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0화 (3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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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델이 부하들을 산맥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모두의 능력 향상에 있었으나, 그중 특별하게 신경 쓸 예정인 부하가 있었다.

“가르엘, 이리 와 봐.”

개방 중이던 마기를 거둔 가르엘이 카델의 앞에 섰다. 고요의 산맥에 온 뒤부터 가르엘은 안대를 벗은 상태였다. 가리는 것 없이 드러난 역안은 여전히 불길한 기운을 풍겼으나,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보는 사람도 없겠다, 여기선 마기를 충분히 단련할 수 있겠네.”

“다행이죠. 전투 시에만 조금씩 연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단장님, 능력도 좋으시다니까.”

능글맞게 칭찬한 가르엘이 눈을 휘었다. 그 뻔뻔함에 고개를 저은 카델이 목소리에 무게를 실었다.

“마기뿐만이 아니야. 난 네가 마기와 빛 마력, 두 가지를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를 바라.”

“흐음……. 멘델을 상대했을 때도 비슷한 말을 하셨죠, 단장님은. 매번 어려운 걸 부탁하신다니까.”

지금의 가르엘은 새로운 힘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찰 테지만, 카델은 알고 있다. 그의 진가는 마기가 아닌 완벽하게 배분된 두 가지 힘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 힘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었을 때, 가르엘의 진가는 비로소 발휘된다.

“평소엔 마기로만 싸워도 돼. 애초에 다른 기사단과 협동할 일이 생기면 빛 마력은 숨겨야겠지. 하지만 그런 것 따윈 중요치 않은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꽤 장담하네요.”

“넌 너를 너무 과소평가해.”

카델의 말에 가르엘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카델은 진심이었다.

가르엘은 본인의 생각보다도 엄청난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특유의 낮은 자존감과 마기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그것을 억지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피어난 괴리감. 그런 것들이 성장을 방해하고 있을 뿐.

그는 같은 태생 S급 기사인 라이돈, 요젠과는 달랐다. 봉인 문제가 해결된 라이돈과 오래전부터 암살자로 살아온 요젠은 이미 완성형이다. 그들에겐 카델의 개입이 크게 필요치 않다. 적어도 기술적인 완성도에 관해선 그랬다.

그러나 가르엘. 그는 태생이 S급이면서도 본인의 힘을 억누르고 살아온 탓에 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네가 마기를 받아들이고, 그 힘으로 최선을 다해 싸워보려 한다는 건 알아.”

“…….”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여태껏 쌓아 온 힘을 새롭게 봉인하지는 마. 마기와 빛 마력. 그 둘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네 독보적인 이점이니까.”

멘델과의 전투로 가르엘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랐으나, 그는 끝까지 마기만을 고집했다. 새로운 강박이 생긴 셈이다. 그러니 카델은 이 1년간의 수련을 통해 가르엘이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었다.

“넌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어, 가르엘.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런 카델의 다짐을 마주한 가르엘은, 평소처럼 나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거 반해야 하는 타이밍이죠? 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아요.”

「기사 ‘가르엘 몬자시’의 호감도가 1 상승했습니다.」

「현재 호감도: 73/100」

“……제발 작작 좀 해라.”

*

고요의 산맥에 오기 직전까지 사소한 걱정들에 매달리던 루멘이나, 울며불며 엎어져 있던 라이돈은 생각보다 빠른 적응을 마쳤다.

‘쟤는 아주 날아다니는구나.’

지금까지 어떻게 사람들 틈에서 점잖게 검을 휘둘렀는지 신기할 정도다. 루멘은 무아지경의 상태로 숲을 활보하고 있었다. 본인의 행동을 주목하는 시선이 없다는 것이 꽤나 크게 작용한 듯 보였다.

생물을 해치면 안 된다는 쿤라의 조건을 지키느라 검의 궤적엔 한계가 분명했으나, 그만큼 검술은 더욱 정교한 지점을 찾아냈다.

카델은 곳곳에서 쿵쿵거리며 추락하는 바위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정령’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라이돈이 있었다. 라이돈은 내용을 알 수 없는 주장을 열심히 피력하기도, 코웃음을 치기도, 혀를 내밀며 상대를 조롱하기도 했다. 겉만 보면 굉장히 열띤 대화를 하는 듯한데.

‘……진짜 귀신이랑 대화하는 것 같네.’

문제는 카델 같은 평범한 인간의 눈에는 ‘정령’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의 눈에 라이돈은 연기 연습을 하는 배우나 상상 친구와 대화하는 아이의 모습 정도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라이돈에게 직접 정령들을 소개받기 전까지만 해도 장난을 치는 줄 알았으니까.

그래도 덕분에 라이돈은 쿤라의 존재에 치를 떠는 대신 정령들과 잡담을 나눌 수 있었다.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당연히 산에 오자마자 자신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뭐, 오히려 다행이지.”

귀찮게 굴지 않으니 이쪽은 되레 편하다. 그리 말하는 카델의 표정에선 은근히 섭섭한 기색이 떠올랐으나, 그것을 본인이 알 도리는 없었다.

“남은 건 요젠인가.”

숲에 천막을 펼쳐 자리를 잡은 뒤, 요젠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따로 하산한다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숲 어딘가에 있을 테다.

‘걜 대체 어디서 찾는담. 부르면 와 주려나.’

요젠과도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찾아낼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카델이 요젠이 먼저 나타나는 걸 기다리기로 마음먹으려던 찰나.

[이 몸의 구역에 허락도 없이 암기를 퍼뜨리다니. 어지간히 겁이 없는 모양이군.]

쿤라의 성난 음성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흩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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