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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성공 확률: 53%」
부지런히 상승하는 기여도 속에서도, 카델의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처음부터 죽여 버릴 걸 그랬지. 기여도다, 퀘스트다, 시시한 걸 따지면서 재고 있으니까 네가 이쪽을 우습게 본 모양이야.”
바닥이라곤 없는 것처럼 끊임없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마력관에 흐르는 한 줄기의 마력까지 남기지 않고 낚아챘다.
그 결과 카델은 셀레브를 압박하는 데 성공했고, 그녀의 육신에 잔인한 고통을 안겨 주었으나.
‘부족해. 한 끗이, 딱 그만큼이 부족하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카델은 약하지 않았다. 7성에 오른 유능한 마법사였으며, 경지를 넘어서는 뛰어난 재능까지 보유했다.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이상’의 화력이었다.
뇌전을 두른 화룡은 셀레브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있으나, 그를 죽일 순 없었다. 셀레브에게는 언제나 한 뼘만큼의 여유가 있었다. 카델의 공격은 셀레브의 살가죽을 파고들지언정 심장을 꿰뚫지는 못했다. 그 사실이 못 견디게 불쾌했다.
‘부하들이 완벽하게 치료받을 때까지, 아니, 그 전에 끝내야 해.’
준비되지 않은 전투에 반과 라이돈 모두 과도한 부상을 당했다. 그것이 카델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그는 책임감을 느꼈다. 자신이 스토리를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그들의 단장이 아니었다면. 이런 끔찍한 전투를 치르며 몸을 축낼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겨우 상처만 치료한 몸으로 다시 뛰어들게 할 수는 없어.’
그들은 소모품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희생되어도 좋을 편리한 장기 말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마지막 미래를 맞이할 동료였고, 자신은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들을 지키고 이끌어야 할 단장이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손으로 끝내리라.
“용병단장!”
차갑게 가라앉았던 카델의 시선이 움직였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던 격전지의 중심을, 누군가 파고들고 있었다.
소린. 그의 장검이 쇄도하는 벼락과 화염의 폭풍을 차례차례 베어 냈다. 우직하고도 강인한 검기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아갈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접근에 성공한 소린은, 망설임 없이 쓰러진 라이돈을 안아 들었다.
“요정은 내가 맡을 테니, 화룡을 외곽으로 끌어내 주게. 마족은 요청한 대대가 도착하는 즉시―”
빠르게 계획을 전달하던 소린이 일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신의 품에서 축 늘어진 라이돈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정은 분명 전장의 대지를 모조리 얼어붙일 만큼 심각한 폭주 증상을 보였다. 제리엘 역시 똑같은 폭주를 겪었으나 그는 요정의 도움으로 증상을 호전시켰고, 그러니 더 이상 전장에서 그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요정은 아니었다. 현재 이곳에서 폭주를 억누를 만한 마법사는 카델뿐이었으나, 그는 셀레브를 감당하느라 요정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도움을 받지 못했으니 요정의 폭주가 멈췄을 리는 없는데.
축 늘어진 요정의 몸에선 어떠한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땅을 뒤덮은 얼음도 전부 녹아 사라졌다.
“이자는 이미…….”
그의 육안으로 보았을 때. 요정의 가슴팍은 더는 오르내리지 않았고,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 위로는 옅은 숨결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죽었거나, 죽음이 목전인 상태. 그리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으나.
“소린 경.”
그를 질타하듯 매섭게 날아드는 부름은, 그 안일한 판단을 용납하지 않았다. 소린을 돌아보는 카델의 눈빛엔 숨이 막힐 정도로 묵직한 감정이 응축되어 있었다.
“제 부하는 죽지 않았습니다.”
유한 인상을 모조리 잡아먹으며 번뜩이는 진득한 분노. 그의 분노는 소린을 향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랬기에 더더욱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죽지 않았으니 살리십쇼. 책임지고 살려내십쇼. 제 부하를 살리지 못한 제국은, 제게 그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할 테니.”
그 말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제국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마족을 상대하는 이유는 오로지 정의감 때문이다. 마족이 관문을 부수고 침략에 성공한다면, 죄 없는 인간들의 떼죽음은 확정이었으니. 그걸 막기 위해 함께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부하와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를 정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그들의 후퇴는 배신이 아니었다. 관문을 지키는 역할은 제국의 기사들이지, 외부의 용병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그는 언제든 마족을 붙든 마법을 거두고, 쓰러진 부하들을 챙겨 도주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용병단장. 그대는.”
소린은 그의 에두른 협박에 분노하거나 수긍하는 대신, 천천히 부유하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지키고자 하는 존재가 있기에 제국은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쉬지 않고 의미를 찾거라. 제국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제국을 수호해야 할 이유를. 그것이 너희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가 처음 호계 기사단에 입단했을 적. 햇병아리에 불과한 기사들의 앞에서,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눈을 맞추며 격려해 주었던 한 남자. 그는 호계 기사단 소속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고, 황제에게 누구보다 신뢰받았으며, 제국의 모두가 우러러보던 이였다.
‘내가 제국을 아끼는 이유는 이곳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지.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제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나는 몇 번이고 사지로 뛰어들어 투쟁할 수 있어. 그런 가치가 있는 거다.’
젠가 라이토스.
소린이 그를 만난 것은 단 한 번뿐이었고,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 기억도 없으나, 그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어떻게 알아보지 못했나 싶을 만큼 닮았군.’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 두 남자의 눈 맞춤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동시에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뒤를 부탁하겠소.”
비행하는 마족과 화룡 사이에서 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레드 맨과 벼락을 피해 안전하게 길을 뚫을 수 있는 자 또한 마찬가지. 그러니 소린은 직접 라이돈을 관문 너머로 대피시켜야 했다.
카델은 소린의 말에 대답하지도, 라이돈과 함께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대신 지그시 입술을 깨문 채 화룡을 올려다보았다.
‘눈치챘구나.’
「퀘스트 성공 확률: 58%」
현재 기여도는 58%. 반절을 겨우 넘긴 상태였고, 이 시점에서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소린의 행동이 퀘스트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뒤를 부탁하겠다고 했으니, 당장 잡아가진 않을 거야.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그의 부탁대로, 셀레브를 전장의 외곽까지 끌어낸다. 목표 지점은 모든 것의 원흉인 마법진.
카델은 셀레브 격퇴와 마법진 해제를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