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타락한 추기경도 어떻게 보면 굉장하다고 해야 할지…….’
자신을 배신한 친구를 죽이고 망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런 해코지도 안 하고 멀쩡한 상태로 부리기만 했다. 그런 자를 망자로 데리고 무얼 하려는지 재언은 아직도 그의 의중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재언은 어둡고 넓은 복도 끝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좀비를 질린 얼굴로 관찰했다. 핸드폰 플래시의 미약한 불빛만으로는 힘들었을 텐데 타락한 추기경의 후광 덕분에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좀비는 절뚝이는 걸음으로 반쯤 절단된 한쪽 발목을 질질 끌면서 재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래턱이 녹아내렸음에도 식욕이 강한지 이를 딱딱 부딪치는 게 시각적으로 아주 공포였다.
‘네크로맨서인가?’
시체를 조종하는 능력은 일반적으로 네크로맨서 능력에 가까워서인지 신성력에 약했다. 과거엔 교황청의 이단 심문관들이 해당 계열 능력자들을 학살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부정한 능력으로 보았다.
지금도 교황청에선 해당 능력을 가진 이들의 바티칸 입국을 금지하고 혹시라도 들어온다면 무력을 사용해 제압한 뒤 국외로 추방하거나 소속 국가에 넘겨주었다.
대한민국에도 네크로맨서 계열 능력자가 몇 명 존재한다. 하지만 모두 특별관리 능력자로 구분되어 특별관리국의 관리를 받아 군에 소속되어 있다.
그만큼 네크로멘서는 세간에서 가장 천대받은 능력 계열 중 하나였다. 시체를 조종하는 능력을 대다수가 섬뜩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크로맨서 능력자의 9할이 죽은 사람의 육체를 유족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구잡이로 이용한다는 점도 문제가 컸다. 또한 이 능력을 가진 이의 대부분은 욕망이 어그러지거나 파괴욕이 강해 빌런이 될 확률도 높았다.
물론 시체를 망자로 만들어 부리는 타락한 추기경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네크로맨서 능력자들이 부리는 좀비들이 시신의 부패를 막지 못해 상태가 매우 나빠지는 것에 비해 타락한 추기경의 신성력으로 움직이는 망자들은 썩지 않고 온전한 모습을 유지했다.
다만, 신성력과 능력의 상성이 최악이기에 능력을 쓸 때마다 피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말이다.
하필이면 어제 본 영화에서 무지막지한 좀비들을 봐서 그런지 다리를 질질 끄는 걸음 소리가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았다. 지금 상황에 뭐가 또 튀어나올지 몰라서 더욱 무서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괜히 걱정된 마음이 앞선 재언이 작게 속삭였다.
“타락한 추기경, 조심해.”
“아아, 아버지께서는 정말 자비로우십니다. 이렇게 우매한 저를 걱정해 주시다니.”
타락한 추기경이 잔뜩 감동한 표정으로 피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는 신재언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의 친구였던 망자를 움직였다. 망자가 품 안에서 새하얀 권총을 꺼내 좀비에게 겨누자 그의 머리 위로 새하얀 빛이 터졌다.
망자에게 축복을 내려 주는 타락한 추기경의 머리 위로 후광이 더욱더 반짝이며 등 뒤로 새하얀 날개가 펼쳐졌다. 반투명하고 빛을 내는 날개는 어둠으로 둘러싸인 길 잃은 어린양을 인도하기 위해 나타난 천사의 날개 같았다.
탕!
망자, 베드로가 신성한 힘이 깃든 총알이 담긴 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좀비를 향해 매섭게 돌진했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딱!’하고 손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에서 전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좀비가 사라지고 총알은 복도에 설치된 화분을 관통해 벽에 박혔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질감 가득한 어두운 복도에 서 있었는데 지금은 무대에서 강제로 끌려 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재언은 환해진 복도의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좀비가 있었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표물이 사라진 망자는 권총을 내리고 죽은 눈빛으로 타락한 추기경을 쳐다보았다.
타락한 추기경의 새하얀 사제복이 피눈물로 새빨갛게 물들어 가는 와중에 망자인 베드로의 사제복은 여전히 깨끗하고 정갈했다.
망자를 다시 그림자 속으로 보낸 타락한 추기경은 재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떨어진 피눈물은 그가 걸어온 길을 까맣게 물들이더니 산화되어 사라졌다.
“감히 아버지께 이런 추태를 보이게 하다니…….”
타락한 추기경이 통탄스럽다는 듯이 한숨지었다.
“아버지,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감히 위대하신 아버지를 농락한 자를 반드시 잡아다 바치겠습니다.”
“됐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재언은 분하다는 얼굴의 타락한 추기경에게 손사래 쳐 주었다. 그리고 복도 끝에 산산조각이 난 화분과 바티칸의 신성한 총알이 벽에 박힌 걸 확인했다.
이대로 내려가 보안실에 연락해 설명해야 하는지를 잠시간 고민하던 그는 재빠르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뒤돌아 걸었다. 다행히도 엘리베이터 옆에 위아래 버튼이 생겨나 있었다.
‘일단 튀고 봐야겠다.’
@
재언은 저 멀리서 비추는 자동차 불빛에 눈이 부셔서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 재언의 앞에 고급 승용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조수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차민재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뺨에 입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별일 없었습니까?”
“음… 없을 뻔했죠.”
뺨이 뭉개지면서 왼쪽 눈을 감았다 뜬 재언은 방금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며 크게 한숨을 푹 쉬었다.
갓길에 차를 세워 둔 채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던 차민재는 이야기가 끝나자 재언의 회사 건물을 올려다봤다.
“타락한 추기경이 손을 쓰자마자 바로 도망친 걸로 봐서는 능력자가 근처에 있던 건 맞는데……. 그대로 놓쳐 버렸습니다. 꽤 주도면밀한 놈인지 흔적을 남기지도 않았더군요. 조각난 장난감에게 근처를 조사하게 시켰는데도 발견한 게 없었습니다.”
재언이 조수석 왼쪽에 설치된 컵 홀더에서 생수를 꺼내 목을 축였다. 여덟 시 안에 끝난다고 아무것도 안 먹었던 탓에 배가 고팠다.
재언은 다 마신 생수병을 컵 홀더에 세워 놓은 뒤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민재 씨, 가는 길에 빵집 좀 들러요.”
“요즘 재언 씨가 자주 가는 그곳이요?”
재언의 회사가 있는 강남구 쪽은 영업시간이 있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지 민재의 아파트가 있는 서초구는 영업시간 제한이 없었다.
재언은 요즘 퇴근 후 차민재의 집에서 가까운 빵집에서 빵을 사 먹는 것으로 소소한 즐거움을 챙기곤 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빵집으로 값이 저렴한데 맛은 훌륭했다.
그리고 이 시간대에 가면 재고가 남는 빵들을 상자에 넣어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이벤트도 있었다. 싫어하는 빵이 없는 재언에게는 꽤 쏠쏠한 즐거움이었다.
“그동안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건 저희의 작은 선물이에요.”
자주 찾아간 덕분인지 재언의 얼굴을 알아본 사장 부부가 나와 말을 걸면서 손에 든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네?”
“저희, 이번 달까지만 하고 다음 달부턴 장사를 접게 되었습니다.”
노란 물방울무늬의 포장지에 싸인 쿠키를 내려다보며 재언은 속으로 아쉬운 마음을 삼켰다. 오랜만에 좋은 빵집을 찾은 것이 좋아 즐거워했던 게 조금 전이었는데, 이렇게 없어진다니 너무나도 아쉬웠다.
“저희가 사는 아파트 옆집 사람 때문에 이사하게 됐거든요. 아예 한적한 곳으로 내려가서 소소하게 가게를 차려서 운영하려고요.”
“아쉽네요……. 그런데 옆집 사람 때문에 이사를 한다니요?”
그래도 요즘 자주 들르면서 잡담을 주고받았던 것 덕분일까. 아내 쪽이 우물쭈물하면서도 한탄처럼 길게 넋두리했다.
“옆집에 이상한 남자가 사는 것 같아서요. 밤마다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퇴근하고 들어갈 땐 꼭 나와서 얼굴을 확인해요. 가끔 놀러 오는 사람들도 질 나빠 보이고 무섭고……. 게다가 맞은편 동에 사는 여성분이 옆집 남자를 신고한 적이 있었는데, 베란다에서 망원경으로 여성분의 집을 훔쳐봤다고 하더라고요.”
기겁하는 재언의 표정을 이해한다는 듯 그녀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더니 요즘엔 우리 집 현관문에 오줌을 뿌려 놓거나 동물 사체를 갖다 놓아요. 정말 살 수가 없어요. 경찰에 신고해도 경고만 주는지 별다른 진전도 없고요. 얼마 전엔 남편은 집에 있고 저 혼자 퇴근하는 날이었어요.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주차장에 서 있다가 제가 집으로 가는 데 따라오는 거 있죠.”
그녀는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지 팔뚝을 쓸어내렸다.
“물론 옆집이니까 방향이 같다면 할 말이 없는데……. 그 남자가 집에 들어가서 문을 잠글 때까지 한참을 현관 앞에서 서성거렸어요. 남편에게 말하니까 이번 달에 집을 정리하고 강릉으로 이사 가기로 정했어요. 이렇게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는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니 아쉬워요.”
그녀의 말에 재언은 턱을 긁적였다. 들어 보니 사장 부부가 사는 곳은 차민재가 사는 아파트 단지였다.
조금 거리가 먼 동이긴 했지만, 어쨌든 같은 아파트 단지에 그런 이상한 사람이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의 말을 들어 보면 참으로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집값이 비싸고 보안이 철저하대서 안심했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요즘 근처에서 흉흉한 소문이 도는 거 아시죠? 손님도 진짜로 조심하세요.”
“네. 사장님도 조심하세요.”
대화를 마치고 빵이 든 상자를 든 채 밖으로 나오려던 재언이 짧게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택배는 안 하십니까?”
그러자 사장이 기분 좋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손님이 원하시면 참고할게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자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온 민재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이중주차를 해야 했던 재언의 빌라와는 달리 차민재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가구당 2대까지 주차가 가능했기에 주차 공간이 매우 넉넉했다.
재언은 다른 것보다 그게 가장 부러워서 빌라에 박혀 있는 제 차를 가져와 등록해 버릴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차민재는 자주 몰지 않는 차는 강남구에 있는 아파트에 놓고 이곳엔 차 한 대만 주차해 놓는 편이기에 거절하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거의 마음을 굳힌 재언은 빵 봉투를 든 손을 그에게 흔들어 주었다. 차민재와 손을 잡은 채 빵집이 이제 문을 닫게 된다며 아주 서운하다고 이야기하려던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다… 당신들, 조심해.”
“네?”
“저, 저, 저 사장들 조심해. 저, 저, 저 부부는 살인마니까…….”
뒤를 돌아보자 더벅머리에 목이 잔뜩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맨발로 서서 무언가를 말했다. 더듬거리는 말투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재언이 물어보려 해도 남자는 잡을 새도 없이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뭐였죠?”
“모르겠습니다.”
재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차민재도 비슷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동시에 엔레이드맨이 물었다.
- 잡아 올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근데 정말 뭐였을까…….”
재언은 찝찝한 기분을 드러내며 민재의 집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