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521)

이것은 괜히 ‘영입 스토리’가 아니었다.

카델은 아머 오우거를 꿰뚫는 불기둥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반은 거대한 불기둥이 내뿜는 열기에도 굳은 듯 멈춰 서 있었다. 대검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그리고 뜨거운 불기둥 너머에서, 절름거리며 반을 향해 다가오는 카델의 모습이 보였다. 반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재빨리 달려갔다.

“마법사!”

“머리 울리니까 소리 지르지 마.”

“여긴 왜 온 거야? 얌전히 숨어 있었으면―!”

“시끄러워!”

정말 머리가 아픈 건지 반의 얘기가 듣기 싫은 건지, 카델은 이마를 짚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섬뜩할 만큼 형형한 눈빛이 드러났다.

피와 상처로 엉망이 되어 본래의 피부색도 알아볼 수 없는 처참한 얼굴. 그중 유일하게 온전한 눈동자가 발하는 위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를 마주한 반이 멈칫하고. 카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여기서 죽을 생각 없어. 널 여기서 죽일 생각도 없고. 그러니까 잔말 말고 날 도와.”

“도우라니……. 하지만 이미 불기둥이…….”

“잠시 움직임을 묶어 둔 것뿐이야. 저 정도로 깨질 갑옷이었으면 진즉에 잡았겠지.”

보이는 것 이상으로 카델의 상태는 나빠 보였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처참한 몸뚱이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으며. 그의 손끝이 불기둥에 갇힌 아머 오우거를 향했다.

“내가 저 갑옷을 뚫을게. 그럼 넌 내가 만든 빈틈에 대검을 쑤셔 넣어. 한번 균열이 생긴 갑옷은 처음만큼 단단하지 않으니, 죽을 각오로 부숴 버리라고. 알겠어?”

“갑옷을 어떻게 부순다는―”

“내 모습이 어떻든 절대 작업을 방해하지 마. 동반자살이 취미라면 어쩔 수 없겠다만.”

카델은 반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반의 대답 또한 듣지 않은 채, 그대로 불기둥을 향해 절뚝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반은 그를 막지 않았다.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체…….”

반의 몸이 잘게 떨렸다. 그것이 고통 때문인지 전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시선은 넝마가 된 카델의 뒷모습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잠시 뒤.

크아아아악!

불기둥이 사라진 곳에 남은 것은, 잔뜩 성난 채 몸부림치는 아머 오우거. 그리고 그런 녀석의 다리를 타고 올라 복부까지 손을 뻗은 카델이었다.

그는 마구 흔들리는 몸뚱이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복부에 닿은 손 아래로 마력이 응축되며 불씨가 튀어 오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발견한 카델은 제 눈을 의심했다.

‘설마 지금, 저렇게 딱 붙은 거리에서 화염 마법을 쓰겠다는 거야? 물론 저렇게 하면 빗나갈 걱정 없이 일점사를 할 수 있긴 하겠지만…….’

마법이 원거리 공격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자신의 공격에 자신이 휩쓸릴 위험이 있어서다. 일부 공격을 제외하고, 마법 공격은 무조건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사용해야 했다. 특히 화염 마법은 더더욱 그랬다.

그 뜨거운 열기와 폭발력은 결코 시전자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게임의 주인공, 카델 라이토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투쾅! 쾅!

둔탁한 폭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한 점에 집중한 카델의 화염 공격은 결코 빗나가지 않았고, 그의 손에서 이루어진 폭발이 심한 연기를 동반하며 아머 오우거를 자극시켰다. 마물은 폭발의 진동을 느낀 듯 근원지를 없애기 위해 팔을 휘둘렀으나, 작은 몸집의 카델을 쉽게 떨쳐 낼 순 없었다. 카델의 몸이 마물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왔다.

아머 오우거의 손바닥에 짓눌리지 않는 것. 그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아슬아슬한 그의 발악을 지켜보며. 반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고 싶다는 듯 몸을 움찔거렸고, 그의 몸에 갇힌 카델은 충격에 휩싸였다.

‘팔에 장막을 생성했어. 동시 시전은 아니다. 저건 폭발을 전개하자마자 곧바로 장막을 두른 거야. 하지만 그렇다 해도 충격이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닐 텐데…….’

무모했다. 정말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의 공략법이 맞나 싶을 만큼.

하지만 그 또한 이렇다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둘 중 하나를 버린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 한, 결국 둘 모두의 목숨을 건 선택지를 고르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목숨을 걸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과연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어찼다.

‘반이 원하는 건, 저런 단장이겠지.’

그가 보아 왔던 단장, 카델 라이토스는 저런 인물이었다. 저런 인물이었기에 반은 기꺼이 용병단에 입단했고, 기꺼이 단장을 위해 목숨을 던졌으며, 기꺼이 충성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반이 생각하는, 반이 원하는 그런 단장이 되어 줄 자신이. 떨어지는 자신감과 함께, 아머 오우거 쪽에서부터 갈라진 외침이 들려왔다.

“지금이야!”

흩어지는 연기 사이로 추락하는 카델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쫓는 아머 오우거의 기다란 팔 또한.

하지만 반은 카델을 구하는 대신 곧장 마물을 향해 돌격했다. 한계까지 속력을 높인 허벅지 근육이 부풀며, 모든 무게를 하반신에 집중한 그가 재빠르게 아머 오우거의 다리를 타고 올랐다.

회백색의 연기를 뚫고 나온 은색 머리칼이 시원스레 흩날렸다. 그의 눈동자가 사냥감을 탐색하는 짐승처럼 맹렬하게 굴러갔다.

찾는 것은 아주 작은 빈틈 하나.

탄내가 진동하는 공기를 힘껏 들이마신 반의 시선 속으로, 카델이 만들어 낸 작은 균열이 들어찼다. 망설임 없이 휘둘러진 대검이 그 틈을 비집고 몸을 욱여넣었다.

물컹한 살점을 도려내는 질척한 감각. 갑옷 아래 자리한 것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가죽이었다.

크아악! 쿠워어억!

뒤틀린 포효를 내지른 아머 오우거가 카델을 쫓던 것을 멈췄다. 고통에 놀란 분별없는 주먹질이 반을 향해 쇄도했다. 반은 그 공격을 피해 도망가는 대신, 아슬아슬하게 몸을 틀어 놈의 주먹을 회피했다.

뺨을 스친 공격에 얕은 상처가 패고. 일순, 그의 전신을 타고 붉은 오라가 샘솟기 시작했다.

솟구치는 핏물처럼 강렬한 오라의 범람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혈류검]의 각성.

“기필코 죽여 주마.”

대검을 쥔 손을 타고 짙은 오라가 스며들었다. 마물의 살가죽을 깊숙이 파고든 대검을 들어 올리듯 힘을 주자, 뿌드득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균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한번 균열이 생긴 갑옷은 처음만큼 단단하지 않으니, 죽을 각오로 부숴 버리라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어떤 공격에도 끄떡 않던 갑옷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악에 받친 기합 소리. 갑옷과 복부를 통째로 갈라 낸 반의 대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뽑혀 나왔다. 대검의 궤적을 따라 생성된 붉은 검기가, 마물의 가슴팍과 안면을 따라 일직선의 잔상을 남겼다.

갈라진 마물의 몸뚱이에서부터 엄청난 양의 피가 치솟았다. 전방으로 퍼진 핏물이 소나기처럼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내렸다. 흩어지는 파편과 쏟아지는 핏방울. 그 지저분한 잔해 속에서, 반은 기울어지는 마물의 몸뚱이를 타고 바닥으로 착지했다.

그리고 아머 오우거의 육중한 몸이 대지를 강타하기 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카델을 낚아채 도약했다.

더 지켜볼 것도 없는 그들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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