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악! 성가셔! 저 자식을 제일 먼저 죽여 버렸어야 하는 건데!”
모든 움직임이 제한됐다. 날갯짓 한 번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뿐인가? 그녀는 쫓기고 있었다. 고작 인간 하나가 만들어 낸 마법에, 우스운 꼴로 밀려난 것이다. 화룡이 자신을 점점 외곽으로 몰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이렇다 할 반항 한 번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화룡은 지치지도 않는지 번번이 아가리를 벌려 그녀를 집어삼키려 들었고, 공격을 회피하면 곧장 장막처럼 펼쳐진 전류의 파장이 드리웠다. 감전을 피해 몸을 물린 자리엔 또다시 화룡이. 무한 반복이었다.
마기를 두른 공격에도 화룡은 쉬이 타격을 받지 않았다. 아니, 타격을 받는 즉시 회복됐다. 마법사가 끝없이 마력을 퍼붓고 있는 탓이었다. 처음에는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적당히 방어하려 했으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 기억났다고. 오래전에 상대했던 2속성 마법사 놈. 그런 부류라 이거지.’
과거 셀레브가 다속성 마법사를 상대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나, 여태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강렬한 잔상을 남긴 존재였다. 2속성 마력의 조합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고, 성가셨고, 또한 끈질겼다. 그런데 이 건방진 인간은 무려 3속성의 마력을 구사하고 있으니.
‘빌어먹을 마력이 줄지를 않잖아!’
안 그래도 마법사는 쥐약인데. 한 놈을 처리했더니 더 끔찍한 놈이 튀어나왔다.
셀레브는 서슬 퍼런 눈으로 지면을 내려보았다. 마법진. 어느샌가 그녀는 마법진까지 내몰려 있었고, 카델은 마법진 위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할 작정인지는 굳이 지켜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게 얼마나 귀한 마법진인데. 그냥 부수게 둘 것 같아?”
절대 파괴되어선 안 됐다. 평범한 마법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계 공학의 정수였고, 세계 질서의 판도를 뒤엎을 혁명적 수단이었으며, 마족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저 마법진이 없으면, 자신은 마계로 복귀할 장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셀레브는 몸에 두른 마기를 극대화시켰다. 언제까지고 이 미친 마법을 따돌릴 순 없다. 마법을 피하고 싶으면, 그 시전자를 죽이는 수밖에.
작정한 셀레브가 매서운 기세로 화룡을 꿰뚫으며 하강했다.
*
[뇌화룡]의 유지와 마법진 해제, 셀레브 견제를 동시에 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나에 집중하면 하나는 빈틈을 보일 것이고, 그것은 곧 죽음과 직결됐다.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내놓아도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카델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뇌화룡]을 뚫고 닥쳐오는 셀레브의 살기에도 마법진 해제 작업을 멈추지 않은 것은, 한순간의 치기나 실수가 아니었다.
“죽……! 허? 뭐, 뭐야, 이거.”
셀레브의 주먹은 정확하게 카델의 머리를 가격했다. 위에서부터 내리꽂은 주먹은 응축된 마기로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보통이라면 스치는 것만으로도 머리 가죽이 뜯겨 나갈 터였다.
그러나 카델의 머리는 멀쩡했다. 셀레브는 카델의 서늘한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동안에도 가격한 부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타격 부위를 완벽하게 감싼 보라색 결정. 기분 나쁠 정도로 단단한 결정에선, 놀라울 정도로 강렬한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백날 때려 봐. 내가 해 봤는데, 절대 안 깨지더라.”
그것은 카델이 가진 비장의 한 수.
[불사의 심장]
에르고를 죽이고 얻어 낸 전리품이자, 20분이라는 시간 동안 카델의 목숨을 보장해 줄 마족의 심장이었다.
“이 자식이…….”
셀레브가 으득 이를 갈았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힘을 손에 넣었는지는 몰라도, 그가 마기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푸른 역안 위로 불꽃이 튀었다.
“후회하게 해 주지.”
소름 끼치는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코앞에서 풍기는 살기에 손끝이 저릿해질 지경이었으나, 카델은 무시했다.
‘20분. 20분 안에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불사의 심장]이 자신을 지켜 줄 동안. 마법진을 해제하고, 셀레브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야 했다. 카델은 [뇌화룡]을 자신이 있는 마법진의 중심부로 끌어왔다. [뇌화룡]의 뜨거운 화염과 전류가 폭풍처럼 사납게 파고들수록, 보라색 결정은 카델의 육체를 빼곡히 덮어 갔다.
셀레브 역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온몸에 마기를 둘렀으나, 모든 고통을 완화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카델을 감싼 결정을 공격했다.
“어디 언제까지 이 건방진 힘을 쓸 수 있나 보자고!”
“네가 죽을 때까지 쓸 거니까 걱정 마.”
제리엘은 마법진을 해제하던 중 마력 폭주 현상을 겪었다. 그렇다는 건 마법진을 이루고 있는 복잡한 술식 중, 치명적인 함정이 존재한다는 것. 조심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뇌화룡]을 유지한 채로 그 섬세한 작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과연 나한테 그만한 역량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셀레브를 상대하면서부터 느꼈던 미세한 격차. 좁힐 듯 좁혀지지 않는 그 격차가 계속해서 카델을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그 깊은 틈새를 뛰어넘을 각오가 없다면, 시도조차 무의미한 일이었다.
‘무조건 해낸다.’
선택지는 없었다. 그의 소중한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들과의 여행을 이어 가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