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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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느끼지만, 대장의 언변은 참 대단해.”

연주회가 끝나고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루멘은 자신보다 앞서 걷는 카델을 느긋하게 뒤따르며 말했다. 카델은 그런 루멘을 한 번 흘기곤 설설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가면 갈수록 부하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놈이란 말이지.”

“설마 내 얘기야?”

“그럼 누구 얘기겠어? 네가 대놓고 박장대소를 하는 바람에 마밀이 화가 나서 가 버렸잖아. 굳이 그 사람 많은 곳에서 마력도 더럽게 많이 들어가는 이동 마법까지 쓰면서.”

“그래도 만날 장소는 남겨 뒀잖아? 내가 생각보다 웃음이 많은 편이라, 그것도 열심히 참은 거였다고.”

말을 말자. 카델은 아찔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자신이 둔 덫에 걸린 마밀과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그의 면전에 대고 눈물까지 흘려 가며 웃어 대던 루멘. 그 수모를 참지 못한 마밀은 결국 도주를 택했다. 순간 카델은 다 잡은 사냥감을 코앞에서 놓친 줄 알고 루멘의 멱살을 틀어쥘 뻔했다.

‘다행히 서 있던 자리에 만날 장소를 적어 놓고 가긴 했지만……. 아오, 루멘 자식. 충성도만 높여 봐, 주둥이를 백 대는 때려 줄 테다.’

얼굴만 잘생긴 뺀질이가 따로 없었다. 물론 전투에 들어가면 누구보다 듬직한 딜러가 될 테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둘은 점점 여관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깨끗하게 씻고 침대 위로 다이빙을 하리라. 묵은 피로를 풀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카델은 힘 빠진 몸에 조금씩 활기를 불어넣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문득 그의 피곤한 시선이 여관의 입구를 향했고, 그곳에 덩그러니 놓인 익숙한 인형 하나를 발견해 버렸다. 카델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반?”

펄쩍 뛰며 기겁한 카델이 주저 없이 여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코끝이 빨갛게 물든 채 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반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단장…….”

“너 왜 밖에서 이러고 있어? 들어가서 쉬고 있으랬잖아!”

어서 일어나라며 카델이 손을 뻗자 느리게 몸을 일으킨 반이 작게 인상을 구겼다. 삐딱하게 다리를 굽힌 걸 보니 오래 앉아 있느라 쥐가 난 듯했다. 곧장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카델의 표정은 심각하기만 했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던 거야?”

“단장이 안 보이길래…… 찾으러 갈까, 하다가 금방 오실 것 같아서 조금 기다린 것뿐이에요. 정말 조금밖에 안 기다렸으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단장.”

“이게 조금밖에 안 기다린 얼굴이냐? 다 얼었잖아! 아니, 내가 없으면 그러려니 하고 잠이나 자면 되지 기다리긴 또 뭘 기다려? 체력이 남아도나 보네?”

타박하면서도 반의 상태를 훑는 눈빛이 퍽 걱정스러웠다. 안 그래도 쌀쌀한 밤공기에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

코끝은 물론 뺨과 귀까지 빨갛게 얼어 있었고, 얼마나 오래 쭈그려 있던 건지 굳은 다리는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벌써 감기라도 걸린 건지 목소리가 맹맹한 데다 눈가도 불그스름하다. 이대로 두면 열이 펄펄 끓을 게 분명했다.

몰래 나갔다 오면 모를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대충 언질이라도 해 둘 걸 그랬다고, 카델이 뒤늦은 후회를 했다.

‘설마 날 기다리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지……. 얘는 이렇게 성격이 말랑해 가지고 이 팍팍한 세계를 어떻게 살아 나가려 그래? 어떻게 돼먹은 놈이야? 잘생긴 놈은 원래 기본적으로 재수 없는 거 아니었어?’

안 되겠다. 카델은 반을 부축해 일으키며 결심했다.

오늘 밤, 무조건 반 헤르도스의 스토리를 시청하겠노라고.

이 종잡을 수 없는 똥강아지의 충성심이 대체 어떤 식으로 구축된 것인지. 직접 확인해 보지 않는 한 오늘 같은 놀라움과 죄책감의 반복이 이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루멘.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있던 그는, 카델을 대신해 여관의 문을 열어 주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충견일 수가 있나. 주인 좀 안 보인다고 안절부절못하는 꼴이라니. 일일이 상대해 주기도 피곤하지 않아?”

반이 욱하고 달려들 것을 예상하며 뱉은 말이었으나. 돌아온 것은 카델의 싸늘한 반응이었다.

“내 부하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지 마.”

처음 보는 카델의 그늘진 시선. 짙은 고동색 눈동자엔 어렴풋한 적의마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날 선 태도에 루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싫다면?”

“너와 함께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되겠지.”

괜한 반항심이 생겨 한번 던져 본 것이었는데. 예상 밖의 단호한 반응에 루멘의 입가가 작게 경련했다. 카델은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반과 함께 여관으로 들어가 버렸고, 루멘은 둘을 뒤따르는 대신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손에 힘을 풀자 천천히 여관의 문이 닫혔다. 그 앞에 우두커니 선 루멘의 입새로 뿌연 입김이 섞인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먼저 꼬신 주제에 가차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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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을 어르고 달래 방까지 데려다준 뒤.

카델은 곧장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눕자마자 느껴지는 나른함에 시청을 좀 더 미뤄 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반의 처연한 얼굴이 떠올라 마음을 다잡게 됐다. 그는 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무의식 상태에 돌입하였습니다.」

「시청 가능한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 반 헤르도스의 기억 - 스타팅 멤버 한정 스토리

‣ 반 헤르도스의 기억 - 과거 스토리(호감도 70 돌파)

그가 시청을 결정한 것은 ‘스타팅 멤버 한정 스토리’였다.

‘이게 뭐라고 떨리지.’

검은 공간 속에 홀로 앉아, 카델은 자신이 선택한 스토리가 재생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뒤.

눈이 멀어 버릴 만큼 환한 빛과 함께, 시야가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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