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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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이 넘는 수색. 소득은 없다.

“밤이 깊었습니다. 일단 복귀하죠.”

모들렌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은 그를 따라 말머리를 돌리며 약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단장이 있던 황야만 해도 흔적이 넘쳐 났다. 수색이 이렇게 더딜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황야를 벗어나자마자 흔적은커녕 점액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족과 함께 사라진 라이돈의 행방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야 라이돈이 이대로 사라지든 죽든 별 상관이 없었으나.

‘그놈이 죽으면 단장이 슬퍼할 거야.’

때때로 화가 치밀 만큼 라이돈을 예뻐하던 카델이었다. 깨어난 그가 라이돈의 소식을 듣지 못한다면, 분명 크게 상심하리라. 카델의 슬픈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았다. 반은 잠잠한 붉은 실을 좇아 시선을 움직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실의 떨림은 없다. 그렇다면 현재 단장은 무사히 치료를 받고 회복하고 있다는 소리.

다행이라는 마음과, 이번에도 그의 곁을 지킬 수 없었다는 분노에 가까운 마음이 뒤섞였다.

‘내가 더 강했더라면 단장은 날 데려갔을 거야. 내 실력이 애매하니까…… 함께하지 못한 거다.’

단장과 단둘이서 여행했을 당시엔 이런 일이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붙어 있었고, 단장이 전장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이는 반 헤르도스, 자신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자신만큼, 어쩌면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이들이 단장의 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란 건 안다. 단장은 세상을 검 아래에 둘 사람이고, 그런 사람 곁에 유능한 이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당당하게 단장의 곁을 지킬 수 있어야 해.’

그러니 강해져야 했다. 죽지 못해 살아갔던 과거를 잊고, 필사적으로. 단장을 위해 강해져야 했다.

의지를 다잡은 반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수색은 끝났으니, 이젠 단장을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가 바스킨 마을로 복귀하기도 전.

“반!”

전방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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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델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두 개의 반지를 꾹 움켜쥐었다. 귀한 아티팩트를 품속에 고이 모셔 둔 뒤 고개를 들자, 아직도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는 반과 루멘이 보였다.

“별것도 아닌 반지에 멋대로 의미 부여 해 놓곤 생사람 잡지 마라. 추하군.”

“별것도 아닌 반지에 의미 부여 해서 억지로 빼앗은 놈은 너 아닌가? 그렇게 단장과 내가 똑같은 반지를 낀 게 싫었으면, 그냥 사실대로 말하지 그랬어. 그럼 네놈과 붉은 실이 이어지기 전에 내가 직접 뺐을 텐데.”

“내가 뭣 하러 그런 짓을 하지? 몇 번이고 말했듯이, 편하게 길을 찾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야. 귀찮게 굴지 말고 짜증 나는 면상 치워라.”

“누군 네 느끼한 면상 상대하는 게 좋은 줄 알고? 하는 짓이 하도 치졸하길래 좀 알아 두라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똑같은 반지를 나눠 낀 게 싫었을까. 역시 여성향 게임에서 반지의 존재란 참으로 뜻깊은 것이다.

카델은 반지가 루멘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살벌하게 으르렁대던 반의 표정을 떠올렸다. 순한 강아지처럼 상태를 걱정하던 녀석이 한순간에 돌변하는 모습이란.

슬쩍 주위를 둘러보자, 티격태격하느라 바쁜 이쪽을 제외하고는 전부 되돌아가는 분위기였다. 벌써 밤이 깊었으니 다음 날에 수색을 재개하려는 듯했다.

흥분한 반에게서 정보를 빼내는 것을 포기한 카델이 빠르게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저 사람이 상관인가 본데.’

가르엘이 없는 현재, 기사단을 통솔할 수 있는 인물은 몇 없다. 카델은 기사단을 정렬시킨 채 이쪽을 힐끔거리는 한 남자를 주시했다. 필시 저 남자가 부단장일 것이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카델이 주저 없이 그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적린 용병단의 단장, 카델이라고 합니다.”

불쑥 등장한 카델이 손을 내밀자, 잠시 멈칫한 그가 엷은 미소와 함께 손을 마주 잡았다.

“황혼 기사단의 부단장, 모들렌 니아스타입니다. 저희 단장님께 무사히 치료를 받으신 모양이군요.”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뇨,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모시는 상관에 비할 바가 못 되는 뛰어난 인성이다. 카델은 정중한 인사와 소개를 마치곤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마족 추적엔 진전이 없는 겁니까? 상당히 강한 마족입니다. 방치했다간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닐지 몰라요.”

“오랜 시간을 쏟았지만 이렇다 할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카델 경께서 마지막까지 마족을 상대하셨죠. 녀석의 특징이라든가, 단서가 될 만한 정보가 있을까요?”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이지만, 그래도 직접 들으니 암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수색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니.

‘자취 하나 찾지 못했다는 건가. 그래. 이쪽도 라이돈이 없었다면 이상한 곳을 헤매느라 시간 낭비만 했겠지.’

그 말은 즉, 라이돈이 없는 현재. 그들은 이상한 곳을 헤매며 시간 낭비를 할 확률이 대폭 상승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카델은 모들렌에게 마족의 구체적인 특징과 그가 구사하는 기술들을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공유해 수색의 범위를 넓혀야 했다.

“……짐작했던 것보다 까다로운 상대군요. 아무래도 저희 단장님을 불러와야 할 것 같습니다. 카델 경도 오늘은 물러나시고, 내일 아침이 밝는 대로 함께 움직이시죠.”

물론 황혼 기사단과 함께 움직일 생각이다. 마족을 발견했을 때, 다 함께 몰아붙이는 편이 훨씬 빠른 토벌이 가능할 테니.

하지만 카델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조금 더 수색해 보겠습니다. 아침까지는 마을에 돌아갈 테니, 그때 보시죠.”

힘닿는 데까진 라이돈을 찾아봐야 했다. 그의 팔다리가 멀쩡히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태평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남은 시간 14 : 10 : 20」

시간이 촉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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