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521)

라이돈이 알려 준 환혹의 숲의 비밀이었다. 그들은 핀하이의 힘을 이어받은 유일한 요정을 왕으로 떠받들며 세대를 이어 왔다. 이 숲은 단 한 명의 희생을 통해 유지되어 온 것이다.

‘라이돈이 숲을 떠나도 아직은 왕이 건재하니 당장 큰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야. 하지만 만약 라이돈이 바깥을 떠도는 동안 하이론에게 나쁜 일이라도 생긴다면…….’

지금껏 쌓아 온 악명이 있는 만큼 한순간에 숲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핀하이족은 동족의 죽음을 느낄 수 있다고 했으니, 하이론의 죽음을 느낀 라이돈이 제 발로 숲에 돌아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라이돈이 그걸 거부한다면? 아니면 숲과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려서, 돌아가는 동안 사고라도 당한다면?’

요정족에게 이렇다 할 동정심이나 보호의 의무감 따위를 느끼진 않는다. 오히려 비호감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만약 자신의 선택이 한 종족의 몰살이라는 결과를 끌어낸다면. 핍박받던 그들이 겨우 되찾은 작은 땅을, 작은 희망을 인간인 자신이 또 한 번 무너뜨리게 된다면.

카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결과는 바라지 않았다. 그런 결과가 나왔을 때, 자신과 함께 바깥을 떠돌던 라이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그려지지 않았다.

‘애초에 이 모든 건 내가 살아 나가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야. 라이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이론이 책임지고 내 탈출을 허락해 준다면.’

지금이라면 라이돈을 포기하는 대가로 자신을 무사히 숲 바깥으로 보내 줄지도 모른다.

그가 숲을 찾은 것은 [증폭의 풀]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었고, 라이돈을 기사로 영입시킨다는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렇게만 된다면 처음의 목적을 이룬 채 무사히 탈출하는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카델이었으나.

“역시, 힘들겠지?”

내내 잠잠하던 라이돈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뜨렸다. 라이돈이 수정구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내려 주머니에 꽂아 넣고는, 카델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어. 아무리 내가 재밌는 걸 좋아한다지만, 동족의 몰락까지 즐겁게 지켜볼 순 없고. 그렇잖아?”

“……라이돈.”

“하지만 카델이니까. 혹시 모른다고 생각해서 맡겨 본 거야. 카델은, 카델이라면. 내가 이 빌어먹을 숲을 빠져나가는 걸 어떻게든 합리화해 주지 않을까, 싶었거든.”

라이돈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내리꽂혔다. 카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하하! 됐어, 됐어. 멜피스 님 앞에서 날 인질로 잡고 협박했을 때 이미 만족했어. 태어나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거든! 이제 어떡할까, 카델? 돌아가고 싶어? 이대로 납치하면 화낼 거야? 으음, 하지만 그냥 헤어지긴 아쉬운데.”

능청스러운 표정 위로는 일말의 실망감도 비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곤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양. 그야말로 습관처럼 자연스러운 포기였다.

그런 그의 생글거리는 미소를 눈에 담아내며, 카델은 생각했다.

‘뭘 이것저것 재고 있는 거야.’

숲에 진입하자마자 끈질기게 이쪽을 괴롭혀 왔던 요정족의 생존을 걱정한다니. 그것도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없을까도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처지에.

‘완전 웃기고 있었잖아?’

라이돈의 체념은 곧 카델의 각성이 되었다. 그는 남의 목숨을 걱정하며 좀 전까지 유일하다고 믿었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려 했던 본인의 선택에 놀랐다. 그리고 어처구니를 상실했다.

‘게임에서도 라이돈 영입한다고 환혹의 숲이 망하지는 않았어. 물론 그런 흐름까지 게임과 똑같다곤 장담할 수 없어도, 망할 거라 단언할 수도 없지. 지금까지 되는대로 들이받았으면서 이제 와 조심스럽게 구는 것도 웃기지 않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다. 자칫하다 상모까지 돌릴 뻔했다. 금세 불쾌해진 카델이 옆에서 계속 헛소리를 늘어뜨리는 라이돈의 정강이를 그대로 걷어찼다.

기습적인 공격에 라이돈은 물론 하이론까지 놀라 입을 벌리고. 카델은 당황한 얼굴로 정강이를 붙든 라이돈에게 말했다.

“너 나가 있어.”

“……응?”

“어른들끼리 얘기 좀 할 테니까, 애는 나가 있으라고.”

나라면 숲을 빠져나가는 걸 어떻게든 합리화해 줄 거라 기대했다고? 좋다. 그까짓 합리화, 현실 파악은 조금도 못 할 만큼 기깔나게 해 주지.

라이돈에게서 눈길을 돌린 카델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기습 행동에 놀란 하이론이 카델과 라이돈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그를 마주한 카델의 얼굴 위로 비릿한 속셈과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걸 잊고 있었네요. 라이돈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하이론 님이 알아 두셔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

하이론의 눈이 가늘어졌다.

매끈한 턱을 쓰다듬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고뇌를 머금은 채 느릿느릿 구부러졌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더 이상 창밖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눈이 담아내는 것은 카델.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

“마계의 봉인이 풀리고 있다, 라……. 어떻게 단언하는 거죠? 핀하이족이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고는 해도, 역겨운 마족의 냄새라면 딱히 정보를 얻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어요. 그런 기미는 없었답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하이론 님. 막 ‘시작되고’ 있는 참이라고. 시간문젭니다. 얼마 안 가 마계에 갇히지 않은, 인간계에 잠들어 있던 마족들이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움직일 거예요. 그때가 되면 제 말이 옳다는 걸 인정하실 테죠.”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던 공손한 태도는 사라진 지 오래다. 눈앞의 인간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다리를 꼰, 조금은 건방진 자세로 발끝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하이론 님. 당신이 동족에게 허락된 유일한 땅을 지켜 내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 대단한 각오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하기 힘든 결정이니까요.”

“제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카델?”

하이론은 고요한 눈빛으로 카델을 응시했다.

마계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든, 의심하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최우선은 언제나 동족의 생존이었고,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예상된다면 더욱 똘똘 뭉쳐 견고해지면 될 일이다.

그러니 이 정보는 그에게 있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카델 또한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또 다른 제안을 위한 밑밥인 걸까?

지금껏 왕으로서 많은 이들을 상대해 왔으나, 그중에서도 카델은 영 껄끄럽게 느껴졌다. 특별히 말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다. 말을 어렵게 하기로는 제프렉을, 원하는 바를 오묘하게 드러내기로는 도트를, 셈이 분명하고 추진력이 뛰어나기로는 멜피스를 넘을 수 없다.

하지만…… 종족의 차이일까?

속 모를 얼굴. 시시각각 바뀌는 다채로운 태도가 하이론을 판단력을 흐렸다. 미묘한 표정의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카델은 대답 대신 또 다른 질문을 내뱉었다.

“그 고립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건방진 질문을 하는군요.”

“전 엄연한 외부인이니까요.”

이 고립에 의미가 있냐니. 이 숲의 유지는 곧 종족의 유지. 세대의 연장보다 중대한 의미를 지닌 것은 없다.

조금 전보다 날카로워진 시선이 카델을 매섭게 훑어 내렸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직접 말했다시피, 카델은 외부인일 뿐이에요. 타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 법이죠.”

“타인이니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카델은 이 고립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몇 번이고 무너진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한 줌의 종족이 모여 서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포기하고 단념하며 간신히 쟁취한 이 작은 긍지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요?”

인간의 이해는 필요 없다. 카델에게 인간을 대표한 사과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떠들어 대건, 그건 무지렁이의 자만일 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매스꺼운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살아온 세월은 자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나, 카델은 분명 자신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했다. 그 사실이 하이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현재의 원로들은 숲이 고립되기 이전의 세계를 누려 보았다. 그렇기에 하이론은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고, 그들의 대의를 따랐다.

종족의 유지에 ‘자유’를 포기할 가치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던 자들이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자유’를 경험하고, 기꺼이 ‘자유’를 버리기로 한 자들이다. 그래서 따랐다. 유일한 이해자인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너무 비약하지 마시죠. 전 그저, 더 큰 가치를 추구할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렇다. 그게 문제였다.

종족의 유지를 위한 고립이, 자신의 판단이 아니었다는 점. 모두의 의지를 한데 모아 숲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는 점.

“더 큰 가치라뇨?”

불쑥 겁이 났다. 혹시라도 이 사내의 말에 흔들릴까 봐. 히스테릭한 외로움이 그의 전신을 덮칠 때마다, 홀로 은밀하게 떠올리곤 했던 한 가지 꿈을. 허락되지 않은 그 꿈을 눈앞의 인간에게 들킬까 봐.

카델이 느릿하게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멜피스를 불러와야 할까? 그가 있다면 카델의 말을 논리정연하게 반박하며 이 거북한 속을 달랠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를 호출하기도 전, 카델이 먼저 말을 이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인간들은 단순한 구석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꼈던 힘도,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금세 호감을 품죠. 예를 들어 볼까요? 제겐 라이돈이 그랬습니다. 절 해치려던 녀석이었고, 저 또한 그 녀석을 진심으로 죽이려고 했죠. 하지만 보세요. 지금 이 숲 안에서, 제가 라이돈보다 의지하고 있는 요정은 없습니다.”

카델이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긋한 걸음이 하이론을 향했다.

“지금까지 핀하이족은 본인들이 얻은 축복받은 힘으로 무얼 했나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질타 같은 게 아닙니다.”

“……동족을 보호했죠. 인간들의 끊임없는 공격으로부터.”

“그게 단가요?”

“본론을 말하세요, 카델. 슬슬 들어 주기가 힘이 드는군요.”

조금씩 가까워지던 카델은 이제 하이론의 옆에 나란히 선 채, 그가 바라보던 창밖을 응시했다. 여유롭게 창밖을 살피던 카델이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말했듯이, 마계의 봉인이 풀리는 건 시간문젭니다. 장담하죠. 길어야 1년……. 그 기간 동안 마족들의 활동은 전에 비할 바 없이 활발해질 겁니다. 인간계와 마계는 충돌을 피할 수 없겠죠. 그러니 그때, 핀하이족의 힘을 빌려주십쇼.”

“뭐라고요?”

“종족 전체를 끌어들이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라이돈 하나면 충분해요. 요정 왕의 후계자가 핀하이족을 대표해 인간들의 편에 선다면, 그들은 더 이상 숲의 힘을 시기하지 않을 겁니다. 응원하기도 바쁠 테니까요.”

인간이 핀하이족을 응원할 거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질리도록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 왔다. 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이란 종족은 핀하이족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나은’ 인간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웃기지도 않는군요. 동족을 망가뜨린 인간들의 편에 서라고요? 지금 카델의 말은, 인간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종족의 유일한 후계자를 사지로 내몰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이런, 잘못 들으셨나 보네요. 그렇다면 다시 말씀해 드리죠.”

심중을 전혀 알 수 없는 고동색 눈동자. 웃음기 하나 없는 진중한 얼굴이 하이론을 돌아보았다.

“인간들의 영웅이 되세요. 그들의 시기를 경외로 바꾸세요. 두려워하는 존재가 숲이어서야, 요정족의 최선은 언제나 고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대상을 바꿔 줘야죠. 당신의 종족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고 싶지 않나요?”

“자유라니…….”

“구걸 같은 게 아니에요. 당신들이 가진 힘을 각인시키는 과정일 뿐입니다. 남의 편일 땐 두렵지만 내 편일 땐 든든하다……. 인간들은 은근히 이런 걸 좋아하거든요.”

만약 이곳에 자신이 아닌 멜피스 원로가 있었다면. 아니, 그 ‘비극’을 겪은 원로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머리로는 그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 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외침을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핀하이족의 왕이었다. 평생을 탑에 갇혀 동족을 위한 힘을 뽑아내고, 생명을 깎아 가며 숲을 유지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꿈 하나에 매달려 일생을 버텨 온, 핀하이족의 왕.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이 어리석은 대답의 이유였다.

“글쎄요.”

많은 것을 깔아뭉개며 꺼내 든 질문의 답변치곤 지나치게 허술하다. 순간 김이 빠진 하이론이 짧은 숨을 내뱉었다. 카델은 그런 하이론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정족의 힘만으로 해내기엔 무리가 있겠죠. 이런 모험적인 일에 모든 걸 걸고 숲을 버리기도 힘들 테고. 대신 라이돈을 보내자니 제멋대로인 녀석이 제대로 영웅 행세를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그럼 대체 왜 이런 얘기를―”

“하지만 제가 함께할 거니까요.”

그리 말한 카델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멀뚱히 손을 내려다보는 하이론에게 말했다.

“라이돈이 영웅이 되지 못하더라도, 저는 될 수 있습니다. 이 숲이 ‘영웅의 숲’이 되진 못하더라도, 영웅과 함께했던 ‘기사의 숲’이 될 순 있죠. 이건 틀림없으니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기다렸던 대답이라는 것을, 하이론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심장이 뛰었다. 심장은 언제나 뛰고 있었겠지만, ‘박동한다’는 감각을 느낀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침착해지려 애썼다. 그리고 어지러운 머릿속을 헤집어 ‘요정 왕’의 태도를 고수하려 노력했다.

“라이돈을 시기한 이들이 또다시 숲의 힘을 탐하려 할 수도 있어요.”

“인간을 구한 영웅의 터전입니다. 그런 짓을 했다간 사회적 매장을 당할걸요. 물론 그전에 제가 먼저 육체적 매장을 시켜 드리죠.”

“당신의 기사로 활동하는 동안 핀하이족이 인간의 권속이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어요.”

“라이돈이 누구에게 쉽게 머리를 숙일 성격인가요? 다루기 힘든 녀석이죠. 녀석이 따르는 인간은, 지금도 앞으로도 카델 라이토스. 저 한 사람뿐일 겁니다. 위대한 핀하이족이 유일하게 충성을 바친 인간이라니, 대단하잖아요? 역시 라이돈보단 제가 영웅이 되는 쪽이 더 빠르겠네요.”

하이론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자신감이군요, 카델.

불가능했다. 이미 카델의 말을 끊지 않고 여기까지 온 데에서부터 자신은 글러 먹은 왕이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 그 꿈을 꾸었을 때부터.

“동족의 목숨을 책임지는 듬직한 왕과 아들의 인생을 존중하는 따뜻한 아버지.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기회라고요? 지금 잡지 않으면, 분명 후회해요.”

자유를 꿈꿨다.

이 넓은 세계를 막힘없이 비행하며, 굳어 버린 날개에 영혼을 불어넣고 싶었다. 살고 싶었지만, 가능하다면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적어도 자신은 그랬다.

하나의 바람을 위해 종족 전체를 버릴 순 없다. 하지만,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라면.

자신이 이 좁고 갑갑한 탑에 갇혀 동족의 삶을 지키는 동안, 하나뿐인 아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면.

매스꺼웠다. 하이론은 뒤늦게 이 매스꺼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기대감. 이것은 그가 살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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