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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잘렸으니 분명 흔적을 남겼을 거다. 멀리 가진 못했을 테니, 신속히 수색하도록.”
새로이 도착한 부대에게 수색 명령을 하달한 소린이 시선을 옮겼다. 관문으로 들어서는 적린 용병단. 갑자기 사라졌다며 치유사들이 난리를 피워댄 원인인 요정 역시 그들과 함께였다.
곧장 치유사를 찾아가는 용병단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자니, 가까이서 드레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하지만, 두말할 것도 없이 이번 전투의 최대 공헌자야. 제국의 국경선을 지킨 게 호계 기사단이 아니라 외부의 용병이라니.”
드레프 역시 용병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카델을.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던 그가 성큼 발을 뻗었다. 카델을 향한 걸음이었으나, 소린이 그를 저지했다.
“……왜 막아? 시비 걸려는 거 아냐.”
“라이토스다.”
“엉?”
뭐라는 거야. 짜증스레 일그러졌던 눈매는, 소린의 짧은 발언을 되새기며 서서히 크기를 키우다, 다시금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무슨 근거로? 뛰어난 마법사라고 전부 라이토스는 아니거든.”
“얼굴이 기억났다. 일전에 본 기억이 있어. 젠가 라이토스를 빼닮은 손자였지.”
“……잘못 본 거겠지. 라이토스는 몰살당했어. 너도 지켜봤잖아?”
“시체는 라이토스가의 2대까지만 확보됐다. 공식적으로는 한 명도 빠짐없이 처형됐지만, 비공식적으로 서자를 포함한 4명의 3대는 행방불명 상태이고.”
한 번도 듣지 못한 정보에 드레프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삐걱거리는 고개가 다시금 카델을 찾아 돌아갔다.
“그럼 지금, 제국을 수호한 저 마법사가…….”
“황제 폐하께 데려가야 한다.”
“뭐?”
소린의 단언에 드레프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휙 몸을 돌려 소린의 앞을 막듯이 자리 잡았다.
“데려가면 죽어. 알고 하는 얘기냐?”
“…….”
“그래, 라이토스라고 쳐. 그 핏줄이라고 치자고. 그런데 저놈이 황제 폐하께 복수하려고 제국에 접근한 거라면, 마족이 나타났을 때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웠겠어? 기사단을 도왔겠냐고. 마족 편에서 힘을 보태 줬다면 모를까, 우린 지금 저놈 덕분에 관문을 지킬 수 있던 건데…….”
입을 앙다문 채 거칠어진 숨을 고르던 드레프가 소린의 팔을 붙들었다. 그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제법 결연했다.
“쫓아내는 걸로 끝내자. 경고하고, 다신 얼씬도 말라고 쫓아내면 되잖아.”
“라이토스가 거절한다면?”
“거절하겠어? 자기도 입장을 알고 있을 텐데.”
“그 입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처음부터 제국을 찾아오지 않았겠지.”
소린은 붙들린 팔을 가볍게 빼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국은 라이토스를 그리워한다, 드레프.”
“그건…….”
“만약 제국을 지킨 용병의 정체가 살아남은 라이토스라는 것이 드러난다면, 간신히 잠재웠던 그리움이 깨어날 거다. 그 자체만으로 황실은 커다란 타격을 입겠지. 폐하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실 것 같나?”
“…….”
“죽음은 확정이다. 어떤 식으로든, 라이토스는 죽게 돼.”
“……그래서. 어차피 죽을 거, 폐하가 덜 진노하셨을 때 죽으라고 데려다 주자는 얘기냐?”
소린은 드레프에게서 시선을 거둬 너머의 카델을 바라보았다. 꽤 먼 거리였으나, 서로 눈이 마주쳤다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짧은 눈 맞춤을 끝낸 것은 카델 쪽이었다. 소린은 카델의 시선이 떨어지고서도 한참 동안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제국에 찾아왔을 때부터 죽음은 각오했을 거다. 그가 마족과 제국 사이에서 제국을 택했듯, 선택은 그의 몫이고, 결과 또한 그의 몫이지. 우린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그가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곤 생각지 않아.”
소린은 뜻을 거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옆에서 드레프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내리치는 것이 전부였다. 분명 되돌아온 역적은 용병단장인데,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아 속이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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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받고, 라이돈 의식이 돌아오면 둘이서 여관을 찾아가. 라이돈한테 작은 요정으로 변신하라고 하면 쓸데없는 주목은 피할 수 있을 거야. 되도록 환혹술은 사용하지 말라고 하고.”
“네……? 단장은요?”
“난 볼일이 생겨서.”
“제국에서요? 혼자서? 아직 회복도 못 했잖아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급할 필요가…….”
“이거 받아.”
반은 손안에 들어온 [운명의 반지]를 반사적으로 움켜쥐며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카델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듯 침착한 모습이었으나, 그것이 더욱 반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관에서 일주일만 기다려.”
“대체 왜…….”
“그 안에 실의 움직임이 이상하면 날 찾아오고, 아니라면 여관에서 내가 오길 기다려. 찾아갈게.”
“……단장. 설마 놈들이 정체를 눈치챈 거예요? 그런 거라면 차라리 같이 도망가요. 지금부터 움직인다면 잡히지 않을 수 있어요.”
보통이라면 그리했을 것이다. 미쳤다고 역적의 핏줄이 제국을 활보하며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짓을 하겠는가. 하지만 카델은 당장 이곳을 떠날 수도, 이곳에서 벌어질 일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스마 제국에서 업적을 인정받아야 했다. 적린 용병단을 기사단으로 승격시켜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 스토리를 진행하지 못한다는 시스템의 경고는, 그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회피보다는 돌파가 낫다. 그랬기에 카델은 불안에 젖은 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미소 지었다.
“만약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반지를 낀 네가 가장 먼저 알 수 있어. 바로 구해 주러 올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단장 혼자서는……!”
“난 괜찮을 거야, 반. 부탁이니까 들어줘. 응?”
라이돈과 반의 희생이 있었기에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 쌓아 올린 노력의 대가는,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카델은 믿었다.
‘밑밥은 충분히 깔아 뒀어. 황제는 날 죽이지 못한다.’
반과 라이돈을 떼어 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만약 황제가 자신을 죽이려 든다고 할지라도, 같은 단원인 반과 라이돈이 포획되지 않는 한 언제든 진실은 알려질 것이다. 지금껏 쌓아 둔 명성은 그 파문을 더욱 크게 번지게 하겠지.
여태껏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은 바로 이곳에서. 결실을 보게 되리라.
“용병단장. 잠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소린이 카델을 불렀다. 반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소린을 노려보았으나, 카델은 자연스럽게 반의 앞을 가리고 섰다. 그러고는 소린에게 등을 보인 채, 일그러진 반의 미간을 툭 건드렸다.
“……단장.”
“일주일이야. 단장님이 그리워도 조금만 참으라고.”
조그맣게 속삭이며 미간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손길을 따라 점점 풀어지는 얼굴을 장난스레 쓸어내린 그가 소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시죠.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