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저 남자는…….”
행색만으로 남자를 알아본 재언이 감시를 붙이기 위해 조각난 장난감의 눈알을 꺼내려는 순간, 김윤경의 곁에 있던 군인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갔다.
이전에 차민재가 정부와 히어로 협회에서 이번 좀비 사태의 유력 용의자로 예의 주시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사건 현장에 떡하니 나타나니 의심이 더욱 커진 것 같았다.
“장근우 씨? 잠시 저희와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예? 뭡니까? 우리 선생님은 왜 데려가세요?!”
군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이 다가오자 장근우라는 이름의 위너좀비 작가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자신보다 작은 어떤 여성의 뒤로 몸을 한껏 구겨 숨었다.
그와 일행인 듯 보이는 여성은 세미 정장 차림에 머리를 뒤로 올려 단정하게 묶었고 안경을 쓴 왜소한 체구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2배는 되어 보이는 군인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차고 야무지게 소리쳤다.
“잠시 이번 사건에 대해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조사 차원에서 동행하는 것일 뿐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선생님은 저와 여기서 차기작 미팅 중이었고, 이곳을 약속 장소로 고른 건 저입니다! 그리고 말 한번 잘하셨는데, 지금 이 사건들이 위너좀비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히어로 협회에서 계속 연락이 오는 이유도 그런 거고요.”
그녀는 등 뒤에 작가를 숨겨 둔 채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악을 쓰거나 이성을 잃은 건 아니었다.
“선생님은 지금 차기작을 준비 중이시라 이미 출간해서 내놓은 작품 내용을 신경 쓸 겨를 따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어떤 미친놈의 짓이거나 우연이 겹쳐서 비슷해 보이는 사건들이라는 겁니다. 선생님을 조사하고 싶으시다면 영장을 들고 오세요!”
여성은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말한 뒤,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전부 자신들을 향해 있다는 걸 눈치채고 허겁지겁 장근우를 끌고 사라졌다.
남자는 후줄근한 점퍼에 다 해진 슬리퍼, 산발인 머리에 수염도 제대로 정돈하지 않은 얼굴까지 나쁘게 말하면 그야말로 상거지 꼴이었다. 그런 사람이 직접은 아니어도 군인과 다투고 있는 광경이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거기다가 남자가 위너 좀비의 작가라고 짐작할 수 있는 대화 내용까지 그 상황의 모든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렇게 위너좀비 작가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얼굴이 공개되면서 인터넷상에서 그의 신상에 대해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해당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출판사와 계약하지 않고 소량만을 개인적으로 제작해 지금은 구매할 수 없는 몇 개의 작품들까지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프리미엄이 붙어 한 권에 몇십만 원씩 거래되고 있는데, 그것도 없어서 못 구할 정도로 과열되었다.
그리고 오로지 작가 수익만으로 월 40억을 벌었다는 이야기까지 떠돌면서 그런 사람이 왜 저런 부랑자 꼴로 다니는지 정보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루머가 생성되기 시작하면서 고어한 호러 작품만 집필하던 작가가 현재는 로맨스 소설을 준비 중이라는 둥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온갖 추측까지 떠돌았다.
중요한 건 그의 얼굴이 알려진 뒤부터 차민재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난리가 났다는 점이다. 옆집 부부를 괴롭히고 앞 건물에 사는 사람을 염탐하는 등 기괴한 짓을 했던 남자가 위너좀비의 작가라는 사실에 경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 재언이 분리수거장에서 만났던 중년 여성과 또 마주치고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 또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 빵집 사장 부부… 거 좀비 영화 있죠? 그거 정말 좋아했던 모양이던데 원작자인지 뭔지가 하필 자기들을 그렇게 괴롭혔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충격받았을까 걱정되네요. 쯧쯧.”
“그분들이 영화를 좋아했습니까?”
“뭐, 만날 때마다 가게 문 닫고 둘이 어딜 가길래… 물어보면 그 영화 보러 간다고… 난 그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던데.”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근데 그 부부도 좀 이상한 면이 있더라고요. 내가 그 영화 재미없다고 하니까 얼굴을 싹 굳히던데……. 그 뒤로 내가 뭔 말을 걸어도 거기 새댁이 한동안 무시하더라니까요? 자기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작품인데 내가 흉을 봤다고 생각한 건지…….”
재언은 라벨을 전부 떼어 내고 꾹꾹 눌러 담은 페트병들을 하나씩 꺼내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여성이 흐뭇하게 웃으며 그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분리수거를 엄청 예쁘게 하네요. 가정교육을 잘 받았나 봐.”
“하하, 네… 저 혼자 쓰는 지구가 아니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악독하다고 알려졌지만, 그래도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멋진 빌런 다크 카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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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랬어요?”
곧 가게 문을 닫는단 소리가 많이 퍼졌는지 주말 아침부터 빵집 안은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뭐, 자신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빵집이 없어지기 전에 한 번 더 먹자는 생각으로 온 것이니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아침 시간대라 그동안 사 먹었던 랜덤 박스는 없었지만, 재언은 이렇게 된 것 먹고 싶었던 빵 위주로 골라야겠다는 생각으로 쟁반과 집게를 들었다.
그러는 동안 사장 부부와 친분이 있어 보이는 미용실 가게 사장이 놀러 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미용실 사장이 너스레를 떨며 그놈이 작가이며 위너 좀비의 원작자였다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재언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여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런데 빵집 사장 부부의 차분한 반응에 금방 흥미가 떨어졌는지 미용실 사장은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렸다.
저런 걸 보면 위너좀비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진짜로 재미있어서 자주 보러 갔나 보지. 나도 가끔 두세 번은 더 보러 갔던 영화가 있으니.’
미용실 사장이 돌아가고 밀려 들어오는 손님에 바쁜 사장 부부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재언은 대충 고른 빵을 계산하고 나와 다시 차민재의 집으로 돌아갔다.
중문 앞까지 총총 걸어와 발라당 드러눕는 배추를 몇 번 쓰다듬어 준 뒤 거실 소파에 털썩 앉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위너좀비 작가가 사는 아파트에서 벌어졌던 일을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렸는지 그의 스토킹이나 관음을 저지른 행동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인터넷 상에 떠돌았다.
어차피 김윤경의 절대 필드 안에선 능력자들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건 명백한데 그녀가 현장에 나타난 이후에도 감염자들이 움직일 수 있었다는 건 근처에도 범인은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장근우의 혐의도 조금씩 풀려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장근우가 이번 사태의 빌런인지 아닌지보다 그런 후줄근한 행색을 하고 옆집 사람을 괴롭히는 이유에 초점을 맞추었다. 게다가 옆집 부부가 온화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비난의 화살은 더욱 거세졌다.
온갖 게시글에 이목이 쏠리고 휘몰아치는 인터넷 세상에서 이번 좀비 테러의 범인을 결국 잡아내지 못했다는 의견은 서서히 묻혀 갔다. 이번과 같은 테러가 언제든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의견대로 며칠 지나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
사무실로 출근한 차민재가 평소보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었다. 그를 기다리며 재언이 TV를 보면서 맥주에 마른 버터 오징어를 먹고 있을 때 밖에서 작은 소란이 들렸다.
처음엔 소리가 작아서 별 큰일은 아니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점점 커지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가 쫓기면서 지르는 비명 같았다.
“무슨 일이지?”
재언이 슬그머니 일어나 창문을 열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곧이어 끔찍한 비명이 아파트 단지 내에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집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비명에 하나둘씩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바깥에서는 남성 한 명이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의 뒤를 두 명의 여성이 쫓고 있었는데 사랑싸움이라고 하기에는 남자의 비명이 너무나도 처절했다. 마치 공포 영화에서 괴물들에게 쫓기는 사람의 것이었다.
결국, 체력이 다한 남자의 위를 여성들이 동시에 뛰어올라 덮쳤다.
“콜록…….”
그 뒤의 광경은 마시고 있던 맥주를 내뱉을 만큼 끔찍했다. 여성들은 식사하는 것처럼 남자의 온몸을 물어뜯었다.
재언은 셔츠에 묻은 맥주를 휴지로 대충 닦고 맥주캔은 싱크대에 놔둔 뒤 그대로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멀쩡한 사람이 산채로 물어뜯기는 꼴을 두고 보기엔 잠자리가 사나울 것 같아서였다.
복도에 나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사람 중 누구도 밖으로 나와 볼 생각도 못 하고 오히려 문을 굳게 잠가 꼭꼭 숨어 있는 듯했다.
보는 사람이 없어야 움직이기도 쉬울 테니 재언으로서는 오히려 환영이었다.
오늘은 타락한 추기경이 미사를 위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날이었다. 하지만 좀비들을 제압하기에 타락한 추기경만큼 좋은 상대가 없었기에 일단 미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재언이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을 땐 어찌 된 일인지 상황은 모두 끝나 있었다.
‘검? 대한민국에 검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검은색 로브에 모자까지 쓴, 키 작은 소년이 자신보다 훨씬 커다란 검을 들고 있었다. 기다란 검신 끝에 희미한 빛이 어렸다.
피가 묻은 건 아니니 소년의 주변에 널브러진 감염자 두 명을 찌르거나 베진 않은 것 같았다.
“아, 잠깐만!”
감염자들을 제압하고 기절시킨 소년이 누군가를 찾듯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을 부르는 재언을 힐끔 보고 후다닥 사라져 모습을 감추었다.
재언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묘했다.
‘뭐지. 내 감이 저 애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고 말해 주고 있는데…….’
재언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뒤쪽에서 타락한 추기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해. 이미 상황이 다 끝나 버렸거든.”
타락한 추기경은 머쓱해하며 대답하는 신재언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뒤, 기절한 감염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다 갑자기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에 타락한 추기경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익숙하고 그리운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감염자들을 살피는 타락한 추기경을 보며 재언은 핸드폰을 들어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을 수습하려다 보니 그 소년에 관한 일을 잠시 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