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521)

“임시 입단이라니……. 진심이신가요, 단장?”

10개의 함정 해제.

그들이 맡은 지역 내에 있는 모든 함정을 해제하고 신전으로 복귀하는 길. 반은 카델을 업은 상태로 시무룩하게 물었다. 카델은 그런 반의 위에서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용병단의 몸집을 불리는 게 가장 큰 과제니까. 간 좀 본다고 크게 손해 입을 것도 없잖아.”

“하지만 그 자식은…….”

“네가 루멘을 맘에 안 들어 한다는 건 잘 알아. 미안하지만 조금만 참아 주라.”

이렇게 사과해 버리면 더 조를 수도 없게 된다. 반은 삐죽 입술을 내밀며 침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난 단장이 그깟 버러지 같은 놈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이유를 납득 할 수 없었다.

‘힘이라면 내가 더 키우면 되는 건데.’

단장이 필요로 한다면 일당백의 무인으로 거듭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필해 봤자 카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테니까. 반은 카델이 더 편안하게 업힐 수 있도록 묵묵히 자세를 고쳤다.

루멘의 존재는 고까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그가 입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었다. 반의 희망처럼 화려하게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보며, 둘은 무사히 신전으로 복귀했다.

“후으, 몸이 천근만근이네.”

반의 등에서 내려 땅을 딛자 전신이 띵하게 울렸다. 함정 해제를 위해 쏟아부은 마력도 마력이지만 루멘의 처우를 위해 머리까지 굴려 댔으니, 심신의 피로도가 최상이었다.

그렇다고 주교의 앞에 흐물흐물한 오징어처럼 나타날 수는 없는 법. 카델은 땀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시원하게 쓸어 올리곤 지저분해진 로브를 툭툭 털어 정리했다.

‘기사단이 먼저 와 있으려나.’

먼저 와도 나중에 와도 신경전이 있으리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쪽이 먼저 도착하는 게 모양새가 살 텐데. 그리 생각하며 신전 안으로 들어서자, 텅 빈 예배당에 홀로 남은 주교의 뒷모습이 보였다.

⚔️

“철수한다!”

요한은 지친 기사들을 통솔하며 신전을 향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수의 신성 기사들을 활용한 빠른 탐색과 효율적인 마력 배분으로 체력 소모를 최소화한 함정 해제. 깔끔한 일 처리는 몹시 흡족했다.

애초에 허여멀건 한 마법사 하나의 부재로 결과가 좌지우지될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 한 명분의 힘만큼 속도는 느려졌겠지만, 타격은 용병단 쪽이 훨씬 심할 테지.

‘흥, 자존심 하나 세우겠다고 보란 듯이 떠나 버리더니. 아직 맡은 구역을 다 탐색하지도 못했을 게 뻔해. 일단 주교님께 보고한 뒤 나머지 처리를 해야겠군. 쯧, 괜히 두 번 손 가게.’

무슨 재주로 두 명이서 마족을 제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살다 보면 간혹 운이 따르는 전투가 있는 법이다. 그 운이 제 실력이라 믿고 뻗대는 것. 그곳에서부터 재앙은 시작되지. 요한은 카델의 당당한 눈빛을 떠올리며 조소를 머금었다.

신께서는 공평하시다. 행운의 손길을 뻗는 것도, 그것을 거두는 것도. 달콤한 행운이 언제까지고 곁에 머무른다고 착각해서는 곤란했다.

그래. 그러니 분명.

분명, 곤란해하고 있어야 할 텐데…….

“아,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저도 모르게 눈썹에 힘을 주었다. 그의 시선이 예배당의 빈자리에 걸터앉아 자신을 돌아보는 뻔뻔한 낯짝에 가닿았다. 혹시 일찌감치 포기하고 먼저 복귀한 걸까?

왠지 모르게 초조해지는 기분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지만, 그보다 먼저 카델이 목소리를 냈다.

“생각보다 늦게 처리한 줄 알았는데, 복귀해 보니 아직 기사단이 돌아오지 않았더군요. 기사단 쪽의 진행도는 확실하게 알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병단 쪽에 있던 함정은?”

“하하, 전부 처리했죠. 남아 있었다면 돌아올 리 없잖습니까.”

그럴 리가. 요한은 점점 표정 관리가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카델이 이동한 방향에 유독 함정이 적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려 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카델이 순번을 가로챘다.

“이야, 함정이 10개나 있지 뭡니까. 예상보다 많아서 고생하긴 했는데…… 그래도 기사단이 처리한 수보단 적겠죠?”

뿌득.

어느샌가부터 검집을 움켜쥐고 있던 손마디에서 요상한 소리가 났다. 요한은 뒤에 정렬한 채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단원들을 애써 무시하며 담담한 척 말했다.

“이쪽의 함정은 6개였습니다.”

“그렇군요……. 하하, 역시 신성 기사단. 신의 가호가 따르나 봅니다.”

웃는 낯임에도 속내가 빤히 보였다. 카델의 눈빛은 ‘그러게 내가 뭐랬어. 일찌감치 고상한 척 구는 걸 관뒀으면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었잖아’라고 말하며 기사단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었다.

진정. 진정하자.

자신은 신의 뜻을 따르는 고귀한 기사. 마음의 분노를 부추기는 도발은 악마의 속삭임과 다를 것이 없다. 작게 호흡을 고른 요한이 미처 숨기지 못한 삐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 안목이 조금만 더 뛰어났다면 수월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겠군요. 안타깝게도.”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니. 딱히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카델의 샐쭉한 눈웃음을 마주하자 그야말로 심장이 지옥 불에 내던져진 듯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를 무시하며 작업에서 제외하려던 것도, 그래 놓곤 그만큼의 성과를 올리지도 못한 것도. 전부 자신의 실책인데.

결국 요한은 본인의 완패를 인정하며 분노를 갈무리해야만 했다.

“어찌 됐든 마녀가 남긴 함정은 전부 해제했으니까요. 서로 뒤끝은 없는 걸로 합시다.”

아무래도, 행운의 손길은 아직 저 용병을 떠나지 않은 듯하다.

⚔️

루멘의 답을 기다리는 이틀간, 카델은 꽤 많은 수확을 올렸다.

첫째, 주교에게 받은 사례금으로 반에게 첫 ‘아티팩트’를 선물해 주었다. 착용자의 정신력을 안정시켜 주는 [안식의 팔찌]였다.

광전사인 반은 전투 시간이 길어질수록 파괴력도 강해지지만, 각성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정신력이 급감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쉽게 말해 이성을 잃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폭주를 막아 줄 만한 아티팩트는 거의 필수라고 볼 수 있었다.

‘단장이 주신 귀한 선물,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기필코!’

뭐, 겸사겸사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둘째. 두 번째 퀘스트를 완료하며 획득한 [마녀의 뼛가루]의 존재였다. 이 아이템은 ‘마족의 뼛가루’ 시리즈 중 하나였는데, 그가 게임 속에서 죽자 살자 모아 댔던 일종의 ‘교환템’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기사의 육성을 위한 것은 아니었고, 카델 본인의 성장을 위한 아이템이었다. 이 아이템을 필요로 하는 ‘특정 인물’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카델의 마법 성취도는 크게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셋째. 카델은 루멘을 기다리는 동안 신전을 중심으로 한 여러 잡다한 의뢰를 받아 처리했는데, 그 대가로 오래된 마법서 하나를 얻게 되었다. 의뢰 도중 만난 청년이 준 것이었다.

‘이게 진품인지 위조품인지도 모르겠고, 아무도 관리를 안 해 먼지만 쌓여 가니…… 카델 씨가 사용해 주시면 좋겠어요. 저희 신도들의 은인이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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