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8화 (45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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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쩔까……. 폐하께선 널 미끼로 이놈을 낚으라고 하셨지만, 잘만 하면 몇 놈을 더 낚을 수도 있을 것 같단 말이지. 크크…….”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네 생각은 어떻지? 가여운 요정아, 말해 보거라. 이 시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 것 같으냐?”

아버지를 잃었다. 자신을 지키려 몸을 던진 아버지가 죽어, 자신은 그 원수를 갚으러 왔다. 그런데 왜 바라던 원수는 죽이지도 못하고, 카델의 심장까지 빼앗긴 것일까.

왜? 답은 간단했다.

“차라리 나를 죽여.”

“음? 그럴 수는 없지. 넌 살아서 네 동료가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해. 그래야 재미가 있거든.”

아버지가 죽은 것도, 카델이 심장을 빼앗긴 것도. 전부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아무 쓸모도 없는 힘이다. 소중한 이를 지키지 못하는 힘은 쓸모가 없다.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 놈의 손에 들린 심장은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도 자신은 멀쩡히 살아 있고, 아버지와 카델은…….

“흐흐……. 우는 건가? 울고 있군. 크하하핫!”

난도질당한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기운은 엉망진창이고, 남은 마력도 없다. 이 걸레짝 같은 몸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라이돈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원망했다.

소중한 이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끌어들인 자신의 나약함.

자유 따윈 필요 없다. 꿈도 희망도 필요 없다. 목숨도, 삶의 의미도, 사랑조차 필요 없었다. 모든 걸 잃은 라이돈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심장을 돌려줘…….”

힘. 괴로운 과거마저 깨부술 강력한 힘이었다.

「돌발 퀘스트 ‘빼앗긴 심장’ 발생!」

「퀘스트를 진행하여 스토리의 전개를 지키십시오.」

「실패 시, 메인 퀘스트 진행 불가.」

유체 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뒤바뀐 시점은 라이돈과 간수, 그리고 놈의 손에 들린 카델 라이토스의 심장을 담아내고 있었다. 꼭 부하들의 과거를 볼 때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감각이다. 하지만 눈앞의 장면은 전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잊어선 안 됐다.

‘멍청해. 멍청한 놈. 대체 왜 생각을 안 하고 행동한 거야? 딱 보면 몰라? 라이돈을 미끼로 내 심장을 빼앗으려는 수작이었잖아. 그딴 것도 간파하지 못하면서 세계를 구하겠다고? 나가 죽어, 그냥. 너보단 다음 타자가 세계를 구하는 게 훨씬 가능성 높겠다.’

자기비하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만큼 멍청한 선택이었다. 애초에 놈이 라이돈의 심장을 가지고 딜을 하게 둬선 안 됐는데.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혀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이 문제였다.

자신 때문에 라이돈은 넝마가 된 몸으로 눈을 떴고, 자신을 구해 줬어야 할 단장이 심장을 뺏긴 채 쓰러진 꼴을 지켜봐야 했다.

‘하……. 미치겠네, 진짜.’

시점이 바뀐 직후, 곧장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다. 하지만 돌발 퀘스트라 해 봤자 육체를 빼앗긴 카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멀뚱히 눈앞의 장면을 지켜보는 게 전부. 게다가 그들의 대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물에 빠진 것처럼 먹먹한 귓속으론 상대의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으니.

또한 떠오른 시스템 창은 하나가 아니었다.

「기사 ‘라이돈’의 의지가 운명의 벽을 두드립니다.」

「기사 ‘라이돈’의 한계 돌파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실패 시, 한계 돌파 퀘스트 소멸. 기사 ‘라이돈’ 사망.」

가지가지였다. 카델은 진심으로 이세계 신에 대한 살의를 느끼며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내 심장을 되찾지 못하면 세계는 끝나고, 심장을 되찾아 줄 유일한 희망인 라이돈에겐 갑자기 한계 돌파 퀘스트가 생겼어. 뭘 어쩌란 거지? 관찰 카메라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상태로 뭘 어떻게 하란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라이돈에게 모든 걸 맡기기에는, 그의 상태가 최악이었다. 수없이 채찍질 당한 몸은 살아 숨 쉬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고, 폭주 직전의 상태로 셀레브와의 전투까지 치렀을 테니. 지금의 그에게 한계 돌파의 가능성을 봤다는 시스템이 맛이 갔나 싶을 정도였다.

‘소리라도 들렸다면 덜 답답했을 텐데……. 저 마족 놈은 왜 자꾸 라이돈한테 말을 거는 거야? 어쭈? 내 심장은 왜 보여 줘?’

자신의 심장을 발견한 라이돈이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기운도 없는 주제에 무슨 말을 하겠단 건가. 조금이라도 체력을 보존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1퍼센트라도 올려 줄 것이었다.

‘라이돈은 분명 무리하려고 할 거야. 하지만 어차피 저 간수 놈을 죽이면 내 심장은 되찾지 못해. 일단은 싸움을 피해야 한다. 어떻게든 무사히 심장을 되찾고, 간수 놈을 해치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다른 단원들이 이곳을 찾아오기를 바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카델이 다른 곳에 희망을 걸어 보려던 순간이었다.

‘저, 저 새끼가……!’

라이돈의 눈앞에 심장을 들이밀며 조롱하던 간수가, 다짜고짜 라이돈의 뺨을 내리쳤다. 간수의 손바닥을 따라 라이돈의 고개가 맥없이 돌아가며, 더 흘릴 것도 없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 처량한 모습에 카델은 있지도 않은 몸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으나.

‘어어……!’

다음 순간, 라이돈이 가까이 다가온 간수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피가 섞인 침이 간수의 눈꺼풀을 타고 흘러내리고. 내내 얄밉게 웃어 대던 놈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안 돼, 라이돈.’

라이돈은 힘이 없고, 자신은 심장을 빼앗겼다. 도와줄 이 없는 위험 속에선 최대한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게다가 저런 변태들은 반응해 줄수록 더 날뛰는 법이니. 희망이 보일 때까지 최대한 얌전히 숨을 죽이며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라이돈의 생각은 카델과 달랐다.

“배짱 하난 인정해 주마. 다 죽어 가는 몸으로도 반항을 하다니……. 날 자극하는 덴 도가 튼 녀석이군.”

지하 감옥을 지키는 고위 마족, 코다는 라이돈의 반항이 불쾌하면서도 동시에 짜릿할 만큼 흡족했다. 죄수의 발악과 비명, 고통이 그에게는 이 세상의 무엇보다 커다란 쾌락이었다.

마계의 해방? 사실 코다에겐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이 음침한 지하 감옥과 마왕이 종종 넘겨주는 장난감이 전부였다.

강자와 약자, 놈들이 가진 힘의 크기는 상관없다. 강자라면 꿇리는 재미가, 약자라면 울부짖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녀석들이 반항할수록 즐거웠다. 그들의 날 선 눈빛이 서서히 죽어 가는 과정이 그를 미치도록 흥분시켰다.

부르르 몸을 떤 코다가 손안에 있던 카델의 심장을 거두고는, 채찍을 움켜쥐었다. 더 때릴 곳도 없는 상처투성이의 몸. 까딱했다간 죽어 버리리라. 마왕은 녀석을 미끼로 살려 두라고 했으나, 이미 낚아 둔 대어가 있다. 놀이가 과해져 요정이 죽는대도 큰 벌을 내리시진 않을 터.

“시, 심장을… 카델의 심장을…….”

“말할 기운이 남았나? 그렇다면 좀 더 신나게 놀아 줘도 되겠는걸! 크하하학!”

코다는 거리낌 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그의 체벌엔 동정심이 없었고, 그저 상대의 밑바닥을 들춰 보겠다는 추악한 욕망이 있을 뿐이었다. 세찬 채찍질에 매서운 타격음이 번졌다. 비틀거리는 몸을 따라 사슬이 거칠게 흔들렸다.

“백 대를 견디면 저 인간에게 심장을 돌려주는 걸 고려해 보지!”

마음에도 없는 말로 미약한 희망을 안기는 것 또한 코다의 악취미 중 하나였다. 꾸역꾸역 희망의 끈을 움켜쥐고 버티다, 그 희망이 거짓임을 깨달았을 때의. 그 거대한 절망과 절규를 코다는 사랑했다.

“어디 이 반반한 낯짝 좀 건드려 볼까? 이 고운 얼굴을 곤죽으로 만든 다음, 날개 한 짝을 뜯어 성문에 전시해 둬야겠어. 그 정도 기념비는 폐하께서도 기쁘게 받아들이실 거다.”

피가 흥건한 채찍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린 그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라이돈은 더 이상 반항할 여력도 남지 않은 듯, 미미한 호흡을 이어 갈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코다가 큰 들숨과 함께 채찍을 휘두르고. 정확히 얼굴을 가격한 채찍을 따라 라이돈의 얼굴이 돌아갔다.

바라던 부위를 가격했다. 그러나 코다의 얼굴에선 만족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기분 나쁜 미소가 딱딱하게 굳으며, 채찍을 쥔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허……! 이거, 완전히 독종이로군.”

채찍을 강하게 당길수록, 푹 꺾여 있던 라이돈의 고개가 조금씩 움직였다. 곧이어 드러난 것은 턱 근육이 떨릴 만큼 필사적으로 채찍을 물고 있는 라이돈의 얼굴.

어두운 감옥 안, 형형히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코다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을 마주친 순간. 코다는 본능을 따라 짧게 몸을 떨었다. 그것은 희열이나 쾌감,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위협. 거의 느껴 볼 일 없던 낯선 감정이 그의 등줄기를 뾰족하게 파고들었다.

“……흥. 놓지 않는대도 상관없지. 네 몸부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라이돈에게서 채찍을 빼앗는 것을 포기한 코다가 채찍을 마기로 변환시켰다. 굳어 있던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린 그가 라이돈의 눈앞으로 빈손을 흔들어 보였다.

“백 대를 맞기는 싫은 모양이니, 네 동료의 심장은 계속 내 손안에 있게 되겠군? 별것 아닌 동료애지. 널 구하겠다고 심장을 빼앗긴 인간만 가엾게 됐구나!”

“정말…….”

“음?”

피떡이 된 고개에 힘을 준 라이돈이 코다를 응시했다.

“정말 널 죽이면 심장도 사라져……?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는 건데……?”

좀 전과는 달리 완전히 독기가 사라진 눈빛에 코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옅어졌다. 그는 조롱하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이내 인심 썼다는 듯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심장을 훔쳤다는 건, 곧 내 목숨이 두 개로 늘어난다는 말과 똑같다. 내가 한 번 죽더라도, 이 심장이 있는 한 나는 부활하지. 아쉽게도 한 번에 하나의 심장밖에 여분을 가지지 못하지만…….”

“부활 전에 심장을 빼앗으면 되는 거 아냐?”

“크흐흑! 멍청한 소리. 심장은 내 몸속에 있다. 내 죽음과 동시에 여분의 심장이 몸과 연결돼 생명력을 불어넣지. 그 모든 과정을 정지시키고 조심스럽게 사체를 헤집을 능력이, 이 세상 누구에게 있을 것 같나?”

“……그렇구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의기양양하던 코다가 곧장 입을 다물었다. 너무 과하게 비밀을 떠벌린 걸까? 잠시 걱정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런 걸레짝 같은 몸으로는 자신을 죽이지도, 심장을 되찾지도 못할 테니.

그리 생각한 코다가 다시금 채찍을 생성한 순간이었다.

“흐흐흐…….”

“……뭘 웃는 거지?”

마치 귀신의 흐느낌을 닮은 웃음이었다. 실성이라도 한 것인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인상을 찌푸린 코다가 채찍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채찍이 라이돈에게 가 닿기도 전.

“아하하하! 하하하하!”

뒤로 훅 고개를 꺾은 라이돈이 미친 사람처럼 웃어 대기 시작했다. 예상에 없던 반응에 코다가 주춤하며 동작을 멈췄다. 그렇게 한참을 감옥이 떠나가라 웃어 대던 라이돈이 천천히 고개를 내리고.

피 칠갑의 얼굴 한가득 미소를 매단 그가, 나른하게 눈을 휘며 말했다.

“좋아. 이제 죽여 버릴래.”

코다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다 죽어 가던 요정의 폭소나,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 따위에 기가 꺾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역시 고위 마족. 한낱 요정의 몸부림에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 치지는 않는다.

코다가 멈칫한 이유는, 바로 순식간에 감옥 안을 뒤덮은 한기. 참았던 것을 방출하듯 빠르게 차오르는 한기가 감옥의 벽과 바닥을 하얗게 얼어붙이고.

“너희한테 두 번이나 소중한 존재를 빼앗길 것 같아?”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라이돈의 양팔을 포박하고 있던 사슬이 끊어졌다. 그 모습을 발견한 코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어떻게 사슬을…….”

“응? 뭐야, 그 바보 같은 표정. 얼빠져 있지 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랑 놀아 줘야지, 멀대 아저씨.”

평범한 사슬이 아니다. 저것은 일전, 지하 감옥을 새롭게 구상했을 때 제작한 사슬. 마계 공학계의 신성이라 불리는 에밀리아 스웰르, 현 마왕의 기술이 집대성된 사슬이었다.

그녀의 마기가 일부 포함되어 있어 결박된 대상은 제힘을 발휘할 수 없고, 요정족 같은 경우엔 몸을 변형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만약 그런 게 가능했다면 진즉에 몸을 작게 줄여 도망쳤을 테니.

그런 사슬을 아무렇지 않게 끊어 버린 것이다. 설마 여태 힘을 숨기고 있던 것인가?

‘……아니. 아니다. 최후의 발악을 하는 거야.’

양팔은 자유로워졌으나, 아직 두 다리는 묶여 있다. 코다는 라이돈이 완전히 풀려나기 전, 그를 해치우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도망가게 둔다면 성이 소란스러워질 거다. 절대 놔줄 수 없지.’

예상하지 못했던 힘이었으나, 코다는 여전히 자신이 라이돈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력 차의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는 라이돈이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의 심장이 있다. 그것이 있는 한, 그리고 자신이 가진 힘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상. 라이돈은 전심전력으로 덤비지 못한다.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소용없다. 아니면, 발버둥을 쳐 보려는 건가? 저 인간의 목숨을 버리고 대신 살려고?”

점점 강해지는 한기에 저항하듯 코다의 몸 위로도 짙은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양손에는 검과 창이 들렸다. 다룰 수 있는 고문 도구의 수는 곧 그가 다룰 수 있는 무기의 수.

대부분의 날붙이를 고문 도구로 사용하는 그에게는 무기의 제약이 없었다. 적재적소에 다양한 무기를 활용하는 능력은 전대 마왕까지 인정하여 그를 지하 감옥의 유일한 간수로 임명했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라이돈은 코다의 능력이야 뭐가 됐든 상관없다는 듯, 곧장 몸을 굽혔다. 훅 내려간 손끝이 닿은 곳은 쓰러진 카델의 몸 위. 잠시 간지럼을 태우듯 카델의 몸을 쓸어내린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말했었잖아, 카델. 네가 없는 자유는 필요 없다고. ……그런데 이젠 아니야.”

뿌연 입김을 따라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하얀 손이 카델의 뺨을 짚자, 투명한 얼음 장막이 그의 몸을 뒤덮었다.

“네가 없으면 이 세계도 필요 없어. 약속할게. 네 심장을 되찾지 못하면, 내가 전부 부숴 버릴 거야. 저승에 간 네가 아쉬워하지 않게, 하나도 남김없이 부숴 버릴게.”

오히려 죽어서 다행이었다, 생각할 수 있도록. 엉망으로 만들어 줄게.

소름 끼치는 말을 꺼내는 주제에, 라이돈의 표정은 한없이 다정하기만 했다. 말을 마친 라이돈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그와 동시에, 코다의 창날이 라이돈의 머리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창을 직격으로 맞은 라이돈의 머리가 튕기듯 뒤로 꺾였으나.

“아하하! 기다리는 법도 모르는 거야? 내가 알려 줘야겠다. 멍멍아, 주인이 바빠 보이면 보채지 말고 앉아서 기다리는 거야. 못되게 굴면 간식 없다?”

창은 라이돈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창날과 이마의 사이로 두꺼운 얼음 장막이 파고든 덕이었다.

얼음에 처박힌 창을 움켜쥔 라이돈이 가볍게 힘을 주자, 곧게 뻗은 창대가 순식간에 마기가 되어 흩어졌다. 흩어진 마기는 다시 코다의 손으로 돌아가 날카로운 삼지창으로 변모했다.

“미친놈의 발악만큼 즐거운 구경거리도 없지. 어디, 나도 끝까지 즐겨 주마!”

곧장 삼지창을 내던져 라이돈의 시야를 방해한 그가 너머에서 기다란 장검을 휘두르고.

“바보 멍멍이네. 난 멍청한 게 딱 질색인데.”

팔등으로 삼지창을 빗겨 친 라이돈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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