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던 프로치의 눈가가 파들파들 경련했다. 격한 분노로 점철된 얼굴이 삐걱거리며 카델을 돌아보았다.
“나를 여기서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식당을 통째로 빌려 내부의 손님이라곤 프로치와 카델뿐. 점원과 주방장은 바깥의 기사들에게 음식을 내온 뒤로 모습을 비치지 않는다. 호위를 위해 데려온 기사들은 약이 든 음식을 먹고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 프로치가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했다.
다만, 목숨의 위협을 걱정하는 상황에서도 프로치의 눈빛에선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카델은 이곳에서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카델과 자신 사이엔 무시할 수 없는 신분 차이와 외교적 위치, 그리고 루멘이 있다. 그것이 그의 믿는 구석이었고, 이런 곳에서 프로치의 직감은 꽤 잘 들어맞는 편이었다.
“그럴 리가요. 제국의 기사단장이 외국의 귀빈을 암살하다니.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게다가 후작님께선 오늘 저와 만난다는 사실을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니셨을 텐데. 전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닙니다.”
“…….”
“기사들을 재운 건, 후작님이 지금처럼 미쳐 날뛸 걸 대비해서 미리 손을 써 둔 것뿐이에요.”
“이런 식으로 굴어서 자네가 얻을 게 뭐지?”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라는 듯, 설설 고개를 저은 카델이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프로치의 앞으로 다가갔다.
“후작님. 당신은 본인이 영면의 사자의 타깃이 되었다는 데도 위기감이라는 걸 못 느끼는 모양이네요. 강심장인 건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건지. 전 당신을 살려 달라고 부탁할 마음이 없다고 했잖아요.”
한 기사단의 단장이라기엔 작은 체구였고, 인상도 유순한 쪽에 속했다. 처음엔 이런 몸으로 어떻게 전장에서 기사들을 이끄는가, 의아함을 품기도 했다. 장군보다는 책략가에 어울리는 분위기. 그리고 그 첫인상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아니면 혹시, 진심으로 루멘을 믿고 이렇게 배짱을 부리시는 걸까? 루멘이 당신을 지켜 줄 것 같아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카델은 꼭 독니를 드러낸 뱀 같았다. 웃는 낯으로 상대를 농락하는 노련한 술사 같기도 했다. 확실히, 무력과 충성이 전부인 기사들 속에서 보기 힘든 류의 인간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살기를 최대한 억누른 잿빛 눈동자를 응시하며, 프로치는 카델에게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으리란 걸 깨달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아, 혹시 잊으셨나? 당신이 루멘을 고립시키기 위해 죽였던 무고한 사람들을.”
“……뭐라고?”
“코버, 에릭, 메리, 또 상인과 시종들을 죽였죠. 부인도 학대하셨잖아요. 아! 귀여운 개도 한 마리 죽였죠. 이름이…… 데비였나?”
일개 기사단장이 알아서는 안 될 정보들이었다. 프로치의 눈빛이 세차게 떨렸다. 이것은 그냥 조사한다고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아니다.
“설마 루멘이…… 그 아이가 전부 떠벌렸소?”
“아니죠, 후작님. 이럴 땐 루멘이 전부 알고 있었냐고 묻는 게 낫죠. 몰래 하려는 시도라도 했었다는 어필을 해 봐야지. 떠벌렸냐니, 정말 최악이잖아요.”
카델은 자신을 직접 죽일 순 없으나, 죽일 수단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수단을 정당화할 약점까지 쥐고 있다. 그는 빈틈없는 협박을 하고 있었고, 자신에게는 그 목줄에서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치려던 프로치의 등 뒤로 묵직한 바람이 불었다. 마치 그를 고정하듯 묶어 둔 바람에 당황하던 찰나. 어느샌가 거리를 좁혀 온 카델이 훅 얼굴을 내밀었다. 살벌한 기세를 띤 잿빛 눈동자가 위험스럽게 번들거렸다.
“난 내 부하들을 위해선 뭐든 할 겁니다. 그 녀석들이 내가 가진 전부거든요. 그러니 조심하세요, 후작. 자꾸 이렇게 심기를 건드리면 제가 어떻게 나올 줄 알고요. 안 그래도 요새 정신이 불안정해서 이성이 간당간당한데 말이야.”
툭, 어깨를 밀치자 프로치가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카델은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을 내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부하 앞에서 꺼져. 그렇게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면, 몇 년 정돈 더 살게 해 줄 테니까.”
프로치를 향한 그의 시선에선 짙은 경멸과 살의, 증오가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었다. 프로치는 차마 그를 마주 보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카델은 조용해진 프로치를 일별하곤, 그대로 발길을 돌려 식당을 빠져나갔다.
“…….”
출구 앞에는 와인병과 접시를 움켜쥔 채 곤히 잠든 호위기사들이 볼품없이 뒤엉켜 있었다.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델은, 피할 생각도 없이 그들을 밟고 지나갔다. 잠꼬대 같은 신음이 들렸으나, 끝끝내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
“……요젠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네.”
중얼거리듯 말한 카델이 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목적한 바를 이루었으나, 여전히 기분은 더러웠다.
*
성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늦은 밤이었다. 내일은 연회가 있으니 사람들에게 시달릴 것을 대비해서라도 미리 자 두어야 한다.
그리 생각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대장.”
카델은 제 방문 앞을 막고 선 루멘을 올려 보았다. 꽤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듯, 루멘의 얼굴에선 평소 보기 힘든 피로감과 초조함이 번져 있었다. 카델은 어쩐 일이냐고 물으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찾아온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내 아버지를 만나려고 했다며. 만나고…… 온 거야?”
“……다리 아픈데.”
제대로 된 대답 대신 루멘이 가리고 있는 문을 턱짓하자, 그가 한숨과 함께 문을 열었다. 함께 안으로 들어선 뒤에도 루멘의 조급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혹시 아버지가 이상한 말을 했어? 그렇다면 그냥 무시해.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
“나도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완전히 끝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면 알아서 떠날 거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연회 끝나기 전까지 묶어 둘게.”
마른 목을 축이고, 불편한 외투를 벗어 정리하는 내내 말은 끊이지 않았다. 루멘은 숨기려 하는 것 같았지만, 그의 들숨 날숨마다 농도 짙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카델은 침대에 편하게 걸터앉아 여전히 문 앞에 선 루멘에게 손짓했다. 루멘은 별다른 대꾸 없이 평온한 표정을 한 카델을 응시하다, 이내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쓸어내렸다.
잠시 제 속을 달래듯 멈춰 있던 그가 카델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어서 그래. 되도록 만나는 일 없게 하고 싶었어. 이럴까 봐 회담이 끝나기 전까지 오지 말라고―”
“내일 프로치 도미닉이 연회에 오는 일은 없을 거야.”
루멘이 느끼던 공포에 가까운 불안을, 카델은 간단하게 끊어 주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곱씹는 루멘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네 인생에 그 사람이 끼어들 일도 없을 거고. 그러니까 너야말로 신경 쓰지 마, 루멘.”
“……대체 뭘 하고 온 거야?”
“협박하고 왔어.”
“협박?”
카델이 무슨 이유로 일면식도 없던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 협박까지 하고 왔는가. 짧은 순간에 여러 가정이 떠올랐지만, 그중 어디에도 카델이 잘못한 상황은 없었다. 그랬기에 루멘은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려 드는 대신 맥빠진 숨을 터뜨렸다.
“당하고 온 건 아니구나.”
“내가? 내가 당하고 살 것 같아?”
“……대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질이 나쁜 사람이야, 내 아버지는.”
“뭐, 딱 보니까 알겠던데. 너랑은 천지 차이더라.”
심드렁하게 말한 카델이 제 옆자리를 툭툭 두들겼다. 그제야 뻣뻣하던 몸에 힘을 푼 루멘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기다리는 동안 어떤 끔찍한 상상을 했던 건지, 나쁜 일을 당하긴커녕 해 주고 왔다는 카델의 발언에도 그는 큰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 루멘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카델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자신을 돌아보는 푸른 눈동자에 대고 말했다.
“아무리 쓰레기래도 너한텐 아버지인데.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 물어봐? 크게 다치게 했을 수도 있잖아.”
“아버지이기 전에 쓰레기야. 대장이 그 사람을 죽이고 왔대도 난 환영이거든. ……궁금한 건, 대체 내 아버지가 뭐라고 했길래 대장이 그런 선택을 했냐는 거지.”
이유야 많다. 프로치는 루멘을 다시 본인의 손아귀에 끌어들이려 했고, 가까스로 꿈을 찾아 탈출한 그를 영혼 없는 검으로 바꾸려 했다. 그를 조종하려 했고, 그의 인생을 망친 대가를 회피하려 했다. 죗값을 치러야 할 부분은 차고도 넘쳤으나, 카델은 그 수많은 이유 중 한 가지를 빼 들었다.
“널 빼앗아 가려고 하잖아.”
루멘의 괴로운 고민과 신중한 선택, 소중한 동료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를 데려가려 한 점. 그것이 굳이 프로치를 만나 협박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답하자, 루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를 말하려다 결국은 시선을 회피했다. 항상 여유롭고 꼿꼿하기만 하던 태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가 널 어떻게 얻었는데. 황제가 와서 내놓으라고 목에 칼을 들이밀어도 절대 못 주지.”
루멘은 자신이 그의 과거를 전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 이 정도로 얼버무리는 쪽이 나을 테다.
어느샌가 불에 담근 것처럼 새빨개진 루멘의 귀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카델은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그의 팔뚝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에 몸을 숨기듯 고개를 푹 수그린 루멘이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