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위너좀비에서 작가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서술했지만, 사실은 좀비에게 물려 감염되었으면서도 산 사람 행세하며 일상을 보내던 감염체의 존재는 스토리 진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다.
그것이 지금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상황에 자신이 미친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그날 이후부터 장근우는 집착적으로 옆집 부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살해당했다고 생각한 여성이 맞은편 동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죽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망원경으로 살펴봤지만, 누군가의 신고로 무산되었다.
게다가 옆집 부부는 다른 주민들이 장근우를 미친 사람으로 여기도록 만들어 고립시켰다.
‘…각성자인가? 하지만 이전보다 일을 벌이는 스케일이 너무 커졌는데. 능력을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건가? 히어로 협회에 연락해야 해? 하지만… 또 이상한 취급을 받으면 어쩌지? 안 그래도 미친놈 취급받고 있는데…….’
장근우는 하루에 몇십 번이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옆집 부부가 벌이는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들이 점점 도를 넘어서고 살해당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본인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는 초면인 사람과 대화를 절대로 나누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임에도 나섰다. 그 나름대로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사명감에 옆집 부부와 친하게 지내는 단골이나 손님에게 은밀하게 위험성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장근우는 그 모습들이 더욱 사람을 수상해 보이도록 만든다는 걸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 도리어 사람들이 젊은 사장 부부를 더욱 불쌍하게 여기고 피해자라고 생각할 만큼 상황이 나빠졌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다 보니 사실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오히려 자신이 현실과 작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망상증이 생긴 게 아닌가 생각할 때쯤, 단 한 명만이 그의 말을 믿어 주었다.
“선생님이 이상한 게 아니죠! 진짜로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서 의심받고 계신 거잖아요!”
우수정은 장근우를 양지의 세계로 끌어올린 사람이었다.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할 때부터 좋아했던 오래된 팬이라던 그녀는 출판사에 취직한 뒤 직접 장근우를 찾아와 출간을 제의했다.
네 번째 작품의 영상화 작업 때문에 식사 자리를 겸한 미팅 자리에서 그녀는 장근우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 정신 나간 댓글들, 저도 알고 있어요. 저도 한판 붙은 적이 있었는데,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논리도 없는 말을 2대 1로 퍼붓는데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미칠 것 같았거든요.”
우수정은 저절로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삼키며 2대 1로 싸웠던 그날을 회상했다. 아무리 정상적으로 순화해 가며 이야기해도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우수정이 남긴 단순한 감상 댓글에도 비판을 가장한 비난 댓글을 달면서 가르치려 들었다.
“요즘은 무식한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니까요. 신념을 가진 멍청이가 가장 무서운 거라더니, 벽하고 얘기하는 기분에 진이 다 빠져요. 설마 그 이상했던 놈들이 부부였다니.”
아니, 오히려 벽과 대화하는 게 이놈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낫겠다면서 두 손 두 발 다 들어 결국 그녀가 댓글을 삭제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의 옳은 논리로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이겼다는 식으로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만나기만 하면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때 장근우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서로 싸우는 걸 보고 기겁해서 한동안 댓글 작성 기능을 막아 버리기도 했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에요.”
“선생님께서 보셨던 게 사실이라면 그 미친놈들도 옆집에 사는 부부가 맞죠. 이렇게 된 거 그 빵 가게에 가 봐야겠어요.”
우수정이 말을 마치자마자 생각난 김에 가 봐야겠다며 카페에 장근우를 혼자 내버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0분 정도가 지나고 다시 돌아온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빵 봉투를 내려놓았다.
“…직접 만나 보면 엄청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네요. 친절하고 서비스도 좋은 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게 없었다면 호감을 느낄 정도로… 흠흠. 어쨌든… 선생님의 명예가 걸린 일이고 이렇게 뒷말이 계속 나오면 곧 영화화 발표가 나올 다른 작품에도 타격이 있을 거예요.”
장근우가 집필한 네 가지 작품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위너좀비가 아니라 마지막인 네 번째 작품이었다. 그것이 영화화되면 홍보 효과는 물론 수익도 위너좀비를 뛰어넘을 거라고 출판사는 예상 중이었다.
그래서 미리 작가에 대한 소문을 대비할 요량으로 출판사 차원에서 이리저리 신경 쓰고 있던 참이었다.
“히어로 협회에 의뢰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미적지근하게 해결해 준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히어로 개인 사무실에 의뢰해 보려고 해요. 의뢰비는 저희 쪽에서 부담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장근우는 자신을 믿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아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는 한숨을 돌리면서 이번 사건만 해결되면 차기작을 구상하며 푹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사 가려고요. 여기선 평판이 좋아질 것 같지 않고… 옆집에 그런 사람들이 사는 게 무섭고 앞 건물에 사는 여자도 결국 행방불명돼서…….”
“어디로 가시게요?”
“…시골로 갈까 고민 중이에요. 한적하니 사람이 적은 곳으로…….”
그녀에게 말한 대로 장근우는 아무도 모르게 시골로 이사 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부동산 관계자나 담당자인 우수정에게만 은밀하게 말하고 저 부부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아예 멀리 떠날 생각이었다.
영화도 잘됐고 소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서 이사비용을 마련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알아보며 순조롭게 이사 준비가 진행되던 도중, 장근우는 옆집 부부가 어떤 손님에게 하는 말을 듣고 말았다.
“그동안 와 주셔서 감사했어요. 저희 시골로 이사 가거든요.”
“아…….”
다부진 체격의 잘생긴 얼굴을 가진 남자가 옆집 부부의 말에 아쉽다는 신음을 흘렸다. 남자는 저 부부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부부는 이사하는 이유가 옆집에 사는 사람 때문이라는 것까지 말하며 남자가 은연중에 장근우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그건 이제 익숙하니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부부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게 마음에 걸렸다. 다른 손님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이었다.
남자는 모르겠지만, 장근우는 타인의 눈치에 예민한 편이고 오랫동안 그들을 관찰해 왔던 터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 그런가 싶어서 남자를 살펴보던 그는 깜짝 놀라서 숨을 들이마셨다.
다리가 길고 옅은 갈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잘생긴 남자는 장근우의 위너좀비에 나오는 조연 중 한 명과 똑같았다.
소설 속 조연은 주인공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고층 빌딩에 들어갔다가 좀비와 마주쳐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역할이었다.
저 남자가 옆집 부부의 다음 희생자라는 걸 눈치챈 장근우는 그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를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저렇게 덩치도 있고 잘생겨 인기가 많을 법한 사람이 무서웠다. 게다가 남자의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남자 역시 안경 때문인가 묘하게 인상은 흐릿해도 대단한 미남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러다 보니 말도 잔뜩 더듬었고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이 되어 버려 장근우는 집에 와서 몇 시간 동안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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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우가 하는 말을 듣던 재언은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회사 건물에서 마주쳤던 좀비 세 명은 처음부터 자신을 노리고 공격해 온 게 맞았다.
“그놈들은 제가 이사 가는 것까지 알아내 저를 쫓아왔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조용히 이사 가려 해도 끝까지 쫓아올 놈들입니다.”
말은 잘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앞뒤가 맞는 남자의 설명에 재언은 과연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판단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눈앞의 장근우라는 남자는 믿음직스럽게 생기진 않았어도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중요한 건… ‘연쇄살인마의 베이커리’와 ‘위너좀비’가 끝나고 네 번째 작품으로 들어가면 제가 살해당하고 말 겁니다. 거기 주인공이 저를 모델로 쓴 것이니까요.”
네 번째 작품, ‘어느 작가의 회고록’은 문학 소설가인 남자가 괴이한 분위기의 한 마을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구성한 공포 소설이었다. 장근우의 소설 중 주인공이 죽는 결말로 끝나는 유일한 작품이었다.
“사람들도 이번 사건이 제 작품을 모티브로 했다는 걸 알아요. 기자들도 그렇게 기사를 쓰고, 출판사에 장문의 비난 편지들이 셀 수 없이 도착한대요. 모두 제가 잠재적 각성자라고 의심하고 감시하고… 이웃 주민들도 절 범인이라고 확신해요.”
장근우는 말하다 보니 감정이 더욱 격해지는지 또다시 화단 흙에 얼굴을 처박았다.
“괴로워요! 범인들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도, 제가 가해자라고 몰리는 것도 지긋지긋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