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301화 (301/324)

301화

“하하하! 저 얼빠진 낯짝을 보라지. 얼굴 가죽을 벗겨서 방에 전시하고 싶은 기분이야.”

“오랜만에 너와 의견이 맞는 것 같다……. 정의로운 히어로를 잡아다 얼굴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불태워 주자고. 그러면 녀석도 귀여운 비명을 내지르겠지. 하지만 내가 가장 듣고 싶은 건 저런 지저분한 남자가 아닌, 아름다운 마녀의 비명인데.”

한 몸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머리가 즐거운 듯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킥킥거리며 기분 나쁘게 웃을 때마다 그들의 목에 묶인 철 실이 흉흉하게 절그럭 소리를 냈다.

그런 그들을 경계하면서 에스트리아는 뒤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빌런의 등장에 밖으로 나온 일반인들이 잔뜩 얼어붙어서 입도 뻥긋 못하고 있었다.

저들은 능력이 없는 비각성자들이다. 평범한 생활을 해 오던 비능력자가 저런 흉측하게 생긴 빌런을 눈앞에 둔다면 공포심으로 온몸의 피가 얼어붙을 것이다.

박재원은 그런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도 능력을 각성하기 전에는 저들과 다를 바 없었으니 말이다.

‘이 자들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빌런들과 차원이 다르다.’

에스트리아라는 차원에서 다섯 개의 세계를 구한 그는 각 세계의 성물을 받은 뒤 현실로 돌아왔다. 박재원의 자주 사용하는 귀에 달린 깃털 모양 귀걸이가 바로 성물 중의 하나로 깃털의 힘으로 세계를 지키는 날개 족의 성물 ‘추락하지 않는 의지’였다.

그 외에도 인어들에게 받은 ‘심연의 심장’이나 다른 세계의 성물들도 가지고 다니긴 했다. 다만 시전자인 박재원에게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큰 부담이 가더라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괴상한 빌런은 마치 다크 카오스의 자식들을 마주쳤을 때만큼 피부가 얼얼할 정도의 살기를 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크 카오스의 자식들은 강자로서의 여유와 능청스러운 분위기였고 이자들은 광기가 담긴, 묘하게 위험한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까르륵거리며 즐겁게 웃어 대지만, 웃음소리 안에 잔혹함이 가득 담겼다. 머리 두 개의 빌런은 등 뒤에서 거대한 낫을 꺼내 들고 천천히 에스트리아 쪽으로 걸어왔다.

천천히 다가오며 압박해 오는 그들보다 먼저 푸른 피부의 괴인들이 촉수를 흔들거리며 공격을 시작했다.

“지원을 불러 주세요! 최강의 방패를 이곳으로.”

“하하하! 깔깔깔. 저 멍청한 히어로가 뭐라는 거야? 우리가 다른 S급 히어로가 올 때까지 널 살려 둘 것 같아?”

여성의 머리가 날카롭고 히스테릭한 웃음소리를 내며 에스트리아를 비웃었다.

“으아아악!”

괴인의 촉수에 휘감긴 시민들이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질렀다. 자신을 향해 뻗어 오는 촉수를 가볍게 피한 에스트리아가 귀에 차고 있던 깃털을 빼 위로 던졌다.

살랑이는 깃털이 다시 에스트리아의 손에 떨어졌을 땐 그것은 길고 뾰족한 창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휘둘러 시민들을 붙잡은 촉수를 단번에 잘라 낸 뒤 지하철역 안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퇴로를 만들었다.

좁은 에스컬레이터 앞에 선 에스트리아의 정신이 빌런과 시민들, 괴인들까지 신경 쓰느라 분산되었다.

머리 두 개 달린 빌런은 그런 에스트리아의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즐겁다는 듯 실실 웃고만 서 있었다. 마치 느긋하게 사냥감을 몰아가는 포식자의 여유를 부리는 듯했다.

다른 S급 히어로에게 지원 요청하러 가던 A급 히어로 역시 촉수에 붙잡히는 바람에 에스트리아는 분주하게 창을 휘둘렀다. 겨우 촉수에서 벗어난 A급 히어로를 지하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뒤로 밀었다.

안쪽에 이어진 지하철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가면 반대편 출구에서 정찰 중인 최강의 방패에게 지원 요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뒤쪽에 시민들이 있어서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에스트리아가 저들의 공격을 피하기라도 하면 일반인들이 크게 다칠 것이 분명했다.

“꺄아아악!”

“어서 아래로 도망가세요.”

도망치는 시민들의 발목을 붙잡으려는 촉수들을 잘라 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혼자서 그들을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시민 중 달리는 속도가 느렸던 젊은 여성 한 명이 발목을 잡은 촉수에 끌려가 풀숲으로 사라졌다. 그것을 도화선으로 시민들의 공포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에스트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무질서하게 지하철 입구 안쪽으로 도망가는 시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뒤를 돌아봤다.

“너 감히 우리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팔아?”

섬뜩한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렸다. 언제 눈앞으로 이동해 온 건지 머리 두 개 빌런이 지척에서 낫을 휘둘렀다.

에스트리아가 급하게 다른 쪽 귀걸이에서 깃털을 뽑아 손바닥에 두고 맨손으로 공격을 막아 냈다. 거대한 파공음이 들리며 날카로운 낫이 에스트리아의 손등을 관통할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아니…….”

하지만 ‘저승의 낫’이 에스트리아의 손등을 관통하는 일은 없었다. 그에 눈을 가늘게 뜬 여성의 머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아! 제대로 좀 하라고! 이놈이 괜히 S급 히어로인 줄 알아? 보스에게 다시 머리가 뽑히고 싶지 않으면 제대로 일하는 게 좋을 거야!”

“알겠어. 알겠다고, 츠유. 시끄럽게 굴지 마. 귀청이 나갈 것 같다고.”

짜증이 가득한 여성과는 반대로 느긋하게 대답한 남성 머리가 킥킥 웃으면서 머리를 움직였다. 곧이어 무언가가 부러지는 듯한 뿌득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성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었다.

그건 정말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광경이었다. 남자의 목이 떨어져 나가면서 목 아래쪽으로 마치 거미와 같은 길쭉한 여러 개의 다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에스트리아는 그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를 포기한 자들은 추악했고 또한 그만큼 강했다. 남성 머리에서 튀어나온 여덟 가닥의 다리는 모두 칼처럼 날카롭고 화살촉처럼 뾰족했다.

게다가 어찌나 빠르고 징그럽게 움직이는지 에스트리아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의 발밑으로 들어와 종아리를 베어 버리고 무릎 꿇린 다음이었다.

“이, 이 녀석!”

에스트리아가 기겁하며 자신을 휘감아 오는 남자 머리를 떼어 놓으려 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져도 여성 쪽이 거대한 낫을 휘두르며 날카롭게 웃는 바람에 모두 무용지물로 돌아갔다.

“에스트리아!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저를 잊은 건 아니겠죠!?”

일단 눈앞에서 휘둘러지는 낫을 막기 위해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허리춤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으윽…….”

남성 머리에 달린 뾰족한 다리가 에스트리아의 허리를 찔러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부상에 에스트리아가 피를 토하며 허리를 굽혔다.

S급 히어로의 꼴사나운 모습에 츠유가 황홀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녀가 낫을 다시 들어 올려 그의 목을 치려던 때, 어디선가 딸랑이는 방울 소리가 들렸다.

어떤 공격에도 뚫리지 않는 ‘심연의 심장’. 깊은 바닷속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어와 머메이드맨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구해 준 히어로에게 준 성물이었다.

다만, 사용하는 순간부터 빠르게 몸 안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간다. 몇십 분 안에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지 않으면 미라가 되어 버리는 부작용이 있는 아이템이었다.

‘어차피 미라가 돼서 죽으나 목이 잘려 죽으나 똑같지. 그래도 내가 여기서 죽어 버리면 저 사람들이… 어떤 끔찍한 짓을 당할지 몰라.’

에스트리아의 몸 전체에 불투명한 푸른색의 비늘이 생겨났다.

“깃털로 잔재주를 부리는 건 하피랑 비슷하더니 지금은 머메이드처럼 변했네!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

눈을 가늘게 뜬 츠유가 로에즈와 함께 공격을 시도했지만, 마치 강철을 몸에 두른 것처럼 캉캉 소리만 날 뿐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에스트리아의 창이 로에즈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생긴 것처럼 벌레같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격을 모조리 피해 낸 로에즈는 다급하게 몸으로 돌아갔다.

예상보다 S급 히어로의 반항이 길어지자 츠유의 눈빛이 점점 우울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갔다. 눈 안 실핏줄이 잔뜩 터져 새빨개진 눈동자로 츠유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겉으로는 잔뜩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의 양 볼엔 홍조가 돌았고 눈동자에는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오늘은 얌전히 실험체로 쓸 인간들만 끌고 가려 했는데,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아. 너무 흥분돼! 저렇게 강한 히어로를 이 손으로 죽일 수 있다니. 죽을 것 같이 흥분된다고!”

사실 로에즈와 츠유는 연인 사이였다. 지금 모습으로 변하기 전의 그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은 빌런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협박하고 폭력을 일삼는 유유상종 커플이었다. 그러다가 마약에 중독되어 제정신이 아닌 채로 길거리에서 총기를 난사하는 바람에 히어로들과 대치하다가 목이 잘려 죽었다.

아니,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차가운 길바닥이 아닌 어느 실험대 위였다. 그날 이후로 둘은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지고 살아왔다.

육체뿐만 아니라 감각과 기억까지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불필요한 감정까지 나누고 말았다. 그렇게 되니 사랑이라는 허울뿐인 감정은 증발하여 사라졌고 지금은 불타오르는 증오와 비슷한 감정을 서로에게서 느꼈다.

그와 비슷하게 자신들의 목을 자른 히어로같이 강한 히어로들만 보면 희열감과 목을 잘라 버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며 미쳐 갔다.

미친 듯이 웃어 젖히는 머리 두 개 빌런은 지금까지 장난이었다는 듯 분위기가 급속도로 달라졌다. 허리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지도 못한 채 에스트리아는 창을 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시원함을 느꼈다. 기분 탓이 아닌 실제로 느껴지는 시원함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을 구두 굽으로 내려찍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얼어붙은 길이 생겼다. 그 길은 점차 괴인들의 발밑으로 빠르게 들어가 주변의 모든 것을 얼려 버렸다.

“…결국, 못 참고 애인 도와준다고 뛰쳐나가 버렸네요.”

멀리서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만들어 눈에 댄 채 그들을 지켜보던 귀신들의 성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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