에게 다가가자 강아지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포획 틀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방정맞게 소리쳤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뭐가 어쩌지야?”

재언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독구에게 물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들어갈 수 없어! 너무 위험해 보이잖아!? 이게 뭐야? 이거 뭐야? 근데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

머리가 좋은 편이라는 안유진의 말이 사실인지 독구는 무작정 포획 틀 안으로 달려들지 않고 주변만 서성이면서 침을 뚝뚝 흘렸다.

재언은 살을 파고드는 목줄을 쳐다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쯧 찼다.

“그냥 들어가는 게 어때? 맛있는 냄새가 나면 먹으면 되잖아.”

재언이 마치 강아지를 약 올리려는 듯 앞발을 싹싹 핥으며 포획 틀 근처로 다가갔다.

“하지만 수상해!”

“저 사람은 말이야, 네가 여기 들어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어. 네가 아파 보이니까 핥아 주고 싶은 거야.”

“하지만… 하지만…….”

“네가 원래 있던 무리에 돌아가도 그 몸으로는 아주 힘들걸? 너도 네 몸 상태가 엉망이라는 건 알고 있잖아. 주인을 찾아도 네가 볼품없다면서 다시 떠날지도 몰라. 그러니 차라리 그녀의 무리에 있다가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리는 게 먼저 아니겠어?”

“끙…….”

독구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자신을 버린 주인 때문에 낑낑대면서 포획 틀 주변만 왔다 갔다 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원래 주인을 만나고 싶어 한대도 저 사람은 널 외면하지 않을 거야.”

재언의 설득에 독구는 짧게 침묵했다가 꼬리를 축 늘어트리며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어.”

“뭘?”

“주인이 날 떠난 거라는 걸. 하지만 난 알아. 내가 바보 같고 멍청해서 떠난 게 분명해. 쓸모없으니까 버림받은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주인을 만나면 다시 날 데려갈 수 있도록 힘내겠어!”

굳게 다짐한 듯한 외침과 동시에 독구가 포획 틀 안으로 들어가더니 맛있는 간식들을 먹어 치웠다. 포획 틀 문이 닫혔음에도 독구는 딱히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그에 차 문이 열리고 안유진이 허겁지겁 달려와 독구의 상태를 확인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심각한 강아지의 상태에 기절할 것처럼 놀란 안유진이 그 길로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독구를 진찰한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워낙 어릴 때 목줄을 하고 바꿔 주지 않아 자라면서 살을 파고드는 바람에 상태가 아주 심각했단다.

거기다가 안쪽에서 벌레알이 발견되어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뻔했다고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야옹.”

“흑흑. 제가 더 빨리 독구를 데려왔어야 했는데. 강아지들은 자기들이 버림받아도 주인이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나 봐요. 미련하고 바보 같기는……. 그래도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번호는 마지막 우리 팀원의 전화번호예요.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꼭 찾아가 보세요.”

안유진은 동물병원에서 독구와 함께 있어 줘야겠다며 다른 팀원과의 약속 장소와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손을 흔들며 신재언과 레헬을 배웅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도착해 만난 마지막 상대는 놀랍게도……,

“…뭘 봐!! 뭘 봐!! 이 씨발놈아 뭘 봐!!”

…욕쟁이 앵무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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