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9화 (299/521)

*

카델의 집무실엔 기사단 전원이 모여 있었다. 카델은 그들의 앞에서 약 1년 동안 고요의 산맥에서 단체 수련을 하겠노라 선언했다. 반응은 대부분 덤덤했다.

“1년간의 수행인가요……. 다시 그 산으로 돌아갈 일이 생길 줄은 몰랐네요.”

“어디서 뭘 하든 상관없어. 내겐 별 차이 없으니까.”

일종의 폐관 수련이나 다름없었으나, 가르엘과 요젠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가르엘에게는 마기를 마음껏 방출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요젠에게는 사람의 눈이 적은 곳이 필요했다. 이 둘에게 있어 고요의 산맥은 수련 장소로 적격이었다.

“1년 동안 바깥과 완전히 단절되겠다는 건가? 최소한의 연락은 해야지 않겠어?”

“물론 그럴 거야. 황제와의 연락 수단을 마련해 뒀어.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혼자 성에 들르기도 할 거고.”

루멘은 정보의 단절을 우려하는 듯했지만, 카델이 방도가 있다고 하자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 역시 수련에 집중하고 싶었고, 그걸 위해선 격리가 필요하다고 여기던 참이었으니.

문제는 라이돈이었다.

“다시 그 도마뱀 둥지로 돌아가야 한다고? 싫어, 카델! 그 징그러운 도마뱀이 날 심부름꾼으로 쓸 거야! 그럼 억울해서 죽어 버릴지도 몰라!”

그는 자신을 제멋대로 굴릴 수 있는 쿤라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몸에 쿤라의 비늘 갑옷이 생길 때마다 목욕한 강아지처럼 쉴 새 없이 몸을 털어 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러지 못하도록 잘 신경 쓸게. 어차피 마법사인 우리 둘한테도 마음껏 기술을 연습할 장소가 필요하잖아.”

“다른 산도 많잖아!”

“거기만큼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은 없는걸.”

“내가 억울해서 죽어도 좋은 거야, 카델? 우리 사랑이 이 정도밖에 안 됐어? 난 카델을 위해서라면 평생 고향에 돌아가지 않아도 좋은데!”

라이돈은 거의 발작할 기세로 결사반대를 외쳐 대더니, 계속 자신을 설득하려는 카델의 모습에 좌절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억울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불쌍하게 들썩였다.

저렇게나 쿤라의 명령에 따르는 게 싫은 것일까. 그런 녀석이 잘도 자신의 명령은 따르고 있구나. 새삼스럽게 라이돈의 고집을 실감한 카델이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어깨를 토닥였다.

“그렇게 싫으면 따라오지 않아도 돼. 어차피 너한텐 수련이 큰 의미도 없고.”

“…….”

“1년만 어디 좋은 곳 가서 기다리고 있어. 필요하면 바다 근처에 별장이라도 얻어 줄게.”

“……카델은.”

“응?”

“카델은 같이 안 가?”

“난 수련이 필요해, 라이돈. 다른 동료들도 몸을 단련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고.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전투를 해야 할 테니까.”

카델에게 라이돈이 그렇듯, 라이돈도 카델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설득한대도 자신과 함께 바다가 보이는 별장에 가 주진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참지 못한 눈물 한 방울을 흘려보낸 라이돈이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나도 따라갈 거야.”

“그럴래?”

“대신 그 도마뱀이 나한테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줘야 해.”

“당연하지. 말 한마디 못 붙이게 할게.”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고 동그랗기도 한 눈물방울을 닦아 준 카델이 다정하게 라이돈을 달랬다. 언뜻 라이돈이 원하는 대로 굴도록 내버려 두는 것 같지만, 그가 자신 없인 마음껏 나다니지 못한다는 점을 활용한 계략에 불과했다.

그런 카델의 새까만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라이돈은 칭얼거리며 카델을 바짝 끌어안을 뿐이었다.

“그럼 다들 찬성인 걸로 알고, 이동할 준비를 해 둬. 생필품은 근처 마을에서 조달하면 되니까,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기자고.”

남은 일은 빠르게 처리해 두고, 하루빨리 산맥에 입성해야 했다.

“허, 수련장? 수련자앙? 한창 바쁠 때 멋대로 쳐들어와서는 살림을 풀어? 이젠 이 몸도 모자라 이 몸의 터까지 얕보는 게냐?”

카델은 부하들의 천막으로 쳐들어가려는 쿤라의 앞을 가로막았다. 팔짱을 낀 채 그를 올려다보는 시선에선 의논 없이 산맥을 수련장으로 사용하러 온 자라기엔 과한 떳떳함이 엿보였다.

“지금 이 몸은 산맥의 결계를 강화하느라 아주 예민해. 이런 시기에 인간들이 멋대로 내 산을 뒤엎는 걸 지켜보라는 소리냐? 아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 몇 번 봐줬더니 끝도 모르고 기어올―”

“거 되게 쪼잔하게 구시네. 누가 산을 뒤엎겠대요? 좀 빌리겠다잖아요.”

“쪼, 쪼잔?”

“저한테 힘을 빌려준 건 제가 강해지길 바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강해져서 마족 놈들 제대로 막아 보라고. 여기서 수련하면 서로 윈윈인데 왜 그렇게 질색을 해요, 없어 보이게.”

원래의 카델이었다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상대의 비위 정돈 가뿐하게 맞춰 줬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쿤라에게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저 적룡의 좁은 속을 성이 풀릴 때까지 들볶고 싶달까. 영 고운 심보가 안 생겼다.

쿤라는 그런 카델을 보며 체면도 잊은 채 입을 떡 벌렸다. 살다 살다 인간에게 이런 모욕을 듣게 되다니. 아무리 세상 만물 통달한 그일지라도 충격이 덜해지진 않았다.

“지금 불청객 주제에 그렇게 똥배짱을 부리겠단 거냐?”

“왜요. 주제 파악을 못 해서 화나요?”

“허…….”

“그냥 힘만 키우고 가겠다고요. 뭣하면 쿤라, 당신이 결계 만드는 걸 도와주죠. 무리라면 잡일이라도 시켜요. 웬만한 건 처리해 줄 테니까.”

지금 당장 자신이 용으로 변해 저놈들을 한입에 삼켜 바깥에 뱉어 놓지 않는 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다. 어이가 없어 뒷목까지 뻐근해진 쿤라가 한참을 말없이 카델을 응시하다,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발톱으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터져 나갈 녀석이.”

“안 누를 거면서 왜 굳이 협박하지?”

“……결계 작업엔 네가 열 명이 와도 전혀 도움이 안 돼.”

“뭐, 그럴 것 같았어요.”

“대신 그동안 네가 이 몸의 시중을 들어라.”

“……뭔 중이요?”

카델은 못 들을 소릴 들었다는 듯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 험악한 표정에 그제야 속이 개운해진 쿤라가 말했다.

“결계를 강화하는 동안엔 제대로 움직일 수도, 먹을 수도 없거든. 그러니 네가 도와라. 음식도 먹여 주고, 몸도 닦아 주고, 심심하면 노래도 불러 주…….”

“용이 무슨 그딴 게 필요해요! 몸을 닦아 주긴 개뿔, 그냥 털어요! 어차피 비늘 천지면서.”

“누굴 짐승으로 아는 거냐? 이 몸의 매끈하고 황홀한 비늘도 관리가 필요한 법이야.”

“그 커다란 몸을 언제 다 닦으란 거예요. 나도 수련해야 하거든요?”

“그럼 지금처럼 인간 모습으로 있어 주마.”

“더 싫거든요!”

길길이 날뛰는 카델의 모습에 쿤라의 얼굴이 웃음으로 물들어 갔다. 만족스럽게 카델을 놀려 댄 그가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으려 드는 카델을 두고 등을 돌렸다.

“매일 동굴로 찾아오거라. 오지 않는다면 꿈마다 찾아가서 괴롭힐 테니, 선택은 자유다.”

“저 미친 용 대가리가…….”

“뭐라고 했지?”

“미친 용 대가리요.”

“하! 미래가 아주 기대되는군.”

제대로 굴려 주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발언에 카델이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자신이 뱉었던 말을 주워 담을 수도, 패악질을 부리며 산맥을 정복할 수도 없으니. 여기선 참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어디 마물 생고기를 입에 처넣어도 히죽거릴 수 있나 보자고.’

홀로 전투 의욕을 다진 카델이 휙 몸을 돌려 천막으로 걸어갔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