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0화 (440/521)

⚔️

“……에밀리아.”

마왕 성의 꼭대기. 발코니의 난간을 붙든 채 너머를 내다보는 에밀리아의 뒤에서, 셀레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에밀리아는 셀레브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하늘에 닿았다. 어두운 하늘에 높이 떠오른 적룡과 재앙의 불꽃, 그 아래로 쉼 없이 떨어지는 불덩이의 잔상. 그 모든 것들을 담아내며, 난간을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뼈대가 도드라진 손등에 떨림이 더해지자 그녀의 몸 위로 검은 마기가 일렁였다.

“어째서 적룡이…….”

부하들에게 요정의 존재를 전해 들었을 때도, 그들이 흩어졌던 아군과 합류해 마족 군단을 격퇴하고, 미로를 부수고, 정원까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에밀리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인간을 얕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계의 승리를 확신했으나, 마계를 봉인했던 인간들의 저력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그들의 전력을 반으로 찢고, 마족들의 무대인 마계에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그들이 몇 겹의 장애물을 넘어 기어이 마왕 성에 도착한대도. 이 안에는 넝마가 된 인간들을 무너뜨릴 만한 전력이 충분했다. 때문에 에밀리아는 줄줄이 이어지는 패전보를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전략을 고집했다.

그런데 어째서.

“적룡까지 인간의 편에 섰다는 거야……? 지금껏 적룡은 중립을 지켜 왔어. 단 한 번도 대놓고 본인의 존재를 과시한 적이 없었다고. ……셀레브, 이건 이상해. 너무 이상하잖아.”

가냘픈 목소리가 잘게 떨리며, 꽉 깨문 입술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에 머뭇거리던 셀레브가 그녀의 어깨를 짚으려 했으나, 거칠게 몸을 돌린 에밀리아가 손목을 낚아챘다.

셀레브를 마주 보는 에밀리아의 눈빛에선 숨기지 못한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흉악한 눈빛에 셀레브가 마른침을 삼켰다.

“찾아. 자기 영역 지키는 데 혈안인 적룡이 본체를 끌고 왔을 리는 없어. 누군가 적룡의 힘을 가져온 거야. 어떤 인간인지 찾아서 내 앞에 그놈의 목을 가져와, 셀레브.”

날카로운 명령에 셀레브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녀를 놓아준 에밀리아가 살벌한 시선을 움직였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마계의 해방을 저지한대도, 자신의 의지는 꺾을 수 없다. 어떻게든 왕좌를 사수해 군림하리라. 그 완벽한 미래를 위해서라면, 자신은 못 할 짓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