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박주원은 중학교 3학년 때 능력을 각성했다. 그의 능력은 사물의 기억을 읽는 것.
보육원에 있을 때도 음침하다며 아무도 그에게 다가오지 않아서인지 이성과 대화를 해 본 적도 없었다. 그 탓에 그의 머릿속은 이성에 대한 환상과 망상으로 가득했다.
능력이 생기고 그의 욕망이 각성한 순간, 그는 가장 먼저 같은 반 여학생들의 물건을 만지는 것으로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며 히죽거렸다.
그런 짓을 이어 가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질이 나쁜 무리와 친해졌다. 그들과 함께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또래 친구들의 약점을 잡고 괴롭히는 등 여러모로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로 발전해 갔다.
술에 취해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 돈을 뜯어내는 건 물론 도둑질도 밥 먹듯이 했다. 안 그래도 힘들게 살아가는 하피나 머메이드들을 찾아가 못된 짓을 일삼았고 때로는 그들의 영상을 찍어 메신저로 팔아넘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평상시처럼 같은 학교 학생 한 명을 타깃으로 협박하다가 잘못 걸리고 말았다. 돈만 많고 별 시답지 않은 놈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괴롭혔는데 하필 법조계에서 일하는 부모를 둔 놈이었다.
그 아이가 자살 시도까지 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난리가 났고 사방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공격이 들어와 결국 퇴학당했다. 다행히 피해자가 죽지 않고 부상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소년원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박주원은 그놈이 부모 앞에서 쇼를 해서 재수 없이 걸렸다고 생각했다. 피해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은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말이다.
고등학교를 퇴학당한 그에게 남은 길은 두 가지였다. 지난 일들을 반성하며 열심히 살아가거나 사람들의 뒤통수를 쳐서 배부르게 사는 길이었는데 박주원은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다.
처음엔 능력을 사용해 빈집 털이를 하다가 위험도에 비해 벌이가 형편없다는 걸 깨닫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사기였다. 하지만 사기 역시 중국 쪽 발발이들이 주름잡고 있어서 위험했고 타깃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아서 힘들었다.
그다음에 박주원이 손댄 일은 고등학교 때 어울렸던 무리에서 가장 질 나쁜 놈이 마약 대모와 운 좋게 연이 닿아 시작한 마약 브로커 활동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돈이 술술 들어왔다.
그의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돈은 처음이었다. 캄보디아에서 들어오는 마약의 원가가 100g당 100만 원 안팎이었는데 이걸 전부 팔고 나니 이윤이 억 소리가 날 정도였다.
이제 제 인생이 필 것이라고 좋아하고 있을 때 무리 중 한 놈이 사고를 쳤다. 이전에 하필 법조계 집안 아들을 건드려서 퇴학당하게 만든 그놈이었다.
머리가 나쁘고 다혈질이라 진작 쳐 냈어야 하는 놈인데 그나마 친구랍시고 의리를 지켰더니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건드려도 하필 조폭 새끼 배를 쑤시냐!”
“아니, 저 씨발 새끼가 존나 별것도 아닌 게 날 무시하잖아!”
“아후, 이 빡대가리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해.”
일단 마약이고 뭐고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피라미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해 자존심이 구겨진 조폭들은 점점 그들의 숨통을 조여 왔다.
박주원은 자신의 능력이라면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민 끝에 그는 같이 다니던 무리를 버리고 야반도주를 할 계획을 세웠다.
얼마 후 숨어 있던 허름한 여관에서 몰래 나와 살금살금 걷는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붉은 달이 환하게 떠올랐다.
“뭐, 뭐야?”
지나치게 크고 거대한 붉은 달만이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었다. 굉장히 이질적인 그것은 마치 다른 세계로 넘어간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아니, 사실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어머, 보스. 저것 봐, 로에즈.”
“그래, 츠유. 보인다고… 저 멍청한 놈. 얼빠진 것 좀 보라지.”
“저런 놈이 정말 이용 가치가 있는 걸까요.”
날카로운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박주원이 비명을 지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으아아악!”
박주원은 낯선 목소리가 들릴 때부터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붉은 달에 의해 생긴 그림자들을 보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두 개 달린 괴물, 온몸을 칭칭 감은 여자, 그 외에도 몇 개의 그림자가 더 보이긴 했지만, 심상치 않은 놈들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빌런이다! 히어로, 히어로!”
정의로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면서 정작 빌런을 마주하자 히어로부터 찾는 꼴이 비웃음 당해도 모자랄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주원이 어디로 도망가든 붉은 달의 시선은 그를 끈질기게 쫓았다.
결국, 도망가다가 제풀에 지친 그가 헉헉거리며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들리던 히스테릭한 웃음이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저놈 같은 쓰레기가 이 일에는 가장 안성맞춤이지.”
그의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매우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남성이었다.
“감히 내가 유통하는 마약을 헐값이 팔아넘기고 있었더군. 배신자는 찾아내 처단했지만…….”
박주원이 엉덩이 걸음으로 도망치는 모양새를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구경하던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그의 앞에 던졌다. 색이 바랜 낡은 로봇 장난감이었다.
“……?”
“쓰레기 같은 네놈에게 어울릴 만한 일을 가져왔지. 보아하니 사물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능력자라고. 네가 할 일은 단 하나다. 이용 가치가 있어서 살릴지 죽일지는 이 일이 끝나면 정할 테니 조금이라도 살고 싶다면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박주원이 덜덜 떨면서 양팔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마치 살기 위해 대가리만 감추는 멍청한 꿩을 보는 듯했다.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몰골이 끔찍하군. 아아,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을 위한 세계는 아직도 이렇게 추악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들은 이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누군가를 떠올리는지 격렬하게 부르르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를 위한 세계를 만드는 데 방해되는 것들은 모두 살아 있을 가치가 없어. …나중에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일단 방해되는 팔다리부터 자르겠습니다. 나의 아버지.”
그러다가 무대 위의 피에로처럼 과장되게 양팔을 벌려 소리치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한참을 숨죽인 채 엎드려 있던 박주원은 조용해진 주위에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눈이 달린 거대한 붉은 달도, 머리가 두 개 달린 괴물도 사라졌다. 동트기 전, 바람에 데굴데굴 구르는 깡통 소리만이 낮게 울려 퍼졌다.
어디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중요한 건 빌런을 만나고도 살아남은 사실이었다. 꿈만 같지만, 눈앞에 있는 낡은 로봇 장난감만이 현실이라는 걸 일깨워 주는 중이었다.
바닥에 놓인 로봇 장난감을 노려보던 박주원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장난감을 만졌다. 그가 가진 능력으로 인해 장난감의 과거가 흘러들어왔다.
어떤 여성이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그 뒤 여성은 옆에 있던 어린아이에게 장난감을 건네주었다. 장난감의 기억은 대부분 여성과 그의 자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비추었다.
‘주현아.’
여성은 한결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이건 우리 주현이만을 위해 엄마가 준비한 거야.’
그러던 중 아이와 떨어진 장난감은 어느 허름한 창고 같은 곳에 대충 놓여 있었다.
‘어이, 모 씨. 이건 뭐야?’
‘싸구려 장난감인가 본대… 퉤! 뭐 색도 다 바래고 움직이지도 않잖아?’
장난감을 손에 쥐고 거칠게 다루는 이들은 땟국물이 잔뜩 묻은 허름한 민소매 티에 살이 흉하게 늘어진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무리 만져도 작동하지 않는 장난감을 물건이 잔뜩 쌓여 있는 창고에 버려두었다.
장난감의 주인이 어떻게 됐는지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인신매매단에 납치되어 팔려 간 모양이었다.
박주원이 잡고 있는 장난감은 레고 모양 총이 들려 있었다. 총을 만지작거리니 로봇 장난감이 점점 색을 되찾아 가는 게 보였다.
정상적으로 작동하기까지 했다. 그는 더러운 길바닥에 엎어진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그 여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박주원이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 검색창을 띄웠다. 지금은 입가에 주름이 있는 모습이긴 하지만, 로봇 장난감 주인의 엄마는 S급 히어로 마더가 분명했다.
‘마더는 아들이 실종돼서 지금까지 찾고 있다고 했어. 설마 이 로봇 장난감이 아들 것이었나?’
로봇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기억을 천천히 훑었다.
‘아들이 죽은 건가?’
이게 마더의 잃어버린 아들 것이라 해도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며칠 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검은 태양 놈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는 게 급급했던 박주원은 인천항으로 도망쳤다가 검은 태양 조직원 놈들에게 둘러싸여 수장되기 직전, 그의 앞에 마더가 나타났다. 아무리 히어로 협회에서 보냈다지만 마더는 영화같이 등장해서 박주원을 구해 주었다.
정의의 검이 찬란한 빛을 내며 조폭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괜찮습니까?”
마더는 강했다. S급 히어로니까 당연한 말이다. 대한민국에 11명밖에 없다는 S급이다. 재산도 당연히 많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아들을 찾아다니는 헌신적인 부모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세 살 난 자식을 버리고 잠적하는 쓰레기 같은 부모보다도 훨씬 나았다. 박주원은 속으로는 벌벌 떨면서도 간신히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어, 어머니…….”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경계하던 마더는 박주원이 보여 준 로봇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 그곳이 작동되는 것까지 확인한 뒤 절망과 감격이 뒤섞인 얼굴로 그를 끌어안았다.
“우리 아들!”
‘… 진짜 이걸 믿는다고? 설마 친자 검사 같은 걸 하자고는 않겠지. …모르겠다. 어차피 지금 죽나 나중에 들켜서 개쪽당하나, 그게 그거지 뭐.’
박주원의 걱정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마더는 친자 검사를 제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아들에게 해 주지 못했던 걸 다 해 주려는 듯 계속해서 박주원을 챙겼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간질간질한 가족애를 난생처음으로 느꼈다.
‘…어차피 진짜 아들은 죽었잖아. 내가 진짜 아들이 되는 거야. 어차피 없는 놈 대신인데… 내가 뭐가 나빠. 나도 진짜 엄마를 가지고 싶어. 진짜 내 부모를 가지는 거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쓰레기 같았던 인생에서 드디어 진정한 가족이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