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5화 (43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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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요젠 바르딕타’의 의지가 운명의 벽을 두드립니다.」

「기사 ‘요젠 바르딕타’의 한계 돌파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실패 시, 한계 돌파 퀘스트 소멸. 기사 ‘요젠 바르딕타’ 사망.」

불시에 떠오른 시스템 창에, 다급히 걸음을 옮기던 카델의 표정이 황망히 굳었다.

“지금, 뭐라는… 거야…….”

갑자기 한계 돌파 퀘스트라니. 이런 어둠 속에서, 눈앞의 적도 없는 상태에서 무슨 한계 돌파란 말인가. 당혹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했다. 요젠이 무언가 위험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요젠! 제발 대답 좀 해 봐, 내 목소리 들리잖아! 왜 무시하는 거야!”

요젠이 사라졌음을 깨달은 순간. 카델을 감싸던 평안과 안정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독한 고요에 심장은 전에 없이 널뛰었고, 쉼 없는 뜀박질에 호흡이 버거워졌다.

어딜 돌아봐도 암흑뿐이다. 좀 전까지 함께 있던 요젠이 진짜였는지조차 헷갈릴 만큼, 이곳은 황량하기만 했다.

“제발, 요젠…….”

물기 어린 음성이 끊임없이 요젠의 이름을 되풀이했다. 최후의 전투가 코앞이다. 당장 몇 시간 뒤에 이 세계를 떠나 헤어지게 된대도 이상할 게 없었다. 모두와 함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테지만, 그것은 부하들의 무사가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이런 돌발 상황은, 전혀 달갑지 않다.

“빨리 나와! 빨리 내 옆에…….”

불쑥 튀어나오는 흐느낌에 말을 끝맺기가 어려웠다. 카델은 딸꾹질처럼 튀어나오는 울음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 이내 스르륵 주저앉았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힘을 준 몸에선 뜨끈하게 열이 올랐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아무리 마지막이래도 이렇게 까지 숨통을 옥죄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축축해진 눈을 마구 문지르며, 카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안아 줘, 요젠. 나 무서워…….”

공허한 우주 속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다. 아득한 옛날의, 미치도록 행복했던 시절의 꿈을 꾸고 깨어나 절망적인 현실을 직시한 기분.

요젠과 함께 있었을 땐 걱정은 들지언정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남긴 온기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도는 웃음이, 공포에 질린 카델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사실 이곳에서 만났던 요젠은 전부 허상이 아니었을까. 미로가 환상을 보여 주어 먹잇감의 정신을 교란하려던 것은? 이 드넓은 어둠 속에 머무는 이는 자신뿐이고, 영원한 고독 속에 파묻혀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혀, 어떻게든 호흡을 이어 가려 용을 써야 했다. 공기 중의 산소가 부족해진 것처럼, 아무리 숨을 들이쉬어도 속이 갑갑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데도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조금씩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졌다.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여력은 사라진 지 오래. 그렇게 눈앞에서 번뜩이던 시스템 창의 윤곽마저 흐려진 순간.

“왜 그래.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카델.”

웅크린 몸을 덮치듯, 뜨거운 온기가 전신을 감쌌다. 나긋하게 울리는 익숙한 음성에 카델이 놀란 것처럼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흐으…….”

“숨 쉬어야지. 자, 이제 괜찮아. 나 돌아왔어.”

큼직한 손바닥이 카델의 뺨과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카델은 제 상체를 감싼 팔을 단단히 그러쥐며 가쁘게 헐떡였다.

“어딜 갔던 거야…….”

원망 어린 목소리에 요젠은 말없이 카델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살갗 위로 퍼지는 따뜻한 숨결. 그 부드러운 온기에 좀 전까지의 공황이 우스워질 정도로 쉽사리 안정감이 찾아왔다.

카델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천천히 호흡을 이어 가다, 문득 코끝을 찌르는 냄새를 인식했다.

“……피 냄새. 잠깐만, 요젠. 이거 너한테서 나는 거야?”

“아니.”

“아니라고? 그럼 대체 어디서…….”

보이지 않으니 뭐가 진짜인지 알아챌 수가 없다. 카델은 몸을 돌려 요젠의 얼굴을 살펴보려 했지만, 요젠은 카델을 감싼 팔에 힘을 주어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웃기지 마. 너 다친 거잖아. 얼마나 다친 거야? 어쩌다가? 여기 위험한 뭔가가 있어? 응?”

다급한 물음의 연속에도 요젠은 침묵을 지켰다. 카델의 불안과 염려, 흐릿한 분노를 느끼며. 무섭다고 훌쩍이는 한 사내를 위해, 다 죽어 가는 몸을 끌고 볼품없이 기어가던 순간을 떠올렸다.

공간의 허점을 파악하고, 온 기운을 짜내 기어이 탈출의 방법을 깨우친 때마저도. 카델을 탈출시켜야 한다는 생각보다 먼저, 울고 있는 그를 달래야 한다는 마음을 따라 처절하게 움직이던 몸.

바보 같았다. 이럴 거면 목숨 걸고 카델을 탈출시킬 계획 따위 세우지 말아야 했다. 그의 울음 섞인 한 마디에 죽을 각오까지 팽개치고 달려올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서로를 꽉 끌어안고 다가올 죽음이나 순순히 기다렸어야 했다.

“어떡하지, 카델?”

“왜 그래. 많이 아파?”

사실 모든 게 변명일 뿐이다. 자신은 그의 울음에 미쳐 달려온 것이 아니다.

“나도 너무 무서워.”

자신의 죽음을 코앞에서 마주 보았을 때. 제 옆에 카델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마지막으로 듣게 되는 것이 그의 웃음이 아닌 울음이라는 것이. 움켜쥘 수 있는 것이 그의 손이 아닌 차가운 공기라는 것이.

“이제 너 없이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나 봐.”

죽는다면 카델의 명령으로 죽어야 했다. 이 목숨은 이제 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원하지 않는 한, 자신은 마음껏 희생조차 할 수 없다. 이런 건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황당할 정도로 맹목적인 짐승일 뿐.

그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황홀해, 요젠은 온 힘을 다해 카델을 끌어안았다. 처음으로 그와는 영영 닿을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득히 먼 곳의 신처럼, 그는 제게 너무나 높은 사람이었다.

“넌 절대 죽지 않아.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요젠의 말대로였다. 그는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 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지옥 불이라도 기꺼이 몸을 던질 수 있다. 가지고 있는, 가지지 못한 모든 수를 끌어와 지킬 것이다.

그러니 요젠은 이곳에서 죽지 않는다. 빌어먹을 시스템이 그의 한계를 시험한답시고 죽음으로 내몬대도, 어떻게든 이겨 낼 것이다.

“내 옆에서까지 조용히 있을 필요 없어, 요젠. ……숨소리 좀 들려줘.”

제 몸 위에서 물에 젖은 외투처럼 늘어진 요젠을 꽉 감쌌다. 귓가로 옅은 웃음소리가 울리며, 곧 이어지는 가느다란 숨소리가 빠른 속도로 마음을 안정시켰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미약한 호흡이었으나, 살아 있다면 되었다.

“카델, 이곳은…… 무한의 공간이 아니야. 분명히 끝이 있고, 부술 수 있는 벽도 있어. 이곳의 힘이 우리를 허락된 공간만 맴돌도록 억누르고 있는 건데……. 미안. 말이 느려서 답답하지?”

“전혀. 더 천천히 말해도 돼.”

“나는, 그 힘을 거스르기 위해서 제한된 공간 안에 내 온 기운을 풀었어. 암기가 억제의 힘을 뚫고 공간을 마음껏 활보할 수 있다면, 탈출의 실마리가 보일 테니까.”

실제로 요젠은 제한된 공간의 바깥까지 암기를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기엔 기운이 모자랐고, 목숨을 버리고 임무를 완수하기엔 카델의 슬픔이 지독했다.

“내 목숨보다 전쟁의 승리가 중요하잖아. 이곳에서 널 내보내 줄게, 카델. 금방 끝날 거야. 허락해 줘.”

간절함이 뒤엉킨 요젠의 음성에 카델이 입술을 깨물었다. 경직된 혀끝으로 비린 피 맛이 맴돌았다.

“이곳에 계속 머무른다면 둘 다 죽고 말아. 억제의 힘은 우리의 의지와 영혼을 가릴 거고, ‘죽음’이라는 좁은 세계에 가둬 평안함을 얻게 할 테니까. 난 느낄 수 있어. 지금도 우린 ‘죽음’에 끌려가고 있거든.”

“……그만 말해.”

“여기서 시간을 더 낭비하면 내가 뿌려 둔 기운이 다시 억제의 힘에 밀려날 거야. 그럼 겨우 찾은 탈출의 가능성마저 사라져.”

다그치듯 요젠의 팔을 강하게 움켜쥐었으나, 아파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얄팍한 호흡을 이어 가며, 제가 이곳에서 죽어야 할 이유를 나열할 뿐이었다.

“내가 널 살리게 해 줘, 카델.”

최악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끔찍하기만 했다. 모두와 함께 싸우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미로를 빠져나가야 했다. 다른 단원들의 상태도 걱정됐다. 아직 미로에 남아 있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만약 미로를 벗어났다면,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곧장 마왕 성으로 진군하는 중일까? 그렇다면 어서 따라잡아야 하는데. 쿤라는 아직 하이론 님을 살릴 방법을 찾고 있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칫했다간 미로 속에서 하이론 님이 ‘제거’ 당하는 모습을 방관해야 할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끔찍한 일투성이다.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은, 요젠의 희생 외에 이 공간을 빠져나갈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네겐 소중한 게 많잖아. 난 너뿐이야. 네가 죽으면 난 모든 게 끝이야.”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널 살리면, 넌 밖에 나가 모두를 구할 수 있어. 그럴 수 있는 인간이잖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조금씩 정신이 몽롱해지며, 깊은 악몽에라도 빠진 듯 음울한 감정이 들어찼다.

절대 요젠을 죽게 놔둘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고집으로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그 결과로 요젠을 포함한 모든 것이 리셋되고, 다시 끔찍한 전쟁을 되풀이한다면? 그 업보조차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갚아야 한다면, 그렇다면…….

‘전부 끝이야.’

지금까지의 노력도, 희망도, 사랑도, 모조리 끝나 버린다. 없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 세계에서 추방되어, 어쩌면 모든 기억을 잃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지 모른다. 아니, 뻔뻔하게 이 세계의 영혼을 유흥거리 삼아 쾌락을 추구하겠지. 이곳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누굴 남겨 뒀는지도 잊어버린 채.

“……요젠.”

“응, 카델.”

찢어진 입술이 따끔거렸다. 요젠의 팔을 쥔 손끝에 바짝 힘이 들어가며, 한참을 머뭇거리던 카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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