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521)

에르고의 전신을 포박한 전류. 사정없이 몸을 옭아매는 전류를 따라 에르고의 살갗이 타들어 가며 발작적인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 아아아악! 애송, 애송이가……!”

미친 듯이 경련하는 그의 입 밖으로 보라색 핏물이 한 움큼 튀어나왔다. 뒤집어져 초점이 사라지고 돌아오길 반복하는 눈동자가 살기를 품은 채 카델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네가 강한 건 인정한다만, 나도 본실력을 전부 발휘했던 건 아니라서.”

시간을 끌며 지원군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이곳은 사방이 원군이며, 함께 있는 이 또한 실력 출중한 기사단의 부단장. 처음 에르고를 마주했을 때보다 부담이 훨씬 줄어든 상태였다.

카델은 지하의 늪에서 폭발적으로 솟아오르는 점액으로부터 모들렌을 보호하며, 에르고의 견제도 멈추지 않았다. 에르고는 통구이가 되어 가는 와중에도 기함할 만한 집중력으로 마력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몸을 적신 점액이 일시적인 장막이 되어 충격을 완화시키는 듯했다.

“죽…죽여 주마!”

“두 번은 안 당해.”

여러 가지 생각할 것 없이,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한 마법을 구사하기는 쉬웠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술식이 선과 선을 더해 가며 점차 복잡한 형태를 띠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3속성의 동시 시전 마법. 에르고를 완벽하게 죽일 수 있는 마법이었다.

후우웅—

에르고의 주위로 고요한 바람결이 모여들었다. 서서히 속도를 높인 바람이 나선형으로 휘몰아치고, 매서운 회오리가 되어 돌풍을 일으켰을 때.

불꽃이 피어올랐다. 맹렬한 바람을 따라 급격히 번져 오른 불씨.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거대한 [불 회오리]가 단숨에 에르고를 집어삼켰다.

주륵, 코피가 흘렀다.

에르고가 심어 둔 독은 사라졌으나, 아직 그 후유증에서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휴식 하나 없이 강행군을 지속했으니. 아무리 7성의 경지라 한들, 저질 체력을 자랑하는 카델에게 이 정도 마력의 운용은 결코 여유로운 일이 아니었다.

‘무조건 이곳에서 죽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카델은 흘러내리는 코피를 닦아 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양팔을 뻗어 최대 출력의 마력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런 카델의 엄호 아래, 모들렌은 늪이 숨겨진 지하에 도달했다.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부글거리는 늪이 끊임없이 점액을 토해 냈으나, 전부 그를 감싼 장막에 가로막혔다.

수월하게 늪의 앞까지 도착한 모들렌이 자신이 내려온 구멍 너머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샌가 나타난 불 회오리가 바로 위에서 뜨거운 숨결을 토해 내고 있었다.

강대한 마법임에도 주변에 끼치는 피해는 전무하다. 정확히 목표물만을 집어삼키는 세밀한 컨트롤.

‘이런 실력의 마법사가 일개 용병단을 이끌고 있을 줄이야…….’

그 유명한 루멘 도미닉을 수하로 두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궁금했던 실력이, 이로써 확실해졌다. 그는 등을 맡겨 볼 만한 남자다.

“그렇다면 이쪽도 확실하게 제 몫을 끝내야지.”

모들렌이 검을 치켜들었다. 선명한 빛의 마력이 검날을 둘러싸며 날카로운 공명음을 내뱉었다.

‘단숨에 부술 수는 없다. 카델 경을 믿고 차분하게 해제해야 해.’

그는 검술과 마법을 결합하여 싸우는 성기사. 순수하게 마력만을 다루는 마법사보다 마법진의 해제가 더딘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흐읍!”

한계까지 마력을 응축시킨 모들렌이 그대로 검신을 늪 위로 처박았다.

꾸루룩. 꾸룩. 끄르르르.

늪이 모들렌의 마력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듯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늪의 반항이 거세질수록 검날이 품은 빛은 점차 밝아져 갔다.

마족은 카델에게 맡긴다.

모들렌은 이 늪을 파괴하는 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

정말이지, 지금껏 상대해 온 마물이 몇인데. 황혼 기사단에 루멘 도미닉까지 합류한 인원이 마족 하나를 못 잡아서는, 기어코 도움의 손길을 뻗어 온단 말인가.

바스킨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르엘은 그리 생각했었다.

아직도 단장에게 의지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구나, 슬슬 포기해야 할 텐데, 하고.

“……평범하게 놀라도 되는 상황인 거죠?”

가르엘은 좁은 민가 하나에 옹기종기 누워 있는 의식 잃은 주민들과, 너덜거리는 몸을 끌고 치유술을 받는 자신의 부하들, 마찬가지로 꽤 격한 전투를 치른 듯 만신창이가 된 루멘을 돌아보며 헛숨을 내뱉었다.

치유술을 받던 루멘이 가르엘에게 짧은 시선을 두었다가, 그대로 거뒀다. 설명할 여력도 없다는 기색이었다.

부하들은 부상자들과 다 죽어 가는 주민들에게 치유술을 쏟아붓기 바빴고, 여기저기서 괴로운 신음성이 들려와 익숙한 전장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을 살펴보던 가르엘에게로 곧 한 기사가 달려왔다.

“가르엘 단장님! 드디어 오셨군요!”

“그래, 밀로우. 분명 마족 하나를 추적 중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지……. 나도 모르는 새에 마계의 봉인이 풀리기라도 한 건가?”

“전부 마족 한 놈이 벌인 짓입니다…….”

밀로우라 불린 기사는 어김없이 챙겨 온 술을 개봉하려는 가르엘의 앞을 다급히 막아섰다.

“단장님, 전서조가 전하지 못한 정보가 있습니다. 마족은 바스킨 마을 안에 은신 중이었고, 현재 모들렌 경과 적린 용병단의 단장이 상대하고 있습니다.”

“모들렌과 용병단장이?”

용병단장이라면 자신이 치료해 주었던 예쁘장한 마법사가 아니던가.

가르엘은 다시 한번 처참하게 늘어진 부하들과 루멘을 둘러보며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만한 인원이 개박살 났다. 그런데 갓 회복한 몸으로 마족을 상대하고 있다니……. 터프하네, 터프해.’

처음 대화했을 때도 느꼈지만, 생긴 거완 영 딴판으로 노는 유형이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지원을 서둘러야겠군. 밀로우, 전투 가능한 인원을 추려. 루멘 경의 치유도 되도록 서두르고. 혹시 내가 더 알아 둬야 할 정보가 있나?”

“……있습니다.”

밀로우가 신중히 입을 열었다.

황혼 기사단원 스텐의 죽음과 주민들의 마물화. 줄줄이 이어지는 묵직한 정보에, 가르엘의 얼굴에서 조금씩 웃음기가 사라졌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