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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는 빌런-311화 (311/324)

311화

사라는 밖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들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곤 했다.

가령 나뭇가지 두 개를 든 채 멍하니 산속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어린 아들의 모습이 문득 눈에 띄었을 때 말이다.

“재언아. 이리 와. 엄마한테 와.”

사라를 닮은 푸른 눈동자가 담긴 눈을 깜박이며 산속을 쳐다보던 어린 신재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고 초조해 보이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서!”

제 어머니의 다급한 외침에 어린 아들은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답게 그녀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면서도 수풀 안쪽을 다시 한번 힐끔거렸다.

그 모습에 사라는 마치 산속에 사는 괴물에게 아들을 빼앗길 것처럼 매섭게 노려보았다.

신태건은 날개를 들어 아들을 끌어안는 사라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았다. 부드럽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그녀가 요즘 들어 날이 선 행동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던 신태건은 잠이 든 아들 덕분에 집 안이 조용해진 틈을 타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야?”

“…모르겠어. 그냥…….”

“정 무서우면 그냥 도시로 내려가서 살자. 당신이 이곳에 살면서 이렇게나 불안해하는데, 계속 살 필요가 없어.”

이곳을 떠나자는 남편의 말에 사라는 기겁하는 얼굴로 눈을 부릅떴다.

“안 돼!”

“사라?”

“여기서 나가면 안 돼. 못 들었어? 그… 은인께서 해 주신 말.”

“…….”

날개로 머리를 감싼 그녀는 잘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심하게 겁에 질린 아내를 보는 신태건의 마음도 찢어졌다.

사라가 말한 은인이란 신태건에게도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지만 이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기도 했기에 마냥 고마워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식칼을 들고 아내를 폭행하려 했던 괴한에게서 구해 준 사람이었다. 이제까지 여러 일을 겪었지만, 그녀를 도와준 사람은 그 사람이 유일했다.

은인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신태건은 그를 집에 초대해 후한 저녁을 대접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더라면 집에 들이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이었다.

은사, 노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직하게 한마디 읊조렸다.

“저 아이… 저주받았군요.”

“네?”

“아이가 어렸을 때 죽을 뻔한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저 아이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하군요.”

노인이 묘한 눈빛으로 거실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 신재언을 바라보았다.

“깊은 심연이 아이를 감싸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사이비 같은 말을 내뱉는 노인을 바라보며 신태건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라를 구해 준 은인만 아니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냐며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신태건과는 다르게 사라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깊은 심연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아들이 태어났을 때 꿨던 꿈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요즘 들어 포식자의 앞에 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이 그녀를 더욱 예민하게 했다.

분명 이곳은 안전한데도 묘하게 이상했다.

“여기까지만 도와드리겠습니다. 밤이 되면 아이를 절대 집 밖으로 내보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곳을 떠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예요.”

그러더니 노인은 밖으로 나가더니 마을에서 떨어져 산속에 있는 집을 바깥으로 크게 돌며 나뭇가지로 원을 그렸다. 앞마당을 지나 대문 밖으로 처진 담장에서 겨우 일보 정도 되는 크기였다.

“밤에는 저 아이를 이 선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됩니다. ‘그들’에게 빼앗길 것입니다.”

노인의 행동을 지켜보던 신태건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그는 아내를 구해 준 은인이었다. 그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쫓아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언제까지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운명이 바뀔 때까지요.”

사라가 노인의 말을 굳게 믿고 아들을 꼭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니 더더욱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운명은 언제 바뀌는데요?”

“사라… 그만해.”

“…여보. 끼어들지 말아요. 난… 난 진짜 중요하니까.”

사라는 자신을 말리려는 신태건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 뒤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별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할 때, 그 아이의 운명은 바뀔 것입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눈속임이란 것은 잊지 마시길…….”

아무리 봐도 사이비 같은데 그런 것치곤 돈을 요구하지도 않아서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노인의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이상하게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당신들은 그 아이의 부모가 아닙니까. 아이를 잘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그 한마디만을 남긴 뒤 노인은 차려 놓은 식사도 마다하고 산에서 내려갔다. 그날 이후로 사라는 무척이나 예민해졌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종족이지만, 새의 특성이 있는 하피의 직감은 인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녀는 마치 어린 새끼를 지키기 위해 한껏 예민해진 약한 짐승 같았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변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지만 신태건에게는 그저 그녀가 무언가에 지레 겁먹어서 예민해진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도 신태건은 그런 아내를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가 아들을 마음 놓고 양육할 수 있는 안전한 둥지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피 종족들은 아이를 낳고 10년간은 주변의 환경 변화에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재언이는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아이다. 아이를 잃을 뻔한 그녀가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내의 행동이 그리 이상한 것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도 이따금 어두운 산속을 보고 있자면 섬뜩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지.’

신태건은 사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마음을 다잡듯이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람을 지켜 줄 테니까.”

그에 조금은 안심한 듯 사라가 껴안은 팔에서 힘을 풀고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자신을 많이 닮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태어난 아이의 팔이 인간의 것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사라는 굉장히 안심한 얼굴을 했었다.

하피 차별은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아이를 가지기 전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부분이었다. 앞으로 아이가 겪을 고난을 생각하면,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를 낳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태어난 아이는 등에 ‘날개’처럼 깃털이 나 있는 것만 빼면 완전히 인간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사람들이 천사 같아 신비하다면서 호감을 보낼 것이다.

사라는 부모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재언아. 저기에 가면 안 돼. 밤에도 엄마 몰래 나가면 절대로 안 된다, 내 아들… 저 산속에는 괴물이 살고 있어. 어린애들을 잡아가는 괴물이…….”

사라의 품에 꼭 안긴 어린 신재언의 시선이 산속을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이는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안심시키려는 듯 눈을 휘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둠 속을 바라보는 신재언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이곳을 쳐다보는 무수히 많은 눈알이 비쳤다. 아무래도 자신의 부모님은 저 눈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

“여기가 확실해?”

“그래.”

레헬의 물음에 엔레이드맨이 짧게 대답했다. 엔레이드맨은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헬의 태도에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자신과 다른 형제들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분노와 초조함이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어째서 이렇게 태연자약하단 말인가.

위대하신 아버지께서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귀는 것에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아버지께선 쓰레기 같은 놈들만 골라 사귀곤 했다.

엔레이드맨이 그 쓰레기들을 뒤에서 몰래 손봐 주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건 형제들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신재언의 연인 고르는 안목을 신뢰하지 않는 엔레이드맨은 혹여 레드-헬-파이어 또한 그런 쓰레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여기서 히어로 한 명과 아이 한 명이 실종됐다더군.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 히어로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통신이 끊겼다던데.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는 게 그 증거지. 여기가 확실해.”

이곳으로 찾아오기 직전, 엔레이드맨과 자식들은 붙잡은 마약왕의 부하를 끌고 가 고문했다. 눈 뜨고는 보기 힘들 정도의 참혹한 고문 끝에 타락한 추기경이 인자한 모습으로 설득하자 겨우 마약왕에 대한 단서를 들을 수 있었다.

허락받지 않은 자 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거대한 결계 안에서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움직이는 요새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쯤 한국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고.

“하찮은 짓을 하는군, 마약왕…….”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게 분명한 행동에 엔레이드맨은 코웃음을 흘렸으나 코루루는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타락한 추기경의 백금 지팡이를 빼앗아 이미 고문으로 인간의 형체에서 벗어난 남자의 심장을 꿰뚫으며 소리 질렀다.

“그 정도는 조금만 추리해도 알아, 이 머저리야!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감히 시간만 낭비하게 해?!”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코루루가 심장이 뚫려 죽은 남자의 시체를 발로 차며 화풀이했다. 죽은 자를 향한 것치고는 꽤 잔혹한 행동이었지만, 그걸 신경 쓰기에 그녀는 이미 짜증과 분노가 한계치에 다다라 있었다.

위대하신 아버지를 못 본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그 망할 동생 마약왕이 아버지께 어떤 불손한 짓을 저지를지 짐작할 수도 없어서 초조했다.

그건 다른 형제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한가지는 알게 되었으니. 그만 진정해라, 코루루.”

씩씩거리는 코루루를 진정시키며 엔레이드맨은 원한을 시켜 부하들을 풀어 정보를 알아 오도록 했다.

결계의 허점은 결계 최상위 능력자인 엔레이드맨이 가장 잘 알았다.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실종된 곳을 이어 따라가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좋아. 한번 시작해 보자고.”

레헬이 씨익 미소 지으며 손을 풀었다. 엔레이드맨은 그에 대꾸하지 않고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거대한 힘을 방출시켜 돔 형태의 반투명한 도형이 점점 커지도록 했다.

엔레이드맨의 둠(doom)이 끝없이 거대하게 늘어나 일대를 집어삼켰다.

그와 동시에 레헬의 머리 위로 거대한 태양이 떠올랐다. 뜨겁게 타오르는 그의 헬파이어가 태양처럼 거대하게 빛났다.

“난 역시 지키는 것보단 파괴하는 쪽이 더 즐겁단 말이야.”

레헬이 즐겁다는 듯 빙긋 웃으며 손을 휘둘러 거대한 헬파이어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저 거대한 힘을 움직이는 주제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모습이 빌런 입장에선 공포 그 자체였다.

엔레이드맨의 질렸다는 시선을 즐기며 레헬은 신재언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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