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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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조금만 늦었으면 역적 될 뻔했네.’

가까스로 루멘의 공격을 제지한 카델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정구를 통해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하이론은 그가 출구 앞까지 도착하자 약속대로 결계를 거둬 주었다. 그 과정을 기다리던 중, 두 쌍둥이 요정을 발견했다.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다는 태평한 생각도 잠시. 카델은 난데없이 등장한 두 부하의 살기에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대장! 다친 덴…… 다친 덴 없어? 괜찮은 거야?”

가장 먼저 달려온 루멘이 카델의 어깨를 붙들고 이리저리 돌려 댔다.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피는 눈빛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거센 악력을 따라 빙글빙글 돌던 카델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팔을 두드렸다.

“괜찮아. 어지러우니까 좀 놔 줄래?”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한 거야! 혼자서 죽기라도 했으면……!”

“야 야, 완전 멀쩡해. 심지어 더 강해졌다고. 그러니까 잔소리는―”

그만하고 일단 여길 빠져나가자고. 그리 말하려던 카델이었으나.

“단장…….”

갑작스레 돌진한 반의 포옹에 말이 끊겨 버렸다. 루멘까지 밀치며 카델을 꽉 끌어안은 반이 그의 어깨 위로 고개를 파묻었다.

“죄송해요, 단장. 죄송해요…….”

틀어막힌 목소리가 뭉개지며 뜨거운 울림을 만들었다. 숙인 허리가 불편할 텐데도 반은 계속해서 품을 파고들었다. 제 몸집을 모르는 대형견 같은 행동이었다.

“죄송하다니…….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 아니야? 이상한 곳에 끌어들여서 미안해. 고생 많았어, 반.”

겨우 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자, 처량한 떨림이 느껴졌다. 깨어난 뒤 마음고생이 심했을 반을 생각하니 잠시 잊고 있던 죄책감이 치솟았다.

‘나가면 맛있는 거라도 사 줘야지.’

루멘도 반도, 고생한 만큼의 보상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지친 마음을 달래 주지 않는다면…….

“그런데 대장. 이 꼬맹이는 뭐야?”

“아하하! 벌써 날 잊은 거야? 난 아직 너 기억하는데. 카델만큼은 아니지만 꽤 재밌었다고.”

흥분한 두 부하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카델은 아직 상황 파악 중인 듯한 쌍둥이 요정을 일별하며 반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일단 나가자.”

“저 요정들은요? 죽이고 가야…….”

“음, 아니야. 안 죽여도 돼. 빨리 나가자.”

아직도 오라를 갈무리하지 않은 반과 여전히 검집에 손을 올린 루멘, 그리고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라이돈까지. 카델은 한자리에 모인 세 부하를 끌고 마침내 숲을 빠져나갔다.

코끝을 감싸는 개운한 밤공기. 해방감에 젖은 카델의 행복한 얼굴 위로, 환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S급 기사 ‘라이돈’ 영입 완료!」

「현재 기사단 코스트: 8/10」

루멘은 자신의 앞에 선 소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키는 카델보다 한 뼘은 작아 보였고, 몸집은 카델과 비슷한 편일까. 복슬거리는 금발 머리, 살짝 처진 눈꼬리와 새빨간 눈동자, 그리고 자신을 마주 보며 생글거리는 낯짝까지.

체격은 기억과 상당히 달라졌으나, 이 묘하게 기분 나쁜 웃는 얼굴은…….

“우리가 왜 이 자식과 동행해야 하는 거지? 대장. 설명을 좀 해 보지 그래.”

“라이돈 보호자 자격으로 숲을 빠져나왔어. 일단 그렇게만 알아 둬.”

“보호자……?”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 줄 테니까.”

루멘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반 또한 마뜩잖은 얼굴이었다. 그것은 카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달려온 결과, 계획에도 없던 S급 기사와 핀하이족의 미래까지 떠안아 버렸다. 그 기사가 당장 제구실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순수하게 기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

“카델! 이것 좀 봐.”

떨떠름한 부하들을 끌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 잔뜩 신난 라이돈이 껑충거리며 카델의 옆으로 다가왔다.

시도 때도 없이 짧다고 놀려 대기에 아예 자신보다 작은 인간 소년의 모습으로 외형을 바꾸어 버렸다. 길길이 날뛸 것을 기대했건만. 라이돈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이쪽이 더 라이돈을 대하기 힘들어졌다.

“보여, 이 얼음덩어리? 마력을 퍼부었는데도 고작 이 정도 크기야. 나 정말 더럽게 약해졌나 봐! 아하하!”

“약해진 게 즐겁냐?”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게 스릴 있지 않아? 앞으로의 전투가 기대돼서 못 참겠는데!”

하는 말이나 행동은 여전히 갈피를 잡기 힘들다. 숨 쉬듯 웃어 대는 것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190이 넘는 거구의 남자가 제멋대로 구는 것과, 자신보다 한 뼘은 작은 앳된 소년이 그렇게 구는 건 지켜보는 처지에서 감상이 달랐다. 뭐랄까…….

‘보호자 신분이라 그런가? 왜 이렇게…… 쓸데없는 보호 본능이 샘솟지……?’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목숨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그러니 연장자인 자신이 그를 관리하고 지켜 줘야 한다는. 그런 몹쓸 보호 본능이 피어났다.

라이돈의 본체를 알고 있는 카델로선 전혀 달갑지 않은 감정이었다.

‘이게 다 라이돈 얼굴이 저따위로 생겨서야.’

툭하면 햇살처럼 웃어 대는 천사 같은 얼굴이 소년처럼 가느다란 몸집까지 갖추니, 원체 동생들에게 약한 카델의 마음이 물렁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카델은 애써 라이돈을 무시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에게는 소년 라이돈의 모습이 꽤 귀엽게 느껴진다는 문제를 제외하고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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