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252화 (252/324)

252화

부부의 일상은 평범했다. 가게에서 손님들을 대하는 부부는 누구보다도 상냥한 사람들이었다.

단골손님들에게 서비스를 넉넉하게 넣어 주기도 하고 인근 가게에서 놀러 와 귀찮게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도 성의 있게 받아 주었다. 이유 없이 진상을 부리는 손님에게조차 일말의 찡그림도 없이 친절하게 대했다.

까놓고 말하자면, 겉모습만으로는 장근우 쪽이 누가 봐도 범인이었다. 하지만 재언은 상냥한 얼굴 뒤에 괴물을 숨기고 있는 사람을 너무나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정신을 다잡았다.

가게 영업 마감 시간인 10시 30분이 지나고 마감 청소를 하는 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는 재언의 어깨를 차민재가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재언은 굵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손님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부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왜요?”

차민재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는지 가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재언은 저도 모르게 침을 잘못 삼켜 기침이 격렬하게 나왔다.

장근우가 가게 입구 앞의 나무 뒤에 가려지지 않는 몸을 숨긴 채 가게 안의 부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언이 도와줄 테니 기다리라고 한 게 바로 어제였는데 대체 왜 저러고 나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여성 손님이 사장 부부와 이야기를 끝내고 가게로 나오자 장근우가 몸을 움직여 그녀의 뒤를 쫓았다.

“조… 조심하세요. 저… 저 부부는 살인마예요.”

다짜고짜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맥락 없이 내뱉는 그의 말에 재언은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머리야.’

당연하게도 여성은 잔뜩 겁을 먹어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장근우가 쫓아올 새라 빠르게 걸어 도망쳤다.

빵집 사장 부부가 이전에 재언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자신들이 스토킹을 당하고 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 것 같았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저렇게 수상한 행색을 한 사람이 뒤쫓아와 저런 식으로 말을 걸면 누구라도 도망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재언도 저런 점 때문에 그를 수상하게 생각했었다.

‘뭐, 그래도 억울하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뭐라도 해야겠다는 의지는 잘 알겠네. 저런 경우엔 오히려 뭘 해서 문제가 된 거긴 한대…….’

저 모습을 보고 재언은 장근우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그가 말한 대로 저 부부가 이번 테러 사건의 진범일 것이다. 그런데 부부가 범인이라는 건 알겠는데 둘 중의 누가 능력자인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둘 다인지, 아니면 둘 중 한 사람만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에 비능력자가 있다면 사건에 얼마나 가담한 것인지 또한 그들이 저 작가를 괴롭혀서 얻어 내려는 게 무엇인지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재언은 방금 장근우가 말을 건 것 때문에 부리나케 도망친 여성의 뒷모습을 살폈다. 여태까지 셀 수 없이 오가던 손님들을 지켜본 바, 장근우가 조심하라고 직접 경고를 준 건 저 여성이 유일했다.

서른 살 초중반 대로 보이는 여성은 전형적인 회사원 느낌이었다. 검은색 정장 바지에 흰색 와이셔츠, 그리고 짧은 단발머리를 훑던 재언은 어제 새벽부터 정독했던 위너좀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에피소드 끝부분에서 세상이 좀비에 의해 파괴되는 와중에 감염된 채 집으로 돌아가 죽는 여성 조연 한 명이 바로 저런 행색을 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원작에는 확실하게 나온 장면이었다.

여성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 부부가 밖으로 나와 가게 셔터를 닫았다. 지금 시간이 밤 10시 40분이니 의아스러울 정도로 마감 청소를 빠르게 끝낸 것이다.

이내 재언은 그들에게서 풍기는 묘한 분위기를 읽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아마도 저 여성을 죽인 뒤에 위너좀비를 마무리할 생각인 듯했다.

“저는 저쪽을 따라가겠습니다. 민재 씨는 여기에서 두 사람을 지켜봐 주세요.”

재언은 저들을 계속 감시할지 아니면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여성을 따라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나눠서 움직이기로 하고 몸을 일으켰다.

여성이 사라진 방향을 따라가던 재언은 다행히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서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혹시라도 장근우가 따라올까 봐 뒤쪽을 힐끔힐끔 살피면서 아파트 단지 바깥 담장을 빙 둘러 가는 중이었다.

언제든지 경찰에 연락할 수 있도록 대비하려는지 핸드폰 화면에 112라는 숫자를 띄운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재언의 예상대로 불길한 기운이 그녀를 덮쳤다.

“뭐야… 왜 갑자기 이렇게 어두워졌지.”

그녀의 말에 재언은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여전히 이 주변은 가로등 빛으로 밝기만 했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빛이 없어지기라도 한 듯 잔뜩 겁먹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슬슬 정신 감염 능력이 발동되는 모양이다.

재언이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무엇을 발견했는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무언가에 잡힌 듯 엉덩방아를 찧었다. 동시에 엔레이드맨의 둠(doom)에서 빠져나온 재언이 그녀의 바로 곁에 섰다.

삽시간에 바뀐 주변 공기에 재언은 그녀가 도망치려다가 넘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참혹한 모습의 좀비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땅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언은 손에 잡히는 건 무조건 잡아당기는 좀비들을 발로 차서 떼어 낸 뒤 소리쳤다.

“타락한 추기경!”

그녀의 발목을 단단하게 잡은 좀비들의 팔이 단번에 잘려 후두둑 떨어졌다. 이곳은 테러범들이 만들어 낸 정신 지배 공간이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좀비들은 전부 환각이었다.

좀비들을 도륙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소리였다. 희게 빛나는 대검이 달빛을 받아 더욱 예리하게 빛났다. 망설임 없는 바실리오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타락한 추기경과 성기사가 환각 좀비들을 베어 내는 사이 재언은 다시 빵집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차민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능력을 사용하고 있으니 사장 부부를 감시하고 있는 그가 무언가를 알아냈을지도 몰랐다.

- 재언 씨.

“민재 씨, 어떻게 됐습니까? 이쪽은 아까 그 여성분이 공격당하는 걸 막은 참입니다. 타락한 추기경이 뒤처리하고 있긴 한데…….”

저 멀리 빵집 앞에 서 있는 차민재가 보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말끝을 흐리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재언은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광대 가면을 벗은 차민재의 앞에 사장 부부로 보이는 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레헬이 그런 짓을 벌인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손님과 대화를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길바닥에 쓰러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풍겨 오는 혈향에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게다가 남자 쪽의 형태도 이상했다.

“…이건? 민재 씨가?”

“아뇨, 제가 아닙니다.”

재언의 물음에 차민재가 발밑에 떨어져 있던 권총을 발끝으로 툭 치면서 대답했다. 아니, 기다란 검을 들고 다니는 꼬마에 총기까지,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것일까.

“능력을 사용하는 것 같아 두 사람 앞에 가면을 벗고 나타난 것뿐인데 총으로 자살했습니다.”

“자살했다고요? 왜요?”

“이번엔 실패한 것 같으니 다음번엔 반드시 성공하자며 총을 쐈습니다. 무슨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요.”

대체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

@

“라오. 항상 어디를 다녀오시는 겁니까?”

친절하고 온화한 목소리에 옷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옆으로 다가온 이는 소년이 포대에 싸여 보육원의 베이비박스에 넣어졌을 때부터 그의 아버지가 되어 준 신부였다.

“당신은 모두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절대로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신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년을 내려다봤다.

“악마 다크 카오스를 체포하고 우리의 수치, 타락한 추기경을 죽이는 게 우리의 사명……. 당신의 성스러운 검에 더럽기 짝이 없는 타락한 추기경의 숨을 끊는 것이 성녀에게 내려진 신탁이니까요.”

다크 카오스에 의해 타락한 축복받은 추기경의 심장을 꿰뚫어 안식을 가져다줄 신의 사자가 보육원 출신의 라오 테르반 신도라는 내용의 신탁이 내려졌을 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경악했다.

하지만 그들은 소년이 어린 나이임에도 신성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다른 성기사들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가졌다는 걸 곧 깨달았다. 그리고 더러운 악마를 심판하기 위해 신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고 매우 기뻐했다.

라오는 타락한 추기경이 얼마나 더러운 자인지, 어떤 괴물인지 마치 세뇌라도 하려는 것처럼 입을 놀리는 신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일반적으로 어린아이들은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호자의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신부는 아무리 신의 사자가 강하더라도 아이는 아이, 특히 자신이 젖먹이 시절부터 키워 온 소년을 쥐고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푸욱-.

하지만 그 생각은 곧이어 가해지는 충격에 강제로 멈춰졌다. 신부는 천천히 고개를 떨어트려 섬뜩한 소리가 났던 제 복부를 내려다봤다.

라오는 그런 신부의 충격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티칸에서 하사한 백금색의 얇은 검을 신부의 복부에 꽂아 넣고 손잡이를 반 바퀴 돌려 확인 사살까지 끝마쳤다.

어린 소년이 저지르기에는 지나치게 잔인한 방법으로 젖먹이 시절부터 키워 준 보호자를 죽이고 발로 차서 떨어트린 다음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 냈다.

이윽고 소년의 등 뒤로 마치 지옥에서 넘어온 듯한 검고 어두운 날개가 돋아났고 머리에 붉은색 뿔이 두 개 자라났다.

“그분은 네가 입에 담을 사람이 아니야. 더러운 놈.”

소년은 바티칸의 성녀가 말한 아름다운 천사나 성스러운 신의 사자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악마와 계약하고 기어 올라온 타락한 성기사였다.

지옥에서 찾을 수 없었던 자신의 아름다운 성자를 찾기 위해 악마가 되어 지상으로 올라온 소년이 얼마나 커다란 죄악과 파멸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하지만 소년은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을 바랐다. 성스러운 그를 욕보이는 자는 절대 살아남지 못하리라.

“나의… 에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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