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S급 히어로 마더의 딸 박주연은 어렸을 때부터 모자랄 것 없이 행복하게 자랐다.
“주연아… 너한테는 말이야. 여섯 살이나 많은, 멋있고 듬직한 오빠가 있단다. 잠시 어떤 사정으로 헤어졌지만… 언젠간 꼭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그녀에게 부모님은 그녀보다 여섯 살 위의 오빠가 존재하고, 그 오빠는 어떤 불우한 사정 때문에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애타게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 주었다.
오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머니의 눈에 지독한 슬픔이 포도송이처럼 맺혀 있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 덕분일까. 그녀는 틈만 나면 오빠에 대해 상상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강하고 멋진 오빠, 약하지만 자상한 오빠, 혹은 안하무인에 개차반 같은 오빠 등등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오빠 관련 글들을 보면서 기대를 품어 왔다.
또한 자신이 키가 큰 편이니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오빠 또한 키가 클 것이고, 얼굴도 잘생겼을 것 같다고 상상했다. 가끔은 꿈속에 나타난 오빠는 듬직하고 잘생기고 인류를 위해 싸우는 멋진 히어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오빠의 방엔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주인이 돌아오지 못하는 오빠의 방에 주기적으로 무언가를 채워 넣었다.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을 땐 초등학교 교과서, 책가방, 신발주머니와 옷을 사서 가득 넣었다. 그로부터 6년 뒤엔 또래 남자아이들의 신체 사이즈와 비슷한 크기의 옷가지들과 집 근처 중학교 교복을 걸어 놓기도 했다.
물론 교과서와 필기구도 모두 바꿔 놓았다. 싱글 사이즈의 작은 침대 역시 큰 사이즈로 커졌으며 이불도 계절마다 달라졌다.
오빠가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등등을 다녀왔을 나이가 될 때마다 방은 새롭게 바뀌었다. 방은 항상 주인을 맞이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지만, 그 물건들을 사용할 주인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침햇살을 맞아 커튼이 살랑이며 정돈된 오빠의 방은 언제나 깨끗하기만 했다.
“하나님. 이렇게 빌게요. 제발 우리 오빠를 찾아 주세요. 오빠가 오면 제가 아끼는 인형하고 로봇들 다 줄게요. …카우보이 우디는 제가 제일 아끼는 인형이긴 한데, 오빠를 보내 주기만 하면 줄 수도 있어요.”
주연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전에 항상 그렇게 기도했었다.
부모님들의 노력을 봐 오며 자란 박주연의 마음속에서도 언젠간 오빠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와 함께 살게 될 날을 바라고 있었다.
“주연아. 엄마 다녀올게……. 정말 미안해.”
엄마는 오빠에 대한 단서를 조금이라도 발견하면 그게 어디든 하던 일도 멈추고 달려갔다.
박주연은 그런 엄마를 배웅하는 게 익숙했다. 자주 곁을 비우는 엄마가 서운할 법도 하지만, 어린 딸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잘 다녀와, 엄마!”
오빠 꼭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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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이해심이 남달랐던 박주연도 지금 자신의 엄마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잘 알았다.
그녀는 거실에 나와 안경을 쓴 채 노트북으로 사무실 의뢰를 정리 중인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난… 오빠가 와서 진짜 좋기는 한데, 뭔가 아닌 거 같단 말이야……. 우리 그냥 친자 확인 눈 딱 감고 해 보면 안 돼?”
박주연의 요구는 마더가 오빠라는 사람을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해 오던 것이었다.
물론 그녀도 오빠가 돌아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려 왔지만, 뭔가 탐탁지 않았다. 그 기분은 분명 엄마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주연아.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아니, 이상하잖아. 계속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 왜 이제 와 찾아온 건데? 그리고 아무리 오빠의 장난감을 가지고 있었대도…….”
“주연아.”
박주연의 말을 끊으며 마더는 한숨을 푹 쉬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박주현이 쉬고 있을 방문을 힐끔 쳐다봤다.
몇십 년 동안 주인이 없었던 방에 드디어 주인이 들어가 쉬고 있었다.
“내가 걸리지 않게 몰래 준비할게.”
이야기하기 싫다는 의사 표시에도 말을 꺼내는 박주연의 모습에 마더는 그녀를 옆에 앉히고 손등을 토닥였다.
“주연아.”
더욱더 강하게 말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마더의 눈빛에 박주연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난… 난 좋아. 나도 오빠가 돌아와서 너무 기뻐. 나도 엄마 못지않게 오빠를 마음속으로 품고 살았어……. 오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고. 언젠간 만날 수 있다면 그동안 대체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냐고 투정 부리고 싶고 얼마나 힘들었냐면서 다독여 주고 싶었어……! 그런데 지금은 저 사람이 정말 내 오빠인지 모르겠어. 엄마도 처음엔 그랬잖아. 엄마도…….”
마더는 상처받은 듯한 딸의 얼굴에 눈을 질끈 감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남겨진 자식에게나 잘하라고, 아들은 이제 그만 잊으라며 많은 사람이 마더에게 충고 어린 폭언을 일삼았다. 하지만 마더는 잊을 수 없었다. 아들을 잃어버린 날의 꿈을, 그 악몽을 계속 꾸었으므로.
그날은 마더가 입고 있던 옷의 단추가 갑자기 떨어졌고 출발하기 직전엔 자동차 아동용 시트 줄이 끊어져 한참을 고생했었다. 게다가 간밤에 비가 오고 얼기를 반복했는지 도로 상태까지 최악이었다.
“주현아~ 밖에 나오니까 좋지?”
세 살 난 아들의 통통한 뺨에 입술을 문대며 마더가 환하게 웃었다. 아들은 아동용 시트에 앉아 엄마를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엄마 좋아. 엄마가 세상에서 젤루 좋아.”
아들의 귀여운 말에 마더는 웃음을 터트렸고 운전석에 앉아 있던 그녀의 남편이 주책맞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만 좋아? 아빠는 안 좋아?”
평소엔 누구에게나 무뚝뚝한 남자였는데 자식 앞에서는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하게 굴었다. 연애할 때조차도 저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던 마더는 깔깔 웃으며 남편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그렇게 세 가족은 여행길에 떠났다.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좁은 길. 그 길을 지나면 마더는 행복했던 여행길이 지옥으로 변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지막으로 본 주현이의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그때의 일을 수천 번 반복해서 떠올렸다.
“주현아? 주현아? 주현아!”
방금까지 분명히 자신의 옆에 있었던 어린 아들을 찾아 울부짖었다.
“주현아! 제발, 어디 있니… 제발 엄마한테 돌아와 줘.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아아, 신이시여. 제발 우리 아들을 내게 다시 보내 주세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주현아. 엄마 포기하지 않을게.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게…….”
그로부터 2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박주연은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옆에서 직접 봐 왔기에 지금의 이 상황을 축하해야만 했다.
드디어 온 가족이 모인 것을 기뻐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처음 오빠라는 사람을 보자마자 그녀가 느낀 감정은 지독한 허무함이었다.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과연 우리 오빠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며 박주연의 눈치를 보는 평범한 인상의 남자. 어딘가 눈이 어둡고 좋은 느낌이 들지 않게 했다.
하지만 친자 확인을 해야 한다는 박주연의 설득에도 부모님은 고개를 흔들며 부정하기만 했다. 그동안 순순히 물러났던 박주연은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지을 작정이었다.
“난, 우리가 정말 행복해지려면… 꼭 친자 확인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해할 수 없어. 아마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쉿… 주현이 들어.”
“들어도 상관없어! 차라리 듣고 억울하다면 나서서 친자 확인하자고 해야지.”
난생처음으로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딸의 모습에 마더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런 엄마를 지켜보던 박주연은 그녀의 상태가 왠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마더는 자신의 모친이기도 하지만, S급 히어로였다. 그녀의 정의에 심장이 뚫린 빌런의 수가 한둘이 아니다.
그 어떤 강적이 나타나도 떨지 않았던 마더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더의 주름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장난감은… 내가… 우리 아들에게 준 장난감은… 특별한 거야. 다른 장난감과는 달라…….”
“그건 알고 있어. 그러니까 저 사람을 오빠라고 인정한 거 아니야?”
“아니야. 네가 알고 있는 그런 특별함보다 더 특별해, 주연아… 엄마는 정말, 정말 우리 주현이가 제발 살아서, 행복하길… 바랐어.”
마더는 목이 메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몇 번 두드렸다.
“저 장난감은 정말로 특별해……. 우리 아들이 아니면 절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무나 저걸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없어.”
“뭐? 하지만…….”
“주인이 죽기 전까진…….”
“…뭐?”
박주연은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넋을 놓았다. 마더가 하는 말을 곧바로 이해하기 힘들어서 몇 번이고 되묻다가 겨우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말인데……?”
“주현이가… 엄마가 준 장난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장난삼아 히어로 협회에 있던 아이템을 걸어 뒀어.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장난감은 주인이 있어야 색을 유지하고 작동하기도 해. 정말로… 희한한 게 다 있다는 마음으로 걸어 두었던건데…….”
그 남자가 가져온 장난감은 선명한 보라색, 푸른색, 빨간색을 가진 로봇이었다. 제대로 작동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것을 만진 이가 주인이 아니라면 색이 온통 바래진단다. 원래 주인이 죽어 새로운 주인을 만난 것이라면 모를까.
“만약 그 애가 내 아들이 아니면… 주현이가 아니면… 우리 주현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소리밖에 안 돼. 안 돼……. 난 도저히, 도저히 확인할 수가 없어.”
마더는 차라리 저 남자가 주현이며 행복하게는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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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레이드맨의 둠(doom)은 현실 세계를 차단한다.
사지가 부러진 채 절벽 아래로 떠밀려 죽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엔레이드맨은 열여섯 살, 그때부터 결계 속에서 단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를 지키려고 했던 능력이 마더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이 또한 엔레이드맨과 신재언은 모르는 잔인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