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521)

최우선은 주민의 보호였다. 그를 위해 모들렌을 포함한 황혼 기사단은 바스킨 마을의 외곽을 둘러싸는 보호 진형을 택했다.

최전방의 기사단이 뚫리면, 다음 차례는 용병단이었다. 용병단은 심핵을 사수하며 마물의 침략으로부터 임시 주둔지를 지켜야 했다.

우오오오—!

대기를 울리는 마물의 포효 소리와 점점 격해지는 땅울림. 모들렌의 우렁찬 호령과 기사단의 기합.

바스킨 마을을 뒤덮는 거대한 빛의 장막을 바라보며, 카델이 마른침을 삼켰다.

“단장.”

결연하게 장막을 바라보는 카델의 옆으로, 반이 다가왔다. 미리 오라를 끌어 올렸는지 반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물이 최전방 방어선을 부수고 침입한다면, 첫 시작은 제게 맡겨 주세요.”

반은 자신의 부탁이 거절당할까 불안한 기색이었으나, 카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반 헤르도스는 피를 다루는 광전사다. 몰려오는 마물이 전부 언데드인 참극이 벌어지지 않는 한, 마물 학살에 반보다 유리한 기사는 없다.

카델의 허락에 반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은 못 하겠다. 다들 인지하고 있듯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 반이 상대하는 동안 루멘은 심핵 보호에 집중하고, 라이돈은 임시 주둔지로 새어 나가는 마물을 처리하도록 해.”

“그러지.”

“봉인만 없었어도 싹 다 쓸어버렸을 텐데!”

최고의 시나리오는 황혼 기사단의 선에서 마물을 전부 토벌하는 것이지만, 카델은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에르고 토벌과 치유술에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어. 본실력을 발휘하긴 힘들겠지.’

마물 군단의 1/3이라도 처치해 준다면 다행이다. 그들이 놓친 마물은 전부 용병단의 몫인 만큼, 카델이 느끼는 긴장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묵직했다.

그리고.

쿵—

크게 진동하는 장막. 귀를 찌르는 듯한 마물의 괴성과 기사단의 함성이 뒤섞이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시작됐군.”

루멘이 장검의 위로 손을 올렸다. 그의 임무는 심핵의 사수.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를 가진 만큼, 그의 책임은 막중했다.

심핵을 빼앗기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루멘의 오감이 예리하게 곤두섰다.

⚔️

“막아라! 한 마리도 살려 둬선 안 된다!”

모들렌이 검날에 맺힌 빛의 마력을 흩뿌리며 외쳤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도 보이지 않는 마물의 행진. 지평선마저 가려 버린 적군의 돌격은 그야말로 검은 바다를 보는 듯했다.

‘고블린, 오우거, 오크, 와이번……. 종류별로 모여 있어. 원래라면 함께 행동할 리가 없는 독립적인 종족들이다.’

겁도 없이 달려드는 고블린의 머리를 베어 낸 그가 곧장 정면을 향해 X 자 형태의 검기를 날렸다. 교차한 검기에 닿은 마물의 몸뚱이가 네 갈래로 갈라지며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심장 하나만 달랑 남은 상태로 이 정도 규모의 마물 군단을 이끌 수 있다니. 그렇게나 강한 마족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부활하게 놔두어선 안 됐다.

“우측! 우측이 뚫렸다!”

“막아!”

마물 한 마리 한 마리의 공격력은 약했으나, 문제는 숫자였다. 최소 삼백 마리의 마물이라 했던가? 그건 말 그대로 최소였다.

모들렌은 먹구름처럼 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와이번을 향해 검을 조준했다. 그리고 그들이 불꽃을 뿜어내는 순간, 화염을 통째로 갈라내는 검기를 쏘아 날렸다.

후끈하게 끼쳐 오는 열풍. 추락하는 와이번을 확인한 모들렌이 외쳤다.

“기사단! 성검술 제5식을 전개하라!”

“예!”

미리 준비해 두었던 대로, 성검술의 전개를 맡은 여섯의 기사가 한데 모였다. 둥글게 뭉친 기사들의 검끝이 하늘을 향하고. 한 점에 모인 검끝의 위로, 새하얀 빛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술식을 전개하는 기사들의 검에서 날카로운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나머지 기사들은 동료에게 달려드는 마물을 베어 넘기고, 장막 위로 몸을 내던지는 놈들의 가슴을 꿰뚫었다. 전장은 빈틈없이 우글거리는 마물 떼와 그 사이를 파고드는 빛줄기의 충돌로 연신 번쩍거렸다.

“전개의 속도를 높여! 완벽할 필요 없다. 완성도를 떨어뜨려서라도 최대 횟수를 늘리도록!”

모들렌은 안면으로 내리꽂히는 오우거의 주먹을 검의 면으로 막아 내고는, 그대로 힘을 주어 밀쳐 냈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오우거. 빈틈을 놓치지 않은 그가 그대로 오우거의 목에 검을 꽂아 넣고. 뜨끈한 핏물이 얼굴을 적셨다.

손등으로 눈가의 피를 닦아 낸 모들렌이 입을 앙다물었다. 채 몇 분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마물 수십 마리를 베어 넘겼다. 끝이 보이긴커녕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마물이 전부…….’

후방을 노리는 고블린의 복부를 팔꿈치로 찍어 올리며, 그가 인상을 구겼다.

‘놈은 여태 인간을 마물로 변화시켜 세력을 늘려 왔을 겁니다. 지금 몰려오는 마물이 과거엔 전부 인간이었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가정이죠. 마계 봉인 이전부터 수하를 거느리던 놈이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카델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지금 기사단을 위협하는 마물은 전부 본래 인간이었다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그의 추측엔 큰 구멍이 있었다.

이토록 많은 인간이 전부 마물이 되어 버렸다면, 국가들이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 진즉에 알아차리고 대책을 세웠겠지. 하지만.

‘만약 마계 전쟁을 치를 당시의 민간인이라면……. 그 혼란 속에선 국민들이 마물로 변한 건지, 마물에게 죽임당한 건지 알 도리가 없었겠지.’

그렇게 아무도 원통함을 알아주지 않은 채 마물이 되어 버린 국민들은 까마득한 세월을 마물로 살아가며, 인간의 영혼을 빼앗긴 채 버텨 왔을 것이다.

‘참을 수 없이 역겹다.’

본체가 인간이었다 해도, 아니, 인간이었기에 더욱. 모들렌은 자비 없이 그들을 도륙했다. 치욕에 빠진 영혼에게 안식을 주고 싶었다.

“부단장님! 준비됐습니다!”

핏물로 범벅이 된 고개를 돌리자, 술식의 전개를 마친 부하들이 보였다. 치켜든 검에서부터 뻗은 한 줄기의 또렷한 섬광이 하늘 높이 이어져 있었다.

모들렌은 와이번이 밀집된 방위를 가리켰다.

“주변의 피해는 신경 쓸 것 없다! 최대 범위를 출력해 와이번을 격퇴하라!”

기사들의 검끝이 천천히 움직였다. 조정되는 각도를 따라 뻗친 빛줄기의 궤도가 바뀌었다. 굵직한 섬광은 곧 화염을 뿜어 대는 와이번 무리를 가로지르며 정지했다.

완벽한 조준을 확인한 모들렌이 외쳤다.

“발사!”

키이이잉—

한 점에 밀집한 검끝에 폭발적인 마력이 모여들었다. 와이번 무리를 가로지르는 빛줄기가 점점 환해지며, 동시에 진동했다. 이상을 감지한 와이번이 빛줄기를 피해 흩어지려 했으나.

당연하게도, 그들의 움직임은 빛보다 빠르지 않았다.

[성검술 제5식, 대섬광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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