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그 부부는 이상했다.
하지만 동네 주민 중 온화하고 사교성 있는 젊은 부부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장근우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젊은 부부는 다른 이들 앞에서는 인육으로 만든 빵이나 소설 속 연쇄살인마를 존경한다는 식의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
장근우는 겁에 질려 더욱 집 밖으로 나오는 걸 꺼렸다. 가끔 출판사 담당자와 미팅하는 날에만 겨우 걸음을 떼었다.
그러던 중 장근우가 네 번째 작품의 출판 계약을 끝내고 블로그에 공지를 띄운 날이었다. 원래 개인지를 냈던 작품이라 살짝 고민되긴 했지만 이미 출간한 위너좀비도 개인지로 냈던 전적이 있으니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가격이 더 비싼 개인지를 구입했는데, 정식 출간한다는 작가에게 실망한 독자들도 있었고, 상업지로 내는 게 성장 발판이 될 거라며 축하해 주는 독자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유난스럽기로 유명한 독자 두 명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고등학교 시절 썼던 첫 작품이 40화 정도 지났을 때부터 댓글을 달아 주었던 오랜 팬에 모든 화마다 꼼꼼하게 감상을 남겨 주었던 이들이었다.
물론 가끔 섬뜩하고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댓글을 달아서 다른 독자들이 기분 나빠하기도 했다.
[작가님… 돈에 눈이 멀어 KJ와 MZ를 더러운 현실에 던져 놓으셨군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완전히 캐붕이에요. 저는 도저히 그걸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제 세계가 무너졌어요……. 내 세계를 무너뜨린 작가님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
어두운 녀석이라며 다른 친구들이 꺼렸던 학창 시절의 자신보다도 더욱 음침하고 기괴한 말이었다.
하지만 장근우는 대수롭지 않게 기분 나쁜 댓글들을 삭제한 뒤 컴퓨터를 종료하고 잠이나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 침실 방 창문을 무언가가 톡톡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작지만 일정한 소리에 장근우는 결국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말았다.
탁자 위에 놓인 안경을 더듬어 찾고 창가 쪽으로 걸어가니 때마침 침실 창문에 작은 돌 같은 것이 날아와 부딪혔다.
“뭐지?”
장근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을 뚫어지게 응시했지만, 딱히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새벽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창문에 더 가까이 다가가 아래쪽을 살피니 낯익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건물 벽에 바짝 붙어 무언가를 질질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바로 옆집의 이상한 부부였다.
그들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포대를 바닥에 끌면서 빌라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포대 입구에서 피에 젖은 새하얀 손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허억!”
장근우가 놀라 숨을 삼키는데 마치 우연처럼 그 소리를 들은 듯 젊은 부부의 고개가 동시에 위쪽을 향했다. 그들의 시선이 정확히 장근우의 침실 창문으로 향했다.
“히이이익! 살인마다!”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장근우가 비명을 지르며 꼴사납게 뒤로 나자빠졌다. 급격하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핸드폰을 찾아 신고 버튼을 눌렀다.
몇 분 후, 경찰 두 명이 도착해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자신이 봤던 것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 경찰들이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옆집 분들이 시체를 끌고 갔다는데 이 근처에서는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CCTV를 확인해도 이상한 점은 없었고… 이 시간에 옆집에 사는 분들을 깨울 수도 없는데…….”
“진짜 봤다고요! 시, 시체를 이만한 포대에 넣어서 끌고 갔어요!”
어서 빨리 옆집을 조사해 보라고 닦달하는 장근우와 지금 시간에는 곤란하다는 경찰의 실랑이가 계속 이어졌다. 현관 앞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옆집의 문이 살짝 열리더니 부부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이 새벽에… 대체 무슨 소란인가요?”
“잠 좀 잡시다.”
“아, 죄송합니다. 그게…….”
경찰들이 장근우를 힐끔거리면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분이 이상한 걸 봤다고 하셔서요.”
“조사까지는 아니고 집 안을 살짝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경찰들의 태도에 부부는 머뭇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경찰들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서 장근우를 힐끔 보는 경찰들의 표정은 마치 배려심 깊은 이웃을 괴롭히는 이상한 사람을 보는 사람의 것이었다.
약 10분 정도 후 밖으로 나온 경찰은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장근우에게 자신들이 본 것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안에 밀가루 포대가 많더라고요. 저걸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빵집을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집에서도 계속 신작을 고민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웃끼리 잘 풀어 보십시오. 그럼.”
장근우는 대충 할 말만 끝내고 사라지는 경찰들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쳐다보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직도 현관문을 열어 둔 채로 신발장 앞에 서서 장근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부부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으로 서 있던 두 사람은 장근우가 자신들을 쳐다보자 돌연 입술 끝을 끌어 올리며 히죽 웃었다.
그 모습에 장근우는 잔뜩 겁먹은 채로 헐레벌떡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 멍하니 도어록이 닫히는 소리를 듣던 그의 머릿속에 더욱 소름 끼치는 사실이 스치고 지나갔다.
방금 자신이 겪은 상황이 ‘연쇄살인마의 베이커리’에서 KJ가 사람을 죽이고 포대에 시신을 넣어 끌고 가는 걸 누군가가 목격한 장면과 똑같았다. 게다가 소설 속 살인마는 그 목격자를 감시하고 숨통을 죄어 가다가 결국에는 무참히 살해했다.
“히이익!”
장근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에 덜덜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부엌에서 식칼을 찾아 침실로 돌아왔다.
“연쇄살인마의 베이커리에 나오는 KJ가 빵집을 운영해서 베이킹을 시작했어요.”
“내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그놈들이야. 그… 그 정신 나간 댓글들… 그놈들이 분명해. 그럼 내가 그 소설을 쓴 작가인 것도 알고 있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알아냈지? 설마… 옆집에 이사 온 것도……?”
그래, 같은 건물에 살던 이웃이었다가 이사 온 곳의 옆집 사람으로 다시 만난 게 그저 우연일 리 없었다. 원래 옆집에 살고 있던 사람은 대체 어떻게 나갔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이사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노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시골에 귀농한 아들 내외가 농작물을 가끔 보내 준다며 이사 준비하러 잠시 들른 자신에게 감자를 나눠 주기도 했었다.
이사 갈 기미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노부부는 정말로 자의에 의해 이사 간 것일까? 아니, 이사 간 건 맞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더해지는 공포심에 장근우는 그날로 계약금과 출판 인세를 탈탈 털어 서울에 있는 제법 비싼 아파트로 도망치듯 이사했다. 거의 야반도주 수준으로 한 달도 안 되어 옮긴 아파트의 옆집에 그들과는 다른 신혼부부가 살고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자신의 이웃이 이사 갈 생각 따위 없다는 것까지 알게 된 장근우는 그나마 안도하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자신의 심신이 미약해서 그런 헛것을 본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일주일 뒤,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을 작품을 구상하고 있던 때였다. 이번엔 개인지로 냈던 것들이 아닌 새 작품을 출간할 예정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장근우는 초인종을 누르는 게 아니라 똑똑똑, 하고 느리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의아해하며 확인하지도 않고 무방비하게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게 된 얼굴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 젊은 부부가 섬뜩한 눈빛으로 장근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부 중 아내가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빵 봉투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이웃에 이사 왔어요. 요 앞에 빵집을 개업했으니까 자주 와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 이건 저희가 시범으로 만든 빵이니까 맛있게 드셔 주세요. 옆집인데 잘 지내봐요…….”
“으아아악!”
장근우는 숨넘어갈 듯 비명을 내지르며 문을 닫아 버렸다.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왔지? 옆에 살던 사람들은? 저 부부는 대체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작품 몇 개 좋아한다고 작가를 스토킹하는 게 일반적인 거야? 애초에 스토킹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일부러 집값이 비싼 곳으로 이사 온 건대 따라올 정도로 돈이 많다고!?’
커다란 충격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버린 장근우의 귀로 고저 없는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괜찮으세요? 왜 그러세요? 어디 다치신 덴 없으신가요? 문 좀 열어 보세요. …문 좀 열어 보세요. 문 좀 열어 보세요. 문 좀 열어 보세요.”
“으아아아아악!”
장근우는 그대로 게거품을 문 채 정신을 잃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밖에서 섬뜩한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도저히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위로 쭈뼛 서 있는 것 같았다.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 때문에 차기작 구상은 꿈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몇 번이고 신고해 봤자 오히려 경찰들의 불신만 나날이 늘어 가고 말았다.
아파트 주민들조차 집구석 폐인처럼 다니는 기분 나쁜 남자가 젊고 성실한 부부를 괴롭히고 있다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허으엉… 어엉…….”
밤만 되면 무섭고 저 사이코패스 부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덜덜 떠는 생활이 이어졌다. 이대로 당하고 살 수만은 없다는 희미한 반항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까지 했다.
그들이 이사 오고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장근우는 이번에도 두 눈으로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 어떤 여자를 남편이 제압하고 아내가 칼을 들어 무참하게 살해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살인이 일어났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장근우의 기대와는 다르게 경찰 쪽에서는 미적지근한 반응이 돌아왔다. 마치 또 이런다는, 질린 사람이 보일 법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출동은 했다. 신고를 한 지 20분이나 지나서야 겨우 도착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사이코패스 부부가 죽인 피해자를 끌고 맞은편 동으로 들어가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다.
“시체가 어디에 있다는 말씀이세요. 전엔 옆집 부부가 선생님을 스토킹한다고 신고하셨죠?”
경찰들은 ‘그 사람들이 당신을 왜?’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장근우에게 몇 가지 물어본 뒤 주변을 수색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살인의 흔적이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CCTV를 아무리 돌려봐도 옆집 부부는 집 안에서 곤히 자고 있을 뿐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설상가상으로 장근우가 목격했던 죽은 이도 멀쩡하게 맞은편 아파트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느 곳도 상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이번엔 위너좀비다.’
장근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생각했다. 살인마에서 좀비물로 장르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