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감염자들을 살피던 타락한 추기경은 찜찜한 얼굴로 서 있는 재언에게 물었다.
“…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니야.”
세 명 다 목덜미와 발목에 물린 상처들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다행히 숨도 붙어 있고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경찰에 신고도 끝냈고 피해자들의 생사까지 확인한 재언은 방금까지 이곳에 있었던 어린 소년을 떠올렸다. 재언이 다가가기도 전에 건물 빌딩 사이로 자취를 감춰 버린 게 마치 고양이 같았던 소년이었다.
“아버지. 이 자들의 정신 지배가 완전히 끊겼습니다.”
“뭐?”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쓰러진 사람들을 꼼꼼하게 확인하던 타락한 추기경이 특이한 점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이 어린양들에게서 사악한 기운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군요.”
확실히 정신 지배가 없어지거나 완전히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다리가 잘리고 부러져도 아랑곳없이 달려들던 다른 감염자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죽지도 않았고 감염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그 애가?’
혹시나 하여 알아볼 생각으로 재언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조각난 장난감에게 주변을 정찰을 시켰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어린 소년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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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언은 두 명의 감염자와 한 명의 피해자를 경찰과 구급대에 인솔하고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조사 진술까지 끝냈다.
그런데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고 보니 집 안에 숨어 있던 주민들이 밖에 나와 있었다. 상황이 종결되고 경찰들이 주변을 순찰하기 위해 남아 있는 걸 보고 안심하고 나온 듯했다.
재언은 그들 사이에서 또다시 익숙한 얼굴을 찾아냈다. 더벅머리에 지저분하게 수염이 나 있는 꾀죄죄한 사내였다.
“당신이 그랬지? 댁이 여기에 이사 오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
“경찰들은 이런 수상한 놈 안 잡아가고 뭐 하는 거야?”
재언과 마찬가지로 남자를 알아본 아파트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장근우는 갑작스럽게 이목이 쏠리자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내에서 벌어진 일에 주민들은 저놈을 왜 잡아가지 않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경찰들이 그런 주민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성을 잃은 그들이 한 번에 조용해질 리 없었다.
장근우는 결국 자신을 향해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피해 뒤를 돌아 달려갔다. 손가락질은 해도 무서운지 먼저 나서서 그의 뒤를 쫓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언이 아파트 뒤쪽 화단으로 향한 그를 찾아 달리면서 요 며칠 동안 끊임없이 올라왔던 뉴스 기사들을 떠올렸다. 위너좀비의 원작자가 이번 테러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기사들이었다.
‘번화가 좀비 테러 사건’이 일어난 뒤 김윤경이 나서서 자신은 그날 절대 필드를 펼쳤으며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그에 관한 이야기는 쏙 빠지고 사건 정황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썼음이 명백한 기사들이 며칠간 줄줄이 올라왔다. 심지어 몇몇 기사는 장근우를 완전히 범인 취급하면서 ‘아직 입증되진 않았다’라는 말만 짤막하게 남겨 놓을 뿐이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적이 있는 재언은 살짝 동정심이 일었다. 하지만 그가 빵집 사장 부부를 스토킹하고 집요하게 괴롭힌 사람이라는 점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 거기 괜찮습니까?”
재언이 아파트 화단에 쓰러져 있는 장근우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머리와 옷이 흙으로 더러워지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나, 난 아니야! 그놈들이 범인이라고. 내가 봤어. 그놈들이… 시체를 끌고 가는 걸 내가 봤다고!”
“장근우 씨?”
“그 연놈들은 내 스토커야! 내, 내 작품의 스토커라고!”
장근우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반복하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재언은 일단 그가 진정하기만을 기다렸지만, 많은 수의 아파트 주민이 밖으로 나와 있는 데다 저 멀리서부터 들리던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사태가 조금 진정된 뒤에 경찰들이 그를 찾으러 올 게 뻔하니 일단 말이라도 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재언이 손가락을 튕겨 엔레이드맨에게 결계를 치도록 했다.
그를 지켜 줄 담당자도 없는데 꼼짝없이 경찰서로 끌려가기 전에 들어야 했다. 이 남자를 믿거나 감춰 주려고 한 게 아니라 이렇게까지 몸서리를 쳐 가며 억울해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너무나도 궁금해서였다.
“그렇게 두서없이 말하고 다니시니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장근우 씨,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남자를 믿고 안 믿고는 이야기를 전부 들어 본 뒤에 판단할 일이었다. 재언의 말에도 장근우는 한참 동안 화단에 머리를 박고 몸부림을 치다가 지쳤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숨만 헐떡였다.
안 그래도 꾀죄죄했던 몰골이 거지보다도 못하게 변해 버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려 재언의 푸른 눈동자를 멍하니 쳐다보며 최면에 걸린 것처럼 입을 열었다.
재언의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던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근우 역시 그의 기색에 잔뜩 눌린 채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으로 말했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놈들은 제 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 작품의 열렬한 팬이요.”
장근우는 학창 시절에도 지금과 똑같이 우중충하고 어두운 기색이 완연한 사람이었다. 심하게 따돌림을 당한 건 아니지만, 친구가 없었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터넷상의 개인 블로그 사이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어두운 인상을 대변하듯 하나같이 우울하고 어둡고 기괴하고 섬뜩한 글을 주로 게시했다. 처음 그가 올린 글은 외계인에게 신체를 개조당한 남자의 기구한 사연을 담은 것이었는데, 제법 짜임새가 있었던지 입소문을 타 사람들이 점차 몰려들었다.
그때부터 글을 하나씩 올릴 때마다 반응해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소설을 좋아해 주는 팬들이 생겼고, 특히 매일같이 블로그에 출석하며 열렬한 댓글을 달아 주는 극성팬이 두 명 생겼다.
처음엔 장근우도 팬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는데 그들의 댓글은 날이 갈수록 도를 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근우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 시절에 썼던 두 번째 작품, ‘연쇄살인마의 베이커리’라는 소설을 집필할 때 두각을 드러냈다.
[제가 사랑하는 연쇄살인마 KJ를 따라 사람의 귀와 코를 잘라 봤는데 작품에 나왔던 것만큼 피가 튀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을 잘랐는데 바로 오그라들었습니다. 역시 히키home님의 작품은 고증이 잘 되어 좋습니다.]
그들은 블로그 주인만 볼 수 있는 비밀댓글로 농담 같지도 않은 기분 나쁜 말들을 남기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것은 위너 좀비에서 더욱 심해졌다. 위너좀비는 장근우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돈이 모자라 개인지로 판매하기 시작했던 히키home의 세 번째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계기로 장근우는 장르 소설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개인지였으나 5천 권 이상이 팔렸고 가격도 비싸게 책정했기에 수익도 꽤 많이 남았다.
물론 그만큼 댓글의 수위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아예 위너좀비의 세상 속에 사는 것처럼 굴었고 그의 작품을 자신의 세계와 동일시했다. 게다가 댓글을 달면서 서로 친목까지 도모했는지 단둘이 만나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장근우의 소설을 눈여겨보고 있던 출판사에서 위너좀비의 출판계약을 원한다며 연락해 왔다. 개인지만 내도 돈은 벌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출판해서 서점에 걸린 자신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에 출판사와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이후로 운이 좋아 영화사에서 판권을 사 가겠다고 연락이 왔고 2년 후에 영화화된 위너좀비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뒤 내용은 인터넷에서도 떠돌고 있었기에 재언도 알았지만, 그가 이어서 말하는 이야기는 조금 섬뜩했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 그 부부가 제 눈에 띄기 시작한 거요. 어딜 가든 있었어요. 제가 어디로 이사를 가든, 하, 항상 근처에서 가게를 내고 쫓아다녔다고요! 그리고 그 부부가 사람을 죽이는 것까지 봐 버렸습니다.”
장근우가 처음 위화감을 느낀 건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빌라로 이사를 갔을 때였다.
출판사와 위너좀비 출판계약을 맺기 전에 끝낸 네 번째 작품의 개인지를 성공적으로 판매하여 짭짤한 수익을 냈다. 덕분에 살고 있던 원룸을 정리하고 옆 동네에 있는 빌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워낙 나가는 걸 싫어한 탓에 장근우는 옆집에 젊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다는 것만 알 뿐 이사 온 날부터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모두 인터넷을 통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필 집에 먹을 것이 다 떨어졌을 때 택배회사 측 실수로 물건이 배달 지연이 되었다. 무턱대고 굶을 수는 없었던 그는 아주 오랜만에 마음먹고 밖을 나섰다.
그때 옆집 문을 열고 나오던 젊은 부부와 마주쳤다. 이제 보니 그들은 이전에 살던 원룸 주민이었는데, 처음엔 뭐 이런 우연이 있는지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장근우에게 인사한 부부는 베이킹을 배우고 있다면서 빵을 나누어 주었다. 솜씨가 꽤 좋은 듯 맛이 훌륭했다.
“제가 빵을 배운 건, 연쇄살인마의 베이커리에 나오는 KJ가 빵집을 운영해서예요. 저도 그처럼 빵집을 차릴 거예요. 빵이 여러 개 담긴 랜덤박스를 팔면서 그중 하나에 인육이 들어 있는 빵을 넣을 겁니다. 사람들이 그걸 사 가기만을 기다리는 거죠.”
젊은 부부 중 아내가 빵 봉투를 건네주면서 황홀하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단다.
재언은 장근우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리가 쭈뼛 서는 걸 느꼈다.
“서, 설마 저번에 먹었던 고기 빵이…….”
- 아닙니다. 아버지, 평범한 돼지고기였습니다.
“후…….”
하마터면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장르로 이어질 뻔했다. 재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가 한 이야기는 소름이 돋을 만큼 충격이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빵집에서 랜덤박스를 사 간 다른 손님 중 한 명이 인육이 들어 있는 빵을 먹었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거짓이라면 이 남자가 너무나도 기분 나쁜 소재를 머릿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었고.
재언이 정신을 다잡으려 노력하는 사이 장근우는 더욱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