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2화 (362/521)

“신기한 기술이던데요, 요젠 경. 맨 처음 진짜 요젠 경인 줄 알고 분신에게 열심히 대화를 시도했던 것만 빼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평소에도 제 말을 열심히 무시하니 분신인 줄도 몰랐지 뭐예요.”

“흐응, 난 기분 나빠서 뛰쳐나가고 싶던데. 카델을 생각해서 참았어. 나처럼 배려심 깊은 요정은 없을 거야.”

요젠이 등장하자 동료의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고픈 욕망에 지배된 단원들이 몰려들었다. 물론 요젠에게서 성의 있는 답변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그는 카델이 모두를 물리며 다가올 때까지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은 떠났어. 우린 조금 더 탐색하기로 했으니까, 이젠 불편하게 숨어 있지 않아도 돼.”

“숨어 있을 생각은 없었어. 신경 쓰이는 곳을 살펴보고 온 것뿐이야.”

“신경 쓰이는 곳?”

카델이 의아하게 묻자, 요젠이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러고는 카델과 동료들이 뭔가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단장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거냐, 암살자!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반은 그가 쥔 손목이나 묘하게 순순한 카델의 태도가 거슬리는 듯 날을 세웠다. 하지만 요젠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손대는 걸 일일이 허락받을 생각은 없어.”

“뭐? 머리가 암기에 찌들어서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해진 거냐?”

“너도 항상 카델을 만지잖아. 식사를 챙겨 주는 척 손이고 어깨고 마음대로 쓰다듬으면서. 난 안 된다는 거야?”

“무, 뭐라고?”

반이 곧장 반박하지 못하고 당혹감을 드러내자, 타깃은 순식간에 변경됐다.

“매번 대장의 식사를 챙겨 주겠다고 고집부리던 이유가 그거였나? 무식해서 그런지 욕망에만 충실한 모습이 썩 보기 안 좋군.”

“파렴치하네, 반! 앞으로 우리 자기한테 접근하지 마!”

“닥쳐! 내가 언제 그런 음흉한 짓을 했다고……!”

카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왔던 요젠에게는, 카델에 대한 정보만큼이나 그와 접촉한 단원들에 대한 정보 역시 다양했다. 또한 그 다양한 정보 중에는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민망한 정보도 포함되었으므로, 괜히 요젠을 공격했다가는 낯 뜨거운 반격을 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반은 금세 얼굴을 붉힌 채 역정을 내다, 몰아치는 동료들의 야유에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정신 건강을 위해 모두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카델. 홀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가 입을 열었다.

“왠지 갈수록 주변이 밝아지는 것 같지 않아?”

불덩이의 개수도, 화력도 그대로다. 그런데도 요젠을 따라 갱도의 깊숙한 곳으로 이동할수록, 점점 더 시야가 밝아졌다. 그저 어둠에 익숙해졌기 때문인 걸까. 궁금해하며 물었으나, 서로를 헐뜯기 바쁜 단원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먹잇감을 던져 주고 평화를 얻은 요젠이 대꾸했다.

“이 근처에 바위로 틀어막힌 공간이 있어. 어쩌면 거기서부터 새어 나온 빛일지도.”

“바위로 틀어막힌 공간?”

“갱도 끝과 이어져 있어. 어두운 데다 구석지기도 해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다른 벽과 구분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나는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으니까.”

오래 걷지 않아 그들은 갱도의 막다른 길까지 도착했다. 요젠은 막힌 암벽을 훑어 내며 미리 봐 두었던 지점을 찾아 나섰고, 카델은 확연히 밝아진 내부를 돌아보았다. 주위에선 마치 얇은 종이 너머로 빛이 투과되듯 은은한 초록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곳이야.”

요젠의 음성을 따라 고개를 돌렸으나, 그가 말한 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천장과 이어진 평범한 암벽이 있을 뿐. 특별히 튀어나온 곳도, 감촉이 다른 곳도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요젠이 물체의 본질을 헷갈릴 리는 없었다.

카델은 요젠이 가리킨 지점 위로 표식 같은 불덩이를 피웠다.

“부숴 보는 게 좋겠어. 혹시 천장이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장막을 강화할게.”

“쉽게 부서지지는 않을 거야. 한번 시도해 봤지만, 웬만한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

“그럼 다 같이 밀어붙여 보자고.”

기사단의 맹렬한 공세가 이어졌다. 쉽게 깨지지 않으리란 요젠의 말은 사실이었는지, 처음엔 적당히 힘을 아끼며 바위를 두들기던 단원들의 표정도 금세 진지해졌다. 그렇게 서로의 자존심을 살살 긁어 가며 조금씩 공격의 강도를 올린 결과.

“다들 조심해!”

바위가 부서지며 천장이 거세게 흔들렸다.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에 눈살을 찌푸린 카델이 장막을 강화하며 물러섰다.

“단장, 괜찮아요?”

“괜찮아. 다들 다친 곳 없지?”

바위가 완전히 내려앉자 갱도의 진동도 잠잠해졌다. 미리 장막을 강화해 둔 덕에 다행히 부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카델은 잔기침을 하며 조금씩 가라앉는 흙먼지 속에서 무너진 바위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긴…….”

“……아름답네요.”

무수한 에메랄드의 향연. 아름다운 녹색의 원석은 고드름처럼 천장 아래로 뻗쳐 은은한 빛을 발했다. 그것은 평범한 에메랄드라기엔 너무도 영롱한 빛깔을 품었고, 이미 세공된 것처럼 매끈하고 투명하게 발광했다.

“뒤집힌 숲…….”

에메랄드를 올려 보던 루멘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천장을 가득 메운 에메랄드는 넓게 펼쳐진 푸른 초목을 보는 것 같았다.

[뒤집힌 숲, 끝없는 통로, 걸음걸음마다 울리는 희망의 소리. 눈먼 자가 되어 손을 뻗으면 평화를 얻을지니, 영웅이 남긴 의지는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

퍼뜩 떠오른 글귀의 구절이 하나하나 들어맞기 시작했다. 카델은 뚫린 벽 너머로 나아갔다. 불꽃을 띄우지 않아도 충분히 앞을 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밝았다.

‘탄광 안에 포트가 있을 때부터 예상하긴 했지만, 정말 이곳에 평화의 돌이 있는 건가.’

키워드는 전부 갖췄다. 애매한 묘사로 범벅이 된 글귀였지만, 묘사의 대상은 전부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에메랄드를 제외하곤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는데…….’

그를 뒤따라온 부하들도 내부를 둘러보았으나, ‘평화의 돌’이라 추측되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 천장에 매달려 있기라도 한 걸까 싶어 아득히 높은 천장을 보니, 그것만큼은 아니기를 바라게 됐다.

“카델. 이쪽으로 와.”

두리번거리던 카델을 불러낸 요젠이 그를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훅 가까워진 거리에 주춤거리며 고개를 들자, 요젠의 입술이 한눈에 들어왔다. 좀 전의 입맞춤 때문인지 그의 입술 역시 불그스름하게 부어 있었다. 멍하니 입술을 응시하던 카델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부산스레 눈을 깜빡였다.

“……뭐 발견한 거라도 있어?”

“저 에메랄드에서 희미하게 마력이 느껴져.”

“마력? ……하긴. 딱 봐도 평범한 광석처럼 보이진 않지.”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에메랄드에 담긴 마력이 조금씩 방출되고 있다는 거야. 뭔가를 가리키는 것처럼 각각 다른 각도로 뻗쳐서, 결국엔 한 점에 모여.”

요젠은 카델의 등을 가볍게 밀어 내며 어느 한 지점에 세웠다.

“이곳이야.”

그리고 카델이 그 자리에 우뚝 선 순간.

키이잉―

에메랄드에서부터 강한 공명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은은하던 빛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눈부시게 증폭됐고, 흘러넘친 마력이 공간을 뒤덮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와아, 묘하게 익숙한 마력인걸? 그 요정이 봉인한 돌인가 보네. ……기분 나빠라.”

갑작스러운 변화에 단원들은 동요를 드러냈지만, 라이돈은 아니었다. 그는 영롱하게 퍼지는 마력의 흐름을 느끼며 시큰둥하게 입술을 늘일 뿐이었다. 본능적으로 이 마력이 이곳의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건…….’

에메랄드에서 빠져나온 마력이 제 위로 쏟아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따스한 햇살처럼, 포근하게 몸을 감싼 마력. 얌전히 마력의 폭포 안에 머무르기를 택한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펼친 손바닥 위로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쿤라의 눈동자가 떠오르는 오묘한 녹색을 띤 마력. 그것이 둥글게 응축되고, 부드럽게 소용돌이쳤다. 카델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제 손안에서 모양을 갖춰 가는 마력을 바라보았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에메랄드의 눈부신 빛은 오로지 카델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빛에 휩싸인 그의 모습은 신의 계시를 받는 영웅처럼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새로운 위협을 경계하던 단원들조차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그렇게 에메랄드의 모든 마력이 카델에게 스며들고. 보다 어두워진 공간 속에서, 카델의 속삭임 같은 음성이 흘러들었다.

“찾았어. 평화의 돌.”

「보유 봉인석 : 1/7」

환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손안 가득 들어찬 진녹색의 돌을 자랑하듯 내보이며 기쁘게 외쳤다.

“우리가 찾았다고!”

모든 평화의 돌이 모일 때까지, 발견된 돌은 각 왕국이 책임지고 보관하기로 협의가 이루어졌다. 때문에 적린 기사단이 찾아낸 평화의 돌은 다스토를 통해 곧장 둥켈하이 왕국으로 전달됐다.

그리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적린 기사단은 제국으로의 복귀 전, 짧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재충전을 하기 위함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카델은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

이유는 아주 다양했는데, 그중 하나는 카델이 여관을 잡자마자 폭풍처럼 몰아친 서신이었다. 마계 마법진의 연구 결과와 그에 대한 마법사들의 의견, 보충할 점을 묻는 전보의 향연에 카델은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 그것은 바로 성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듯한 한 부하의 방해 공작이었다.

“……그만 좀 괴롭혀, 요젠.”

“괴롭힌 적 없어.”

요젠은 카델이 일하는 동안 책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끊임없이 그의 얼굴을 만져 댔다. 집중하느라 살짝 구겨진 미간을 문지르고, 무언가를 고민할 때마다 씰룩대는 뺨을 쓸고, 꾹 힘을 준 입술을 더듬었다. 성가신 손길을 피해 고개를 틀어도 집요하게 닿아 오니,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기다란 요젠의 손가락이 은근슬쩍 입술을 벌리려 할 즈음. 참다못한 카델이 그의 손을 잡아 끌어 내렸다.

“나 바쁘단 말이야. 좀 놔둬. 일 다 끝내면 같이 놀 테니까.”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최근에는 마밀이 분석 작업에 투입되어 진척도가 부쩍 늘었지만, 이렇게 틈이 날 때 꾸준히 도와야 조금이라도 빨리 술식을 완성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요젠에겐 카델의 합리적인 결론이 그다지 감명 깊게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키스하고 싶어.”

냅다 내리꽂히는 직설적인 요구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새를 놓치지 않은 요젠이 벌어진 입안으로 엄지를 밀어 넣고. 단단한 손끝이 부드럽고 뜨거운 혓바닥을 가볍게 짓누르자, 반사적으로 움찔거린 혓바닥이 그의 피부를 감쌌다. 그제야 요젠의 입가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탄광에서는 사람이 많아서 싫다. 돌아와서는 바빠서 싫다. 그래서 전부 맞춰 줬잖아.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가 깃털처럼 귓가를 간질였다. 카델이 주춤거리며 고개를 뒤로 빼자, 순순히 빠져나간 손끝으로 얇은 타액이 늘어졌다.

요젠은 젖은 손가락을 아무렇지 않게 제 입술로 가져가 진득하게 문질렀다. 그 당혹스럽고 충격적인 행위에 카델이 경악하며 숨을 들이켰다.

“더, 더럽잖아! 뭐 하는 거야!”

“여전히 바빠?”

어떻게 눈을 가리고 있음에도 저렇게 여우처럼 웃을 수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 보아 온 수줍음 많은 요젠은 어디로 간 걸까. 제 감정을 받아들인 요젠은 라이돈만큼이나 적극적이었고, 가르엘만큼이나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냈다.

솔직해진 그의 모습이 싫은 것은 아니었으나, 적응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앓는 소리를 낸 카델이 마른세수를 했다.

“……그럼 조금만 해.”

“조금만? 정확한 시간을 말해.”

“3분.”

“3분? 진심이야, 카델?”

아쉽지만 3분의 시간이라도 아까운 것이 현 상황이었다. 힘들게 타협한 것을 마다한다면 자신도 어쩔 수 없다. 그리 생각한 카델이 짜증스레 고개를 치켜든 순간.

“말했잖아, 나 엄청 바쁘다―”

카델이 앉은 의자를 제 앞으로 끌어당긴 요젠이 집어삼키듯 카델의 입술을 머금었다. 앞뒤 없이 달려드는 몸을 따라 의자가 조금씩 기울어졌다. 카델은 입 안을 파고드는 열기를 느끼면서도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기울어진 경사에 불안감을 느꼈다.

곧 기어코 쓰러진 의자에 놀란 카델이 반사적으로 요젠의 혀를 깨물고야 말았으나.

“일일이 놀라지 마. 시간 아까워.”

카델이 넘어지기 직전, 그의 허리를 강하게 치켜들어 강제로 일으킨 요젠이 피 맛 나는 키스를 이어 갔다. 자연스럽게 카델을 들어 책상 위에 앉히고, 그의 허벅지 옆에 양손을 짚은 채 맞붙은 고개를 기울였다.

달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미묘한 맛이 점막 구석구석을 핥아 냈다. 요젠은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듯 대담하게 파고들었고, 카델은 한때 조신했던 남자의 파격적인 변화에 휘둘리기 바빴다.

단단한 어깨를 그러쥐고, 조금씩 허벅지를 타고 오르는 손길에 반응하며 움찔거렸다. 뜨겁게 달뜬 분위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요젠은 카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더듬었고, 그런 그의 손놀림은 카델에게 있어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 자극적이었다. 요젠은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는 데 최고의 재능을 갖춘 사내였다. 또한 그는 상대의 감각을 다루는 데도 재능을 보였다. 요젠과의 입맞춤은 전혀 강압적이지 않았지만, 도저히 주도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끝.”

영원히 끝내지 않을 것처럼 집중하던 그는 정확히 3분이 지나자 약속을 지켰다. 짧은 시간 동안 욕심껏 카델을 소유한 요젠은, 은근한 충족감을 드러내며 밀어붙였던 몸을 떼어 냈다.

카델은 여전히 입맞춤의 여운이 남은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다,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내가 사람을 다루는 건지, 여우를 다루는 건지.’

어찌 된 게 사방에 단장 농락하기 바쁜 부하들밖에 없다. 그 여우 같은 부하들에게 부지런히 휘둘려 주는 자신도 문제인 것 같았다.

“이제 진짜 일할 거니까, 밖에 나가서 다른 애들이랑 놀고 있어.”

“시간 생기면 언제든 불러.”

“안 생겨!”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 끈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듯한 기세였다. 카델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귀염성에 대한 억울함까지 느끼며 빽 소리를 질렀다.

물론 요젠에게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그는 카델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 말인즉슨, 지금까지 그가 카델에게 품었으나, 끝내 부정해야 했던 모든 욕망을 인정했다는 뜻.

그러니 카델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었다. 약속하지 않았는가. 인간이 된 자신을 감당해 주겠다고. 그러니 조금 더 뻔뻔스럽게 나가도 됐다.

그렇게 한결 기분 좋아진 요젠이 유유히 방을 떠나고. 남겨진 카델은 앞으로 감당하게 될 질척한 요구들을 떠올리며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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