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521)

「퀘스트 성공 확률: 41%」

그렇게 빠른 속도로 상승한 기여도가 40%를 돌파했을 때.

“용병단장! 그쪽 부하는 안전한 곳에 옮겨 두었네. 치유사가 도착하는 대로 상태를 봐줄 테니, 관문은 기사들에게 맡기지. 어서 대대장들에게 안내해 주게.”

소린이 돌아왔다. 그 무렵 관문을 두드리는 레드 맨은 고작 여섯 마리 남짓이었다. 전부 카델의 손에 죽은 것이다.

소린은 그 짧은 사이에 모조리 도륙당한 마물의 시체를 일별했다. 물론 마법사는 광역기에 특화된 인재였으나, 그 과정에서 관문에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나 대단했다.

완벽하게 마물만을 노린 마법. 이 정도의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한 마법사는 제국 내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또다시 느껴지는 기시감에 소린의 미간이 작게 구겨졌으나, 이번에는 카델이 그의 생각을 가로막았다.

“제리엘 경은 마법진 근처에, 드레프 경은 마법진의 동쪽 방면으로 이동하면 보일 겁니다. 저는 제 부하가 있는 마법진 쪽으로 가 볼 테니, 먼저 드레프 경을 구해 주십쇼.”

드레프가 있을 방향을 가리킨 카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법진을 향했다. 미끄러운 빙판을 성급히 녹여 가며, 몇 번씩 발을 헛디뎠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그렇게 마법진 앞까지 도착했을 때.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지독한 한기와 함께, 강한 마기가 끼쳐 왔다.

거친 눈보라와 마기가 한데 섞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카델은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이 극악한 시야 속에서 어떻게든 라이돈을 찾아보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요정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중간중간 셀레브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형이 비쳤으나, 그뿐이었다.

“죽을 때가 되니까 드디어 좀 숨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빌어먹을 요정 새끼가…….”

신경질적인 셀레브의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멀어지길 반복했다. 카델은 그녀에게 들킬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차라리 셀레브의 주의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

예고 없이 눈보라를 뚫고 나온 무언가가, 카델의 허리를 낚아챘다. 순식간에 붕 떠오른 몸. 반사적으로 숨을 멈춘 카델의 시야 가득, 익숙한 얼굴이 들어찼다.

“라, 라이돈?”

온통 피 칠갑을 한 얼굴을 확인한 카델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를 꽉 끌어안은 몸은 온통 두꺼운 얼음에 뒤덮여 체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카델이 기겁하며 라이돈의 차가운 뺨을 매만졌지만, 조심스러운 손길에도 라이돈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라이돈, 괜찮은 거야? 일단 난 내려 두고 혼자 관문을 넘어가. 치유사가 온댔으니까, 반이랑 같이 치료를……. 라이돈?”

라이돈의 시선은 카델을 향하지 않았다. 여전히 말이 없고, 익숙한 미소도 짓지 않았다. 그제야 카델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탁해진 눈동자는 카델을 포함한 무엇도 비추지 않았고, 비행의 고도는 불안정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임에도 그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카델을 끌어안은 채 무작정 날아가고 있었다.

‘설마 의식이…….’

카델의 눈가가 짧게 경련했다.

라이돈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싸울 수도 없는 상태. 그런 상태에서 셀레브에게 접근한 자신의 기척을 감지했고, 그녀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 마지막 기력을 짜낸 것이다.

심장이 무겁게 박동했다. 라이돈의 날갯짓이 느려지며, 그들은 점점 지면과 가깝게 추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델은, 그들의 뒤를 쫓는 셀레브를 발견했다.

“감히 이 몸을 두고 도망가? 내 손에 죽기 전엔 절대 못 보내지. 나란히 찢어 주마!”

그녀 역시 몸 여기저기 생채기를 단 상태였다. 결코 멀쩡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으나, 라이돈을 쫓는 기세만큼은 여전히 팔팔했다.

카델은 셀레브가 풍기는 진한 살기를 느끼며, 가파르게 기우는 라이돈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가까이서 풍겨 오는 피 냄새와 희미하게 와 닿는 숨결. 그 짙은 죽음의 기운이 계속해서 카델을 자극했다. 빈사 상태로 셀레브의 손에 늘어졌던 반의 얼굴과 무의식에 빠진 라이돈의 흐린 눈동자가, 그의 안에 내재된 무언가를 가차 없이 두들겨 깨워 내고 있었다.

“지금 누가 누굴 죽인다고…….”

살의.

여태껏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소름 끼칠 만큼 강렬한 살의가 온몸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죽는 건 너야, 이 새끼야.”

“이 마법은 대체…….”

소린은 각각 바람과 얼음 장막의 보호를 받고 있던 드레프와 제리엘을 구조하는 데에 성공했다. 중태에 빠진 대대장들의 상태가 심각했기에, 근처에 있던 부하들에게 바로 그들을 넘겨주었다. 그 후 곧장 셀레브와의 전투에 돌입하려 했지만, 느닷없이 하늘이 어두워졌다.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그 안에서부터 내리꽂힌 굵직한 벼락이 마물 군단의 도열을 흩뜨렸다.

언뜻 분별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벼락은 아군을 완벽하게 비껴갔다. 일부러 궤적 안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아군이 벼락을 맞는 일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혼자만의 힘으로 저렇게 거대한 마법을…….”

전장의 중앙에는, 마치 용오름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불기둥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유연하게 휘어지는 화룡의 몸체를 휘감은 번개. 그것이 주위를 방전시키며 연신 번쩍였다. 눈부신 섬광과 뜨거운 열풍이 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뇌화룡(雷火龍)]

카델의 모든 마력 속성을 끌어온 마법의 정수는, 셀레브를 확실하게 옥죄고 있었다.

똬리를 틀듯 휘어진 용의 몸체가 셀레브를 포위했다. 공격을 피해 높게 활공하는 그녀와 뒤를 바싹 추격하는 화룡. 그 어떤 공격에도 압도적인 무위를 자랑하며 상대를 가지고 놀던 셀레브였으나, 광범위하게 펼쳐진 전류와 화룡의 압박 속에서까지 자유롭진 못했다.

셀레브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동요는 멀리 선 소린에게까지 느껴졌다. 적이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어마어마한 살기군.’

상공을 수놓는 화룡의 유영, 전류의 파장, 궤적의 꼬리마다 잔상을 새기는 거대한 폭발. 그 모든 공격이 전부 셀레브 하나만을 향하고 있었다. 놀라울 만큼 광적인 집요함이었고, 주눅 들 만큼 서늘한 기세였다. 화룡은 연신 아가리를 벌리며 셀레브를 집어삼키려 들었고, 그때마다 괴성을 닮은 우레가 대기를 울렸다.

기가 질릴 만한 광경이었다. 광범위하게 펼쳐진 전류와 심한 열기 탓에 섣부른 접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같이 뛰어난 기사조차 틈을 찾기 힘든 전투인 것이다.

“……저건.”

잠시 셀레브와 화룡의 공중전에 시선을 빼앗겼던 소린의 눈길이 아래로 움직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화룡의 주인인 용병단장. 그리고 그의 뒤편에는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요정이 보였다. 얼핏 보아도 치료가 시급해 보이는 상태였으나, 화룡의 범위 속에 있기에 간단히 빼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셀레브로부터 요정을 보호하느라 전장의 한가운데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던 건가.’

아무도 화룡의 활동 범위 안에 몸을 던져 넣지 못했다. 용병단장은 요정을 보호하는 동시에 셀레브를 마음껏 공격할 여유까진 없는 것 같으니. 자리에 버티고 서서 셀레브가 요정을 노리지 못하도록 묶어 두는 것이 최선인 듯했다.

‘이렇게 전장 한복판에서 전투를 이어 가게 되면 아군의 유동성도 크게 제한된다.’

그렇다면 용병단장이 셀레브를 멀리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화룡을 뚫고 요정을 관문 바깥으로 옮기는 것이 유일한 대책. 판단한 소린이 날렵하게 장검을 빼 들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