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인간이 아닌 종족, 하피, 머메이드, 불요족의 인권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일상에서 나타나는 혐오는 아직도 비일비재했다.
피난민 사이에 끼어 있던 중년 여성이 불안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녀는 제법 더운 날씨였음에도 기다란 코트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연한 갈색 머리에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여성은 한참 동안 파도처럼 밀려오는 다른 피난민들에게 치이지 않기 위해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다.
기다리는 이가 있는 듯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가지 않는 그녀의 행동은 인산인해처럼 몰려오는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 건 당연했다. 이윽고 그녀는 지나가던 사내와 부딪혀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아!”
짧은 비명을 삼키며 여성이 움찔거리자 부딪친 남자는 제 어깨를 감싸고 짜증이 가득 섞인 얼굴로 뒤를 돌았다.
“지금 뒤에서 빌런들이 쳐들어오고 있는데 길을 막으면 어떻게 해, 아줌마!”
“죄송합니다…….”
그런데 바닥을 더듬거리며 일어나려는 여성을 본 사내가 입을 뻐끔거렸다. 곧이어 넘어진 충격으로 코트 속에 가려졌다가 드러난 날개를 손가락질하며 대뜸 소리 질렀다.
“하피잖아! 더럽게! 전염병이라도 옮기면 어떻게 할 거야?!”
그의 말대로 팔 대신 자리 잡은 새하얀 날개는 그녀가 하피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날개를 가진 하피족을 짐승에 가깝고 전염병을 옮기는 더러운 종족이라고 인식하는 이들이 있긴 했다.
요즘 들어선 그런 차별적인 이야기를 하면 뭇매를 맞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같이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숨어 있던 차별들이 대놓고 수면 위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중년 여성은 위협적으로 팔을 들어 올리는 남성의 모습에 겁에 질려 덜덜 떨었다.
그녀는 과거에 하피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아 크게 데일 뻔했고 부모마저 묻지 마 살인으로 길가에서 폭행당한 기억 때문에 인간을 두려워했다.
인간 남성이 손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쉬기 힘들 정도로 공황 상태에 빠질 만큼 말이다.
“내 아내가 댁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소?”
그 순간 묵직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양 날개에 머리를 숨기고 있던 여성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남편이 하피 여성을 위협 중이던 남자를 이글이글 타오를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덩치가 매우 크고 나이에 맞지 않은 근육질의 육체를 가진 중년 남성은 조금만 얼굴을 굳혀도 상당한 위압감을 가졌다.
그러자 남자는 하피 여성에게 했던 태도를 싹 바꾸어 꼬리를 말고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허겁지겁 도망쳤다.
그의 만행을 구경하기 바빴던 그의 가족은 똑같이 짐승 같은 놈들이라고 구시렁거렸다. 그러나 꼴사납게 도망가는 뒷모습은 어느 쪽이 짐승 같을지 알려주고 있었다.
“괜찮아?”
하피 여성의 남편, 신태건은 비틀거리는 아내를 챙겨 인파를 뚫고 나가서 커다란 나무 아래에 기대게 했다.
그와 그의 아내가 사는 한적한 시골에까지 빌런의 마수가 뻗쳐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 다만, 워낙 시골에다가 대피소도 제대로 꾸려지지 않아 군용 차량을 타고 한 시간가량 시내까지 이동해야만 했다.
덕분에 너도나도 집안 살림을 포기하고 피난길에 오르게 된 사람들은 지나치게 날이 서서 조금만 부딪쳐도 언성이 높아졌다.
“아들은? 우리 재언이한텐 연락 없어?”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하던 여성은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남편에게 가장 먼저 물었다. 푸른색의 눈동자가 지나치게 떨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하나뿐인 아들이 벌써 몇 주째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벌써 한 달째 연락도 없는데 어떡해……. 우리 아들 잘못됐으면 어떡하지?”
“사라… 진정해. 아직 피해자 명단에 재언이 이름은 없었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핸드폰이 망가졌거나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일 거야.”
신태건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부드러운 하얀색 깃털이 느껴졌다.
날개로 눈물을 닦아 내던 사라는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피용으로 만들어진 핸드폰은 깃털로도 불편함 없이 터치할 수 있도록 특수개발 된 것이다.
초조하게 아들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반복적인 안내 음성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신태건과 사라의 아들 신재언은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하피의 특성을 티 나게 물려받지 않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었다. 어디 모난 곳 없이 착한 성격에 부모 말을 아주 잘 드는 효자였다.
“그건 아니지. 재언이 그 녀석, 고등학생 땐 막 나갔었잖아.”
“친구 잘못 만나서 그런 거야.”
사라는 애틋한 과거 회상을 방해하는 신태건을 흰 눈으로 노려보다가 다시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또… 또 뺏어 가려고 하나 봐. 하나뿐인 우리 아들을… 계속.”
“그런 소리 하지 마. 재언이는 건강하게 자랐잖아.”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요즘 계속 그때 꿈을 꾼단 말이야. 이제… 우리 품에서 재언이를 빼앗아 가려는 거야.”
그녀의 말에 신태건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라가 말하는 내용은 아들 신재언이 태어났을 당시를 뜻하는 것이었다. 계획적이고 부부 모두 무척이나 조심했던 임신이었다.
의사가 해 준 당부를 몇 번이나 되뇌고 처방받아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이 약한 사라는 임신 기간 동안 몇 번의 유산기를 보이더니 결국 막달에 갑자기 피를 쏟아 내고 말았다.
그래서 임신을 반대했던 건데.
신태건은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했다. 혹시라도 잘못되었을 때는 아이를 포기하고 아내를 살려 달라고 의사에게 부탁까지 했었다.
하염없이 피가 쏟아진 뒤 아이의 사망 선고가 떨어졌다. 그래, 신재언은 그날 한번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놀랍게도 산모의 몸 안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다.
의료진들이 아이의 심장 박동이 멈췄음을 분명히 확인했다. 그들은 아이가 살 확률이 전혀 없다며 고개를 저었고 아이를 분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살아난 아이는 부모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사라는 출산을 끝마치고 꼬박 하루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지친 얼굴로 눈을 떴다. 신태건은 그녀의 침대 옆에 앉아 아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살았구나…….’
아무리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은 남자여도 벅차오르는 감정에는 이길 수 없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억누르면서 그는 하루 만에 반쪽이 된 아내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고생했어…….”
마치 축복처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끈질기게 목숨을 붙잡고 부부의 곁에 와 주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좋은 것만 보여 주고 갖게 해 주고 싶었다.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서도 훌륭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대략 세 살 정도 되었을 때 부부는 비로소 안심했다. 태어나는 날 심정지를 겪어서 그런 건지 아이는 그 흔한 옹알이도 하지 않고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뇌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지만, 담당 의사는 아무리 살펴봐도 이상이 없다고만 했다. 그리고 일단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다며 고개를 저었다.
신재언이 딱 세 살 되던 해의 생일날이었다. 사라가 문득 일어나, 자고 있던 신태건을 흔들어 깨웠다.
“여보, 여보.”
“응……?”
“나… 사실 재언이가 태어났을 때… 꿈을 꿨어.”
해도 안 뜬 새벽에 뜬금없이 사람을 깨워서 하는 말이 꿈 이야기라니, 신태건은 당황하면서도 몸을 일으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출산하는 그 순간에 정신을 놓았던 모양이었다.
“꿈?”
“응.”
신태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꿈?”
“바다… 아주 깊은 바다였어. 검은 바닷속에서 밝고 작은 빛이 있었어. 그 빛을 잃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헤엄쳐서 끌어안았는데 그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온 거야.”
굉장히 이해하기 힘든 꿈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라는 검은 바다에서 필사적으로 작은 빛을 쫓아갔던 기억이 생생한지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꿈을 꿨어. 받을 거냐고. 그래서 난… 받는다고 말했어.”
아직도 꿈에 취한 듯 사라가 횡설수설하며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부부 가운데서 자고 있던 어린 세 살의 신재언이 눈을 번쩍 뜨더니 곧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에 신태건은 깜짝 놀라 아들을 끌어안았다. 아들의 칭얼거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었다.
어떤 일로 물꼬가 트였는지 웅얼대던 아들이 우렁차게 울어 젖혔다. 마치 몸에 영혼이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어르던 신태건이 처음 보는 아들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아내의 상태도 살폈다. 어느새 사라는 다시 누워 잠에 빠져든 채였다.
그는 잠든 아내를 깨울까 봐 갑자기 자기감정을 표출하는 아들을 끌어안고 거실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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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어두운 심해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인간이 아닌 존재’가 흉측하고 거대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크기가 어찌나 거대한지 사라는 ‘그 존재’의 손톱, 아니 날카로운 손톱의 끝보다도 작았다. 그녀는 어둡고 어두운 심연의 안에서 거대하고 동그란 것을 보았다.
그것은 문어의 빨판처럼, 혹은 촉수처럼 보였다.
- 받았는 가?
“…….”
- 나 의 --- 받았는 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것이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붉은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 받겠는 가?
“…….”
- 나 의 --- 받겠는 가?
또다시 느껴지는 작고 따뜻한 빛. 그것은 소중한 아들이 태어났을 때 꿨던 그 빛을 닮아 있었다.
사라는 이번에도 이 빛을 잃어선 안 된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어두운 바닷속을 향해 소리쳤다.
조금이라도 대답을 지체하면 따뜻하고 작은 빛이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와 저 괴물에게 먹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받겠어요! 제게, 제게 다시 돌려주세요!”
스르륵.
그녀가 대답하자마자 거대한 무언가는 붉은 눈을 감으며 심연, 지구이나 지구가 아닌 세상의 심해 속으로 사라졌다.
그 꿈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머릿속에서 잊혀 갔다.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부부는 하나뿐인 아들을 키우는 데 온 정신을 쏟아붓느라 자연스럽게 기억 속 저편에 묻어 버렸다.
그러다가 요즘 사라는 꿈만 꾸면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잦아졌다. 분명 지독한 악몽을 꾼 것 같은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니 답답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깊은 심연 속에서 다시 ‘그 존재’가 눈을 뜨는 순간 그녀의 곁에서 소중한 아들을 빼앗아 가 버릴 듯한 공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