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5화 (49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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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델을 안은 가르엘의 질주로 그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계단을 돌파했으나. 문제는 성의 상층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다.

“우와아아악! 가, 가르엘!”

“다시 안아 드릴까요?”

“어, 업어 줘! 못 걷겠어!”

카델은 냉큼 가르엘의 등에 올라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흔들리는 바닥을 따라 천장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상단부에 발을 디딘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카델은 간신히 계단의 위치를 찾았다.

“저기! 저기로 올라가!”

“어우, 여기는 바닥에 웬 구멍이 이렇게…….”

가뜩이나 중심 잡기가 어려운데, 군데군데 사람 한 명은 거뜬히 떨어질 법한 구멍이 뚫려 있어 발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가르엘은 시야를 아래로 고정한 채 카델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설마 꼭대기 층까지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직 마왕도 같이 있을 텐데 왜 성이 무너지고 있는 거야?”

“혹시 동료들이 마왕을 해치운 건 아닐까요? 이 성은 마왕의 힘으로 띄운 걸 테니까, 녀석이 죽으면 더 이상 떠 있지 못하겠죠.”

“상당히 희망적인 발상이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에밀리아가 죽었다면 시스템이 알리지 않았을 리 없다. 자신 없이 다른 이들이 마왕을 죽일 수 있을 리도 없고.

‘스토리가 바뀌었다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에밀리아를 대신할 최종 보스는 없어. 마왕은 아직 살아 있다.’

그렇다 해도 에밀리아에게 뭔가의 변화가 생겼다는 건 분명했다. 카델과 가르엘은 여러 짐작 속에서 계단을 오르고 올랐다. 그렇게 거미줄로 뒤덮인 층과 외벽 없이 뻥 뚫린 층을 넘어, 4층까지 다다른 그들이었으나.

“여긴 뭐야……?”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길게 뻗은 복도와 굳건히 닫힌 무수한 방문뿐이었다. 어딜 봐도 올라갈 만한 계단은 없고, 복도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층에 발을 들이자마자 직전까지 타고 올랐던 계단마저 사라졌으니.

“다행히 여긴 흔들리지 않네요. 아래층부터 무너졌던 모양이에요.”

가르엘은 조심스럽게 카델을 내려 주며 주변을 살폈다.

“일단 앞으로 쭉 걸어가 볼까요?”

“……아니. 문이 수상해. 한번 열어 봐야겠어.”

아득하게 뻗친 복도보다는 코옆의 문들이 더 신경 쓰였다. 장막을 두른 카델이 오른쪽에 달린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 대담한 행동에 가르엘이 서둘러 카델을 보호하려 했으나.

“복도……?”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방의 내부가 아닌 또 다른 복도였다.

복도의 문을 열면 또 다른 복도가. 그 복도의 문을 열어도 새로운 복도가. 끝도 없이 펼쳐진 복도의 향연은 두 남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어, 어지러워…….”

“점점 현실감이 흐려지는데요. 함정에 말려든 걸까요?”

알 수 없었다. 함정에 걸렸다기엔 의심스러운 장치도 없고, 함정의 주인도 보이지 않는다. 미로 같은 층인 것일까? 결국 문 열기를 멈춘 카델이 복도의 벽면에 기대어 앉았다. 계속 같은 풍경을 돌고 돌았더니 심신이 지쳐 버렸다.

“다들 어디 있는 걸까? 마왕은 꼭대기 층에 있을 테니까, 분명 여길 지나쳐 갔을 텐데. 어떻게 돌파한 거지?”

“……글쎄요. 어쩌면 돌파하지 못했을 수도 있죠. 저희와 같은 층에 머물고 있을지도 몰라요.”

“같은 층에 있다고? 하지만 소린 경을 봤잖아. 소린 경은 마왕을 상대하다 죽었어. 남은 사람들이 여기서 마왕을 상대하고 있다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잖아?”

분명 다들 이 기묘한 복도를 벗어나 층을 올라간 것이 틀림없었다. 카델은 그리 확신했으나, 가르엘의 생각은 달랐다.

“저희가 올라왔던 1층, 2층, 3층까지. 전투의 흔적으로 보이는 건 많았지만, 어디에도 적은 존재하지 않았죠. 계단 찾기를 방해하는 요소도 전혀 없었어요.”

“그랬지.”

“동료들이 적을 쓰러뜨리고, 위험 요소를 전부 제거했으니 멀쩡히 계단을 오를 수 있던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만약 아군이 4층을 돌파했다면, 이 무시무시한 복도들은 사라지고 평범하게 계단이 보였어야 해요.”

“흠……. 일리가 있네.”

“여전히 이 기묘한 힘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건, 나머지 아군도 층을 돌파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보는 게 맞죠. 복도를 만들어 낸 적을 해치우지 못한 거예요.”

“그렇다면…… 이곳에 마왕이 있다는 소리겠구나. 꼭대기 층이 아니라.”

가르엘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표정을 굳힌 카델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가르엘의 말은 설득력이 높았다. 아군이 무사히 층을 올랐다면, 필시 이 기묘한 복도를 이루고 있는 힘을 제거해야 했을 테니까.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선 쿤라에게 묻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으므로, 카델은 가르엘의 가설을 믿어 보기로 했다.

“마왕이 이 공간을 만들어 낸 거야.”

“아마 그럴 겁니다. 특별히 느껴지는 마기는 없지만, 그건 공간의 특이한 구조 때문일 수도 있어요. 문을 열면 나오는 복도들이 새로운 복도인지, 아니면 똑같은 복도를 맴돌도록 유도하는 건지. 그걸 알아내는 게 우선일 것 같군요.”

두 남자는 조심스럽게 복도를 가로질렀다. 한참을 걸어도 복도의 끝은 어둠이었고, 그 너머의 모습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여기가 마왕의 공간이라면 우리의 침입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여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걸리네.”

“동료들이 마왕을 붙들어 두고 있는 걸까요?”

“루멘이 위험한 상황이니, 오래 붙들어 둘 순 없을 거야. 1초라도 합류를 서둘러야 해. 어떻게 하면 같은 복도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열심히 공간의 정체를 파악해 보려 해도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왕은 무엇 때문에 자신들을 이곳에 가두려는 걸까. 복도를 헤매다 서서히 말라 죽기라도 바라는 걸까? 어쩌면 동료들을 먼저 처리한 뒤, 고작 둘뿐인 자신들을 확실하게 죽여 버리려는 계획일지도 모른다.

카델은 암울한 생각을 이어 가며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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