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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그 녀석한테 이만한 마력이 남았을 리가 없는데!”
혼신을 다한 주먹질을 따라 짙은 마기가 퍼져 나갔다. 셀레브는 미친 듯이 눈앞의 얼음벽을 두드리며 연신 욕설을 지껄였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도, 끝없는 저주도. 얼음벽을 깨부수진 못했다. 결국 공격을 멈춘 그녀의 표정으로 당혹감과 분노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그 개 같은 요정 새끼가 끝까지…….”
폭주하듯 갑작스레 넘쳐흐른 라이돈의 마력은 지하 감옥을 통째로 얼어붙였다. 벽 너머를 가득 채운 채 꿈틀거리는 마력이 징그러울 만큼 생생하게 느껴졌다.
막아야 했다. 막지 못하면 지하 감옥의 입구를 막은 이 얼음벽이 무너지는 순간. 성은 순식간에 얼어붙을 테니.
‘저 자식을 데려온 건 바로 나란 말이다. 저놈 때문에 성이 망가지면 그 책임은 전부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제게 남은 목숨은 없다. 사색이 된 셀레브가 다시금 얼음벽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으나.
“셀레브.”
“……에, 에밀리아? 아니, 폐하. 여긴 왜…….”
“왜냐고?”
어느새 나타난 에밀리아가 그녀의 뒤에 섰다. 셀레브는 등줄기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주춤거렸다. 등장한 그녀에게서 진득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에밀리아는 움츠러든 셀레브를 일별하고는, 태연하게 얼음벽 앞에 섰다. 지하 감옥의 유일한 통로를 단단하게 가로막은 얼음덩이. 그 위에 손을 올리자, 일순 온 감각이 마비될 만큼 극심한 한기가 풍겼다.
“이걸 보고도 왜냐는 말이 나오는 거야, 셀레브?”
“그, 그게……. 내가 어떻게든 깨 보려고 했는데… 아니, 이제 깰게. 깰 수 있어, 내가!”
“목소리 낮춰. 머리가 울리네.”
“미안…….”
손끝으로 새까만 마기가 피어오르며, 강한 충격파가 얼음벽을 강타했다. 순도 높은 마기의 울림에 얼음벽에 균열이 일며, 빠르게 허물어지는 듯 보였으나.
“…….”
얼음벽은 무너지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복구됐다. 에밀리아가 만들어 낸 구멍을 순식간에 수복하고, 거기에 더해 에밀리아의 손을 밀어 내듯 얼음 결정이 솟아났다.
“에밀리아!”
에밀리아의 손등을 통째로 꿰뚫어 버린 얼음송곳. 그녀는 눈앞까지 머리를 들이민 날카로운 얼음을 응시했다. 숨이 막히게 건조한 시선. 이내 가볍게 눈을 휜 그녀가 꿰뚫린 손을 망설임 없이 끌어 내렸다.
살벌한 소리를 내며 찢긴 손이 너덜거리며, 옆에 있던 셀레브의 얼굴 위로 보라색 핏물이 튀겼다.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일었으나, 에밀리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두 갈래로 찢긴 손을 움켜쥐며 뒤를 돌았다.
“신경 쓸 게 많아. 저런 자폭에 일일이 어울려 줄 여유는 없어. ……올라가자, 셀레브. ‘그것’을 작동시켜야겠어.”
그는 언제나 상대보다 우위에 서려 했다. 정신적, 물리적인 것을 통틀어 전부.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야지만 안전이 보장될 수 있으니까. 아무 걱정 없이 상대를 우롱하기도 편하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오, 오지 마! 다가오지 마라! 진심으로 인간의 심장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거냐?”
“흐응, 그럴 리가 없잖아. 카델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데.”
“날 죽이면 그 인간도 죽는다!”
“아니야, 정확히 말해야지. 널 죽이자마자 카델의 심장을 빼앗지 못하면 죽는 거라고.”
코다는 공포에 취약했다. 그는 일평생 고통과 공포를 즐기며 살아왔으나, 그것은 전부 타인의 감정을 탐닉했기에 가능했다. 정작 코다 본인은 스스로가 느끼는 공포를 낯설어했고, 지독히도 두려워했다. 두려움을 알기에 상대의 두려움도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잔인한 만큼 미치지 못했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공포를 즐기기엔, 너무 겁이 많았다.
하지만 라이돈은 아니었다. 그는 바라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고 미칠 수 있었고, 그만큼 잔인해질 수 있었다.
“내 계획을 말해 줄까, 멍멍아?”
“필요 없다! 닥쳐라!”
코다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라이돈은 정확히 무기의 타격점을 가리는 장막으로 모든 공격을 튕겨 냈다. 일반적인 장막이 아니다. 충격파마저 그대로 얼어붙이는, 비현실적인 방어력의 장막. 그런 장막을 생성할 수 있는 마력은 남지 않았을 텐데. 그는 보란 듯이 넘쳐나는 위력을 과시했다.
“난 말이야, 지금 죽어 가고 있거든! 내 모든 걸 걸고 널 죽이기 위해서. ……느껴져?”
이만한 마력을 방출하기 위해선 육체에도 충분한 기력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라이돈은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처럼 힘없이 비틀거렸다.
“네 죽음은 확정이야. 문제는 그다음인데……. 난 널 죽이자마자 얼어붙일 계획이거든. 그 후에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서 심장을 꺼낼 거야.”
코다는 느리게 다가오는 라이돈을 마주하며 조금씩 물러섰다. 피 칠갑의 몸으로 멎지 않는 피를 뚝뚝 흘리며, 시체처럼 고개를 맥없이 흔들거린다. 불빛을 따라 어렴풋이 드러난 눈빛에는 초점이 없었고, 입꼬리는 이질감이 들 정도로 활짝 올라가 있다. 미치광이.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형색이었다.
“그런데 꺼낸 후에는? 심장을 어떻게 돌려놓지? 그냥 가져다 대면 쏙 들어가려나? 아하하! 편리해라. 그럼 좋겠지만, 만약 실패하면? 사실 그것도 상관없어.”
연극의 독백처럼 떠들어 대던 라이돈이 손뼉을 맞부딪혔다.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핏방울이 튀어 오르며, 헤벌어진 입 밖으로 새된 소리가 울렸다.
“나도 죽을 거니까! 우린 같이 죽는 거야! 아하하! 하하! 너무 좋아, 카델. 저승에서 행복하게 살자. 아니, 사는 건 아닌가? 이미 죽었을 테니까…… 응! 행복하게 죽자! 아하하!”
이미 죽음을 염두에 둔 그에게 거리낄 것은 없었다. 라이돈은 방출되어선 안 될, 그의 목숨을 유지하는 기운을 모조리 끌어왔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고, 정신도 몽롱해졌다. 환각을 보는 것처럼 지저분해진 시야는 영 현실감이 없었다.
눈앞의 적이 자꾸만 형태를 바꿨다.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작아지고 늘어나며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현재 라이돈이 방출하는 마력은 그가 낼 수 있는 최대를 넘어섰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간신히 다다를 수 있는 경지를, 목숨을 대가로 짧게나마 흉내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라이돈은 단숨에 코다를 죽일 힘을 얻었음에도, 조준 하나를 제대로 못 해 여태 그를 살려 두고 있었다.
“가까이 와, 멍멍아. 자꾸 빗나가잖아.”
벽면에 닿은 코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툭 떨어진 검이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쇳소리를 냈다. 겁을 집어먹어 무기를 놓친 것은 아니었다. 반사적으로 움직인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검과 여전히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는 오른손을 담아냈다.
‘손이, 떨어졌다…….’
공격을 맞은 기억은 없다. 총탄처럼 쏘아지던 얼음덩이도, 눈앞에서 빗나간 얼음 창도, 곳곳에서 솟아나던 얼음송곳도. 전부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그러니 그의 손을 잘라 낸 것은 공격이 아닌, 감옥을 봉쇄한 이 지독한 한기.
파랗게 질린 손은 꼭 모형 같았고, 잘린 단면에선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두려움도 옅어질 테니.
코다는 어떻게든 라이돈을 꺾어 살아남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코다의 의지도 끈질기게 거리를 좁혀 오는 라이돈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대체 왜 안 죽는 거야? 날 놀리는 거야? 내가 우스워, 멍멍아? 안 돼, 곤란해……. 귀엽지도 않은 널 교육할 힘은 없단 말이야. 어서 이리 와.”
“미, 미친놈…….”
“아하하! 미친놈? 내가? 말도 안 돼!”
비척비척 걸어오던 라이돈이 일순 흥분감을 드러내며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를 따라 축 늘어진 팔과 고개가 멋대로 덜렁거렸다. 그야말로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에 코다는 섣불리 몸을 움직이지조차 못했다.
빠르게 거리를 좁힌 라이돈은 굳어 있는 코다의 멱살을 잡아끌고는, 그의 이마에 제 축축한 이마를 가져다 댔다.
마주친 시선. 시야를 가득 채운 라이돈의 붉은 눈동자는, 일순 숨 막히는 한기를 잊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멀쩡한데, 어떻게 내가 미친놈이야. 난 태어나서 이렇게 맑은 정신을 느껴 본 적이 없어. 너무 맑아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인데!”
그의 눈동자는 꼭 지옥 불에 담금질한 천사의 심장 같았다. 아름다웠으나 섬뜩했고, 선과 악의 경계가 없었으며, 붉은 동시에 검었다. 모호한 역설투성이의 진리. 금기된 신의 유흥.
살기 가득한 눈을 마주하면서도 코다는 그런 감상을 남겼다.
“……아니. 넌 단단히 미쳐 있다.”
죽일 듯 코다를 노려보던 라이돈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복부. 어느새 새로운 검을 생성한 코다가 남은 한 손으로 라이돈의 복부를 관통한 것이다.
잠시 그 잔인한 장면을 응시하던 라이돈이 씩 입꼬리를 올리자, 꽉 다물린 잇새로 진득한 핏물이 흘렀다.
“어서 죽는 게 좋을 것 같군.”
“아아,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멍멍아. 나 지금 너무…….”
흔들리는 몸에 힘을 주고, 제 복부를 관통한 검날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날을 빼내기 시작했다. 고개를 뒤로 꺾고, 한 손은 검날을, 한 손은 코다의 어깨를 짚었다. 벌어진 입새로 고통에 찬 호흡이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옅은 웃음기가 맴돌았다.
“너무, 기분이 좋아…….”
검날이 완전히 빠져나간 자리로 새빨간 얼음이 얼었다. 라이돈은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을 듯 다리를 구부린 채 비틀거렸다. 그러면서도 움켜쥔 검날을 놓지 않았다. 그에 코다가 검을 창으로 바꿔 다시 한번 라이돈을 공격하려 했으나.
퍽!
라이돈이 가볍게 휘두른 팔이 코다의 머리를 가격하며, 짧고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히히……. 흐하하……!”
시야가 거꾸로 뒤집히고, 이리저리 굴러갈 때까지. 코다는 제게 어떤 죽음이 닥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부릅뜬 눈에 담긴 것은, 목 잘린 자신의 몸뚱이와 그 몸뚱이를 끌어안은 채 춤을 추듯 흔들거리는 라이돈의 뒷모습. 그것이 코다가 볼 수 있는 최후의 장면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
코다의 시체와 함께 바닥으로 넘어진 라이돈이 짧게 숨을 골랐다. 파랗게 질린 시체는 어느새 차가운 얼음덩이로 변모해 있었다.
코다의 기운은 모조리 멈췄으니, 그는 카델의 심장을 사용하지 못한다. 꾸역꾸역 몸에 힘을 주어 일어난 그가 돌덩이처럼 굳어 버린 코다의 가슴팍을 세게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망치질하듯 연신 내리치자 시체에서 파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움푹 팬 가슴을 바라보던 그가 날카로운 얼음으로 뒤덮인 손을 가슴 속으로 집어넣었다.
일련의 과정이 이어질수록 라이돈의 몸에 떨림이 더해졌다. 추위나 두려움이 아닌, 순수한 고통에 의한 떨림이었다. 곧 마구잡이로 가슴을 헤집던 손이 빠져나오며, 새빨간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델…….”
제 손에 들린 심장을 발견한 라이돈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는 허겁지겁 몸을 돌려 카델에게 다가갔다. 누워 있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견고한 얼음 장막 위에 심장을 올려 두었다. 피범벅의 심장이 투명한 얼음 위에서 정신없이 박동했다.
“어서 들어가. 어서.”
힘을 주어 누를 수도, 카델의 가슴을 열 수도 없다. 라이돈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되찾은 심장을 카델의 위에 올려 두는 것뿐이었다. 호흡을 따라 번지는 뿌연 입김이 자꾸만 시야를 가리기에 숨까지 참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카델의 심장은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에 라이돈이 위치라도 바꿔 보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어…….”
그 순간, 심장의 박동이 느려지며 선명했던 붉은색은 착실히 흐려졌다. 그렇게 카델의 심장이 회갈색의 모형처럼 굳어 버릴 때까지. 멍하니 심장을 지켜보던 라이돈이 툭 손을 떨궜다.
“아버지 같아.”
죽는 순간 생기를 잃어버린 그 혼탁한 안색. 죽어 버린 카델의 심장은 꼭 아버지의 최후를 떠올리게 했다. 맥이 빠진다는 듯, 완전히 몸을 뒤로 눕혀 버린 라이돈이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됐어.”
한순간에 바뀐 그의 표정에선 지독한 권태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만할래.”
진동하는 대지를 따라 높게 솟은 마왕 성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성에서부터 쏟아지는 무수한 돌덩이와 파편에 인간군은 물론 고위 마족들의 기세까지 주춤했다.
“자폭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죽은 기사의 검을 주워 가까스로 전투를 이어 가던 루멘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곁에는 몸을 숙인 채 광역 보호막을 준비 중인 가르엘과 숨을 고르는 반, 라이돈의 위치를 파악한 요젠이 서 있었다.
요젠은 황당하다는 듯 되묻는 루멘에게 답했다.
“이미 진행 중이야. 무슨 일을 겪었길래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는 몰라도, 라이돈은 자폭을 택했어. 이 진동이 멈추면, 라이돈은 죽어.”
“……대장이 함께 있는 게 아닌가?”
“아마 함께 있을 거야.”
“그런데도 자폭을 택했다고? 그럴 리 없어.”
라이돈이 카델이 위험해질 선택을 했을 리 없다. 루멘은 그렇게 생각했고, 다른 단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 닥쳤대도 라이돈이 카델을 지키지 않을 리 없다고 믿었다. 그러니 만약 라이돈이 진심으로 자폭을 택했다면, 그 자폭으로 카델이 다칠 일은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일 터. 하지만.
“단장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데 계속 마왕 성 지하에 둘 순 없어. 우리가 꺼내 와야 해. 단장도…… 망할 요정 놈도.”
반의 말대로였다. 라이돈의 자폭에 어떤 이유가 있던, 그가 카델의 곁에서 죽게 놔둘 순 없었다.
“저도 두 분을 구하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가르엘의 몸 위로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그 기운을 감지한 요젠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결단을 내렸다.
“나와 가르엘은 이곳에서 사람들을 지키겠어. 너희는 내 분신을 따라 이동해. 그곳에 라이돈과 카델이 있을 테니까.”
가르엘이 없다면 아군의 피해는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가르엘 혼자 이곳에 남겨 두기엔, 기술을 준비하는 동안 그에겐 너무나 많은 허점이 생긴다. 누군가는 남아 그를 호위해야 했다.
요젠은 자신을 향한 가르엘의 감동 어린 시선을 무시한 채 분신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그 이 빠진 남의 검을 들고 날 쫓아오겠다는 거냐? 짐짝이 따로 없군. 그냥 여기서 가르엘 경이나 지켜.”
“너야말로 여기서 모기처럼 피나 흡수하는 쪽이 훨씬 잘 어울리는데 말이야. 괜히 중간에 미쳐 버리지 말고 가르엘 경을 지키는 게 어때.”
“이런, 두 분 다 절 그렇게나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감동적이군요. 그런데 왜 이런 슬픈 감정이 드는 걸까요?”
요젠이 분신을 완성해 내보이자, 반과 루멘은 투덕거리던 것을 멈추고 뒤에 섰다.
“오래 유지하진 못할 거야. 최대 속력으로 라이돈을 찾아갈 테니, 잘 쫓아가.”
갑작스러운 진동에 입구를 지키던 고위 마족의 주의력도 흐트러졌다. 들어가려면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요젠은 분신을 성내로 이동시키며 입구를 막고 있던 고위 마족을 향해 단검을 날렸다.
“지금이야!”
암기를 두른 단검은 고위 마족을 타격하는 동시에 뒤편의 문을 통째로 깨부쉈다. 요젠은 문으로 향하려는 고위 마족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곤, 어느새 손아귀로 돌아온 단검을 휘둘렀다.
간단히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요젠의 공격은 무르지 않다. 적들이 요젠에게 시선을 빼앗긴 사이, 그의 분신과 반, 루멘이 성안으로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들이 성으로 들어갔다!”
“쫓아! 당장!”
뒤늦게 그들의 침입을 알아챈 고위 마족들이 반과 루멘을 쫓으려 했으나.
“쫓게 두지 않아.”
요젠은 두 남자가 지하로 내려갈 때까지 적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요젠이 마족의 발을 묶어 둔 동안. 반과 루멘은 분신의 안내를 따라 흔들리는 성을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