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18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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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하필 우리가 점검할 때 봉인이 깨질 건 뭐냐고!”

“진정해라, 드레프. 오히려 우리가 있을 때 봉인에 이상이 생겨 다행이지.”

“난 네 그런 점이 진짜 싫어, 소린.”

드레프는 격하게 말을 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봉인의 상황을 전달해 준 요정, 라이돈이 선두에서 기사단을 이끌고 있었다.

신호의 번복이 단순한 실수이기를 바랐으나, 요정의 전언은 그의 기대를 배반했다.

‘냄새 지독한 마족이란 게 대체 누굴 말하는 거야? 제기랄,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줘야 할 거 아니냐고!’

라이돈은 그저 ‘봉인이 깨지고 냄새 지독한 마족이 등장했으니, 내 인간이 다치기 전에 빨리 튀어 오라’는 제멋대로의 발언을 지껄였을 뿐. 자세한 설명은 일절 없었다. 일단 봉인이 깨졌다는 건 확실하니 서둘러 이동하고는 있다만, 그곳에 누가 있는지는 예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드레프의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저절로 해결되었다.

“저건…….”

공중에 떠오른 타원형의 봉인. 이미 상당히 큰 균열이 번진 상태였다. 중앙까지 번진 구멍은 자이언트 트롤도 거뜬히 나올 수 있을 법한 크기로, 고개를 빼면 마계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무언가가 그 커다란 구멍을 가득 메운 채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체의 일부분 같기도, 그저 고깃덩이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의 끄트머리에선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날벌레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드레프는 봉인진 전체를 덮듯이 포위한 벌레 떼를 확인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급히 눈을 굴려 보았지만 적린 기사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전열의 후방에서 치고 나온 마틴이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소린 경, 균열의 크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당장 막지 않으면 봉인의 복구가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지금 바로 돌입해야 합니다.”

“알고 있다. 그 전에 눈앞의 벌레들부터 처리해야겠지.”

마계에 서식하는 곤충일까? 균열을 틀어막고 있는 벌레 발생지의 정체는? 카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할 듯싶은데, 정작 신호를 보낸 카델은 벌레 떼에 뒤덮여 머리털 하나 비치지 않았다.

그렇게 호계 기사단이 돌격을 보류한 채 적의 정체를 가늠하고 있을 무렵. 빈약한 정보로 그들의 망설임에 일조한 라이돈은, 제 무성의함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듯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흡혈충으로 가득 찬 봉인진을 향했다.

다른 이들은 카델을 찾지 못했으나, 라이돈은 한 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흡혈충의 틈새로 넘실대는 불꽃. 익숙한 마력을 발견한 라이돈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우리 자기, 인기가 많네?”

카델은 반과 자신의 주위로 불의 장막을 두른 채 인상을 구겼다. 허공의 한 곳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보듯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마법 속성 배분>

보유 포인트 : -

불 : 60/100

얼음 : 0/100

번개 : 0/100

바람 : 10/100

대지 : 0/100

빛 : 0/100

암흑 : 0/100

흡혈충을 상대하는 동안 보유하고 있던 10포인트를 ‘바람’ 속성에 투자했다. 놈들의 움직임이 버거울 정도로 재빨랐기 때문이다. 바람을 통해 불 마법의 속도를 높일 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불’에 들어간 속성 포인트가 너무 컸다.

6:1의 비율로는 예전처럼 뛰어난 유동성을 갖출 수 없었다. 반의 공격 역시 스피드보다는 파괴력에 중심을 두고 있었기에, 그들은 죽인 흡혈충의 수와는 무관하게 빠른 속도로 포위되어 갔다.

당연했다. 고작 팔 하나가 빠져나왔을 뿐이라지만 아쉬브카의 육체는 고위 마족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거대했다. 심지어 생성된 흡혈충은 주변 마물을 흡혈하며 물량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단장, 장막이 점점 얇아지는 건…… 기분 탓일까요?”

반은 자신과 카델을 둘러싼 불꽃을 살피며 말했다. 카델은 속성 창에 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충 고개를 까딱였다.

“기분 탓 아니야. 내가 마력을 붓는 속도보다 놈들이 덤벼드는 속도가 더 빠르거든. 좀 있으면 뚫릴걸.”

“그렇, 군요.”

그렇다면 장막이 뚫리는 지점을 찾아 검기를 날린 뒤, 카델을 데리고 어떻게든 놈들에게서 벗어나리라. 홀로 다짐하는 반과는 달리, 카델은 흡혈충을 소탕할 방도를 고민하고 있었다.

‘흡혈충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바람에 투자하는 게 맞기는 해. 하지만 속성 포인트 초기화 물약은 하나뿐이고, 언제 또 얻을 수 있을지 몰라. 돌발 퀘스트 하나 깨자고 속성을 변동시키기는 싫은데.’

카델은 다속성 마법을 통한 속도감 있는 토벌을 즐기기는 했지만, 스피드에 치중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고작 벌레 떼 토벌을 위해 전투 스타일까지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호계 기사단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나.’

제국을 대표하는 기사단이니 벌레쯤은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카델은 아쉬브카 토벌에 모든 마력을 쏟아부을 생각이 없었다.

‘일 순위는 봉인의 복구니까. 역시 여기서 속성을 바꾸는 건 시기상조야.’

그렇게 카델이 호계 기사단의 지원을 믿고 버티기를 선택한 순간.

솨아아아—

장막 너머에서부터 날카로운 바람 같기도, 작은 유리 파편의 마찰음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원한 울림과 함께 장막을 짓누르던 위압적인 감각이 사라졌다.

“언제까지 그런 너덜너덜한 장막에 숨어 있을 생각이야, 자기?”

“라이돈!”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에 카델이 곧장 장막을 거뒀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소용돌이치는 얼음 결정과 그 너머로 밀려난 흡혈충. 그리고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라이돈이었다.

라이돈은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 카델과 반을 동시에 낚아채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우와, 반 무거워. 그냥 떨어뜨릴래.”

“닥치고 운반해.”

“아하하! 그렇게까지 귀염성 없을 필요 있어? 좀 더 노력해 봐, 반.”

안전하게 품 안에 안겨 운반되는 카델과 달리, 반은 뒷덜미를 잡힌 채 짐짝처럼 매달려 가고 있었다. 늘어난 단복이 금방이라도 뜯겨 나갈 듯했지만, 반도 라이돈도 서로의 몸에 손을 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소용돌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자, 흡혈충을 상대하는 호계 기사단의 모습이 보였다. 쇄도하는 검기와 속성별 대형 마법이 흡혈충 무리를 헤집어 대고 있었다.

화려한 전장이었으나,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카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만 갔다.

‘기사들이 왜 저렇게 가까이서 싸우고 있지? 검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장막은? 장막은 왜 안 둘렀어? ……설마.’

홱 고개를 돌린 카델이 라이돈의 태평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라이돈. 너 설마 기사단한테 저 곤충이 흡혈충이란 얘기 전달 안 했어?”

“응? 해야 해?”

“당연히 해야지! 닿으면 안 되는 놈들인데!”

반사적으로 이마를 짚은 카델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혈압을 오르게 하는 재주는 누구보다 뛰어난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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