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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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 00 : 35 : 30」

카델은 바닥에 주저앉아 가르엘의 신호를 기다렸다. 맞은편에 있는 것은 그새 다리 하나가 더 자라난 에르고의 심핵.

‘분명 퀘스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30시간 넘게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 버린 걸까.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못하고 개고생을 반복했음에도, 이판사판의 최후를 맞닥뜨렸다는 사실이 조금은 억울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자.”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적어도 마지막 스토리를 진행할 때에나 써 보지 않을까 짐작했던 마법. 마밀이 ‘죽고 싶을 때 써 봐라.’라며 알려 주었던, 최대 위력 최대 부담의 궁극기.

[폭혼(爆魂)]

‘내 궁극기를 알려 달라고? 기본도 안 된 놈이 욕심만 많아서는. 알아 봤자 쓸모도 없는 걸 왜 배우려 해?’

‘하지만 마밀 님, 정말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써 볼 만한 궁극기 하나 정도는 알아 둬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지금의 저는 마밀 님이 발가락으로 피우는 불꽃보다 미약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배워 두면 언젠가는―’

‘에이잇, 시끄럽다! 알았으니 그만 떠들어.’

마밀을 언제 다시 만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동안 어떤 일을 겪을지도 모르니 카델은 최대한 다양한 지식을 배워 두고 싶었다. 그 때문에 마밀의 궁극기를 알아내려 한 것이었으나, 막상 전수받은 궁극기는 풋내기 마법사에겐 어림도 없는, 그야말로 ‘대마법’이었다.

‘이게 정말 가능한 마법이에요……?’

‘아무나 할 수 있으면 그게 궁극기일까. 말했잖느냐. 지금 네 수준이라면 죽고 싶을 때 가장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마법이 될 거라고. 내게도 버거운 마법이다. 함부로 남발할 수도 없지.’

‘그래도 만약 성공한다면, 어마어마한 피해를 줄 수 있겠어요.’

‘허튼 생각 마라. 만약 네게 천운이 따라 흉내를 성공했다 해도, 그 충격은 상당할 거야. 죽지 않더라도 죽기 직전일 테고, 자칫하면 체내의 마력이 전부 소진되겠지. 그 마력이 되돌아올지, 영영 사라질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다.’

마밀이 일부러 겁을 주기 위해 이야기를 부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당연히 벌어질 일을 알려 줬을 뿐이었다.

그러니 만약 [폭혼]이 성공한다고 해도, 자신의 최후는 장담할 수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그때보다 내 경지가 한 단계 높아졌다는 것. 그리고 가르엘 몬자시의 존재다.’

숨만 붙어 있다면 가르엘은 무엇이든 살려 낼 수 있다. 이렇게까지 희생하는데 모른 척 발을 빼진 않겠지.

최소한의 보험이었다. 카델은 최악의 결말을 면할 만한 가정을 거듭하며, 어느새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 위에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줄기의 빛이 하늘을 갈랐다. 지원군을 만났다는 가르엘의 신호였다.

“…….”

카델은 덜덜 떨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찬찬히 호흡했다. 끊임없이 떨쳐 내려 노력했던 불안감이. ‘혹시 모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사실은 전부 관두고 도망치고 싶었다. 자신이 죽는 것보다 주민들이 마물이 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서웠다. 만약 ‘카델 라이토스’의 육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그릇에 담긴 자신의 영혼 또한 죽게 되는 걸까.

“……정신 차려.”

온 정신을 집중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마법이다. 의심과 공포는 밀어 두어야만 했다. 이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으면, 무조건 성공시켜야 했다.

몰아치는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듯 눈을 감았다. 꾸역꾸역 잡념을 몰아내고,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예민해진 감각. 짙은 피 냄새와 탄내, 텁텁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깊은 의식 저 너머에서부터, 마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 안의 모든 마력을 한 점에 모아라. 모든 기운을 그 한 점에 모아, 육체가 가진 두 번째 혼으로 만드는 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모든 마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되, 스스로를 보호할 마력은 분리해 둬야 한다는 거다. 몸을 보호할 최소한의 마력만 말이지. 알아듣겠느냐?’

그의 가르침을 따라 순환하는 마력을 끌어모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뻗쳐 있는 마력의 흐름을 거스르고, 중단전으로 당겨 왔다.

‘모든 것을 불태우되, 생의 집착은 버리지 말라는 소리다.’

잘 이해가 가진 않았다. 모든 마력을 쏟아부으라면서 몸을 보호할 마력은 따로 빼 두라니. 모든 걸 불태울 각오로 임하라면서 그럼에도 살고자 하라니.

복잡했으나, 카델은 차근차근 나아갔다.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도, 그를 둘러싼 대기가 작게 진동하고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눈을 뜬 카델의 앞으로, 티끌처럼 자그마한 불덩이가 떠올랐다. 그의 모든 마력이 응축된 하나의 점.

모든 것을 불태울 혼이었다.

「남은 시간 00 : 02 :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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