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4화 (344/521)

「기사 ‘요젠 바르딕타’의 호감도가 3 상승했습니다.」

「현재 호감도: 70/100」

기다렸다는 듯 떠오르는 호감도 창을 일별한 카델이 작게 웃으며 일어섰다.

“칭찬의 의미로 안아 줄까?”

“……됐어.”

“알겠어.”

무엇을 알겠다는 것인지, 벌떡 일어선 카델이 허리를 숙여 요젠의 머리를 꽉 끌어안았다.

“하, 하지 마.”

갑작스러운 포옹에 요젠은 말까지 더듬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으나, 카델은 개의치 않았다. 꽉 안아 흔들던 그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 카델이 새빨개진 얼굴을 놓아 주며 씨익 미소 지었다.

“가자. 우선은 내기를 마무리 지어야지.”

당연하게도, 내기는 적린 기사단의 승리로 돌아갔다. 개개인의 기본적인 역량 차이를 제쳐 두고도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적팀을 방해한 결과물이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소.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에 경의 요정을 회유해 보는 거였는데 말이지.”

“숲속으로 3단 케이크를 들고 왔다면 넘어갔을지도 모르죠.”

적린 기사단이 사냥한 마물의 수는 89마리. 호계 기사단은 45마리였다. 미세하다 말하기는 어려운 차이였으나, 카델은 굳이 엑토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다.

“어쨌든, 약속은 꼭 지키시는 겁니다. 호계 기사단이 수고하는 동안 저희는 푹 쉬도록 하죠.”

“……내기하는 버릇을 고치든가 해야지. 모처럼 경과 친분을 쌓을 기회를 이렇게 날려 먹게 되다니. 안타깝소.”

“그렇게 말씀하셔도 무르지 않을 겁니다.”

“마법사라 그런가, 속뜻을 잘 파악한단 말이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엑토가 부하들의 떨어진 사기를 충전시키겠다며 걸음을 돌리려 했다.

“엑토 경.”

“음?”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시간을 내주시죠.”

“후배 기사단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내 부하들의 사기 충전보다 중요한 일이오?”

“물론입니다.”

내기의 결과를 확인할 때와는 달리 웃음기 하나 없는 카델의 모습에, 엑토 또한 농담을 거두고 고개를 까닥였다.

“말해 보시오.”

카델은 셀레브와의 만남부터 그녀가 했던 말들, 보여 준 마법진, 대강의 조사 결과를 전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엑토는 카델에게 곧장 안내를 부탁했다.

“……처음 보는 마법진이군.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녔지만, 형태가 변화하는 마법진이라는 건 처음 듣소.”

“저 또한 처음 보는 종류의 술식이었습니다. 마기에만 반응한다는 부분도요. 황실 마법사를 소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은 어려울 거요. 전쟁의 시작부터 진을 빼 둔 마법사들이 많소. 남은 마법사들도 도시 방어진 구축에 열중이니…….”

골이 아프다는 듯 이마를 문지르던 엑토가 낮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경의 예상대로라면 그 마족은 우리가 마계로 넘어오길 바라며 힌트를 남겨 준 셈이오. 금방 사라질 마법진은 아닌 것 같으니, 일단은 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낫겠소.”

“아무래도 제 휴식은 물 건너간 듯하네요.”

“본인이 유능한 마법사인 것을 탓하시오. 나도 최대한 황실 마법사를 모아 볼 테니,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라도 쉬어 두는 게 어떻소. 몸을 혹사한다고 단박에 결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

엑토의 권유에 카델은 얌전히 수긍했다. 그의 말대로 혼자 마법진 앞에서 끙끙대며 매달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정상회담 결과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더니, 갑자기 셀레브가 과제를 던지고 갈 줄이야. 할 일만 줄줄이 늘어나는군. 하여튼, 쉬는 꼴을 못 본단 말이야.’

불평한들 어쩌겠는가. 카델은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일에 좌절하기보단, 당장 누릴 수 있는 꿀 같은 휴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

호계 기사단이 마물 소탕을 위한 정찰에 나설 동안, 적린 기사단은 근처 마을 여관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수련하고 싶다면 하고, 잠을 자고 싶다면 자고, 마을을 구경하고 싶다면 구경한다. 카델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라며 부하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물론 단원들이 바라는 휴식은 카델과의 시간이었으나, 그들이 모두 욕심을 채우려 든다면 카델은 휴식도 없이 곧장 다음 업무를 처리하러 가야 할 테다. 때문에 단원들은 서로 간 합의를 통해(카델은 알지 못했지만)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따로 카델을 만나지 않고 각기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런 단원들의 피눈물 나는 배려 덕에, 카델은 제법 여유로운 휴식을 보낼 수 있었다.

「마계 소환 진행도 : 00%」

「인간계 침략 진행도 : 03%」

낮 내내 늦잠을 자고 배불리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침대에 누운 카델이 천장에 비친 시스템 창을 멍하니 응시했다.

‘엑토 경 말로는 정상회담이 생각만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지.’

대마법진 해제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처럼 한곳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기는 힘드니. 동맹국의 왕들은 특수 통신기를 통한 회담을 시도 중이라고 했다. 다만 통신 사이의 딜레이나 소통의 오류 때문에 회담 속도가 더뎌, 아직 셀레브와 마법진의 이야기는 전달되지도 못했다고.

‘뭐, 그래 봤자 해결되는 건 시간문제일 거고.’

침략 진행도도 마찬가지다. 호계 기사단이 부지런히 마물을 소탕하는 덕인지, 누워만 있어도 조금씩 진행도가 하락했다.

‘황실 마법사들은 회담이 끝나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까……. 좋아. 생각보단 오래 쉴 수 있겠어.’

긍정적인 결론에 카델의 표정에도 평온함이 더해졌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 동안 뭘 할까. 다시 잠들어도 좋고, 야식을 먹어도 좋을 거다. 여유로운 산책도 나쁘지 않다. 술은 최근에 과음한 탓에 그다지 당기진 않지만, 맥주 한 잔 정도라면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 있으리라.

점점 음주로 기울어지는 마음을 따라, 자연스레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가르엘, 하루 종일 못 봤지.’

온종일 침대에서 숙면했기에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은 알 수 없었지만, 단원들이 모두 모였던 식사 자리에도 가르엘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라이돈의 말로는 어디 구석에 처박혀 단련 중이라고 했는데. 늦은 점심에도, 저녁에도. 그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제일 먼저 술 마시자고 달려올 것 같던 녀석이…….’

음주를 마다하고 단련이라니.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다.

“찾으러 가 볼까.”

딱히 같이 한잔하고 싶어서 찾아가는 건 아니었다. 듣는 이도 없는 변명을 중얼거리며 굼뜨게 몸을 일으킨 카델이 얇은 외투를 걸치고 방을 나섰다.

그렇게 호기롭게 여관을 벗어난 그가 가르엘을 찾아내는 데엔 정확히 한 시간 하고도 18분이 걸렸다. 온 마을을 구석구석 헤집은 끝에, 외곽에 자리한 공터에서 가르엘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공터였고, 주위로는 앙상한 나무가 벽처럼 솟아난 탓에 너머에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가르엘!”

“……단장님?”

갖은 고생을 하며 겨우 가르엘을 찾아낸 카델이 역정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검을 그러쥔 채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가르엘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그가 빨갛게 얼어붙은 코를 훌쩍이며 투덜거렸다.

“왜 이런 데 있는 거야? 라이돈이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다곤 했지만, 이렇게까지 구석일 줄은 몰랐다고.”

“절 찾아온 거예요?”

“보면 몰라?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걸어온 시간이 아까워서 오기로 찾았다. 으, 추워 죽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방에서 잠이나 잘 걸 그랬다. 한껏 툴툴거리는 카델의 모습에, 가르엘이 작게 웃으며 검을 내려 두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이렇게 찾아올 줄 알았으면 미리 장소를 말해 둘걸. 이리 와요.”

양팔을 뻗은 가르엘이 그대로 카델을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뭐 하는 거냐며 밀쳐 내기 바빴겠으나, 지금의 카델로서는 수련으로 따끈해진 그의 체온이 절실했다.

카델은 가르엘의 품에 엉겨 붙어 몸을 녹이며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밥 먹을 때도 안 보이던데. 하루 종일 여기서 수련만 한 거야?”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 왔어요. 단장님과의 식사 시간을 놓친 건 아쉽지만, 집중할 곳이 필요했거든요.”

“안 어울려. 술이나 마시러 다닐 줄 알았는데.”

“이런, 이래 봬도 꽤 건실한 남자인데요, 저.”

물론 가르엘이 수련을 게을리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황금 같은 휴식까지 내버린 채 부지런히 단련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카델이 어느 정도 녹은 몸을 떼어 내며 가르엘을 올려다보았다. 가면을 벗은 얼굴이 다정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

“무리하지 않았어요. 이 정도는 몸풀기에 불과한데요. 저를 단장님과 같은 체력으로…….”

“로렌스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단호한 일갈에 가르엘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카델은 힘이 풀린 가르엘의 팔을 제 어깨 위에서 끌어 내리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의 가슴팍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몸 그만 혹사하고, 나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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