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반 헤르도스’의 호감도가 5 상승했습니다.」
「현재 호감도: 78/100」
또 올랐다고?
“내 사람…….”
어이가 없어 반을 돌아보니, 그의 귓불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열이 오른 귓불을 문지르며 눈을 내리깔았다. 얼굴이 아름다우니 수줍어하는 모습도 보기 좋긴 하다만…….
‘아니 씨발, 뭔 말만 하면 호감도가 올라!’
소름이 돋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카델은 최대한 말을 아껴야겠다고 다짐하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 옆에서, 반은 귓구멍이 질척거릴 만큼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 때까지 간직할게요, 단장.”
“아니……. 그냥 적당히 헐면 버려…….”
이젠 양 뺨까지 붉힌 반은 카델에게 다시 꼬치를 넘겨주며 실실 웃었다.
“전 죽을 때까지 단장의 사람이니까요.”
……무슨 말을 해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
날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카델과 반은 우연히 론과 바빌을 만나 술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그들은 드류 공작에게 의뢰비를 받으러 갔다가 ‘목숨을 부지하게 해 줬으니 감사한 줄 알고 마음 바꾸기 전에 썩 꺼져라’ 하는 악담을 듣고 내쫓겼다고 한다.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 그렇게 당해 놓고도 새벽 내내 술집에서 떠들어 대는 걸 보면 어지간히 분한 듯했다.
그들의 신랄한 비난을 들으며 몰려오는 취기와 잠을 내쫓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카델은, 어느샌가 옮겨 간 대화 주제에 귀를 기울였다.
“요즘 헤르멜 도시에 흉흉한 소문이 돈다지?”
“아, 신전에 관한 소문을 말하는 겐가? 예배를 드리러 가는 신도들이 무더기로 실종된다는?”
헤르멜 도시라면 그들의 다음 목적지였다. 카델은 뻑뻑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실종이요? 누가 신도들을 납치한다는 겁니까?”
“우리도 거기까진 잘 모르네. 그래도 헤르멜 도시에서 여기까지 소문이 퍼진 걸 보면 영 헛소문만은 아닌 게지. 신전에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야.”
“오래된 소문인가요?”
“일주일쯤 됐을 걸세. 뭐, 이쪽이야 멀고 먼 헤르멜보단 스모그 평원이 더 큰 문제였으니 그다지 화제는 아니었지만.”
헤르멜 도시의 신전.
베테랑 유저의 직감으로, 다음 메인 퀘스트와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실제로 신전이 중심이 된 스토리도 존재했고.
카델은 제 몫의 술잔을 깔끔히 비워 내며 론과 바빌이 들려주는 신전의 정보를 머릿속에 새겼다.
‘새로운 지역과 새로운 퀘스트라. 어쩌면 새 기사를 영입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다음 날 오후.
카델은 스트라 자작을 만나기 위해 저택을 향했다. 다행히도 어젯밤 음주로 인한 숙취는 없었다. 반이 열심히 건네주던 꿀물 덕을 본 것일지도.
그렇게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방문하자, 자작은 이번에도 카델을 응접실로 불러냈다.
“실력은 확실하더군. 제안한 의뢰비의 두 배를 넣었네.”
자작이 테이블 위로 돈주머니를 올렸다. 카델은 냉큼 주머니를 낚아채 자작의 앞에서 곧장 금액을 셈했다. 그 모습이 마치 실수로 흘린 빵조각을 허겁지겁 주워 먹는 비렁뱅이를 보는 듯해, 자작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나를 믿지 못하는 겐가? 아무리 몰락가의 서자라지만 영 예의가 없군.”
“아……! 용병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나 봅니다. 죄송해요. 자작님께는 푼돈이겠지만, 제게는 꽤 큰 금액인지라…….”
혐오감 담긴 거북한 시선이 닿아 왔으나, 카델은 사람 좋게 웃으며 돈주머니의 입구를 조였다.
‘금액은 정확하군. 두 배나 늘어났으니 계획도 훨씬 수월해지겠어.’
그가 눈치 없이 자작의 면전에서 금액을 확인한 것은 용병 때의 습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용병이 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습관이 있겠는가. 카델은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곧장 도망칠 계획이었고, 다시 돌아올 일은 없으니 만에 하나를 위해 의뢰비의 액수를 자작의 앞에서 확인한 것뿐이었다.
스트라 자작이 한두 푼 아껴 보겠다고 실수인 척 덜 넣었을지도 모르지 않나. 모름지기 돈 계산이란 시대를 불문하고 정확히 따져 봐야 하는 거다.
“됐네. 그래서, 자네의 충견은 잘 설득해 보았는가?”
“아, 그건…….”
“설득을 못 했다고 해도 상관없네. 그 용병이 귀찮게 군다면 내 병사들을 시켜 내쫓으면 그만이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스트라 자작님.”
카델의 대답에 자작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 두고,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표정이 묘하군.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겐가?”
“아뇨.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좋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자네의 입단 문제를―”
“자작님의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뭐라?”
카델이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돈주머니를 품 안에 집어넣은 후, 자작을 향해 가볍게 묵례했다.
“호위 마법사는 제 취향이 아니어서요.”
“취향이 아니야? 자네가 지금 그런 걸 따질 위치인가!”
“그러지 못할 입장도 아니지요.”
“자네는 황족을 음해한 죄로 몰락한 가문의―”
“그게 어떻단 말입니까? 이곳은 마이뉴 왕국입니다, 자작.”
“자작?”
“그래, 자작. 계속 내 옛 가문을 들먹이며 귀한 마법사를 헐값에 들이려고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 영 꼴 보기가 싫군. 당신 같은 사람을 호위하느니 평생 용병으로 굴러다니다 죽고 말지. 그쪽의 제안은 거절이다.”
한순간에 돌변한 태도가 기가 막힌 듯, 자작의 입이 벌어졌다. 벌어진 입 밖으로 파르르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카델은, 그 정적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응접실을 벗어났다.
“…….”
밖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카델의 움직임을 따라 눈을 굴렸다. 응접실의 대화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최대한 주의를 끌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기 위해 당당한 척 걸음을 옮겨 보았으나.
“저놈을 잡아라! 당장!”
응접실을 뛰쳐나온 자작의 외침과 함께, 곧장 뜀박질을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