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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는 빌런-236화 (236/324)

236화

시간이 조금 흐르자 신재언 고양이를 보고 기절한 생쥐 부하 1호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자신의 앞에 우뚝 서 있는 거대 고양이를 보자마자 다시 눈을 까뒤집으려 했다.

그에 재언이 생쥐 크기만 한 커다란 앞발로 1호의 배와 등을 툭툭 쳤다. 그러자 부하 1호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오르더니 앵무새의 뒤로 숨어 버렸다.

이미 진작에 숨어 있던 부하 2호가 만화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자세를 취하며 울먹였다.

“대, 대, 대장… 여기에 왜 고양이를 데려온 겁니까? 설마 우리를 먹이로 주시려고…….”

부하 2호의 물음에 재언이 고개를 흔들며 대신 대답했다.

“난 쥐 안 먹어.”

“우리가 포동포동하니 맛있어 보여서 군침을 뚝뚝 흘리는 것 아닙니까? 제가 어렸을 때 찍 선생께서 고양이는 우리를 머리부터 똑 따서 통째로 오독오독 씹어먹는다고 하셨는데…….”

‘생쥐들 사이에서도 학교가 있었던가.’

재언은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면서 앞발을 싹싹 핥았다. 쪼롱이가 안내해 준 다락은 먼지로 가득해서 금세 털이 엉망으로 변했다. 심적으로 아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커다란 체구와 날카로운 이빨, 뾰족한 발톱까지! 아아, 무섭습니다!”

재언은 비명 지르며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는 생쥐 부하 1호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다 그나마 많이 침착해진 부하 2호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나누었다.

부하 2호는 고양이가 자신들을 잡아먹을 생각이었다면 이미 잡아먹고도 남았을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침착하게 재언의 인사를 받았다.

아니면 이 집의 서열 피라미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앵무새 쪼롱이를 믿고 있는 것일까.

“재언 씨! 위에는 아주 더러워요. 털이 더러워지니까 얼른 내려와요.”

다락방 아래에서 소리치는 차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다락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여기저기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거미줄도 드문드문 보였다.

섬세한 성격으로 보이는 앨리스 강이 이곳에 생쥐 두 마리가 산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까.

“야---옹.”

재언이 곧 내려가겠다는 뜻을 담아 길게 울었다. 마치 하울링을 하는 것처럼 울리는 소리에 겨우 진정되었던 생쥐 두 마리가 다시 뒤집어졌다.

결국, 성격이 불같은 앵무새 쪼롱이가 신경질적으로 높게 소리 지르며 발로 생쥐들을 꾹 눌렀다.

“끼아아악! 닥쳐, 이 새끼들아! 언제까지 호들갑만 떨 거야!?”

“찌익…….”

앵무새의 발에 밟혀 훌쩍이던 생쥐 부하 1호와 2호는 신재언 고양이가 절대로 잡아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108번 정도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앵무새 한 마리, 생쥐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천장에서 내려와 다락방에 옹기종기 모여 위대한 계획을 도모했다.

“보석? 값진 보석?”

“맞아. 저 아래의 멍청한 놈이 여기에 보석을 숨겨 두었어. 그걸 찾아내는 거야.”

“야옹…….”

한껏 진지한 자신과는 달리 미적지근한 고양이의 반응에 쪼롱이가 기분이 상했는지 날개를 퍼덕였다. 일부러 몸짓을 크게 해 자신을 때리는 날갯짓에 재언은 아프진 않지만, 정신이 사나워져서 앞발로 머리를 숨겨야 했다.

“전에 저 부하 새끼가 여기에 엄청나게 반짝이는 걸 숨기는 걸 봤다니까. 그것만 있으면 이 몸이 더 빛나게 되는 건 일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 위대한 계획에 끼워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이게……!”

앵무새는 콧구멍에서 콧김을 내뿜으면서 고양이를 실컷 때려 준 뒤 부리를 딱딱 부딪치며 다락방 위를 돌아다녔다. 생쥐들은 고양이의 눈치를 슬그머니 보더니 찍찍거리며 다락방에 있는 짐 더미를 돌아다녔다.

재언은 먼지가 잔뜩 쌓인 짐들 위를 나뒹구는 생쥐들의 모습에 머리가 아찔해져서 눈을 질끈 감았다.

“쪼롱이가 자기 아지트를 소개해 주고 있나 봅니다.”

아래에서 앨리스 강의 우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재언은 애초부터 저들의 원대한 계획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인간 두 사람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요즘 쪼롱이가 다락으로 자주 올라가거든요. 처음에 천장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날 땐 쥐가 사는 건가 걱정했어요.”

“흐음, 발명한 약이 모든 동물과 소통이 되는 약이라고요.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니겠죠?”

차민재의 날카로운 질문에 앨리스 강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즉답했다.

“실험에선 부작용이 없는 걸로 나왔는데, 아직 상용화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뿐입니다. 애초에 우리 중 한 명이 먹기 위해 만든 거였고 그걸 허락 없이 홀라당 집어먹은 거니 약간의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감안하셔야죠.”

앨리스 강의 새초롬한 대답에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재언이 머쓱해진 기분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생쥐들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그래도 고양이랍시고 걸음이 소리도 없이 사뿐사뿐 가벼웠다.

생쥐 부하 1호가 어느새 자신의 뒤에 있는 고양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 재빨리 짐들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뭐, 뭐, 뭡니까……. 저, 저, 전 맛없어요.”

“난 쥐는 안 먹어.”

잔뜩 겁먹은 부하 1호의 물음에 재언은 앞발로 주변의 짐 더미들을 툭툭 치면서 한마디 툭 내뱉었다.

부하 1호에게는 미안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반응에 재미있는 감정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점점 마음가짐도 고양이처럼 변하는 모양이다.

“그, 그럼 어쩐 일로…….”

“저 앵무새가 찾고 있다는 보석이 대체 뭐야?”

먼지 때문에 뭉친 앞발의 털을 노려보다 혀로 핥으며 물었다. 고양이의 질문에 안절부절못하던 부하 1호는 무슨 작업장의 감독관처럼 탁- 탁, 하는 걸음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쪼롱이를 힐끔 쳐다봤다.

“아래에 사는 인간 놈이 여기서 대단히 빛나는 보석을 흘렸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말로만 들었을 땐 무슨 세계를 지배할 것 같은 대단한 야망을 세우는 것처럼 굴었으면서 사실은 고작 인간이 떨어트린 빛나는 물건이나 찾는 계획이라니, 과연 평화로운 동물 세계였다.

진실을 알게 되자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젓던 재언은 문득 이 쥐들이 왜 앵무새를 대장이라고 부르며 따르는지 궁금해졌다. 부하 1호는 별로 숨길 만한 일은 아니었는지 순순히 과거 이야기를 풀어 주었다.

“저와 2호는 흉악한 고양이에게 쫓기는 바람에 무리에서 떨어져 이 집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갇혀 굶어 죽게 될 처지에 놓여 있었죠. 그때 대장님께서 나타나 해바라기 씨를 나눠 주시게 된 이후로 여기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이 이어지기에 재언은 앞발을 혀로 핥던 걸 멈추고 조금은 진지하게 부하 1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살고 싶으면 대장이라 부르고 하는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조건을 붙이셔서 이렇게 따르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나가면 죽는데 여기서 대장님 말 들으면서 호의호식하는 게 낫잖아요. 그리고 대장님, 말은 험해도 사실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셔서…….”

이제 보니 앵무새와 생쥐들의 눈물겨운 우정 이야기였다. 말을 마친 생쥐 1호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다시 빛나는 물건을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동안 재언은 앞발로 먼지가 가득한 짐 더미들을 툭툭 치며 성의 없이 돌아다녔다.

재언에겐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느껴지진 않았지만, 동물들에게는 제법 긴 시간이었는지 앵무새가 어떠한 소득도 내지 못한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사실 지금의 조합으로는 무언가를 찾는 데에 적합한 건 아니었다. 우선 재언 고양이는 찾으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쥐들은 부산스럽게 이리저리 움직이기는 하지만, 행동반경이 넓지도 않고 힘이 센 것도 아니어서 딱히 도움이 되진 않았다. 거기다가 앵무새는 무슨 감독관도 아니고 돌아다니기만 하면서 훈수만 두었기에 위대한 계획은 오늘도 완수되지 못했다.

그래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내민 채 돌아다녔던 앵무새 쪼롱이의 왕관이 한껏 시무룩해졌다.

“…꾸룩. 오늘도 못 찾았군……. 수고했다.”

드물게 힘없는 목소리로 쪼롱이가 깃털 속에 숨겨 놓았던 해바라기 씨를 두 개 꺼내 부하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린 듯 생쥐 두 마리가 얼른 입 안에 해바라기 씨를 넣고 슬그머니 고양이에게 꾸벅 인사했다.

“아이고 고양이님.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양이들은 다 흉폭하고 무섭고 무자비하고 성격도 나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줄 알았는데, 고양이님처럼 너그럽고 여유로운 분도 계시는군요.”

부하 1호가 뒤통수를 긁으며 능청맞게 말을 걸었다. 얼굴 가득 후대의 후대에게 자신이 집채만 한 고양이와 친구를 맺었다고 허세가 가득한 영웅담을 늘어놓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슬슬 오늘의 임무가 해산하는 듯한 분위기에 재언이 밑으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앵무새의 뒤를 쫓았다.

앵무새가 날개를 축 늘어트린 채 터벅터벅 걸어가자 자연스레 꽁지깃이 바닥을 쓸었다. 그 순간 짐 더미를 한차례 훑고 지나가는 꽁지깃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무언가에 재언이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자세를 낮춘 다음, 잽싸게 굴러가는 구슬 쪽으로 튀어 올랐다. 앞발로 목표물을 잡고 데굴데굴 구른 신재언의 새하얀 털 구석구석 먼지가 가득 묻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머리 깃을 세우고 깜짝 놀란 앵무새가 파드닥 날아오더니 재언의 앞발에 있는 반짝이는 구슬을 확인하고 꽥꽥 소리를 질렀다.

“이거야!”

“…어?”

“이거라고! 내가 찾던 굉장한 보물이 이거라니까!”

앵무새가 신이 난 듯 날개를 펄럭대며 쪼로롱 울었다. 그리고는 고양이의 앞발이 고이 감싸 쥐고 있는 구슬을 잽싸게 부리로 낚아챘다.

재언은 두 눈 뜨고 장난감을 놓친 것보다도 체면도 없이 먼지로 가득한 다락방을 굴러다녔다는 것이 머쓱하고 부끄러워졌다. 이 모습을 차민재나 다른 자식들이 보지 못해서 아주아주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설마 위대한 계획 중 하나인 보석 찾기가 어디 장식품에서 떨어져 나온, 그것도 아무 쓸모도 없는 유리구슬이었다니.

뭐, 동물이 보석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을 리도 없으니 반짝이면 다 진귀한 보석이라고 여기는가 보다. 저걸 구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찾던 것을 손에 넣은 앵무새가 잔뜩 신이 나서 후다닥 날아올라 다락방을 빠져나갔다. 재언 또한 가볍게 뛰어 아래쪽으로 내려와 바닥에 착지했다.

재언이 나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차민재가 다락방에서 튀어나온 고양이를 들어 올려 안았다.

“…앵무새랑 놀더니 먼지가 되어서 나왔네요.”

“야아옹.”

미안하다는 뜻으로 작게 웃어 주자 차민재가 재언의 털에 묻은 먼지들을 톡톡 쳐서 날려 보냈다. 그가 재언 고양이를 배가 보이도록 뒤집어 안고 촉촉한 코에 손가락 끝을 가볍게 툭 치면서 속삭였다.

“이제 그만 일을 끝내고 돌아갑시다. 날도 어두워졌고 재언 씨도 많이 지친 것 같으니 집에서 쉬도록 해요.”

차민재의 말대로 얼른 일을 끝내야 하는데 쪼롱이가 하는 말은 대부분이 욕설이고 앨리스 강을 좋아하는진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진실은 나중에 밝히고 지금은 거짓말을 어떻게 섞느냐가 중요했다.

재언이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다락방에서 포르르 내려온 쪼롱이가 앨리스 강의 어깨 위가 아닌 손목에 앉았다.

“쪼롱아, 이게 뭐니?”

앨리스 강이 애정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쪼롱이에게 손바닥을 펼쳐 주었다. 그러자 쪼롱이는 자신이 위에서 주운, 아주 진귀하고 값진 보물을 그의 손바닥 위에 뱉고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재언은 그 모습에 한숨을 쉬며 야옹, 하고 울었다. 저 장면을 보니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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