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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는 빌런-256화 (256/324)

256화

리엔 롱 쑤안은 베트남의 수도 외곽에서 오토바이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진 또래의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이 자랐다.

그의 몸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한 건 여섯 살이었다. 그전까지는 체구가 마르고 작은 아들을 걱정한 부모가 온갖 약재를 구해서 보약을 만들어 먹일 정도였다.

그런데 약의 효능이 너무 잘 들었는지 아님 몸에 이상이 있었던 것인지 쑤안은 여섯 살이 된 이후부터 키가 걷잡을 수 없이 크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성장 속도가 정상 범위를 넘어가자 허둥지둥거리며 반대로 멈출 방법을 강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쑤안은 고작 여섯 살에 성인 남성의 평균 키를 훌쩍 넘어 버렸다. 거기다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고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졌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쑤안과 같이 놀던 또래 친구들은 괴물이라 부르며 돌을 던졌고 이웃 어른들은 쑤안의 가족을 향해 수군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쑤안에게 악재 신이 붙은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자 쑤안의 부모가 운영하는 오토바이 가게의 매출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

“너 같은 게 하필 내 배에서 태어나선… 너 때문에 우리 밥벌이가 끊기게 생겼잖아!”

불행하게도 쑤안의 부모는 흉측하게 변한 자식을 보듬어 안아 줄 정도로 강한 가족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부모마저도 쑤안에게 매일같이 손가락질하고 소리 지르며 비난했다.

비난의 강도는 점차 심해져 결국에는 어린 쑤안의 뺨을 올려붙이거나 발로 차는 등의 폭력으로 이어졌다. 겉보기에는 성인보다 키가 크지만, 쑤안은 아직 여덟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다.

아이는 성장통에 고통스러워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변한 부모의 싸늘한 시선과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렸다.

“밖으로 나가지 마! 이딴 거 입지도 말고. 절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안 돼.”

그의 어머니가 씨근덕거리는 얼굴로 쑤안을 어둡고 좁은 방 안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곳은 키가 2M를 넘어가는 쑤안이 대각선으로 누워도 다리를 제대로 펴기 어려운, 아주 좁고 밀폐된 공간이었다.

쑤안을 작은 창고에 가둔 부모는 아들이 비정상적으로 커진 건 악재 신의 저주를 받아서이며 죽음으로 저주에서 벗어났다고 마을 사람들을 속였다.

그리고 쑤안에겐 피죽만도 못한 죽 한 그릇과 물 두 잔을 하루에 한 번씩 챙겨 주고 방치했다. 숨도 쉬기 어려운 작고 어두운 방 안에 잔뜩 웅크린 채 쑤안은 매일같이 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자신들의 거짓말이 알려질까 두려워한 부모는 굳게 닫힌 문을 절대로 열어 주지 않았다. 그저 문 아래에 작은 문을 만들어 밥과 물만 건네줄 뿐이었다.

그나마 아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 준 건 실낱같이 남아 있는 부모의 양심이었다. 하지만 그 양심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실낱보다도 더욱 가늘어지면서 위태로워졌다.

바로 둘 사이에서 아이가 들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다는 이유였다. 쑤안을 가두고 2년간 아이를 만들려 노력했건만 전부 실패했다.

그들은 그 답답함을 전부 어린 아들에게 풀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놈이 태어나서 저주받은 거야. 이 쓰레기 같은 놈!”

그의 아버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막대기로 쑤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더러운 진드기와 벼룩이 가득한 좁은 방에서 이제 막 여덟 살밖에 안 된 쑤안은 폭력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제 아버지보다 큰 체구를 잔뜩 구기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원망과 멸시가 깃든 폭력에 미래를 잃어버리고도 쑤안은 꼬박 이십 년을 작은 방에 갇혀 살았다. 그 과정은 누가 봐도 끔찍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참혹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의 향연이었다. 그것도 완전한 타인이 아니라 그를 낳아 준 부모에 의해서 말이다.

온갖 벌레들이 득시글거리는 방 안에서 바깥공기도 햇빛마저도 쐬지 못한 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어떻게든 견뎌 낸 쑤안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모든 게 무엇이 잘못되어서 그런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부터 갇혀 버린 탓에 글을 쓸 줄도, 심지어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잊을 만큼 기본적인 상식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잠깐 배웠던 자신의 이름을 손톱으로 벽에 빼곡히 새기며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창밖으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영원히 말도 잃은 채 짐승처럼 살았을지도 모른다.

쑤안은 그저 여섯 살 때까지의 기억만을 희미하게 가진 채 살아왔다.

쑤안은 여섯 살에 처음으로 갔던 학교를 떠올렸다. 그때 만난 선생님은 굉장히 신사적이고 멋있었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온몸이 너무나도 가렵고 괴로워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가 지냈던 작은 방의 창문은 전혀 잠겨 있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여닫을 수 있었지만, 창문을 여는 방법을 모르는 그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점점 하루에 한 번이었던 물과 음식의 간격이 점점 벌어져 사흘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쑤안이 버텨 내자 결국 부모로부터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좁고 작은 방에서 나는 악취가 점점 심해져 집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자 이웃들이 점점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쑤안의 부모는 더 이상 쑤안을 그곳에 숨겨 둘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어느 날, 결단을 내린 쑤안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고 있을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십여 년 만에 본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 속 한 자락에 있던 것보다 주름이 많아져서 쑤안은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이내 쑤안이 아버지를 알아보고 움직이려는 찰나, 갑자기 온몸이 미끈거리는 액체가 뿌려지고 번쩍하는 불빛과 함께 방문이 굳게 닫혔다.

오랜만에 나타난 아버지가 순식간에 사라진 뒤 화아악 올라오는 불길에 쑤안은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으아아악! 으아아아악!”

그의 울음은 마치 짐승의 것과 닮아 아무런 뜻도 품고 있지 않았다. 불타오르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쑤안은 굳게 닫힌 이 문이 제발 열리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쑤안의 욕망은 탈출.

그를 학대하고 불태우려 했던 그곳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

그는 가까스로 부서진 문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근육도 없고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로 도망쳐 도착한 곳은 기껏해야 더러운 쓰레기 골목이었다.

전신의 피부가 화상으로 짓무르고 떨어져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살아남았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끊어지는 게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인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고통밖에 없었던 삶.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짐승보다도 했던 삶의 끝자락이 드디어 보이는 듯했다.

그때 삶의 빛이 그에게 비쳤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목소리가 들렸다. 다정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여기 어딘데…, …무슨 냄새지?”

부드럽게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남성이 근처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아버지. 여기에 시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쑤안의 근처에서 앳된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낯선 목소리들을 들으며 쑤안은 쓰레기통 옆에 몸을 구긴 채 죽음을 기다렸다.

“…헉.”

결국, 쑤안을 발견한 듯 남성이 기겁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만큼 쑤안의 몰골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더러운 쓰레기더미 위에 누워 있던 탓에 파리들이 그의 몸 위에 알을 까고 구더기가 들끓었다. 화상을 입은 피부는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이 없을 만큼 살아 있는 게 대단할 정도였다.

쑤안은 그가 자신을 괴물이라고 비명 지르며 도망가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끔찍하군…….”

그러나 남성은 도망가지 않고 쑤안을 바라보며 혀를 찰뿐이었다. 게다가 쑤안의 화상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로 엉망이 된 어깨를 손수 잡아서 어루만졌다.

부모조차 징그럽다며 폭력을 가할 때를 제외하곤 손도 대지 않았던 몸이었다. 아니, 폭력을 쓸 때조차 장갑을 끼고 발에 비닐봉지를 둘둘 싸맸었다.

그런 쑤안의 어깨를 망설임 없이 잡은 남성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에휴… 이게 잘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쑤안은 갇혀 지낸 이후로 지금까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짐승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눈앞의 남자가 얼마나 위압적인 사람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남성은 연한 푸른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쑤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런 몰골이 되어도 증오가 부족한데 말이야……. ‘내’ 기준점에는 한참 모자라. 그러니까 넌 계속 기억해야 해…….”

남자가 눈을 휘어 웃었다.

“내가 널 살리는 건 오로지 동정에 의한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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