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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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밀의 수업이 끝난 뒤, 카델은 루멘과 반을 불러 드라키움의 야시장을 찾았다. 드라키움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곳의 감칠맛 나는 꼬치구이를 먹어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속내를 알아챈 반은 곧장 꼬치를 사 오겠다며 떠나 버렸고, 그렇게 훌쩍 사라진 반을 기다리며 카델은 루멘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환혹의 숲이라고?”

“어. 들어 본 적 있어?”

“들어 본 적이야 있지. 악명 높은 숲이니까.”

“가 본 적은 없고?”

“굳이 그런 곳을 찾아가는 취미는 없어서.”

루멘은 자신의 옆에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 대는 카델을 일별했다. 마밀과의 마지막 수업이 끝난 뒤부터, 카델은 그답지 않게 우중충한 분위기를 풍겨 댔다. 헤어짐이 아쉬워서일까?

나름대로 이유를 짐작해 보던 그가 농담을 섞어 제 딴의 위로를 해 보았다.

“뭐 때문인진 몰라도 너무 우울해하지 마. 대장은 원래도 억울하게 생긴 느낌이 있어서, 그런 표정 지으면 진짜 불쌍해 보이거든.”

“시끄러워. 맞을래?”

“흉폭해라. 그런데 갑자기 환혹의 숲은 왜? 거기 갈 일이라도 생겼어?”

“응.”

설마 싶어 물어본 것에 곧장 긍정할 줄은 몰랐는지, 루멘이 잠시 멍하게 눈을 깜빡였다. 카델은 그런 루멘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너도 가야 해, 친구야.”

“음…… 싫은데.”

루멘은 슬쩍 카델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그는 마이뉴 왕국이 모국인 만큼, 어릴 적부터 환혹의 숲의 악명을 지겹도록 들어 왔던 사람이었다. 환혹의 숲이 가진 별명은 다양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금지된 숲’과 ‘죽음의 숲’.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사람이 극소수라지.

카델이 아무리 흥미로운 인간이라도 아직 사지(死地)까지 따라갈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거절의 의사를 표명하기 무섭게, 카델이 인상을 구기며 그를 몰아붙였다.

“그런 곳에 동행했을 때야말로 상대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거기 나는 약초만 하나 쏙 뽑아 오는 건데. 그것도 못 해? 그러고도 네가 검사야? 언제부터 그렇게 겁은 많고 패기는 없었어? 실망이네, 루멘.”

“그렇게 쏘아 대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리 말하려던 순간, 뒤편에서부터 누군가의 팔이 둘 사이를 가르듯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저런 놈은 일찌감치 포기하라니까요, 단장. 일말의 도움이 안 되니까.”

팔뚝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반이었다. 그는 뒤에서 카델을 껴안다시피 팔을 뻗어 꼬치를 건네주었고, 카델은 씨근덕거리던 것을 멈추고 얌전히 꼬치를 받아 들었다. 그런 카델을 향해 맛있게 먹으라며 생글거리던 반은, 옆에 선 루멘을 보자마자 웃음기가 싹 가신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전 단장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는데. 겁쟁이 한 명이 추가되는 것보다야, 믿음직한 부하 한 명이 훨씬 낫지 않겠어요?”

카델의 어깨에 손을 올린 반이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의 적대적인 시선을 마주한 루멘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마이뉴 왕국의 국경을 넘는 데에는 꼬박 닷새가 걸렸다. 매번 마차―결국 동행을 결정한 루멘의 자금으로 대여한―를 타고 이동했음에도 그랬다.

다행인 점은 카델의 나약한 몸이 길고 긴 여행길에 조금은 적응했다는 것이다. 종종 찾아오는 극심한 멀미로 이동하는 내내 반의 어깨에 기대 있던 시간을 제외한다면, 카델은 꽤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이 엿새째로 접어드는 날. 루멘과 반, 카델은 ‘환혹의 숲’ 근처에 자리한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들 오늘은 푹 쉬어 두도록 해. 몇 번 말했다시피 내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체력과 스피드니까. 알았지?”

“네, 단장!”

카델은 우렁차게 대답한 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루멘을 향해 턱짓했고, 루멘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시선을 뗐다.

마을은 면적이 좁은 만큼 옹기종기 모인 민가와 식당 몇 군데가 전부였다. 그들은 그중 그나마 남는 방이 있는 한 노부부의 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인심 좋은 노부부는 카델이 내민 숙박비도 거절하고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해 주기도 했다. 물론 풍족하지 못한 마을인지라 맛이 뛰어나거나 양이 충분한 것은 아니었으나, 카델 일행은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방은 하나였다. 성인 남성 셋이 눕기에는 비좁은 면이 있었지만, 불평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노부부의 선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카델 일행은 꼼짝없이 노숙해야 했을 테니까.

“단장, 중앙이 편하세요?”

“아무 데나 상관없어.”

“벽이 편하시면…… 아니, 벽은 한기가 돌아요. 역시 중앙에서 주무시는 게 낫겠네요.”

하나뿐인 방은 본래 목적이 침실이 아닌 다용도실이었으므로, 그들은 침낭을 깔고 누워야 했다. 반은 카델의 만류를 무릅쓰고 직접 침낭을 펼쳐 주고는, 본인의 침낭을 바로 옆에 딱 붙여 두었다. 제 몫의 침낭을 들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멘이 팍 인상을 썼다.

“그렇게 중앙에 치우치면 남는 자리가 좁아지잖아. 끝에 붙어.”

타당한 지적이었으나 반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침낭 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좁으면 서서 자.”

“뭐?”

“서서 자라고.”

단호한 대꾸가 어이없었는지 루멘이 헛웃음을 뱉었다.

‘쟤넨 왜 또 저래…….’

이대로 놔두면 여행 내내 그를 괴롭혀 왔던 알맹이 없는 시비가 오갈 것 같아, 카델은 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나섰다.

“둘 다 괜히 힘 빼지 말고, 루멘, 이리 와. 너도 내 옆에 딱 붙어서 자면 덜 좁을 거다.”

“단장, 그냥 제가 옆으로 갈게요.”

“고맙네, 대장. 안 그래도 추웠는데 아주 따뜻하게 잘 수 있겠어.”

루멘은 반이 침낭에서 빠져나와 자리를 옮기기 전에 재빨리 카델의 옆에 붙어 침낭을 펼쳤다. 공격 속도만큼이나 재빠른 동작이었다.

그냥 다들 적당히 떨어져 자면 될걸. 한숨을 내쉰 카델이 침낭 위에 몸을 눕히고. 불만스럽게 루멘을 흘기던 반이 머리맡에 둔 등불을 껐다.

장신의 두 남성에게 양쪽을 짓눌린 상태로 잠드는 일은 꽤 고단한 일이었다. 몸을 뒤척일 수도 없었고, 고개를 돌리기도 애매했다. 그 때문에 카델은 과일에 꽂힌 이쑤시개의 심정으로 꼿꼿하게 누워 까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일, 잘할 수 있겠지……?’

다양한 적을 상대해 본 카델이었으나, 단 한 번도 기사 후보를 상대로 싸워 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요정족 기사는 전부 가챠로 획득했기에 ‘환혹의 숲’ 스토리에 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고 봐야 옳았고.

좋지 못한 이미지와 극도로 적은 정보량. 걱정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금지된 숲이라고까지 불리는 곳이니 위험 요소가 넘쳐날 건 분명해. 최선은 빠르게 약초를 찾아 최단 시간 안에 숲을 빠져나가는 거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대비해 둬야 했다. 요정족과의 전투도 염두에 둬야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오는 듯했다. 자신의 부하를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위해 휘두른다는 찜찜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렇다고 숲에 혼자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점점 부정적인 몸집을 키워 갔다.

카델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차오르는 한숨을 집어삼켰다. 그런 그의 막막한 기분을 눈치챈 것인지, 오른쪽에서 불쑥 튀어나온 무언가가 머리를 짚고 있던 카델의 손을 감싸듯 덮어 왔다.

퍼뜩 놀라 고개를 돌리니, 곧장 반과 시선이 마주쳤다. 반은 카델보다 한 마디는 큰 손으로 카델의 손을 부드럽게 쥐고는, 천천히 끌어당겼다.

“반……?”

“걱정 마세요, 단장. 무슨 일이 있어도 단장만큼은 꼭 지켜 드릴게요.”

속삭이는 목소리가 방 안의 서늘한 미풍을 타고 귓가를 간질이듯 날아들었다.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손을 타고 전해져 오는 온기가 선명했다. 카델은 그런 반의 황금색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다, 이내 천천히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난 혼자서도 잘하니까, 넌 네 몸이나 신경 써. 또 나 지킨답시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지 말고. 알았어?”

반의 시선이 맞잡은 손에 가닿았다. 엄지를 뻗어 카델의 부드러운 손등을 쓸어내리던 그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순하게 풀어지는 얼굴을 보자 가슴을 가득 채우던 갑갑함도 조금은 사그라졌다.

‘그래. 아직 갈 길이 먼데 여기서 주춤거릴 순 없지. 무조건 해내고, 강해지는 거야. 그것만 생각하자.’

다짐한 그가 마주 잡은 손을 조심스레 빼냈다. 다시 고요해진 방 안에서, 카델은 내일을 위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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