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5화 (215/521)

이 허무맹랑한 발언으로 인한 부하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는데, 덕분에 카델은 ‘호감도에 따른 부하들의 성격 유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호감도 90, 89로 상위권을 달리는 반과 루멘은 상당한 분노, 집착 현상을 보였다.

“숨겨 둔 부하라뇨? 제가 단장의 첫 번째 동료 아니었나요? 어디서 만났는데요? 언제 만났는데요? 왜 만났는데요? 지금도 부하는 넘쳐나는데 여기서 굳이 우중충한 둥켈하이 출신까지 추가해야 하는 건가요? 단장, 진심이에요? 전 언제나 단장을 지지하고 응원하지만, 오늘은 좀 피곤하신 것 같아요. 한숨 자고 일어나는 건 어때요? 제가 재워 드릴 테니까요.”

반은 숨도 쉬지 않고 물음표를 남발해 댔다. 자신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는 그의 작위적인 미소에, 카델은 빙의된 이래 처음으로 반에 대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둥켈하이에 숨겨 둔 부하라는 건 암살자란 얘기겠군.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그 정체불명의 암살자 하나를 영입하겠다고 목숨 걸고 적룡의 둥지를 건너는 건 무리수야. 대장뿐만 아니라 기사단 전체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신중해야지. 게다가 이 인원에서 암살자를 추가해야 할 이유가 있나? 암살자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내가 있잖아. 부족한가? 원한다면 암살자로 전직해 줄게. 난 재능이 있거든. 끝장내고 싶은 인간이 있다면 말해.”

루멘은 언뜻 이성적인 듯하면서도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발언을 툭툭 내뱉었다. 버릇처럼 검집을 매만지는 그의 초점 흐린 눈은 카델이 아닌 상상 속의 누군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카델은 푸른 눈동자에 맺힌 살기보다도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객관적인 척 말하는 그의 모습이 더욱 무서웠다.

둘째로는 바닷가에서의 오열 이후 호감도 80을 찍은 라이돈이었다. 그는 특유의 어리광과 진득한 불쾌감이 섞인 복합적인 태도를 보였다.

“바람둥이네, 카델! 결혼한 사이에 자꾸 첩을 늘리면 어쩌자는 거야? 이러면 곤란해. 물론 아무리 첩이 많아도 1순위는 나겠지만, 계속 거슬리게 하면 싹 다 죽여 버리는 수밖에 없잖아. 나만 봐 줘야지. 책임지고 사랑해 주기로 했잖아? 반지를 나눠 낄 때 속삭였던 사랑의 맹세는 다 어디로 간 거야? 너무 슬퍼, 자기. 가슴이 미어져서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아. 숨겨진 부하라는 인간의 심장으로 갈아 끼워야겠으니까 일단 찾아가 보자.”

등 뒤로 달려든 라이돈은 카델을 터뜨릴 기세로 끌어안은 채 머리에 뺨을 비벼 댔다. 평소처럼 애교를 떨면서도 귓가에서 ‘죽일래’, ‘찢어도 돼?’ 따위의 살벌한 협박을 소곤거리는 탓에, 카델은 어쩐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갓 입단한 가르엘. 능력치를 열람했을 당시, 그의 호감도는 예상보다 높은 66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상보다’ 높았다는 거지, 다른 부하들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만큼, 가르엘의 반응은 가장 상식적이었다.

“사실 고요의 산맥에 적룡이 출현했다는 건 아주 오래전 기록이기도 하고, 현자들은 적룡이 긴 잠에 들었을 거라고 예측한다죠. 저 역시 산맥을 넘는 데 회의적이긴 하지만, 죽을 걱정까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다들 특출 난 인물이기도 하고, 즉사만 아니라면 제 마기로 치유가 가능하니까요.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귀여운 단장님의 의견을 반대하고 싶지 않다는 데 있겠죠. 어떤가요, 단장님? 이 정도면 숨겨 둔 부하한테 밀리지 않을 수 있나요?”

그는 미친 사람처럼 희번득 눈을 까뒤집으며 다가오지도, 흐린 눈으로 미지의 인물에 대한 살기를 드러내지도, 엉겨 붙어 저주의 말을 속닥이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능글맞은 태도로 카델의 제안에 힘을 보탤 뿐이었다.

이 개성적인 부하들의 반응을 토대로, 카델은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 냈다.

‘호감도가 높아질수록 정신이 나가는군.’

분명 호감도와 충성도는 비례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카델은 새로운 부하-실제로는 입단하지 않을 확률이 현저히 높은-를 견제하는 세 남자의 폭풍 같은 질투 속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

결론적으로, 적린 기사단은 고요의 산맥을 넘게 됐다. 카델이 최대한 합리적으로 그들을 설득할 말을 고르는 동안, 계획에 반대하던 반과 루멘이 ‘어쩔 수 없다’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카델은 그들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가 의아하기만 했다. 그들의 눈에 고민하는 카델이 모습이 미치도록 가련해 보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다.

“확실히, 낮에 보는 바다가 더 예뻐.”

라이돈은 여전히 카델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체격도 신장도 라이돈이 월등히 컸기에, 그는 카델의 정수리에 턱을 얹은 자세로 편안하게 바다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안 뛰어들어? 처음 봤을 땐 물개처럼 다이빙부터 했잖아.”

“카델이 또 머리 말려 준다고 하면 들어갈래.”

“귀찮아. 이젠 사람들한테 들켜도 상관없으니까 혼자 말려.”

“단호해, 자기.”

투정을 부리면서도 카델의 머리에 입을 맞추는 행동은 다정하기만 했다. 카델이 그만하라며 몸을 비틀자, 라이돈은 그를 꽉 끌어안아 몇 번 흔든 후에야 미련 없이 놓아 주었다.

상쾌한 표정이었다. 카델은 난간에 붙어 시야 한가득 바다를 담아내는 라이돈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굴욕 한 점 없는 유려한 옆선을 따라 시선을 미끄러트리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을 되새겼다.

“난 카델이 없으면 안 되는데, 카델은 내가 없어도 되잖아. 날 버릴 수 있는 거잖아, 카델은.”

투명한 눈물과 함께 드러난 라이돈의 속내는 카델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충격에 들이 받쳐 튀어나온 것은 숨겨 왔던 자신의 진심이었다.

애써 부정했으나, 그 진심을 정면으로 목도한 순간. 더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카델은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이미 무엇보다도 소중해져 버린 이 세계를 택하기로 했다. 물론 스토리는 계속해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카델 라이토스의 삶’을 얻는 것 또한 시스템의 특전 중 하나였으니.

스토리를 진행하는 동안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따윈 없었다. 원래의 세계에도 분명 소중한 것은 있다. 이루지 못한 꿈이라든지, 아직 이렇다 할 효도도 해 드리지 못한 부모님이라든지, 팍팍한 삶 속에서 웃음을 안겨 주었던 친구들이라든지.

하지만 그것을 전부 제쳐 둘 만한 것들이, 이 세계에는 있었다. 자신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슬퍼할 사람이 많으리란 걸 안다. 하지만 그 우울한 미련을 떨쳐 낼 수 있을 만큼 단원들을 아꼈다.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멋대로 끌어들인 책임을 지고 싶었다. 휘말린 부하들을 두고 홀로 편안하게 떠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바닷바람 오래 맞으면 감기 걸려요, 단장.”

어느샌가 다가온 반이 카델의 어깨 위로 담요를 둘러 주었다. 제 것은 어딨냐며 물어 오는 라이돈을 무시한 그가 카델과 시선을 맞추며 옅게 미소 지었다.

“요리사가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묻던데. 생각나는 거 있어요?”

“……따뜻한 거.”

“그럼 스튜를 부탁해 볼게요. 많이 배고프면 사과라도 먼저 드실래요? 주방에 쌓여 있던데. 가져가도 된대요.”

카델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반을 올려다보았다. 세심하고 다정한 눈빛이 버릇처럼 카델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카델이 이곳에 남기로 한 이후, 원래 세계의 인연들보다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반이었다. 그에게 진짜 카델 라이토스를 돌려줄 수 없다는 것. 진짜 카델 라이토스를 향한 그의 순수한 마음을, 끝까지 속이며 도둑질해야 한다는 것.

이미 내린 결정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 묵직한 죄책감 속에서 피어나는 욕심이 괴로울 뿐이었다. 어차피 진짜 카델 라이토스를 돌려줄 수 없게 되었으니, 갈 데 없는 그의 충성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가 카델 라이토스와의 첫 만남을 잊을 정도로 현재의 자신에게 빠져들었으면 좋겠다는, 뻔뻔한 욕심.

“왜… 그렇게 쳐다봐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생각이 많아 보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반이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쓸었다. 카델은 담요를 단단히 여미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냥. 잘생겨서.”

덤덤한 말투에 반의 당황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보다 단장이 훨씬 잘생기고 아름다운 이유’에 대해 두서없이 떠들어 대더니, 카델이 피식 웃고 말자 결국 쑥스러움을 이기지 못한 채 자리를 떴다.

남은 라이돈만이 왜 자신에게는 잘생겼다는 소릴 안 하냐며 칭찬을 종용할 뿐이었다. 왜 안 하냐니. 그런 소릴 일일이 입 밖으로 냈다간 자신은 숨 쉬는 것보다 잘생겼다는 소리를 더 많이 해야 했을 것이다.

습관처럼 달라붙는 라이돈을 밀어 내며, 카델은 잔잔하게 일렁이는 수평선 너머를 응시했다.

새로운 목표가 생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게 끓어 올랐다. 자신의 생존만이 아닌 기사단 전원의 무사안녕을 위해. 그는 무조건 승리를 거머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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