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능력을 각성한 쑤안은 가장 먼저 자신을 학대한 부모를 찾아갔다. 물론 안부를 묻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불타고 남은 잔해 속에서 아들의 시체를 찾지 못한 그의 부모는 공안이 자신들을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을 반복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 일 없이 일주일이 지나자 마음을 놓고 일상생활을 보냈다.
친아들에게 잔인하기 짝이 없던 두 사람은 양자를 들일 계획을 세웠다. 오토바이 가게를 물려줄 자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애로 데려와요. 그런 괴물 같은 애는 끔찍하니까…….”
“어쩌다가 그런 놈이 우리 자식으로 태어났을까…….”
그들은 이십여 년 동안 아이를 가지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노력했으나 전부 실패했다. 병원에서는 난임이나 불임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으니 두 사람에게 신체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 터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더욱 그 괴물 같은 아이가 저주를 내리는 악재 신이 깃들었던 게 분명하다고 믿었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임신을 기대할 수 없을 나이가 되자 그들은 아이 낳는 걸 포기하고 보육원에서 아이를 입양하거나 브로커에게 의뢰해 사 오기 위해 준비했다.
보육원에서 입원하는 건 절차도 복잡하고 대기도 길어서 브로커를 통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즈음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 장대비 속에서 물안개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엔 손님도 시원치 않았기에 부부는 일찍 장사를 마치고 가게 문을 닫았다.
그때, 뜬금없이 빗소리에 섞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손님인가? 응우옌, 나가 봐.”
남편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면서 아내에게 명령하듯 말을 꺼냈다. 아내가 문을 열고 바깥을 살펴봤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잘못 들은 것일까 헷갈릴 정도로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만이 귀를 때렸다.
“아무도 없었어요.”
응우옌이 문을 닫고 돌아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 뒤 못다 한 가게 정리를 끝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가게 일을 아내에게 모두 맡긴 남편은 의자에 앉아 맥주병을 따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응우옌! 얼음 가져와! 맥주가 미지근하잖아!”
“아, 네네… 화내지 말아요. 알겠으니까…….”
남자는 기본적으로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결혼생활 내내 조금이라도 자신의 심기가 불편하면 응우옌에게 손을 올리곤 했다.
그나마 아들 쑤안을 창고에 가둔 뒤, 십여 년간은 아들에게 풀었다. 하지만 아들이 불타 죽은 지금, 그가 폭력을 행사할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저주받았어도 차라리 그놈이 있었을 때가 덜 무섭고 좋았다고 생각하며 응우옌이 허겁지겁 냉동고를 열어 얼음을 맥주잔에 담았다.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 놓고 시원하게 먹으면 될 텐데 일부러 그러는 건지 남편은 늘 맥주를 상온에 놔두고 얼음에 부어 마셨다. 얼음을 준비하는 응우옌의 귓가에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젠장! 어떤 놈이야?! 장사 안 하니까 내일 오쇼!”
누군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는지 남편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노크 소리가 뚝 끊겼다.
의기양양해진 채 남편은 곁으로 다가온 아내의 손에서 얼음 컵을 빼앗듯이 낚아채 맥주를 따르며 TV 리모컨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세 번째 노크 소리에 남편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맥주를 한입에 들이켠 뒤 얼음이 조금 남아 있는 컵을 힘 있게 내려놨다. 테이블이 부서질 듯한 소리가 난 것이 상당히 화가 난 듯했다.
남편은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가 활짝 열어젖혔다. 밖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마을의 꼬맹이들이 장난친다고 생각한 그는 문을 열어 둔 채 다시 돌아와 앉았다.
“문을 열어 뒀으니 장난은 못 치겠지!”
쾅-!
이번엔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아니라 활짝 열린 문 앞으로 거대한 나무 문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문이라니, 부부는 연신 눈을 비비며 깜박이기를 반복했다. 바람에 문이 닫힌 걸 잘못 본 건 아닐까 생각하던 무렵 끼이익, 하고 문이 열렸다.
거대한 나무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3m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장신의 남자였다.
“아, 아… 아니?”
부부는 당황한 얼굴로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경악 어린 눈길로 쳐다봤다. 기다란 팔다리에 키가 매우 큰 남자의 온몸에는 화상 자국이 가득했다.
얼굴 화상 자국이 유난히 두드러지는데 거기다가 잇몸까지 훤히 보이게 웃고 있으니 어느 괴담에서 나올 법한 괴물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누… 누구십니까……. 지금… 가게 문을 닫아서.”
아까까지 기세등등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남편은 잔뜩 말을 더듬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뒷걸음질 쳤다. 남자의 커다란 체구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비가 내리는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인지 묘하게 느껴지는 공포심에 몸이 저절로 떨렸다.
그런데 냉장고 쪽에 몸을 바짝 붙이고 있던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꺄아아악!”
그녀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남자를 손가락질했다.
“어떻게 살아 있지?”
그제야 남편은 아내가 말하는 상대가 누군지 눈치챘다. 눈앞의 괴물 같은 남자는 바로 부부가 죽이려고 했던 친자식, 리엔 롱 쑤안이었다.
부모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귀가 되어 찾아온 아들의 모습에 부부는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자신이 내지르는 비명에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나와서 구해 주길 바랐지만, 마을은 마치 빗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라는 것처럼 고요했다.
저 멀리서 쑤안과 그의 부모를 보던 재언은 찝찝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복수의 대상이 부모여서야… 보는 나도 이렇게 찝찝한데 그는 오죽할까?”
“아버지, 그렇다기에는 그의 표정이 지나치게 환합니다.”
“…….”
확실히 쑤안의 얼굴은 처음으로 놀이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신나 보였다. 도망가려는 부모를 끌고 문으로 데리고 들어간 뒤 한참 후에 혼자서 돌아왔다.
그에게 입으라고 주었던 흰색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가 피로 물든 것으로 보아 곱게 죽이지는 않은 듯했다.
엔레이드맨은 형제가 된 이의 능력에 매우 흡족해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체어맨이다. 네 능력으로 아버지의 발이 되어드려라. 아버지께서 움직이며 세상을 지배하기 딱 좋은 능력이군.”
엔레이드맨의 설교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네 능력을 아버지께 쓰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마라. 그 능력은 오롯이 아버지께서 내리신 관대한 자비이자 기적이니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성실히 아버지를 보필하는 장기 말이 되는 거다.”
체어맨이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당시의 체어맨은 글을 제대로 쓰거나 존댓말은커녕 어눌한 말을 구사했다.
엔레이드맨의 말도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아버지를 성실히 보필해라’라는 말만큼은 똑똑히 알아들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는데.’
재언은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엔레이드맨이 얼마나 귀찮게 굴지 잘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만 살짝 구시렁거렸다.
‘그리고 굳이 날 따라오지 않아도 되긴 한데……. 능력으로 일반인은 건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동정을 베풀어 널 살렸다고 말한 거라서……. 코마 상태인 그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려면 강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뭔가 오해가 빚어진 것 같긴 하지만 차차 풀어 가면 되겠지.’
속으로 열심히 납득한 뒤에 고개를 끄덕인 재언은 엔레이드맨과 체어맨의 문을 통해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날 이후, 우울증에 빠져 엔레이드맨의 둠(doom) 속에 꼭꼭 숨어 있는 체어맨에게 재언이 여행을 권했고 아버지의 말을 따라 여행길에 오른 그가 러시아의 한 마을에 잠시간 머문 시기였다.
체어맨은 그곳에서 무슨 인연을 만났는지 러시아에 머무르는 내내 책을 읽고 공부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재언과 형제들에게 정중한 존댓말을 시작했다.
한때는 화상 자국과 커다란 키, 빼빼 마른 체구로 자신에 대한 혐오가 가득했었다. 그런 그였기에 점점 신사처럼 행동하는 게 재언은 약간은 부담스러웠지만,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
재언은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열중해서 책을 읽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공부 열심히 하네? 책을 더 사다 줄까?”
“오… 나의 아버지. 이렇게 영광스러울 수가… 하지만 괜찮습니다. 소중한 형제들이 가져다준 게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체어맨이 정중하게 거절하며 자신의 옆에 쌓여 있는 책들을 보여 주었다. 체어맨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을 겪었던 자식들이 일부러 신경 써서 책을 몇 권씩 가져다준 모양이었다.
거대한 증오를 느끼고 복수를 끝낸 허탈감에 괴로워하는 자식들을 많이 봐 왔지만, 독서로 우울증을 해결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재언이 흥미를 보이는 듯하자 체어맨이 덧붙여 설명했다.
“저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키다리 아저씨는 똑똑하고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더군요. 그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제겐 그동안 배움의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나 봐?”
“네.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체어맨의 소년’은 어느 날, 모종의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큰 상처를 입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소년, 세르게이가 며칠 동안 눈을 뜨지 못하자 슬픔에 빠져 우울해하는 체어맨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결국, 재언은 증오는 한참 모자라지만 세르게이의 능력을 각성시켜 주었다.
체어맨은 능력을 각성한 세르게이가 본인과 같은 길을 걸어 상처 입는 것보다 히어로가 되어 올바른 길을 걸어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 모양이었다.
시간을 내어 세르게이의 병실에 다녀온 그는 줄곧 얼굴에 쓰고 다니던 면사포를 두고 왔고 멀찍이서 세르게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까지 잊고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히어로라고 굳게 믿었다.
체어맨에게 기억을 없애는 능력은 없었다. 단지 체어맨의 소년이 그의 말을 너무나도 잘 듣고 의심 없이 따른 것이다. 자신을 잊고 히어로를 목표로 하라는 그 말을.
다만, 말을 잘 들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