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289화 (289/324)

289화

“어머니!”

박주현, 아니 박주원이 서재 문을 열고 나오는 마더를 발견하고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마더는 박주원 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얼핏 보이는 안색이 지나치게 창백했고 눈빛은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재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듬성듬성 흰머리가 있었어도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윤기 있는 갈색 머리가 모조리 하얗게 세어 버린 상태였다.

“어… 어머니.”

마더는 상냥하고 생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보육원을 운영하면서 몹쓸 꼴을 많이 겪었을 텐데도 그녀는 인자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어젯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장 서재로 들어가 무언가를 조사하며 불안 증세를 보였다. 하지만 조사하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뒷모습이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처절했다.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깜짝 놀라 숨죽이고 지켜보던 박주연이 서재에 들어가 그런 엄마를 어떻게든 말려 보고자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야. 어째서 왜! 왜!”

그렇게 한숨도 자지 않고 서재에 틀어박혀 미친 사람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던 그녀는 결국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노트북까지 바닥에 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아 서재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동안 박주원은 패거리들과 어제저녁부터 연락이 끊겨 초조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손톱을 이로 물어뜯고 있었다. 때마침 마더가 서재에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어제부터 제 친구 녀석들과 연락이 되질 않아요. 분명 그 조폭들이……. …어머니?”

박주원에게 닿는 시선이 싸늘했다. 부지불식간에 S급 히어로의 살기를 정통으로 맞은 박주원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다가 발이 꼬여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치 죽음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눈앞에 둔 느낌이었다.

그런 박주원을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마더가 이윽고 등을 돌려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 엄마 어디가!”

마더가 거실로 나왔다는 걸 알아차린 박주연이 방에서 나와 그런 그녀를 막아섰다.

“…주현이, 주현이…….”

“엄마, 오빠는 저기 있잖아!”

박주연의 손가락 끝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주저앉은 청년이 있었다. 마더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사랑하는 딸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내 딸… 귀여운 내 딸. 내 소중한 자식…….”

홀린 듯이 중얼거리던 마더는 당황해 굳어 있는 박주연을 지나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늦은 시간에 위험하다는 말은 S급 히어로에게 통하진 않겠지만, 너무나도 괴이한 모습으로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는 게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엄마!”

“내 아들도 너무 소중했어……. 내 아들도, 내 아들도… 우리 주현이도…….”

많은 사람이 말해 왔다.

자식을 잃은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나 이제 그만 놓아주고 있는 자식이나 잘 키우라고 말이다.

20년이면 할 만큼 한 것 아니냐, 포기하고 너를 위해서 네 가족의 행복을 찾으라고도 했다.

하지만 마더(Mother)는 어느 자식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

마더는 광인처럼 비틀거리며 비극을 알게 된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푸른색 눈물 보석이 반짝이는 피에로 가면을 쓴 다크 카오스가 어디서 가져온 건지 낡은 테이블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마더를 기다리고 있었다.

희미하던 담배 냄새는 그와 가까워질수록 짙어졌다.

재언은 느긋한 마음으로 마더를 기다렸던 건 아니었다. 마더가 과연 진실을 알기 위해 자신을 찾아올까 싶은 초조함 때문에 불안했다.

그래서 자신의 힘을 확인해 보고 싶다며 따라온 원한과 코루루를 양쪽에 끼고 담배만 뻑뻑 피워 대는 중이었다. 아무리 금연하고 싶어도 요즘 담배 피울 일이 많아져서 할 수가 없었다.

원한과 검은 태양이 조사해 온 박주원은 상상 이상으로 쓰레기였다. 그런 인간 말종 때문에 엔레이드맨의 정신이 흔들려 마더에게 당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놈이 멀쩡한 가족, 그것도 돈 많은 히어로의 가족을 원하다니, 너무나도 철면피가 아닌가. 하긴,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로 마더의 자식을 자처하며 뻔뻔하게 아들 흉내를 내진 않았을 것이다.

마더가 진상을 알면 괴로워할 것을 알지만 재언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엔레이드맨 쪽이 더 소중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모든 걸 털어놓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마더의 몰골을 보자마자 흔들렸다.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그녀의 온몸에 우울하고 어두운 감정이 짙어진 게 눈에 띄게 보였다.

재언이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 보았던 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더…….”

“엔레이드맨… 그래, 내 아들에 대해 조사해 봤어……. 10년 전에도, 그 뒤에도… 왜 계속 이렇게 어린 모습뿐인 거지? 왜, 왜 계속 나이를 먹지 않고 똑같은 모습인 거냐고!”

마더가 팔을 뻗어 다크 카오스의 멱살을 붙잡았다. 원한과 코루루가 그녀를 막기 위해 움직였지만, 재언이 손을 들어 올려 그들을 말렸다.

마더에게서 위협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멱살을 잡은 두 손을 벌벌 떨면서 흐느꼈다.

“제발 말해 줘…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내 아들이… 왜 빌런이 된 거야. 그렇게 찾았는데, 왜 단 한 번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거야. 왜… 왜!”

마더는 50세가 넘어가는 나이만큼 연륜이 느껴지고 중후한 기품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이런 식으로 다크 카오스라는 빌런 앞에서 구걸하듯 흐느끼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재언 또한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 표정을 가면 안에 숨긴 채 마더의 팔뚝을 잡았다.

“조각난 장난감.”

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조각난 장난감을 불러냈다.

엔레이드맨은 지금까지 재언을 아버지로 따르고 형제들을 가족으로 여기면서도 가족을 그리워했다. 결국, 떼어 내지 못한 정 때문에 친모의 손에 죽을 뻔했다.

재언은 엔레이드맨을 잃고 싶지 않았고 그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위지도.

엔레이드맨, 박주현에게는 잔인했던 섬.

지금은 섬 주민들이 모두 죽어 누구도 살지 않게 된 유령 섬.

엔레이드맨의 기억을 읽어 온 조각난 장난감이 능력을 사용해 참혹했던 그날을 마더에게 보여 주기 시작했다.

재언은 그녀가 어떤 기억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처음에는 멍하니 있던 마더의 안색이 완전히 새까맣게 물들었다는 것만 알았다.

이윽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다가 마치 누군가를 구하려는 듯 앞으로 팔을 쭉 뻗으려 했다. 하지만 기억 속의 박주현에게는 절대로 닿을 수 없었다.

기억 속 박주현의 인생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아들을 찾아 헤맸던 마더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 안에서 박주현이 가졌던 희망 역시 알아차렸을 게 분명하다.

재언은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마더의 모습을 보며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어차피 엔레이드맨의 기억 속의 신재언을 봤을 테니 얼굴을 숨기는 건 무의미한 짓일 터였다.

그 순간에도 마더는 기억 속에서 아들의 성장을 빠른 속도로 지켜보았다.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는 기도는 아들에겐 지옥이었고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 참혹한 광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마지막엔 그런 아들을 구해 준 건 히어로도, 일반인도 아닌 악의 무리의 상징인 다크 카오스였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 그녀가 지켜 온 많은 이들이 학대하고, 방관해 왔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아빠도 보고 싶고 가족들한테 돌아가고 싶어요.’

희망에 잔뜩 부푼 얼굴로 다크 카오스에게 매달리며 제발 살려 달라고 우는 어린 소년.

‘내 아들이 무슨 잘못을 했지?’

‘내 아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저렇게 잔인한 일을 당해야 했을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결계 밖에서 나가지 못하고 어린 소년의 모습에서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불쌍한 내 아들.

빌런이 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잔인하게 죽었을 박주현.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은 히어로인 부모를 보고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

엔레이드맨이라는 빌런 명으로 부르며 세상이 그를 주목하지만 않았더라도 부모의 앞에 뻔뻔하게 얼굴이라도 비췄을 텐데.

차마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가족들을 앞에 두고 뒤로 돌아 발을 떼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행복하게 사는 가족들을 보며 그대로 정을 떼려고 했지만, 아들은 여전히 정이 많고 순한 아이였다.

그러니 자신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는 엄마의 모진 공격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격했다면 마더가 크게 다쳤을 것이기에.

“아아아아악!”

마더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테이블 위를 긁기 시작했다.

“마더!”

재언이 기겁하며 발광하는 그녀를 말리려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마더의 손톱이 벗겨지는 섬뜩한 소리가 나며 테이블 위로 열 개의 선이 피로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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