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성 마법사! 오로지 이 성장을 위한 모험이었다.
카델은 자신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 드디어 목적을 달성했다는 성취감인지, 증폭의 풀이 가진 효과인지 알 수 없었다. 혈관을 가득 메우는 맹렬한 마력의 흐름. 그 열기를 느끼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고, 나무 기둥에 머리를 기댔다.
‘……기분 좋네.’
온몸을 채우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리던 통증이 사라지며, 그 자리에 전율에 가까운 쾌감이 들어찼다. 충족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작게 웃음을 터뜨리자 라이돈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기분 좋아?”
천천히 들어 올린 눈꺼풀 아래로 나른한 시선이 움직였다. 그는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라이돈을 마주하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해진 기분이야.”
“하하! 좋아, 좋아. 그래야지. 내 보호자가 될 자질을 마음껏 뽐내 줘, 카델.”
라이돈의 보호자. 그 불길한 단어의 조합을 듣자 카델은 간신히 좋아졌던 기분이 순식간에 착잡해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바깥 세계에서 라이돈의 보호자가 되어 준다는 조건으로 요정 왕을 설득해야 한다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군.’
라이돈은 자신의 아버지를 상대하기 위해선 강한 힘이 필요하리라 판단했다. 방금 먹은 [증폭의 풀]은 그 판단에 의한 선물이었다. 마력 한 방울 없는 보호자의 말은 아무리 청산유수라 한들 믿음이 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풀을 먹고 마법의 성취도가 상승하였음에도. 카델은 딱히 이렇다 할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로들과의 충돌도 무시할 순 없겠지. 멜피스는 적어도 8성급 마법사일 텐데. 다른 원로들도 비슷할 거잖아? 요정 왕은 뭐…… 급이 어떨지 짐작도 안 가고.’
7성의 경지를 ‘고작’이라는 말로 후려치고 싶지는 않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정말 고작 7성이었다.
핀하이족의 유일한 후계자를 위험한 바깥 세계로 끌고 나가려 하는 무뢰한이 가질 법한 힘치고는 턱없이 부족한 경지. 역시, 가진 패를 부풀려 보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7성까지 올라왔는데도 허세를 부려야 한다니. 씁쓸하다, 씁쓸해.’
하지만 종갓집 3대 독자를 꼬드겨 야반도주하려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 했다.
“준비 다 되면 말해. 안아서 데려다줄게.”
남의 속도 모르고 예쁘게 눈웃음이나 치고 있는 라이돈을 바라보며, 카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불안한 미래. 그럼에도 그는 나아가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바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루멘과 반을 볼 면목이 없다.
이 거지 같은 숲에서 보란 듯이 살아 나가리라. 결심한 카델이 텁텁한 입 안을 훑어 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가 보자. 아버지 설득하러.”
⚔️
“멜피스 원로가 고작 인간 하나를 못 잡아 후퇴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변이란 말이오?”
“듣기로는 라이돈이 끼어들었다고 합니다. 또 변덕을 부려 일을 망친 거겠지요.”
“라이돈이 또……. 언제 왕좌를 물려받을지도 모르는 후계자가 어찌 아직까지…….”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왕의 자격이 없는 겁니다. 어쩌다 그런 망나니가 숲의 운명을 짊어지게 됐는지.”
환혹의 숲 중심부. 그곳에는 나무뿌리와 넝쿨, 얼음 크리스털과 싱그러운 꽃의 줄기가 엮여 만들어진 거대한 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요정 왕 하이론이 거주하는 환혹의 탑.
여섯 명의 원로와 전사들이 탑 앞에 자리한 정원에 모여 ‘멜피스’와 ‘라이돈’, ‘인간’이 뒤섞인 한바탕 토론을 펼쳤다. 그 소란을 깨부순 것은 정원을 가로지르며 등장한 멜피스였다. 이마에 핏줄을 세운 흉흉한 표정의 그가 등장하자, 정원이 순식간에 침묵으로 뒤덮였다.
“즐거운 이야기가 오가는 듯하군요.”
“메, 멜피스 원로…….”
멜피스는 정원에 모인 여섯의 원로와 한 명 한 명 시선을 맞췄다. 무언의 압박을 느낀 그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딴짓을 시작했고, 그 뒤에 모여 있던 전사들 또한 한껏 위축되어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그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멜피스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분명한 미소였으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 보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제 휘하의 전사들은 오랜 추격에 지친 상태입니다. 전력을 보충한 뒤에 다시 그 죄인을 찾으러 가 볼 생각이니, 각 원로께서는 소속 전사를 선별해 주십시오. 그리고…….”
멜피스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찰싹 달라붙어 있는 두 명의 원로, 쌍둥이 요정 보르누와 노르부였다. 멜피스와는 달리 여전히 청년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두 원로는 그의 시선이 닿자마자 어깨를 움찔 떨었다.
“두 분은 이곳에 계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아…… 그, 그게…….”
“결계에 균열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인 듯하니, 원흉은 아무래도 에이든이 말했던 죄인의 동료겠지요. 결계 유지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핀하이족의 체면이 바닥까지 떨어지기 전에.”
“넵!”
멜피스의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쌍둥이 요정은 재빠르게 비행을 개시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주시하던 멜피스가 이내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핀하이족은…….”
깊은 호흡을 따라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멜피스는 아직도 딴청을 피우고 있는 원로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대정령 핀하이 님의 힘을 통해 종족을 보호하고 있지요. 그 어떤 인간도 마족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종족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힘을 물려받을 왕이 없다면 얼음보다 쉽게 깨져 버릴 환상.”
정원의 중심에 우뚝 선 그가 애써 끌어 올렸던 입꼬리에 힘을 풀고.
“라이돈은 하나뿐인 요정 왕, 하이론 님의 유일한 후계자입니다. 그 아이를 믿지 않는다면, 핀하이족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순식간에 가라앉은 눈빛이 매서운 기세로 그들을 다그쳤다. 공기가 얼어붙는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라이돈에게 왕의 자격을 운운했던 원로는 이미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멜피스는 자신의 한심한 동족들을 노려보며 다시금 들끓는 분노를 집어삼켰다. 이 끝없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숲을 더럽힌 죄인을 찾아 엄벌하는 수밖엔 없으리라.
결론을 내린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숨만 쉬어도 화가 나는 이 공간을 한시바삐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꼿꼿하게 정면만을 담아내던 그의 시야에, 막 정원의 입구를 뚫고 날아드는 날쌘 그림자가 포착됐다.
“……?”
잠시 걸음을 멈춘 멜피스가 요란하게 다가오는 그림자의 정체를 가늠했다.
그리고.
“저, 저놈이……!”
카리스마 넘치던 위용을 벗어 던진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뒷목을 움켜쥐며 외쳤다.
“라이도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