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280화 (280/324)

280화

검은 태양의 젊은 두목 원한.

그는 이름 그대로 원한을 품은 상대가 누구든 복수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일 또한 깔끔하게 처리했다.

올해로 나이가 스물셋밖에 안 된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었지만 이룩해 놓은 사회적 위치는 결코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많은 권력자가 꺼리고 두려워하는 최강의 뒷배가 있었다.

어느 날 자다가 돌연사 당하고 싶지 않다면 누구든 그의 앞에선 행동거지를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검은 태양은 엔레이드맨이 인정한 네 개의 조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까지 튼튼하게 뿌리내렸다.

서울에 있는 산업 디지털단지에서 36층짜리의 높은 빌딩 한 채가 검은 태양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본사이며 임원을 제외한 사원들 대부분은 조폭이 아닌 일반인으로 이루어졌다.

회사의 공식적인 이름도 블랙 마켓에서 사용하는 검은 태양이 아니라 ‘주식회사 흑천’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일반인들을 고용하고 성실 납세자로서 세금도 착실하게 내는 중이었다.

히어로 협회가 이를 벅벅 갈면서도 일망타진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전에 엔레이드맨이 검은 태양의 뒷배라는 걸 알게 된 재언이 빌런이 연루된 회사가 얼마나 깨끗하고 좋겠냐며 편견 가득한 생각으로 인터넷에서 이름을 검색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보다 신입 연봉이 높고 복지가 매우 좋다는 걸 알게 되어 충격에 빠졌지만 말이다.

조직의 실질적인 보스는 ‘원한’이었지만 거대한 그룹의 지주 회사와 계열사들을 대표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

그 때문에 그의 오른팔인 ‘쌍룡’이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전(前) 보스의 오른팔이자 미성년자였던 원한을 찾아낸 일등 공신이었다.

사실 원한의 아버지로 알려진 검은 태양의 전 보스는 결혼도 하지 않은 데다 만나는 여성이 있다는 낌새도 없었다. 그러니 조직원들에게는 보스에게 숨겨진 애인과 애인에게서 본 아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조직에 의해 이미 지옥까지 떨어져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조직원들은 그때 당시엔 혈연과 정통성을 따질 겨를 따위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원한의 뒤에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빌런 다크 카오스의 첫째, 엔레이드맨이 존재했기에 진짜 형님의 자식이 맞느냔 의문을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똑똑-.

“들어와.”

36층짜리 건물 30층에 마련된 한 임원실 안으로 흑천의 회장이 깍듯하게 문을 두드린 뒤 허락을 받아 공손한 자세로 들어왔다.

임원실의 주인인 원한은 유일한 약점인 어린 나이를 어떻게든 숨기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었다. 은갈치 색 정장을 입고 왁스로 머리를 뒤로 넘긴 다음 도수 없는 안경까지 쓴 채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채 감추지 못한 젊음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눈매에 제법 준수하게 생긴 외모를 가진 그였지만, 요즘 근심이 많은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방문객을 맞이해야 할 그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보다 더 어려 보이는 소년이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고 헤드셋을 낀 채 핸드폰 게임에 열중해 있었다.

“형님. 저 꼬마는 누구죠? 건방지게 보스 앞에서…….”

임원실에 처음 들어와 보는 호기로운 신입이 옆에 나란히 선 형님에게 물었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였지만, 형님이라 불린 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다급한 표정으로 신입의 멱살을 잡아 얼굴에 주먹을 힘 있게 꽂아 넣었다.

얼굴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신입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임원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저 물어본 것일 뿐인데 코뼈가 나갔다.

지금 당장은 이 처사가 너무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시간이 지나면 신입 녀석도 형님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감싸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앞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나자 핸드폰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게임을 하던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뚱한 표정에 반항기가 가득한 얼굴을 한 소년이었다.

원한은 소년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놈입니다. 형님에 대한 이야기는 함부로 발설할 수 없으니까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죠.”

그래도 엔레이드맨에게 능청스럽게 말하는 태도로 보아선 어린 나이임에도 제법 담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엔레이드맨은 그의 말에 별 관심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딴 건 아무 상관없어. 내가 궁금한 건 그 여자가 어떻게 됐냐는 거야.”

“저번에 회장실로 찾아와 한바탕하고 갔죠. 겨우 찾은 아들을 털끝 하나라도 건들면 모두 정의의 검으로 심판당할 줄 알라고 기세등등하게 외치던데요. 솔직히 우리 중에 그 정의의 철퇴에 멀쩡하게 살아남을 만큼 깨끗한 사람이 없어서요.”

원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더가 그놈을 아주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웃기지도 않더군요. 놈이 우리 구역에서 마약 브로커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도 그렇게 당당할지 궁금합니다. 인천항에서 캄보디아 브로커와 마약을 매수해 와서 팔고 있는 걸 우리 쪽 막내가 발견했는데 그놈들이 칼을 꽂았어요.”

엔레이드맨에게 양해를 구한 그가 담배를 물었다. 그러자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40대의 남자가 재빠르게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그때 마더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막 나가는 놈들을 인천항 앞바다에 수장시킬 수 있었는데 공교롭게 됐습니다. 거기다 요즘은 박주현인지 뭔지 하는 마더의 아들을 중심으로 한 놈들이 인천 쪽 마약을 장악했어요. 형님이 마더를 맡아 주신다면 저희가 나머지 놈들을 해결해 보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박주현, 아니 박주원은 질 나쁜 이들과 어울리면서 SNS의 오픈 채팅방이나 익명 메신저를 이용해 마약을 밀수하고 판매하고 있었다. 부르는 게 값인 마약을 이용해 금방 돈을 벌었다.

하지만 실수로 지나가던 검은 태양 조직원의 배를 칼로 쑤신 게 화근이었다. 그에 검은 태양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박주원은 마약과 돈을 포기하고 숨어 지냈지만 검은 태양의 정보망을 피해 갈 순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망치던 그를 붙잡아 인천 앞바다에 수장하려던 그때 마더가 나타났다. 인근에 마약 조직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처리해 달라는 협회의 의뢰를 받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박주원이 마더를 엄마라고 부르는 바람에 일이 더욱 복잡해지고 말았다.

“TV에선 그 자식을 무슨, 엄청 착하게 살았다 어쩐다고 하면서 떠들어 대던데 웃기지도 않아요. 마더는 자식을 찾았다는 사실에만 눈이 멀어서 이쪽 얘기는 전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요. 그래서 염치없지만, 형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엔레이드맨은 마더가 찾은 아들이 인간쓰레기였다는 보고를 묵묵히 들었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는 눈을 내리깔고 한마디 감상을 남겼다.

“마더는 자식 운이 없군.”

“정말요. 그런 자식이라면 차라리 찾지 않는 게 나았을 텐데 말입니다.”

비실비실 웃으며 농담을 내뱉던 원한이 돌연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아무튼, 덕분에 놈들의 기세가 상당합니다. 예전엔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던 놈들이 지금은 우리 쪽 놈들을 도발하고 맞서려 하고 있다더군요. 뒤에 S급 히어로가 버티고 있다니 기세등등할 만도 하겠죠.”

검은 태양은 다른 조직과는 다르게 마약은 절대로 취급하지 않았다. 전에도 마약왕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엔레이드맨이 마약과 관련된 일을 매우 꺼렸기 때문이다.

사실 조직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서는 마약을 이용하는 게 가장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검은 태양을 비롯해 엔레이드맨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조직들은 마약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인천 쪽은 이미 마약에 점령당했습니다. 그놈들이 대체 어떻게 마약을 구하는지 모르겠어요.”

엔레이드맨은 속으로 마약왕을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어 떨쳐 냈다.

‘이전 같았으면 추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아버지께 버림받은 몸…….’

하지만 이번 사건에 마약계의 거물인 마약왕이 아예 관계가 없다고 장담하지 못했다. 원한이 건네주는 보고서에는 평범한 마약 브로커가 구하기엔 지나치게 고가이며 의존성과 중독성이 높은 각성제들이 매우 많았다.

“수법도 간단합니다. 5g에 한화로 80만 원. 손바닥보다 작은 봉투에 담고 최대한 부피를 적게 만든 뒤 난간 밑이나 돌 틈 사이에 끼워 넣어 거래합니다. 1:1로 만나지는 않지만, 사람이 많은 클럽에서 직접 거래하기도 한다더군요.”

원한이 침을 꿀꺽 삼킨 뒤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 마더를 상대해 주신다면… 그놈들은 저희가 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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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거, 형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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