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521)

성공적인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창을 대강 훑어본 그가 자신의 기사들을 티 나지 않게 일별했다.

‘뭐, 저 표정을 보면 안 들킨 것 같기도.’

경외에 찬 반의 눈빛은 차치하고, 속내를 알 수 없던 루멘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완벽한 타이밍을 찾아 일격에 적을 날린 것은 분명한 자신의 능력이었으니까. 처음부터 반과 루멘이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새겼다면 이런 짓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루멘은 그렇다 쳐도 충성도가 70을 넘는 반까지 말을 안 들어 먹을 줄은 몰랐는데. 도대체가 어떤 식으로 육성을 시켜야 하는 거야.’

속으로나마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카델이 여전히 ‘단장의 위엄’을 보일 수 있는 표정을 고수하며 몸을 돌렸다.

“철수하지. 반, 너는 여신도를 챙겨.”

“네, 단장!”

“루만, 넌 이거나 먹고.”

카델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구입했던 회복 물약을 꺼내 던져 주었다. 작은 약병을 받아 든 루멘의 표정이 묘했다. 그는 지체 없이 약을 들이마시곤, 입가를 훔치며 물었다.

“방금, 대장은 어떻게 알았던 거지?”

“뭘?”

“까딱하면 내가 당할 수 있었단 걸. 반격의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몇 번 싸워 봤으니까.”

“……마녀와 말인가?”

“마녀든 마족이든.”

일부러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걸음을 옮기자 루멘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적들을 종류별로 상대해 보았다. 스토리는 몰라도 적에 대한 공략법엔 누구보다 해박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집요하게 파고들면 설명하기 곤란해진다. 그가 상대했던 적들은 전부 게임 속 캐릭터였으니까.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설명해 주기엔 무리가 있다.

카델은 반이 쓰러진 신도를 업는 것을 확인한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보상이 짭짤하면 루멘 장비도 더 좋은 걸 맞춰 줘 볼까. 선물을 주면 호감도가 올라갈지도.’

이번에도 무사히 퀘스트를 해결했다. 확실한 결과에 흐뭇한 성취감이 차올랐다. 그의 눈앞으로 순조로운 미래가 양팔을 벌린 채 따스한 미소를 지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부드러운 성취감은 채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괜히 하나의 세력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아니라는 건가. 그래, 보통의 마법사는 무리에 속해 귀한 대접 받기를 즐기지, 스스로 조직을 이끌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

하지만 카델은 본인의 의지로 용병단의 우두머리가 됐다. 자칫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유능한 무인을 손안의 공처럼 자유자재로 다뤘고, 위험 요소가 가득한 사건에 몸 사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오로지 용병단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그가 하는 행동 전부가 평범한 마법사들의 성향과는 정반대되는 것들이었다.

루멘이 아는 마법사는 인간관계에서도 전투에서도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고, 간혹 대담한 마법을 구사하는 자들은 대개 성격이 지랄맞아 주변에 사람이 적었다. 무언가 해내기보단 명령에 따르는 것을 편해하는 족속들. 수동의 대명사라고나 할까. 어쨌든, 카델과는 달랐다.

그가 보여 줬던,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웅장했던 마법. 상대하는 적에 대한 기묘할 정도로 정확한 정보력. 처음 계획이 실패해도 곧장 다른 계획을 이어붙이는 추진력까지.

솔직히 탐났다. 카델이 단장만 아니었다면 당장 자신의 세력에 끌어들여 볼 의향이 있을 정도로.

‘아쉽게 됐군.’

정말 아쉬웠다. 만약 카델이 이끄는 것이 어엿한 기사단이었다면. 그랬더라면, 한 수 굽혀볼 수도 있었을 텐데.

⚔️

「기사 ‘루멘 도미닉’의 호감도가 10 상승했습니다.」

「현재 호감도: 15/100」

음?

카델은 난데없이 떠오른 호감도 창에 저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시스템 창을 다시 봐도 ‘루멘 도미닉’의 호감도가 상승해 있었다. 왜? 그는 조금 전까지 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반의 일방적인 사과와 제발 그만 사과하라는 애원에 가까운 대화를. 그런데 왜 갑자기 루멘의 호감도가 오른단 말인가?

황당함을 넘어 어이까지 없어진 카델이 루멘을 찾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루만?”

당연히 뒤따르고 있어야 할 루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멈춰 선 카델이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숲속 어디에서도 루멘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루만! 어딨는 거야?”

큰 소리로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다. 당황한 카델의 옆에서 반은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차고 있었다.

“멍청하게 생긴 놈이었어요, 단장. 길을 잃은 모양이죠.”

“아니, 이렇게 천천히 걷고 있는데 우리를 놓쳤다고? 설마 마족의 잔당이 남아 있던 건…….”

불길한 예감에 입술을 깨물던 바로 그 순간.

우드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파도 소리를 연상케 하는 나뭇잎의 마찰음이 사방을 둘러싸며 덮쳐 왔다. 상황을 파악할 시간은 없었다.

“단장!”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자신을 끌어안은 반의 얼굴이 보였고, 두 번 깜빡이자 바닥을 구르는 둔탁한 감각이 느껴졌으며, 세 번을 깜빡이자…….

「기사, ‘루멘 도미닉’이 용병단을 이탈했습니다.」

「기사, ‘루멘 도미닉’을 잃었습니다.」

“……뭐?”

빙의된 이래 가장 허무맹랑한 알림이 떠올랐다.

“다친 덴, 다친 덴 없어요? 단장!”

멍하니 시스템 창을 바라보던 카델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는 반의 품에 안긴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반은 몇 번이고 카델의 얼굴을 살피며 정말 상처가 없는 것인지 확인한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카델은 반이 내민 손을 잡고서 천천히 일어섰다.

아직도 얼떨떨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 방심해서일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니 꿈을 꾸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간신히 이성을 끌어모아 현실을 직시한 것은, 반의 어깨너머로 펼쳐진 광경을 발견한 뒤였다. 그 처참한 장면에 기어코 카델의 입 밖으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대체 이 많은 나무가 어떻게……. 단면 좀 보세요, 단장. 이건 누군가 고의로 했다고밖엔 볼 수 없어요.”

동감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비스듬히 썰린 일곱 그루의 나무 기둥이 정확히 반과 자신이 있던 방향을 노리고 겹쳐져 있었다. 반이 자신을 데리고 구르지 않았다면 그대로 즉사였다. 운 좋게 살아남았다 해도 불구가 됐겠지.

새어 나오는 숨이 거칠었다. 카델은 억지로 호흡을 고르며 반의 등위로 손을 올렸다.

“반. 신도는?”

“아……! 죄, 죄송해요, 단장. 업고 있다는 걸 까먹고…….”

꾸짖을 수는 없었다. 반은 오로지 단장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던 것뿐이니까. 아니, 애초에 꾸짖을 이유도 없다. 카델은 반의 등에서 손을 떼고는 그대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랜만에 열이 받아 뒷골이 다 띵할 지경이었다.

그런 카델의 싸늘한 표정을 오해한 것인지, 반이 불쌍하게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좀 더 주의해야 했는데. 힘들게 구한 신도를 죽여 버리다니…….”

“아니. 그 새끼가 훔쳤어.”

“……예?”

“루멘 그 새끼가, 여신도를 들고 튀었다고.”

카델이 어렵사리 성질을 죽이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박자 늦게 그 뜻을 이해한 반이 조용히 입가를 가렸다.

루멘 도미닉. 처음부터 그자를 믿지 않았지만, 굳이 지금 그 사실을 꺼내 단장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다. 반은 침묵하며 슬쩍 카델의 눈치를 살폈다.

루멘이 신도를 훔쳤다면 그 의도는 명확하다. 처음 노리던 대로, 그는 신전을 찾아가 마녀 소탕이 전부 자신의 공적이었음을 주장할 것이다. 그 주장을 반박할 수단이 없다면, 모든 보상은 루멘의 차지가 될 테고. 그리고 반이 생각하기에, 자신들에겐 그 여신도를 제외한 별다른 증거가 없었다.

“하하…….”

나무가 베여 휑해진 숲을 타고, 카델의 허탈한 웃음소리가 맥없이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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