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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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델이 의식을 잃은 나흘 동안, 루멘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눈을 뜨니 자신은 화이트 왕실의 객실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었고, 카델과 반 역시 각자 다른 방에서 집중적인 치유술을 받고 있었다.

그가 가장 먼저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 깨어난 뒤엔 곧장 국왕을 알현했고, 그 후엔 가르엘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었다.

카델이 있다는 별채를 찾아간 것은 그다음이었다. 깨어난 뒤 내내 좋지 못했던 속은, 죽은 것처럼 곤히 잠든 카델의 얼굴을 보고는 더욱 쓰리게 꼬였다.

가르엘의 말을 따라 ‘죽다 살아난’ 카델은 겉보기엔 딱히 살아난 것 같지도 않았다. 밀랍 인형처럼 생기 없이 희게 질린 피부와 굳게 다물린 입술. 티도 안 나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을 보면 더더욱 그랬다.

그의 곁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죽은 듯 잠든 카델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숨쉬기가 어려웠다. 그를 대신해 죽어 가는 기분이었고, 그런 기분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카델의 침실을 찾았다.

라이돈을 발견한 것은 이틀째로, 나름대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는 노력은 하는 것 같기에 카델과 함께 있도록 놔두었다. 억지로 떨어뜨린다고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 되던 날.

“……깨어났구나.”

드디어 카델이 의식을 되찾았다.

깨어난 그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 몇 날 며칠을 고민했으나, 카델이 눈을 뜬 지금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만약 할 말을 정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장?”

“루멘, 나—”

정작 누워 있어야 할 카델은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고, 주인을 쫓아낸 라이돈이 눈부신 날개를 자랑하며 팔자 좋게 누워 있다. 그 자체로도 이상한 광경이었으나, 더 이상한 것은 카델의 반응이었다.

그는 칼에 찔리기라도 한 듯 괴로운 얼굴로 본인의 오른손을 들어 보이더니, 곧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아.”

그 순간만큼은 태평하게 쿠키를 베어 물던 라이돈조차 동작을 멈췄다. 두 남자의 굳은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텅 빈 손을 맥없이 늘어뜨린 카델이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루멘은 반사적으로 그에게 달려갔다. 웅크린 카델의 어깨를 감싸자 잔떨림이 느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뭘 해도 마력을 끌어낼 수가 없어.”

“갑자기 왜…….”

문득, 루멘의 머릿속을 스치는 가설 하나.

‘설마, 그 마법 때문인가?’

마을은 물론 그 주변의 숲까지 모조리 불태웠다. 지독한 열기는 하루를 꼬박 새우고도 사라지지 않아, 조사를 위해 이동한 기사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만한 위력의 마법이다. 카델은 분명 대단한 마법사지만, 그런 마법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룬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루멘의 예상은 적중했다.

‘만약 네게 천운이 따라 흉내 내기를 성공했다 해도, 그 여파는 상당할 거야. 죽지 않더라도 죽기 직전일 테고, 자칫하면 체내의 마력이 전부 소진되겠지. 그 마력이 되돌아올지, 영영 사라질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다.’

카델은 마밀의 경고를 떠올렸고, 참담한 현실에 절망했다.

‘쓰러진 나흘 동안 마력이 돌아오지 않은 거야. 영영 사라진 건가? 정말 이렇게 능력을 잃는다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물론 이런 일을 아예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목숨만 붙어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그야, 카델 라이토스니까.

‘이럴 순 없어. 말도 안 된다고.’

번쩍 고개를 치켜든 카델이 ‘내 정보 창’을 열었다.

<카델 라이토스>

칭호 : [7성 마법사], [적린 용병단장], [스모그 평원의 용병], [검은 그림자를 막은 자], [마족 살해자]

마법 속성 : 불(10), 바람(20), 번개(10)

보유 장비 : [인벤토리 확인]

보유 기사 : 반 헤르도스, 라이돈

기사단 코스트 : 9/10

보유 자본 : 125골드 20 실버

진행 중인 퀘스트 : -

명성도 : 57/100

차근차근 프로필을 훑어본 카델이 다시 상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주목한 것은 칭호였다.

‘아직 7성 마법사 타이틀을 잃지 않았어.’

만약 자신이 완전히 마력을 잃은 거라면, [7성 마법사]라는 칭호도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 아직 속단하기는 일러.’

만약 정말 마력을 잃어 일반인이 된다고 해도. 그의 목표는 여전히 스토리의 끝을 보는 것이었다.

마법사로 살 수 없다면 지금부터 몸이라도 단련해야 했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방법이 있을 거야.”

그렇게 카델이 홀로 마음을 다잡고 있을 무렵.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난 루멘이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카델을 바라보는 눈빛이 단단했다.

“내가 찾아볼게. 마력을 되찾을 방법.”

죽일 듯 시스템 창만 노려보던 카델의 시선이 그제야 움직였다. 빳빳하게 긴장한 근육이 풀어지며 참았던 숨이 새어 나왔다.

‘……예전이었다면 내 무능함에 부하들이 떠나진 않을까, 그것부터 걱정했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왜인지 반과 루멘만큼은. 자신이 모든 힘을 잃고 원점으로 돌아간다 해도, 여전히 곁을 지켜 줄 것만 같았다.

‘라이돈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평범한 인간은 재미없다며 탈주해 버릴지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금세 다시 불안해졌다.

라이돈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잠시 내려 두었던 쿠키를 다시 베어 물었다. 턱을 움직이는 얼굴이 오묘한 표정으로 물들고 있었다. 느긋하게 씹던 것을 삼킨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었으나, 바로 그때.

“음? 문이 열려 있네요?”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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