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521)

“으아악!”

겁에 질린 바빌의 괴상한 비명과 함께, 그들의 머리 위로 [화염 장막]이 생겨났다. 범위가 넓지는 않았으나 네 명을 전부 감싸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카델은 숨을 몰아쉬며 자신이 만들어 낸 장막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홍염이 하늘을 가리며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해냈다……!’

요령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전신이 쥐어짜진 걸레처럼 너덜거렸지만, 그래도 해낸 것이다. 작은 성취감과 함께 희망이 피어나길 잠시.

퉁! 텅!

장막의 위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반복되어 울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장막의 불꽃에 타들어 가 정체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운 나쁘게 장막을 비껴 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카델은 그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씨발!”

이번에는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머리였다. ‘헤드 피쳐’라는 놈들이 들고 있던 머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냥 공처럼 날아들기만 하면 모를까, 그것들은 바닥에 떨어지고서도 이빨도 없는 입을 턱 아래까지 쫙 벌린 채 목표물을 찾아 맹렬하게 굴러왔다.

카델은 당장이라도 혼절하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이겨 내며 반을 찾았다. 반 또한 쏟아지는 머리를 피하기 위해 장막 아래로 들어온 상태였다. 먼저 카델을 찾아낸 반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단장, 놈들의 수가 너무 많아요. 머리를 다 던질 때까지 기다리다간 금세 포위될 거예요.”

붉은 눈동자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델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따위의 의존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으나, 초인적인 의지로 참아 냈다.

자신은 그의 상관이었고, 용병단의 대장이었다. 이런 때야말로 진가가 발휘되어야 하는 입장. 반에게 신뢰를 심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이었다.

카델은 목소리의 떨림을 숨기기 위해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목소리를 쥐어짜며 명령했다.

“우리가 놈들을 기다려 줄 필요는 없지. 이대로 돌파한다.”

「히어로 오브 나이츠」는 전략 게임이었지만. 그렇다고 전장 속 유리한 위치 확보, 지형지물의 활용, 공격 속도와 진형 조절 등의 세세한 전술까지 구현된 것은 아니었다. ‘히오나’가 유명했던 것은 기사들의 매력적인 용모와 무궁무진한 스킬의 활용성, 그로 인한 전투의 긴장감과 재미 형성 때문이었을 뿐.

그러니 실제 전투 상황 속에서, 게임을 플레이해 본 기억이 남았다는 것은 그리 큰 이점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장막을 유지한 상태로는 강한 마법을 쓸 수 없어. 퇴로를 혼자 감당해야 할 텐데……. 반, 할 수 있겠어?”

“부끄럽지만 장담하기 힘들어요. 길을 뚫는 속도가 마물이 몰려오는 속도보다 빠를 거라는 보장이 없거든요. 다른 마물이면 모르겠지만 언데드는 베어도 피를 뿜지 않으니…….

반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의 눈 안으로 피의 물결 같은 것이 거세게 회오리치고 있었다.

‘젠장, 하필 첫 마물부터 언데드라니.’

반 헤르도스는 ‘피’를 다루는 광전사였다. 그의 대검은 적의 피를 머금을수록 강해졌고, 일정량 이상의 피를 머금으면 일종의 각성 상태에 돌입해 강력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반이 말했듯, 그들의 상대는 언데드였다. 언데드는 팔다리가 잘려도 피를 뿜지 않는다. 이미 죽은 몸이니 혈액이 돌지 않는 것이다.

카델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물의 머리통은 계속해서 그들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고, 포위망은 점점 견고해지고 있다. 론과 바빌은 필사적으로 싸우기는 했으나 실력이 형편없었다. 적어도 반에 비하자면 그랬다. 그들은 후방에서 가까워진 마물 몇 마리를 밀어 내는 것이 최선이다.

‘어떻게 하지?’

이런 환경이라면 도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잠시 몸을 숨길 곳도, 퇴로를 만들어 볼 지물도 없으니.

카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장막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진 멀쩡히 버텨 주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장막의 유지는 생각보다 많은 마력을 필요로 했다. 실시간으로 몸속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불쾌한 감각을 느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버릇처럼 잘근거리던 입술을 놓아 주며 전방을 향해 검기를 날리고 있는 반을 불렀다.

“광역기를 준비할 거야. 안전지대가 필요해.”

“안전지대라니……. 이런 곳에서 찾는 게 가능할까요?”

“뭘 찾아? 만들어야지.”

담백하게 대꾸한 카델이 손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그들의 위를 막아 주던 장막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자, 장막이!”

“뭐 하는 거야, 마법사! 헤드 피쳐의 공격은 아직 안 끝났다고!”

장막을 거두기가 무섭게 론과 바빌이 요란스럽게 반응했다. 카델은 그들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같은 의뢰를 받았다고 해서 내게 당신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생긴 건 아닙니다. 혼자 살아남을 재주가 없다면, 입 다물고 지시를 따르시죠.”

카델의 거침없고 냉담한 태도가 굴욕적으로 느껴진 것인지, 론과 바빌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러나 반박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인지라, 결국 둘은 별다른 반항 없이 금세 입을 다물었다.

카델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머리를 베어 내고 튕겨 내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저를 보호해 주셔야 합니다. 준비가 끝나면 신호를 드릴 테니, 휩쓸리지 않도록 제 옆에 붙어 주세요.”

어차피 처음부터 의뢰의 내용은 ‘스모그 평원의 마물 소탕’이었다. 비록 예상치 못한 포위에 퇴로부터 찾아보긴 했으나. 피할 수 없다면 정면 승부뿐이다. 그는 언제나 속전속결을 추구했다.

결단을 마친 카델이 뒤를 맡기겠다는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반에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범위기는 화마의 화살이다. 게임에서도 마력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기술이었지. ……무조건 해내야 해.’

하지 못하면 죽는다. 카델은 죽어도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끔찍한 언데드 무리의 품속에서 절명하고 싶진 않았다.

다시금 발동하는 뛰어난 집중력. 빠르게 외부의 모든 감각을 차단한 그가 몸속의 마력을 최대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

“끄아악!”

날아온 머리를 베어 내지 못한 바빌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거렸다. 머리의 떡 벌어진 입 구멍이 바빌의 어깨 위에 따개비처럼 집요하게 눌어붙었다. 그에 바빌과 등을 맞대고 있던 론이 급히 머리통을 찔러 떨어뜨렸으나.

“으윽……! 으아아!”

머리통이 붙어 있던 바빌의 어깨가 움푹 패었다. 가죽과 근육이 통째로 도려내진 단면에서는 누런 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바빌이 물린 어깨를 움켜쥔 채 무릎을 꿇자, 론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카델을 불러 젖혔다.

“마법사! 아직이야? 이러다 다 먹히겠다고!”

“시끄럽습니다. 단장을 재촉하지 마십쇼.”

신경질적인 외침에 반이 위협하듯 읊조리며 론을 노려보았다. 그의 아래로는 검기에 썰려 나간 머리통이 수십 개는 쌓여 있었고 그럼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바닥에 정좌를 튼 단장의 곁을 지키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론이 튕겨 낸 머리통은 열 개 남짓이 전부였으니. 대충 봐도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능력 차였다. 결국 자신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론은 억울한 눈빛으로 카델을 흘겨보기만 했다.

한편, 이러한 난리 속에서 카델은 착실하게 기술의 준비를 마무리 지어 갔다.

‘이미지를 그리고…… 마력을 끌어 올린다.’

방법은 야매였지만 성공하면 그만이다. 카델은 깊게 숨을 골랐다. 해내지 못하면 죽음뿐이니, 실패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몸에 흐르는 피가 쑥 빠져나가는 괴악한 감각. 가슴이 부풀며 눈이 절로 부릅떠졌다.

카델은 본능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상공을 가로지르는 수백 가닥의 붉은 실들. 한 올 한 올이 불타오르며 일정 범위를 빼곡히 채운 실들이 붉은 구름처럼 와글와글 뭉쳐 있었다.

그들의 위로 뜨거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기술이 성공했음을 직감한 카델이 시원스럽게 외쳤다.

“다들 붙어!”

그와 동시에.

핑! 핑!

날카로운 파공음이 소나기처럼 매섭게 이어지며 [화마의 화살]이 마물을 향해 쇄도했다.

화살보다는 실에 가까운 형태였음에도 위력은 굉장했다. 헤드 피쳐는 빼곡하게 내리꽂히는 화살을 피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화살에 맞은 몸통을 타고 빠르게 불씨가 번졌다.

아무리 베어 내도 꿈쩍 않던 마물들이 흉측한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고통에 패한 마물이 놓친 머리통은 곳곳을 나뒹굴었으나, 그 위로 또 한 번 [화마의 화살]이 내리꽂히며 죽음을 선고했다.

근방이 불지옥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유일한 안전지대는 카델을 중심으로 한 아주 작은 원형 범위뿐. 그곳을 제외한 평원은 쑥대밭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세요, 단장!”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백 개의 화살을 지켜보며. 반이 경의에 찬 눈을 빛냈다. 카델은 대답하는 대신 멍하니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그가 보기에도 엄청난 기술이었다. 게임 내에서도 [화마의 화살]은 위력이 강하고 이펙트가 화려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력을 과하게 사용한 감은 있지만 이 정도 위력이라면 저쪽도 타격이 만만치 않을 거야. 이 기세를 잇자. 반을 선두로 세우고, 남은 마력으로 최소한의 지원만 해 준다면…….’

스모그 평원을 되찾을 수 있다. 희망에 찬 카델의 눈빛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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