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521)

다툼이 있었다 해도 수색은 계속되어야 했다. 카델은 피곤한 낯으로 불덩이를 움직여 앞을 밝혔고, 반은 그의 곁에서 묵묵히 주변을 살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지독한 침묵. 먼저 고요를 깨뜨린 것은 반이었다.

“전 단장이 자책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던 건지, 대뜸 말한 반이 걸음을 멈췄다. 함께 멈춰 선 카델이 고개를 돌리자, 작은 불꽃에 비친 황금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반짝였다.

“……달래 주지 않아도 돼.”

“단장이 어떤 정보를 알고 있든, 그걸 부하에게 알리든 숨기든. 그건 전부 단장의 권리죠. 뭘 선택하셔도 전 실망하지 않아요. 단장의 선택이니까.”

성큼 다가온 반이 손을 뻗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힘없이 늘어진 카델의 손을 움켜쥐었다. 투박하지만 조심스러운 손길이 카델의 손등을 쓸어내리고,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졌다.

“단장을 믿어요. 단장도 절 믿어 준다면 좋겠지만, 그 믿음을 만드는 건 순전히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단장은 이미 제게 믿음을 줬으니, 그 보답은 제 몫이라고요. 그러니까…….”

반지를 담아내던 시선이 천천히 올라가고. 단단한 눈빛이 카델의 지친 얼굴을 달래듯 훑어내렸다.

“단장의 판단을 사과할 필요 없어요. ……적어도 제게는요.”

조용하고 분명한 목소리에, 카델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 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반을 마주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들킬까,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대로 푹 고개를 숙이자 어디가 아픈 거냐며 반이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나처럼 엉망인 단장은 없을 거야.”

“네? 단장처럼 완벽한 사람이 어딨다고 그런 망발을 하세요?”

보호자를 자처한 주제에 라이돈을 위기에 빠뜨렸다. 이미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마음껏 의지했으면서, 정작 루멘에게는 최소한의 신뢰도 보이지 않았다. 리더십이라곤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한 인간이다.

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했다. 진짜 카델 라이토스라면 이따위로 일을 그르치진 않았을 텐데.

“단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완벽해요.”

하지만 유일하게 ‘진짜’ 카델 라이토스를 경험했던 반이 저렇게 말해 주니…….

“……노력할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그래도, 노력할게.”

최소한 한 번 꼬였다고 매듭을 내팽개치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일을 전부 그르치는 것이야말로 한심한 짓이었으니까.

꽉 막힌 폐부에 깊게 숨을 들이마신 카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평소처럼 웃어 주는 반을 위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내 부하가 된 걸 후회하지 않게 해 준다고 했으니까.”

⚔️

반 덕분에 심란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한결 침착해진 카델은 무의미한 수색을 계속하면서도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전장이었던 황야를 제외하곤 놀라울 정도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어. 에르고는 몰라도 라이돈이 흘린 핏자국조차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눈을 가린 손을 타고 흘러넘치던 핏물이 아직도 생생한데. 황야를 지나 또 다른 숲에 진입하고, 그 숲을 지나 새로운 평원을 발견할 때까지. 핏자국은커녕 발자국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점액으로 이루어진 늪을 통해 모습을 숨기곤 하는 녀석이니 흔적을 지우는 일엔 능통하겠다만, 그래도 이건 정도를 넘었다. 라이돈과 수색을 했을 때만 해도 피가 섞인 점액을 토해 냈던 놈이다. 이쪽과의 전투로 타격을 입었을 게 분명한데.

‘신중한 놈이야. 라이돈까지 확보했으니, 최대한 몸을 사리고 싶겠지. 나였다면…… 내가 에르고였다면 어디에 숨었을까.’

늪을 만들어도 눈에 띄지 않는 장소? 이 부근엔 숲과 탁 트인 평원뿐이다. 굳이 찾는다면 숲 어딘가에 있을 굴 정도일까.

하지만 늪은 냄새가 지독하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에 그런 늪을 만들었다간 악취가 사람들을 이끌었겠지. 그렇게 허술하게 몸을 숨겼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주민들의 마물화를 기다리면서 마을 근처에 터를 잡고 있던 놈이었어. 귀찮게 굴던 적이 자멸했는데 굳이 멀리 이동할 필요는 없겠지.

조금만 기다리면 주민들은 마물이 될 테고, 에르고는 그들을 이용해 편안히 싸움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수족이 늘어나니 세력을 불리는 일도 훨씬 편하게 할 수 있겠고.

조금만 버티면. 불편하게 몸을 숨긴 채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

‘냄새 걱정 없이 늪을 만들 수 있고, 마물화가 끝나는 즉시 가장 빠르게 합류할 수 있는 장소.’

신중하게 고민하던 카델의 눈에 일순 이채가 스쳤다. 다급한 목소리가 반을 불러 세우며, 표정을 굳힌 카델이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바스킨 마을로 돌아가야 해. 지금 당장!”

이미 마족의 악취로 가득한, 마물화가 진행 중인 인간들과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장소. 그런 곳이 바스킨 마을을 제외하고 있을 리 없었다.

⚔️

“전군!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주민 보호에 집중하라! 지명한 기사는 즉시 수색 작업에 합류하도록!”

모들렌의 명을 따라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가 지명한 다섯 명의 수색조는 모들렌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모들렌의 옆에는 루멘이 있었다.

“주민들의 마물화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는데, 그 마족이 바스킨 마을에 잠복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상황은 처음부터 긴박했습니다. 가르엘 경은 오고 있는 겁니까?”

“단장님껜 한참 전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중요한 정보는 듣지 못하시겠지만, 심각성은 얘기해 두었으니 곧 오실 겁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루멘이 버릇처럼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무감한 시선이 마을 저편으로 길게 뻗은 붉은 실을 응시하고 있었다.

빠른 수색 재개를 위한 모들렌 설득에 열을 올리던 중, 카델과 반이 바스킨 마을에 복귀했다. 벌써 수색을 포기한 것인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카델은 마족이 바스킨 마을 내부에 숨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만 툭 던져 놓고는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마을을 들쑤시러 떠나 버렸다.

바로 카델을 뒤따를 수도 있었으나, 루멘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카델보단 모들렌의 옆에 있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

“가르엘 경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까?”

“아뇨, 그럴 순 없죠. 한시가 급하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일단 가까운 민가부터 수색해 보죠.”

인간이 마물로 변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 이상 감정에 휩쓸리는 건 사치였다. 완벽하게 표정을 지운 루멘이 모들렌을 따라 마족 수색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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