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4화 (42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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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토토의 배 속. 탈출을 보류한 기사들은 필사적인 탐색 끝에 내부에 자리한 토토의 약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주…… 징그럽군요.”

위를 올려다보는 모리톨의 표정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모든 감상에 그다지 힘을 쏟지 않는 모리톨이 ‘아주 징그럽다’는 평가를 남겼을 만큼, 토토의 약점은 실제로도 생김새가 제법 흉악했다.

“루, 루멘 경. 제 옆에서 떨어지지 말아 주세요.”

“……제리엘 경. 이만 경의 부하들을 보살피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야죠. 같이 가실래요?”

“싫습니다.”

루멘은 자꾸만 달라붙는 제리엘을 가볍게 밀어 내며 고개를 들었다. 천장과 옆벽 사이에 걸친 거대한 혹. 은은한 노란빛을 발하는 반투명한 혹 덩이는 외피가 울퉁불퉁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 안쪽에 자리한 것은 무수한 양의 알. 좁쌀처럼 자그마한 알이 덕지덕지 뭉쳐 있으니, 항상 덤덤하던 루멘조차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저 안에서 태어날 것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군요.”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저은 가르엘이 루멘에게 말했다.

“경의 멋진 발도술이 빛을 발할 때예요. 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치유술을 준비하고 있죠.”

“혼자 빠지겠다는 소리를 길게도 하는군요.”

“섭섭한 소리를 하시네. 엑토 경도 모리톨 경도, 이미 루멘 경을 주요 공격수로 점찍어 뒀어요. 저는 그 순위에서 밀려났고요. 자의가 아니랍니다.”

뻔뻔스러운 말투에 루멘이 짧게 혀를 찼다. 그의 말대로, 약점 공략에 투입될 주요 인력 중 하나는 자신이 될 터였다. 지금도 이쪽을 돌아보는 엑토의 시선이 느껴졌으니.

“루멘 경, 이리 와 보시오.”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엑토의 부름에 루멘이 한숨을 삼켰다. 다가간 엑토의 곁에는 드레프도 자리하고 있었다.

“저 막을 터뜨림과 동시에 쏟아질 알들을 처리해야 하오. 그냥 두었다간 어떤 재앙이 찾아올지 모르니. 손이 빠른 드레프와 루멘 경이 막의 파괴에 맞춰 알들을 처리해 주시오. 마법사들이 둘을 보조해 줄 거요. 그리고 이것.”

루멘에게 [울로]를 넘겨준 엑토가 말을 이었다.

“카델 단장이 신호를 보내는 즉시 공격을 시작할 거요. 경과 드레프가 알을 처리한다면, 우리는 그 너머의 내피를 공격하겠소.”

“알겠습니다.”

열심히 단련한 발도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으나, 그다지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루멘은 [울로]를 움켜쥔 채 드레프와 함께 노란 막의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 역겹군.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코앞에서 올려다본 알들은 금방이라도 부화할 듯 껍질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굳어 가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루멘의 옆에서, 드레프가 까칠한 목소리를 냈다.

“우리 단장님이 네 실력을 꽤 높게 쳐주시더라.”

“……?”

“대대장인 나보다도 빠르고, 힘을 활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시선을 돌리자 묘하게 뾰로통해진 얼굴이 보였다. 그런데도 애써 덤덤한 척 구는 드레프를 바라보다, 씩 입꼬리를 끌어 올린 루멘이 말했다.

“혹시 비교당할까 봐 무섭습니까?”

“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조용히 실력을 증명해 내면 될 일이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엑토 단장님의 생각만큼 실력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줄 거라고.”

은근한 도발에 드레프가 곧장 날을 세웠다. 그 모습이 꼭 한층 놀리기 쉬워진 반 같아, 루멘은 [울로]를 바닥에 내려 두며 부러 빈정거렸다.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굳이 봐드릴 생각은 없어서.”

이럴 때 아군을 긁어 봐야 좋을 건 없겠지만, 그럼에도 루멘은 제 실력을 과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야, 카델의 곁에 있을 검사는 누구보다 압도적인 실력을 갖춰야 했으니까. 누가 봐도 카델 라이토스의 검사라고 인정할 수 있도록, 아득한 실력 차를 보여 줘야 했다.

그렇게 둘 사이의 팽팽해진 긴장감 속에서, [울로]의 무전이 시작됐다.

[준…… 료. 벌…… 격 하세…….]

들려오는 음성은 뚝뚝 끊겼음에도 이것이 카델의 목소리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검집에 손을 올린 루멘이 기동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뒤편에서 날아든 화살이 노란 막을 꿰뚫었다.

찬란하다. 상공을 가린 하이론의 마법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촘촘한 천사의 날개는 어두운 마계에 맑은 빛을 흩뿌렸고, 무표정한 얼굴은 피로 물든 전장을 투명하게 비췄다. 길게 늘어진 다리의 움직임을 따라 지독한 한기가 흘러넘치니, ‘그것’은 꼭 죽음의 사자 같기도 했다.

‘그것’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날개를 펄럭일 뿐이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로 적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마법을 준비하던 카델조차 일순 주의를 빼앗길 정도였으니.

“전군! 적들을 막아라! 마법사들을 지켜야 한다!”

하이론의 마법, [눈꽃서리왕]은 아군의 위치를 공개하는 토템이나 다름없었다. 카델은 [화마의 화살]이 장전된 마법진의 위치를 조금씩 옮기며, 적들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키야아아악!”

“새로운 먹잇감이로다! 캬하학!”

숲길의 맞은편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숫자의 적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최전방에 선 소린은 그들의 등장과 동시에 지면으로 해머를 내리찍었다. 우악스러운 악력을 동반한 해머가 대지를 짓누르며, 묵직한 충격파가 전방을 노렸다.

갈지자로 흩어진 충격파가 적들이 선 땅을 흔들고. 선두에서 내달리던 적군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뒤편의 적들까지 발이 걸렸다. 일시적으로 적들의 접근을 멈춘 소린이 우렁차게 외쳤다.

“돌격! 거리를 유지해라! 한 걸음도 가까이 다가오게 둬선 안 된다!”

기사들의 공격이 시작되며, 카델 또한 장전해 둔 불화살을 발사했다. 보이는 적은 물론, 그 너머로 달려오는 적까지. 조여진 한쪽 동공이 세밀하게 적군의 위치를 가늠했다.

그러는 동안 뒤편의 [눈꽃서리왕]이 조금씩 이동했다. 아군의 머리 위로 드리웠던 그림자가 움직이고, 곧 몰려드는 적군을 물들였다.

자리를 찾은 [눈꽃서리왕]의 고개가 내려가며, 투명한 눈동자가 발아래 자리한 적군을 응시했다. 그러자 다음 순간.

“……!”

“지금이다, 전부 부숴!”

[눈꽃서리왕]의 시선이 닿은 모든 적군이, 일시에 얼어붙었다. 아군은 눈 깜짝할 새에 얼어 버린 적들에 멈칫하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난무하는 검기 속, 붉은 오라와 새까만 암기가 도드라졌다.

반의 오라는 대검의 궤적을 따라 채찍처럼 다수의 적을 쓸어 담았고, 요젠의 암기는 눈앞의 인간에게 집중하는 적의 급소를 찔렀다. 반과 요젠이 합세한 난투는 빠른 속도로 적들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 난투를 무시한 채 마법사들에게 은밀히 접근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이 거대한 얼음 조각상은 뭐야?”

“저길 봐, 난자르. 요정이야.”

한 몸에 두 개의 얼굴을 단 샴쌍둥이. 그들의 접근을 확인한 카델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난자르와 하자르인가. 오랜만에 아는 얼굴을 보니까 기분이 좋네. 어이없게…….’

연달아 초면인 적들만 만나다, 간만에 경험했던 고위 마족을 발견하니 반가운 감정이 피어났다. 샴쌍둥이인 그들은 짧은 머리가 난자르, 긴 머리가 하자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난자르는 몸의 통제권을 쥐고 근거리 공격을, 하자르는 그 옆에서 독을 뿜어냈지. 독은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니 먼저 처리해야 하는 건 하자르쪽이야. 게임에선 쌍둥이의 피를 일정량 깎으면 하자르의 머리통이 저절로 떨어졌지만……. 실전에서 그런 친절이 주어질 린 없지.’

여기선 아군이 직접 하자르의 머리를 베어 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저 샴쌍둥이에겐 거리가 의미 없다는 점이었다. 적이 가까이 있어도, 멀리 떨어져도. 그들의 공격은 유효했으니.

‘사람이 직접 상대하기엔 위험한 녀석들이야. 웬만하면 저 얼음 조각상이 견제해 줬으면 좋겠는데.’

[화마의 화살]을 조준해 난자르와 하자르를 집중 포격한다면, 타깃은 단숨에 자신이 될 것이다. 놈들의 주의가 지상으로 넘어오면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진다. 짧게 혀를 찬 카델이 고개를 돌려 하이론을 불렀다.

“하이론 님! 저 고위 마족을 처리할 수 있나요? 위험한 독을 뿜는 녀석이에요. 지상에 접근하게 둬선 안 됩니다!”

[눈꽃서리왕]을 조종하는 하이론은 그 외형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금발 머리와 붉은 눈, 생기 돌던 피부는 전부 하얗게 색이 빠졌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 곳곳에 성에가 끼었고, 하얗게 탈색된 머리칼은 피어나는 냉기를 따라 하늘로 치솟았다.

하이론은 카델의 말에 답하는 대신, [눈꽃서리왕]의 움직임을 바꿨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서. 라이돈은 모든 마력의 흐름을 머릿속에 새겨 넣고 있었다.

‘……대단해.’

[눈꽃서리왕]은 그저 거대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지상과 상공을 자유자재로 누비며 적을 압도할 수 있었고, 그저 위치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 만물을 얼어붙일 수 있었다.

[눈꽃서리왕]의 시선, 눈짓, 손짓, 모든 요소가 치명적인 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만큼, 시전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마력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용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졌다간 시전자는 물론 아군마저 위험해지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다. 마치 [영구동토]를 시전하다 모두를 얼려 버렸던 과거의 라이돈처럼.

그럼에도 하이론에게는 실패의 두려움이나 걱정이 일절 비치지 않았고, 실제로도 완벽한 능력을 과시했다.

“다가오고 있어, 난자르.”

“독을 쏴, 하자르. 네 독이 녹이지 못하는 건 없어.”

점점 다가오는 [눈꽃서리왕]에 긴장한 쌍둥이가 대응에 나섰다. 힘껏 숨을 들이마신 하자르의 양 볼이 기이할 만큼 거대하게 부풀고. 목울대가 꿀렁이며, 무언가가 그의 입 안으로 역류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캬아아악!

독사처럼 머리를 뺀 하자르의 입안에서, 진녹색의 액체가 뿜어졌다. 일직석으로 뻗은 힘찬 독액이 [눈꽃서리왕]의 안면을 강타하고. 독액은 투명한 얼음을 녹이며 안쪽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좋아. 이번엔 좀 더 힘차게, 많은 양을 뿜어.”

“가까이 다가가 봐, 난자르. 멀리서는 많은 양을 맞추기 힘들다는 거 알잖아.”

“빨리 해치워야 해. 근처에 오래 있다간 얼어붙을 거야.”

“나도 알아. 앞으로 가.”

하자르가 다시 입을 다물고 볼을 부풀리자, 떨떠름한 표정의 난자르가 [눈꽃서리왕]과의 거리를 좁혔다. [눈꽃서리왕]을 맞춘 독액은 얼지 않고 거대한 얼굴에 깊숙한 구멍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많은 양을 뿜는다면 상당 부분을 훼손시킬 수 있을 터.

난자르는 [눈꽃서리왕]이 뿜어내는 냉기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하자르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제법 떨어져 있음에도 워낙 크기가 커서인지, 꼭 코앞에 드리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하자르의 목울대가 또 한 번 꿀렁인 때.

까가가가각.

굳게 다물려 있던 [눈꽃서리왕]의 입술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부터 세찬 냉풍이 쏟아졌다. 마력이 모이는 기미나 별다른 준비 과정도 없었다. 눈 깜짝할 새 몰아치는 냉풍에 난자르가 다급히 날개를 움직였으나.

“아, 안 돼……!”

[눈꽃서리왕]이 쌍둥이와의 거리를 좁혀들었다. 기어이 위험 범위 안으로 들어선 쌍둥이의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경악에 찬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우스꽝스럽게 부푼 뺨 속의 독액까지 그대로. 하나의 얼음덩이가 된 난자르와 하자르는 맥없이 수직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를 발견한 카델이 불화살을 무더기로 발사해 쌍둥이와 아군의 충돌을 막았다.

‘저 녀석들을 이렇게 간단하게 해치우다니…….’

두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다. 어떤 거리에서도 무리 없이 상대를 공격하며, 치명적인 극독을 물처럼 뿜어 대는 고위 마족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적인 만큼 상당히 까다로워, 요주의 인물 중 하나로 기억해 뒀을 정도였다.

‘무서울 정도로 사기적인 능력이야.’

괜히 요정 왕이 아닌 것인가. 하이론의 비기는 등장만으로 아군을 안심시킴과 동시에 전의를 뜨겁게 끌어 올렸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이 무시 불가한 수준까지 치솟고 있음이 느껴졌다. 하이론이 가진 위력에 순수하게 기뻐할 만큼, 카델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렇게 무거운 걱정을 끌어안은 카델이 불화살을 쏟아 내고 있을 무렵.

쿠구구구구―

잠잠하던 땅이 흔들리며, 숲 전체로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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